[작가와의 만남] 막걸리와 이야기가 익는 막걸리 토크의 현장 -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 이여영
지난달 30일 아마도, ‘미국의 금주법 시대에 살았더라면, 틀림없이 범법자가 됐을 사람’, 이여영은 15명 남짓한 이들과 막걸리를 들이켜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름하야, ‘이여영 기자와 함께하는 2030 막걸리 토크.’
2009.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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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책 제목만 보고, 아주 잠시 오해했다. ‘어, 혹시 야구 이야기 아냐? 멋진걸.’ 제목에 있는 ‘NO FEAR’을 보고 든 생각이었다. 비록 이 가을을 허망하게 휘발시켰지만, 한 프로야구팀의 팬이라면, 불경이나 성경 속 경구와도 같을 이 말. 이주노동자 감독이 선수들에게 늘 강조하는 이 말. 그 덕도 약간 있는지, 처참하게 바닥만 빡빡 기다가 2년 연속 가을 야구를 할 수 있었기에, 뚜렷하게 기억하는 이 말. 그 주술에 대한 흥미진진한 야구 이야기를 펼치는 것인가, 잠시, 아주 잠시 오해했다.
아니 웬걸,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NO RULES NO FEAR)』(이여영 지음/에디션더블유 펴냄)은 한 이십 대 프리랜서 기자의 좌충우돌 ‘직장 참혹사(?)’를 기록한 책이었다. ‘20대 여자와 사회생활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저자는 7장에 걸쳐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꼼꼼하게 기록해 놨다. 제목은 그러니까 나약해지는 자신을 붙들어 매기 위한 새로운 도전 앞에 당당해지기 위한 마법의 주문이었다.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
그리고 그는 터놓고 세상과 만나고 싶었나 보다. 새로운 사람들과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 마구 마구 이야기하고 싶었나보다. 지난달 30일 아마도, ‘미국의 금주법 시대에 살았더라면, 틀림없이 범법자가 됐을 사람’, 이여영은 15명 남짓한 이들과 막걸리를 들이켜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름하야, ‘이여영 기자와 함께하는 2030 막걸리 토크.’
추측컨대, 이 막걸리 토크는 그의 몹쓸(?) 버릇 때문이었을 거다. “나는 습관적으로 사람을 불러 모은다. 밥자리건 술자리건 개의치 않는다.”(p.209) 그의 습관에 낚여 막걸리 익는 가을밤을 보낸 시간을 살짝 중계한다. 롸잇나우(right now), 막걸리 한 잔, 풍류 한 수 읊으며 읽어도 좋으리라.
이여영은 뉴규?
여기서 잠깐, 저자에 대해 일단 짚고 넘어가자. 지난해 촛불이 한창 타오르던 시기, 한 블로그에 이런 제목의 글이 올랐다. ‘중앙일보가 기록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한 전국 단위 일간지 기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이었다. 해당매체를 비롯한 일부 수구 신문의 촛불집회 관련 보도를 비판한 내용이었다. 해당 매체에 몸담고 있던 그가 20년 후 어느 날 잠에서 깨 머리를 부여잡고 지독하게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한 일이었단다. 그리고선 초조한 심정에 술을 한잔했다. 당일 밤 10시쯤 휴대폰은 불이 나고, 블로그를 확인하자 조회 수가 자그마치 34만 명, 댓글은 1,100개. 단 세 시간 만에 벌어진 폭풍 같은 사건.
그리고 2008년 8월 20일. 그는 조직에서 내쳐졌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 그럼에도 믿기 힘든 결과. 직장 내 권력의 눈 밖에 난, 특히 조직의 치부를 드러낸 자에게 가해지는 어처구니없는 살풍경. 그것도 표현의 자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최고의 모토로 가지고 있어야 할 조직에서.
어쨌든, 해당 회사는 ‘조직원의 뒤통수를 치면서, 구성원의 일개 심정 따위 내 알 바 아니라는 식’으로 모든 후속 조치를 취했다. 참으로 거칠기 그지없는 방식. 한국 유수의 언론사에서 이뤄진 일이다. 젊은이의 솔직한 항변조차 담아낼 수 없는 쫀쫀하고 옹졸한 그릇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회사는 재계약 거부라는 통상적인 절차를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가 얻은 명백한 깨달음. 이미 각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은 예상하지 않은 방식으로, 조직에 맞선 구성원에 보복한다.”(p.315)
그리하여 이 책은 그런 저자의 이력과 궤를 같이한다. 그는 지금 프리랜서로 뛰면서 KBS 인터넷의 ‘이여영의 아지트’ 등의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막걸리 토크의 시작
술이 정말 맛있어서 마시는 것은 아니며 술을 마시는 상황 자체를 좋아한다는, 만나기 껄끄러운 사람은 술자리에 함께하지도 않는다는 이 기자가 기꺼이 막걸리 토크를 마련한 것은, 할 말이 있다는 방증 아니겠는가. 술자리가 정해지면 당장 그날 먹을 음식을 떠올리며, 그 음식에 궁합이 맞는 술도 떠올린다는 이 기자가 정한 메뉴는 한식. 홍대 부근의 한 한식당에 푸짐한 상이 마련됐다.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채웠고, 저자는 이런 말로 이 자리의 테이프를 끊는다. “막걸리를 정말로 좋아해요. 특히 현미 막걸리. 얼마 전에도 밤을 새워서 한 박스 먹었더니 변비가 싹 사라진 거 있죠? 전 홍대 부근에서 주로 놀고먹고 마시고 해요. 먹고살려고 책을 썼고요. (웃음) (직장 다닐 때)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그래서 동생에게 (조언을) 해 주는 마음으로 책을 썼어요. 앞으로 잘 팔렸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같이 이렇게 술 마시고 기어서 집에 가는 걸로 해요. (웃음)”
아, 맞아 그랬지. “요즘은 막걸리에 흠뻑 빠져 있다. 전국 각지의 깨끗한 물맛과 정성어린 손맛, 신선한 쌀 맛이 여간 매력적인 게 아니다. 막걸리 집마다 내오는 푸짐한 안주며, 넉넉한 인심도 좋다. 서울 방배동이며 전남 목포, 전북 전주로 막걸리 투어도 자주 떠나는 편이다. 와인을 대할 때와는 다른 소박하며 털털한 분위기도 마음에 든다. 와인 마실 때는 나도 모르게 가식이 나오지만, 막걸리는 마실 때는 이상하게 진심이 우러나온다.”(p.188)
진심이 마구 쏟아져 나와 막걸리와 함께 이를 마셔야 할 것 같은 분위기. 사람들도 덩달아,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자기소개에 나선다. 친구 따라 얼떨결에 따라오거나 홍대로 놀러 가자는 언니의 꼬임(?)에 따라온 사람들, 저자의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직접 만나고 싶어서 멀리 인천에서 왔다는 사람, 남자가 몇 명 없을 거라고 해서 우월적(?) 지위를 누리기 위해 온 남성, 막걸리를 마셔본 적이 없음에도 얘기를 듣고자 찾아온 여성, 이십 대가 너무 성공만 좇는 것보다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일 것 같아서 여자친구를 함께 데리고 온 ‘재수 없는’(저자의 표현) 커플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막걸리와 함께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무장해제 시킬 수 있는 건, 역시 알코올이 킹왕짱이다. 이날은 막걸리가 그 역할을 맡았고. “남자들은 이 책을 싫어하더라고요. 출산율이 낮아진다는 둥. (웃음) 전 현미 막걸리가 잘 맞아요. 아침에 피부도 반질반질해지고 변비도 없어지고. 부산 사람들이 좀 그래요. 위악적으로 더러운 얘기하는 걸 좋아해요. 이 집으로 정한 건, 한식집 한 상이면 1만 원이면 푸짐하잖아요. 스파게티 같은 걸로 하면 비싸기만 하고. 이런 걸 비교해 놓은 걸 블로그에 올려놓으니 댓글이 우르르 달리더라고요. 이 집이 좋아요. 그래서.”
참, 이 자리에는 책에도 언급된, 우리나라 최고의 막걸리를 만들어 보겠다고 청춘을 다 바친 막걸리 회사 대표도 함께하셨다. “막걸리에 미친 사람이 막걸리 연구에 빠져 지내는 몇 년의 세월 동안 아내는 친정으로 가버리고, 밑도 끝도 없는 개발비에 전 재산을 다 써버린 말 그대로 막걸리에 미친 선배.”(p.205) 현미 막걸리, 처음 마셔보는 주종이었다. 누군가는 ‘막걸리에 미쳐? 그게 뭐야.’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마셔보곤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이해할 순 없어도, 누군가에겐 그냥 그런 거다. 생은 그렇게, 병적인 유머 센스를 발휘하기도 하는 법이니까. 거짓말이 아니고 막걸리 쌉쌀하니 맛있었다. 평소 마시는 막걸리보다 나았다. 다음날 머리도 아프지 않고(임상시험 끝!) 숙취도 없다. 그저 내 안에서 발효됐을 뿐.
사회생활을 통해 길어 올린 어떤 깨달음
“사회생활하면서 이상한 짓도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열심히 하고 예쁘게 보이면 다 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회사 갈 때 목에 리본이 달린 옷도 입고, 미니스커트, 귀걸이, 심지어 테니스복도 입고 다니고. (웃음) 어느 날 사수가 신용카드 주면서 그러더라고요. 원래 그건 술이나 밥 사라고 회사에서 주는 건데. 이걸로 단화 신고, 5만 원짜리 정장 입고, 미스코리아 머리 펴고. 아니면 앞으로 나오지 마. 근데 그렇게 하니까 인생이 달라져요. 절 무시했던 사람들이 저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고. (웃음)”
책에서도 언급했듯, 그는 화려하게 스스로를 치장하는 것을 좋아했던 ‘팔색조’였다. 첫 직장에 다닐 땐, 회식 자리의 회사 오너 앞에서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집이 어디에요?”라고 물었다가 다음날 간부들에게 면박을 받기도 하고. 간부들이 “기사, 잘 봤어.”라고 칭찬하면, 대뜸 “무슨 기사요?”라고 되묻는. 사실 이상할 것도 없고,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건만, 그에게 주어진 스트레스는 만만치 않았나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이런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특히 회사는. “그래서 내 여동생은 안 했으면 했어요. 언니나 여자 선배들이 이런 것을 알려줬으면 좋았을걸. (웃음)”
한 이십 대의 참여자가, “이런 책을 찾고 있었다, 되게 좋더라.”라고 말을 건네자, 저자는 흥이 겨운지 화답을 한다. “내가 써놓고도 괜찮은 거예요. (웃음) 자기계발서를 읽는 게 좋아요. 소설은 잘 읽지 않아요. 감성 낭비인 것 같고 비생산적이라. 옛날에는 ‘서울대 합격 수기’ 이런 것 읽는 것도 좋아했어요. 한때는 완벽해 보이고 싶어서 46kg까지 몸무게를 빼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렇진 않아요. 20대보다 예쁜 30대가 나은 것 같아요.”
“20대는 실수하고 배우는 시기다.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래도 완벽을 추구해야겠지. 30~40대의 걱정을 앞당겨서 할 필요는 없을 테고. 시행착오와 실수투성이의 20대를 마치며 난 결코 마음이 편해질 수 없다.”(p.143)
책을 읽고, “진짜 직장 생활이 이런가요?”라는 직장 초년생도 있고, “나도 당한 적이 있다.”라는 30대도 있단다. ‘여성’이라서 받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에 동참하는 사람도 많단다. 그도 그를 포함한 동기 네 명을 두고 ‘핑클 4인방’이라고 부른 한 언론사에 몸을 담았었다. 그때는 예쁘면 좋고 사회생활 잘하는 것인 줄 알았던 철부지였다고 실토한다. 책을 통해서도 그는 이런 어이없는 상황을 전한다. “순진하게도 난 당시 그런 모욕을 받으면서도 선배의 명령이라면 참고 웃어야 하는 줄 알았다. 속셈이야 빤했다. 나를 포함해, 우리 동기를 실력이나 노력보다 여자를 파는 소집단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계산이었다. 뒷담화의 여왕이 그렇게 부르기 시작하자, 다른 동료들도 덩달아 우리를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일단 그 별명이 붙자, 우리는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비쳤다. 일과 성취에는 관심 없이 남자 선배나 상사들의 술자리에나 끼는 네 명의 계집애들.”(p.113)
‘지성인 집단’이라고 불리는 언론사에서 일어난 이런 일화들을 그는 끄집어냈다. 몸소 그것을 겪고 체화했다. 실제 그렇다. 많은 대다수 언론이 권력에 대한 대항마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 약한 자 혹은 권력 창출을 위한 주구로. 공공성이 아닌 상업성에 매몰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한 바를 책에서 이렇게 꺼낸다. “성역에 관한 수호 의지에서 대한민국의 언론과 재벌을 따를 자들은 없다.”(p.304) “언론이 민주주의의 보초견(Watchdog)이 아니라 권력의 애완견(Lapdog)으로 전락했다는 얘기였다. 동시에 자신과 거래를 하려 들지 않는 상대에게만, 그것도 완전히 굴복시키려는 투견(Fighting Dog)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처음으로 주요 보수 언론의 일원이 됐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기자가 된 것에 대해 일말의 회의가 생겨났다.”(pp.305~306)
저자는 여기저기 옮겨가며 참여자들과 막걸리를 나누며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 “좀 어려운 자리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작가가 너무 좋아요.” “친근하고 꼭 옆집 언니 같아요.”라며 술잔을 권하는 사람들. 저자도 화답주를 들이키며 언젠가 꼭 책을 내 볼 것을 권한다. “회사를 나오니까 나를 소개하는 것도 어렵고 구차한 면도 있더라고요. 세상에 대해 할 말이 있는 사람은 꼭 책을 내보는 게 좋아요. 이번에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너무 강하게 썼는데, 다음에는 좀 힘을 빼고 쓰고 싶어요.”
막걸리와 이야기가 익는 밤, 즐거웠나요?
아마도 서로 진심을 나누는 자리였는지 서로에게 젖어든다. 아마 저자가 라디오 방송을 통해 경험한 이런 것이 아닐까. “악플이 올라오면, 청취자 가운데 누군가가 해명성의 댓글도 달아준다. 내 진심이 서서히 통하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내가 방송에서 한 단계 더 발전했다는 뜻은 아니다. 글과 달리 말은 아직도 낯선 분야다. 그보다는 비난과 욕이야말로 당신이 열성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라는 말이다. 악플을 달고 살던 그 라디오 방송의 내 코너 제목은 ‘마이 스타일’. 견디기 힘들 때마다 그것도 내 스타일이라고 자위하던 나처럼, 욕과 비난에 힘겨워하는 직장인이 있다면 눈물을 훔치지 말고 외칠 일이다. 그게 내 스타일이라고.”(p.180)
물론 저자가 와인을 마시며 느꼈듯, 사람에 대해서도 첫 판단을 철석같이 믿어선 안 된다. 혀는 물론 우리의 오감은 그리 믿을 것이 못 되기 때문에 같은 와인을 몇 번이고 더 경험해봐야 최초의 느낌이 온전히 맞는지 확인할 수 있듯. 사람도 마찬가지. 당신이 상대를 향한 느낌과 감정이 혹시 오작동을 일으킨 것은 아닌지 다시 감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 별 이유 없이 줄곧 잘해주는 건 없다. 처음에 그랬다고 오해하지 말 것. 잘해 주는 사람들 거기의 99.9%는 이유를 갖고 있다. 이유 ‘있게’ 잘 해주는 것이니, 홀딱 넘어가지 말 것. 이것도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것. “오래된 와인이 좋은 것이 아니라 오래 경험한 와인이 좋은 것이다.”(p.197)
그렇게 막걸리도 익고, 이야기도 익는다. 술자리 맘 맞는 친구를 하늘로 먼저 보낸, 청주에 있다던 방송 작가 언니가 저자에게 했던 말처럼.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사람,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들, 하나씩 하기! 그중 여영 만나기도 있어. 우리 조만간 올해 안엔 꼭 만나자! 만나면 일 이야기 따윈 개나 줘 버리고 그냥 수다 막 떨자구.”(p.204) 아마 이런 마음으로 사람들도 참여하지 않았을까. 그저 저자와 독자와의 관계가 아닌 수다나 막 떨고 있어도 좋을 자리였기에.
어떤 날은 마음을 풀고 취해도 된다는 그는 이날 마음을 풀어 젖히고 진심을 나누는 것 같았다. 아마도 이날도 이렇게 말하며 집을 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술을 사랑해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 시대, 술과 함께 사람들을 사랑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 사회가.”(p.189) 막걸리 토크에 이어진 자리에는 비록 참석하지 못했지만, 참여자들은 충분히 이 시간을 즐겼을 것이다. 참, 저자에게 묻고 싶었는데, 깜빡했다. 몇 년에 한 번 얼굴을 봐도 늘 한결같다던 방송 작가 언니 만나셨쎄요?
책 제목에 대한 작은 오해도 있었지만, 야구 경기에서만 두려움이 없어야 할 것은 아니다. 언론노조 파업에 대해 일흔 잡수신, 귀가 잘 안 들려서 택시를 그만둘까 고민 중이라는 택시 기사의 이 말씀. “세상을 바꾸는 건 힘든 일이지. 당장 우리한테 어떤 이익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피하지 마라. 우리 같은 사람들이 조금씩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거야. 피곤하게 파업은 왜 하느냐고? 그런 마음이 제일 무서운 거지. 미리 포기해 버리는 회의적인 생각이 제일 무서운 거야. 미래에 대한 믿음을 나눠 가져야 해. 그게 어떤 권력보다도 강하지.”(p.230) 규칙도, 두려움도 없어야 할 것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기성의 막돼먹은 권위?질서와 꼰대(들)의 협잡에 대해서는 규칙도, 두려움도 없어야 할 우리의 자세. 진실을 위해 권력의 눈 밖에 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어떤 자세.
모름지기 나이를 제대로 먹는 기술이란, ‘뒤를 잇는 세대의 눈에 장애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존재로 비치게 하는 기술, 경쟁상대가 아니라 상담상대라고 생각하게 하는 기술’이다.(앙드레 모루아) 후세에 규칙과 두려움을 심어줌으로써, 자신의 권위와 질서를 유지하려는 것이 못돼먹은 기성세대다. 부디 그들에게 끌려다니면서 스스로를 낭비하지 않길. 규칙은 당신의 것. 당신의 건투를 빈다.
그리고 그는 터놓고 세상과 만나고 싶었나 보다. 새로운 사람들과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 마구 마구 이야기하고 싶었나보다. 지난달 30일 아마도, ‘미국의 금주법 시대에 살았더라면, 틀림없이 범법자가 됐을 사람’, 이여영은 15명 남짓한 이들과 막걸리를 들이켜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름하야, ‘이여영 기자와 함께하는 2030 막걸리 토크.’
추측컨대, 이 막걸리 토크는 그의 몹쓸(?) 버릇 때문이었을 거다. “나는 습관적으로 사람을 불러 모은다. 밥자리건 술자리건 개의치 않는다.”(p.209) 그의 습관에 낚여 막걸리 익는 가을밤을 보낸 시간을 살짝 중계한다. 롸잇나우(right now), 막걸리 한 잔, 풍류 한 수 읊으며 읽어도 좋으리라.
이여영은 뉴규?
여기서 잠깐, 저자에 대해 일단 짚고 넘어가자. 지난해 촛불이 한창 타오르던 시기, 한 블로그에 이런 제목의 글이 올랐다. ‘중앙일보가 기록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한 전국 단위 일간지 기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이었다. 해당매체를 비롯한 일부 수구 신문의 촛불집회 관련 보도를 비판한 내용이었다. 해당 매체에 몸담고 있던 그가 20년 후 어느 날 잠에서 깨 머리를 부여잡고 지독하게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한 일이었단다. 그리고선 초조한 심정에 술을 한잔했다. 당일 밤 10시쯤 휴대폰은 불이 나고, 블로그를 확인하자 조회 수가 자그마치 34만 명, 댓글은 1,100개. 단 세 시간 만에 벌어진 폭풍 같은 사건.
그리고 2008년 8월 20일. 그는 조직에서 내쳐졌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 그럼에도 믿기 힘든 결과. 직장 내 권력의 눈 밖에 난, 특히 조직의 치부를 드러낸 자에게 가해지는 어처구니없는 살풍경. 그것도 표현의 자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최고의 모토로 가지고 있어야 할 조직에서.
어쨌든, 해당 회사는 ‘조직원의 뒤통수를 치면서, 구성원의 일개 심정 따위 내 알 바 아니라는 식’으로 모든 후속 조치를 취했다. 참으로 거칠기 그지없는 방식. 한국 유수의 언론사에서 이뤄진 일이다. 젊은이의 솔직한 항변조차 담아낼 수 없는 쫀쫀하고 옹졸한 그릇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회사는 재계약 거부라는 통상적인 절차를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가 얻은 명백한 깨달음. 이미 각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은 예상하지 않은 방식으로, 조직에 맞선 구성원에 보복한다.”(p.315)
그리하여 이 책은 그런 저자의 이력과 궤를 같이한다. 그는 지금 프리랜서로 뛰면서 KBS 인터넷의 ‘이여영의 아지트’ 등의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막걸리 토크의 시작
술이 정말 맛있어서 마시는 것은 아니며 술을 마시는 상황 자체를 좋아한다는, 만나기 껄끄러운 사람은 술자리에 함께하지도 않는다는 이 기자가 기꺼이 막걸리 토크를 마련한 것은, 할 말이 있다는 방증 아니겠는가. 술자리가 정해지면 당장 그날 먹을 음식을 떠올리며, 그 음식에 궁합이 맞는 술도 떠올린다는 이 기자가 정한 메뉴는 한식. 홍대 부근의 한 한식당에 푸짐한 상이 마련됐다.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채웠고, 저자는 이런 말로 이 자리의 테이프를 끊는다. “막걸리를 정말로 좋아해요. 특히 현미 막걸리. 얼마 전에도 밤을 새워서 한 박스 먹었더니 변비가 싹 사라진 거 있죠? 전 홍대 부근에서 주로 놀고먹고 마시고 해요. 먹고살려고 책을 썼고요. (웃음) (직장 다닐 때)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그래서 동생에게 (조언을) 해 주는 마음으로 책을 썼어요. 앞으로 잘 팔렸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같이 이렇게 술 마시고 기어서 집에 가는 걸로 해요. (웃음)”
아, 맞아 그랬지. “요즘은 막걸리에 흠뻑 빠져 있다. 전국 각지의 깨끗한 물맛과 정성어린 손맛, 신선한 쌀 맛이 여간 매력적인 게 아니다. 막걸리 집마다 내오는 푸짐한 안주며, 넉넉한 인심도 좋다. 서울 방배동이며 전남 목포, 전북 전주로 막걸리 투어도 자주 떠나는 편이다. 와인을 대할 때와는 다른 소박하며 털털한 분위기도 마음에 든다. 와인 마실 때는 나도 모르게 가식이 나오지만, 막걸리는 마실 때는 이상하게 진심이 우러나온다.”(p.188)
진심이 마구 쏟아져 나와 막걸리와 함께 이를 마셔야 할 것 같은 분위기. 사람들도 덩달아,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자기소개에 나선다. 친구 따라 얼떨결에 따라오거나 홍대로 놀러 가자는 언니의 꼬임(?)에 따라온 사람들, 저자의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직접 만나고 싶어서 멀리 인천에서 왔다는 사람, 남자가 몇 명 없을 거라고 해서 우월적(?) 지위를 누리기 위해 온 남성, 막걸리를 마셔본 적이 없음에도 얘기를 듣고자 찾아온 여성, 이십 대가 너무 성공만 좇는 것보다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일 것 같아서 여자친구를 함께 데리고 온 ‘재수 없는’(저자의 표현) 커플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막걸리와 함께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무장해제 시킬 수 있는 건, 역시 알코올이 킹왕짱이다. 이날은 막걸리가 그 역할을 맡았고. “남자들은 이 책을 싫어하더라고요. 출산율이 낮아진다는 둥. (웃음) 전 현미 막걸리가 잘 맞아요. 아침에 피부도 반질반질해지고 변비도 없어지고. 부산 사람들이 좀 그래요. 위악적으로 더러운 얘기하는 걸 좋아해요. 이 집으로 정한 건, 한식집 한 상이면 1만 원이면 푸짐하잖아요. 스파게티 같은 걸로 하면 비싸기만 하고. 이런 걸 비교해 놓은 걸 블로그에 올려놓으니 댓글이 우르르 달리더라고요. 이 집이 좋아요. 그래서.”
참, 이 자리에는 책에도 언급된, 우리나라 최고의 막걸리를 만들어 보겠다고 청춘을 다 바친 막걸리 회사 대표도 함께하셨다. “막걸리에 미친 사람이 막걸리 연구에 빠져 지내는 몇 년의 세월 동안 아내는 친정으로 가버리고, 밑도 끝도 없는 개발비에 전 재산을 다 써버린 말 그대로 막걸리에 미친 선배.”(p.205) 현미 막걸리, 처음 마셔보는 주종이었다. 누군가는 ‘막걸리에 미쳐? 그게 뭐야.’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마셔보곤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이해할 순 없어도, 누군가에겐 그냥 그런 거다. 생은 그렇게, 병적인 유머 센스를 발휘하기도 하는 법이니까. 거짓말이 아니고 막걸리 쌉쌀하니 맛있었다. 평소 마시는 막걸리보다 나았다. 다음날 머리도 아프지 않고(임상시험 끝!) 숙취도 없다. 그저 내 안에서 발효됐을 뿐.
사회생활을 통해 길어 올린 어떤 깨달음
“사회생활하면서 이상한 짓도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열심히 하고 예쁘게 보이면 다 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회사 갈 때 목에 리본이 달린 옷도 입고, 미니스커트, 귀걸이, 심지어 테니스복도 입고 다니고. (웃음) 어느 날 사수가 신용카드 주면서 그러더라고요. 원래 그건 술이나 밥 사라고 회사에서 주는 건데. 이걸로 단화 신고, 5만 원짜리 정장 입고, 미스코리아 머리 펴고. 아니면 앞으로 나오지 마. 근데 그렇게 하니까 인생이 달라져요. 절 무시했던 사람들이 저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고. (웃음)”
책에서도 언급했듯, 그는 화려하게 스스로를 치장하는 것을 좋아했던 ‘팔색조’였다. 첫 직장에 다닐 땐, 회식 자리의 회사 오너 앞에서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집이 어디에요?”라고 물었다가 다음날 간부들에게 면박을 받기도 하고. 간부들이 “기사, 잘 봤어.”라고 칭찬하면, 대뜸 “무슨 기사요?”라고 되묻는. 사실 이상할 것도 없고,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건만, 그에게 주어진 스트레스는 만만치 않았나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이런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특히 회사는. “그래서 내 여동생은 안 했으면 했어요. 언니나 여자 선배들이 이런 것을 알려줬으면 좋았을걸. (웃음)”
한 이십 대의 참여자가, “이런 책을 찾고 있었다, 되게 좋더라.”라고 말을 건네자, 저자는 흥이 겨운지 화답을 한다. “내가 써놓고도 괜찮은 거예요. (웃음) 자기계발서를 읽는 게 좋아요. 소설은 잘 읽지 않아요. 감성 낭비인 것 같고 비생산적이라. 옛날에는 ‘서울대 합격 수기’ 이런 것 읽는 것도 좋아했어요. 한때는 완벽해 보이고 싶어서 46kg까지 몸무게를 빼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렇진 않아요. 20대보다 예쁜 30대가 나은 것 같아요.”
“20대는 실수하고 배우는 시기다.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래도 완벽을 추구해야겠지. 30~40대의 걱정을 앞당겨서 할 필요는 없을 테고. 시행착오와 실수투성이의 20대를 마치며 난 결코 마음이 편해질 수 없다.”(p.143)
책을 읽고, “진짜 직장 생활이 이런가요?”라는 직장 초년생도 있고, “나도 당한 적이 있다.”라는 30대도 있단다. ‘여성’이라서 받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에 동참하는 사람도 많단다. 그도 그를 포함한 동기 네 명을 두고 ‘핑클 4인방’이라고 부른 한 언론사에 몸을 담았었다. 그때는 예쁘면 좋고 사회생활 잘하는 것인 줄 알았던 철부지였다고 실토한다. 책을 통해서도 그는 이런 어이없는 상황을 전한다. “순진하게도 난 당시 그런 모욕을 받으면서도 선배의 명령이라면 참고 웃어야 하는 줄 알았다. 속셈이야 빤했다. 나를 포함해, 우리 동기를 실력이나 노력보다 여자를 파는 소집단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계산이었다. 뒷담화의 여왕이 그렇게 부르기 시작하자, 다른 동료들도 덩달아 우리를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일단 그 별명이 붙자, 우리는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비쳤다. 일과 성취에는 관심 없이 남자 선배나 상사들의 술자리에나 끼는 네 명의 계집애들.”(p.113)
‘지성인 집단’이라고 불리는 언론사에서 일어난 이런 일화들을 그는 끄집어냈다. 몸소 그것을 겪고 체화했다. 실제 그렇다. 많은 대다수 언론이 권력에 대한 대항마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 약한 자 혹은 권력 창출을 위한 주구로. 공공성이 아닌 상업성에 매몰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한 바를 책에서 이렇게 꺼낸다. “성역에 관한 수호 의지에서 대한민국의 언론과 재벌을 따를 자들은 없다.”(p.304) “언론이 민주주의의 보초견(Watchdog)이 아니라 권력의 애완견(Lapdog)으로 전락했다는 얘기였다. 동시에 자신과 거래를 하려 들지 않는 상대에게만, 그것도 완전히 굴복시키려는 투견(Fighting Dog)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처음으로 주요 보수 언론의 일원이 됐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기자가 된 것에 대해 일말의 회의가 생겨났다.”(pp.305~306)
저자는 여기저기 옮겨가며 참여자들과 막걸리를 나누며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 “좀 어려운 자리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작가가 너무 좋아요.” “친근하고 꼭 옆집 언니 같아요.”라며 술잔을 권하는 사람들. 저자도 화답주를 들이키며 언젠가 꼭 책을 내 볼 것을 권한다. “회사를 나오니까 나를 소개하는 것도 어렵고 구차한 면도 있더라고요. 세상에 대해 할 말이 있는 사람은 꼭 책을 내보는 게 좋아요. 이번에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너무 강하게 썼는데, 다음에는 좀 힘을 빼고 쓰고 싶어요.”
막걸리와 이야기가 익는 밤, 즐거웠나요?
아마도 서로 진심을 나누는 자리였는지 서로에게 젖어든다. 아마 저자가 라디오 방송을 통해 경험한 이런 것이 아닐까. “악플이 올라오면, 청취자 가운데 누군가가 해명성의 댓글도 달아준다. 내 진심이 서서히 통하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내가 방송에서 한 단계 더 발전했다는 뜻은 아니다. 글과 달리 말은 아직도 낯선 분야다. 그보다는 비난과 욕이야말로 당신이 열성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라는 말이다. 악플을 달고 살던 그 라디오 방송의 내 코너 제목은 ‘마이 스타일’. 견디기 힘들 때마다 그것도 내 스타일이라고 자위하던 나처럼, 욕과 비난에 힘겨워하는 직장인이 있다면 눈물을 훔치지 말고 외칠 일이다. 그게 내 스타일이라고.”(p.180)
물론 저자가 와인을 마시며 느꼈듯, 사람에 대해서도 첫 판단을 철석같이 믿어선 안 된다. 혀는 물론 우리의 오감은 그리 믿을 것이 못 되기 때문에 같은 와인을 몇 번이고 더 경험해봐야 최초의 느낌이 온전히 맞는지 확인할 수 있듯. 사람도 마찬가지. 당신이 상대를 향한 느낌과 감정이 혹시 오작동을 일으킨 것은 아닌지 다시 감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 별 이유 없이 줄곧 잘해주는 건 없다. 처음에 그랬다고 오해하지 말 것. 잘해 주는 사람들 거기의 99.9%는 이유를 갖고 있다. 이유 ‘있게’ 잘 해주는 것이니, 홀딱 넘어가지 말 것. 이것도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것. “오래된 와인이 좋은 것이 아니라 오래 경험한 와인이 좋은 것이다.”(p.197)
그렇게 막걸리도 익고, 이야기도 익는다. 술자리 맘 맞는 친구를 하늘로 먼저 보낸, 청주에 있다던 방송 작가 언니가 저자에게 했던 말처럼.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사람,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들, 하나씩 하기! 그중 여영 만나기도 있어. 우리 조만간 올해 안엔 꼭 만나자! 만나면 일 이야기 따윈 개나 줘 버리고 그냥 수다 막 떨자구.”(p.204) 아마 이런 마음으로 사람들도 참여하지 않았을까. 그저 저자와 독자와의 관계가 아닌 수다나 막 떨고 있어도 좋을 자리였기에.
어떤 날은 마음을 풀고 취해도 된다는 그는 이날 마음을 풀어 젖히고 진심을 나누는 것 같았다. 아마도 이날도 이렇게 말하며 집을 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술을 사랑해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 시대, 술과 함께 사람들을 사랑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 사회가.”(p.189) 막걸리 토크에 이어진 자리에는 비록 참석하지 못했지만, 참여자들은 충분히 이 시간을 즐겼을 것이다. 참, 저자에게 묻고 싶었는데, 깜빡했다. 몇 년에 한 번 얼굴을 봐도 늘 한결같다던 방송 작가 언니 만나셨쎄요?
책 제목에 대한 작은 오해도 있었지만, 야구 경기에서만 두려움이 없어야 할 것은 아니다. 언론노조 파업에 대해 일흔 잡수신, 귀가 잘 안 들려서 택시를 그만둘까 고민 중이라는 택시 기사의 이 말씀. “세상을 바꾸는 건 힘든 일이지. 당장 우리한테 어떤 이익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피하지 마라. 우리 같은 사람들이 조금씩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거야. 피곤하게 파업은 왜 하느냐고? 그런 마음이 제일 무서운 거지. 미리 포기해 버리는 회의적인 생각이 제일 무서운 거야. 미래에 대한 믿음을 나눠 가져야 해. 그게 어떤 권력보다도 강하지.”(p.230) 규칙도, 두려움도 없어야 할 것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기성의 막돼먹은 권위?질서와 꼰대(들)의 협잡에 대해서는 규칙도, 두려움도 없어야 할 우리의 자세. 진실을 위해 권력의 눈 밖에 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어떤 자세.
모름지기 나이를 제대로 먹는 기술이란, ‘뒤를 잇는 세대의 눈에 장애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존재로 비치게 하는 기술, 경쟁상대가 아니라 상담상대라고 생각하게 하는 기술’이다.(앙드레 모루아) 후세에 규칙과 두려움을 심어줌으로써, 자신의 권위와 질서를 유지하려는 것이 못돼먹은 기성세대다. 부디 그들에게 끌려다니면서 스스로를 낭비하지 않길. 규칙은 당신의 것. 당신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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