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파티에 어울리는 요리와 책 - 『크리스마스 캐럴』/향신료가 들어간 과일케이크
2008.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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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랫칫 부인은 미리 소스냄비에 준비해 두었던 그레이비 소스를 따듯하게 데웠다. 피터 도령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힘차게 감자를 으깼고 벨린다 양은 사과소스에 설탕을 넣어 달콤하게 만들었다. 밥은 꼬마 팀을 데려와 자기 곁, 식탁 가장자리에 앉혔다. 마침내 음식들이 다 차려졌고 식전 감사기도가 끝났다. 크랫칫 부인이 거위의 가슴을 푹 찔러 오랫동안 고대했던 거위 뱃속을 채운 소가 앞으로 주르르 흘러내리자 모두가 기쁨에 차서 술렁거렸다. 이런 거위는 처음이었다. 밥은 거위가 이렇게 맛있게 요리된 것은 처음이라고 단언했다. 거위의 부드러운 고기와 향과 크기와 그 저렴한 가격이라니. 모두가 경탄해 마지 않았다. 사과소스와 으깬 감자를 보태니 온 식구가 먹고도 남을 정도로 충분한 성찬이었다. 이제 벨린다 양이 세 접시들로 바꾸는 동안 크랫칫 부인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신경을 쓰면서 슬며시 크리스마스 푸딩을 가지러 갔다. 아직 익지 않았으면 어떻게 하지! 만세! 엄청나게 피어 오르는 저 김 좀 봐! 푸딩이 솥 밖으로 나왔다. 빨래하는 날 같은 냄새가 퍼졌다. 푸딩을 덮었던 면포에서 나는 냄새였다. 식당과 빵집과 세탁소가 나란히 있을 때 나는 냄새 같았다. 그것이 그 푸딩이었다. 삼십 초도 안 되어 얼굴에 홍조를 띠고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은 크랫챗 부인이 맨 꼭대기에는 크리스마스 호랑 가시나무장식을 꽂고 브랜디를 반 파운드 넣어 불을 붙인, 작은 반점들로 덮인 대포알처럼 생긴 굳고 단단한 푸딩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우와, 정말이지 굉장한 푸딩이었다! 크랫칫 부인이 결혼한 이래 거둔 가장 대단한 성공작이라고 밥이 태연하게 말했다. 크랫칫 부인은 이제야 한시름 덜었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밀가루 양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불안하다고 고백했다.
- 찰스 디킨스Charles John Dickens,
『크리스마스 캐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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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도 물론 마냥 밝지만은 않다. 스크루지 영감은 구두쇠의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지독한 캐릭터이고, 그가 부리는 조카와 일꾼들은 마냥 어려운 삶을 꾸려가는 힘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노동자들의 어려운 삶과 귀족과 자본주의자들의 인색함과 속물근성을 계속해서 작품 속에서 보여주던 디킨스였지만 『크리스마스 캐럴』만큼은 모두 즐겁게 읽을 수 있도록 신경 써서 쓴 작품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착한 일 하고 베풀면 좋은 데 간다는 교훈과 경고는 실존 인물이 아닌 유령의 힘을 빌려 더욱 강해진다. 실제 삶의 어려움을 더 지긋지긋하고 어렵게 표현해 놓은 이전의 작품과는 조금 다르게 꿈에서 만난 유령과 꿈으로 인해 인생관이 달라진 한 사람, 그야말로 꿈과 희망을 전해주는 한 편의 완벽한 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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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료품 가게는 거의 문을 닫으려고 하는 중이었다. 덧문이 한두 개 정도 닫혀있긴 했지만 그 틈새로 들여다 본 멋진 광경이라니! 저울을 계산대로 내릴 때마다 나는 유쾌한 소리에다 포장용 노끈이 롤러에서 기분 좋게 풀리는 소리와 저글링을 하는 것처럼 왈칵달칵 소리를 내며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깡통, 혹은 코끝에 와 닿는 차와 커피가 뒤섞인 아주 기분 좋은 냄새, 혹은 풍부하게 쌓여있는 최고급 건포도와 하얗디 하얀 아몬드, 길고 쭉 뻗은 계피, 아주 향이 좋은 다른 향신료들, 녹인 설탕으로 장식을 해서 아무리 시큰둥한 구경꾼이라도 정신이 혼미해지고 곧 신경질이 나게 만들 만한 설탕에 절여 굳힌 과일뿐만이 아니었다. 촉촉하고 연한 무화과나 예쁘게 장식된 상자에 담겨 불을 붉히고 있는 적당히 새콤한 프랑스 자두, 혹은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모든 음식뿐인 것도 아니었다. 손님들도 모두 서두르고 크리스마스의 희망찬 기대에 부풀어서 문에서 서로 부딪혀 넘어지기도 하고 손에 손에 들고 있던 고리버들 세공의 바구니들이 거칠게 부딪히기도 하고, 지갑을 계산대에 두고 갔다가 찾으러 달려오기도 하는 등 너무 들떠서 비슷한 실수들을 수백 번이나 저질렀다.
- 찰스 디킨스Charles John Dickens, 『크리스마스 캐럴』
크롬웰의 엄격한 청교도적 정책 아래에서 검소함이라는 덕목을 내세워 인간적인 즐거움을 짓누른 채로 오랫동안 살아오던 영국인들에게 이 소설 안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묘사들은 다시금 크리스마스의 즐거움과 나눔, 일년에 몇 번 허락되지 않은 인간적인 즐거움, 잘 먹고 잘 마시고 즐겁게 노래하는 것을 되돌려 주는 데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빅토리아 시대의 경제 부흥과 맞물려 향신료와 열대과일을 비롯한 식민지의 진귀한 식재료들이 들어오고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던 트? 장식이나 파티들도 왕족과 귀족들이 앞 다투어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오븐과 같은 조리 기구나 계량 도구도 하나 둘씩 생기고, 전설적인 미세스 비튼Mrs. Beeton이 최초의 살림하는 법을 안내한 책자 『Mrs Beeton's Book of Household Management』 를 발간한 것도 빅토리아 시대다. 평민과 노동자들이 착취당하고 어려운 생활을 하더라도, 크리스마스 때만큼은 그래도 맛좋은 음식을 나누어 먹고 행복하게 보내야 한다는 디킨스의 희망이 소설 속에 담겼고, 그 맛있는 묘사들에 마음이 들뜬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만이라도 즐겁게 보내기 위해 노력들을 하게 된 듯하다. 디킨스야말로 진정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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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열심히 파티를 하고 음식을 만들었다. 크리스마스와 새해, 친구들의 생일, 상업적인 케이터링. 슬프고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행복하게 해주는 일을 고민하며 메뉴를 짜고 요리를 했다. 식탁 주변에 둘러 앉은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길 기도하면서. 그렇게 식탁에서 만난 사람들 중 지금도 때가 되면 그리워 만나는 사람들도 있고 얼굴도 쳐다보지 않는 사이가 된 사람들도 있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요리와 파티는 거의 대부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마법을 부려줬지만 가끔은 통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뭐 그럴 수도 있다. 전설의 코미디언 루실 볼(Lucille ball)도 그랬단다. "인생은 하나의 파티다." 라고. 안 될 때도 있지만 좋을 때도 있고 마음대로 때려치울 수도 없고 각본대로 되지도 않고, 그런 거다.
이 크리스마스 파티 말고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책 속의 파티가 몇 개 더 있지만 앞으로 천천히 더 소개하려고 한다. 하지만 모두 어렵고 가난해져 마음이 메말라가는 이 연말, 복권 당첨된 전 재산을 다 써가면서 한번도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예술로 느껴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자신의 요리를 대접한 요리사의 일생 일대의 파티에 관한 이야기 한 토막은 꼭 덧붙여야 할 것 같다.
"그러면 이제 평생 가난하게 살려고, 바베트?"
"가난하다구요?" 바베트는 빙긋 미소 지었다.
"아니에요, 전 절대로 가난하지 않아요. 저는 위대한 예술가니까요. 위대한 예술가는 결코 가난하지 않아요, 마님. 예술가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어요."
- 이자크 디네센Isak Dinessen
『바베트의 만찬』
크리스마스 푸딩을 만드는 데 꼭 빠져서는 안 되는 것 하나. 반죽을 모두 사발에 넣고 저으면서 소원을 빌어야 한다. 모두를 위한 음식을 만드는 그 순간, 비는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나? 요즈음은 모두 다 더욱 밀가루반죽이며 모든 조리도구 하나하나에다가도 소원을 빌고 싶은 마음일 듯 하다. 유난히 마음이 추운 이번 겨울,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하고 소원을 빌고 마음 담긴 파티를 하는 일이 더더욱 계속되어야 할 것 같다. Party must go on. 내년에는 하루하루가 즐거운 파티 같고 그 파티 안에서 모두들, 부디 가난하지 않은 예술가가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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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
출판사 | 시공주니어
Mrs Beeton's Book of Household Management
출판사 | Oxford University Press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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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과 함께 먹어야 겠어요~^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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