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푸드 운동의 창시자 카를로 페트리니(Carlo Petrini)의 『슬로푸드, 맛있는 혁명』(김종덕?황성원 옮김, 이후, 2008)은 ‘쇠고기 스캔들’의 황당무계함을 다른 각도에서 ‘폭로’한다. 광우병 발생이 크게 우려되는 미국산 수입 쇠고기는 ‘온전한 음식’이 갖춰야 하는 세 가지 전제조건에 크게 못 미친다.
“우리가 특정한 생산물의 품질이 좋다고 말하기 위해서” 충족되어야만 하는 필수 전제조건 세 가지는 “좋음(good)과 깨끗함(clean), 그리고 공정함(fair)으로, 이것들은 상호 의존적이며 서로에게 필수적이다.” 어떤 음식이 ‘좋은’지 여부는 개인적인 ‘맛’과 문화적이고 공동체적이며 역사적인 ‘지식’이 좌우한다. 그런데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맛을 확인할 수 없다면, 지식을 얻을 수도 없다. 이러면 즐거움과 선택의 자유를 잃을 수밖에 없거니와 생산자의 결정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기회마저 놓치게 된다.
그리하여 품질에 대해선 아예 포기할뿐더러 “그런 식으로 우리에게 식품을 판매하는 사람들을 억지로 믿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을 지나치게 믿는 것은 잘못된 것일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감각을 훈련하여 복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감각이 조잡하다는 것은 지배적인 모델에 굴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배 모델은 우리가 즐거움을 사랑하는 만족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며, 다만 이윤을 (그리고 무덤을) 향해 달려가는 거대한 조직 속에 감각 없는 부속물로 남기를 바란다.”
‘자연적’인 맛을 선호하는 관점을 취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연적’이란 “체계?환경?인류?원재료?가공과 관련하여 외부적이며 인공적인 많은 요소들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첨가물이나 화학 방부제, 인공적이거나 ‘천연’으로 추정되는 감미료, 작업, (가축의 경우) 사육, 재배, 요리 등의 과정에 자연성을 파괴하는 기술 등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음식의 원재료는 건강에 좋고 순수해야 한다. “가축을 사육하는 방식이 자연성의 기준을 존중한다면 고기 또한 훌륭할 것이다. 성장 촉진제나 고열량 사료 혹은 항생제가 섞인 사료를 써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가축은 스트레스가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다시 말해 가축은 사육되는 동안 ‘자연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
‘깨끗함’은 ‘좋음’보다 절대적이다. “생산물이 지구와 환경을 존중한다면, 오염시키지 않는다면, 농장에서 식탁으로 이동해 오는 동안 자연자원을 낭비하거나 오용하지 않는다면, 그 생산물은 깨끗한 것이다.” 또한 “그 생산물이 지속 가능하다면 그것은 깨끗한 것이다.” 지속 가능하다는 것은 ‘깨끗함’의 핵심이다.
먹을거리의 ‘지속 가능성’을 파악하기 위해선 다양한 지식이 필요하다. 음식재료로 사용된 품종들이 생물다양성을 감소시키거나 지나치게 상업적인 것들은 아닌지, 재배방법은 사료와 약물로 ‘빨리 성장케 한’ 동물의 배설물이나 살충제로 토양을 척박하게 하진 않는지 알아야 한다.
생산물의 수송기간이 너무 긴 것은 아닌지, 심각한 대기오염을 유발하진 않는가도 알 필요가 있다. 결국 “우리가 그 생산물을 얻거나 구입함으로써 환경에 해를 입히게 되는 것은 아닌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익히는 것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판단은 우리에게 소비자로서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탐구와 성찰을 요구한다.
“만일 우리가 판단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충분치 않다면 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압력을 행사하자. 우리 모두는 생산물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어야 하고 이 평가에 부합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이것만이 좋은 품질에 이르는 길이다.”
페트리니는 어떤 한계 상황 안에서도 우리가 원하는 모든 성장기회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내다본다. “이 한계 속에 ‘좋은 것’, 진정으로 모든 세계에 ‘좋은 것’이 있다. 이 한계 속에 ‘깨끗함’이 있다.” 다만, 여기엔 “우리가 돈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이라는 단서가 따라붙는다.
‘공정함’에는 두 가지 층위가 있다. 식량 생산에서 ‘공정함’은 “사회적 정의, 노동자와 그들의 노하우, 시골의 풍습과 농촌의 삶에 대한 존중, 노동에 걸맞은 보수, 훌륭한 생산물에 대한 만족” 그리고 사회적 지위가 늘 밑바닥이었던 소농들에 대한 재평가 등을 포괄한다.
“사회적인 의미에서 공정함은 흙을 가꾸는 사람들에 대한 공정함과 여전히 흙을 사랑하고 흙을 생명의 원천으로 다루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을 의미한다.”
또한 ‘공정하다’는 것은 지속 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정함은 “부를 창출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좀 더 평등한 질서를 만들어 낸다.” 농부와 장인(匠人)은 서로 상대방의 일을 존중해야 정의가 이뤄진다. “공정함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다.”
‘온전한 음식’은 지배 체계에 맞설 수 있는 전 세계적 ‘생산 공동체’의 망을 구축해야 실현된다. “우리는 인간을, 토지를, 그리고 먹을거리를 다시 그 중심에 놓아야 한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모든 다양성을 존중하는 인간 중심적 식품 네트워크는 고품질, 즉 좋음, 깨끗함, 공정함을 촉진할 것이다.”
‘품질’은 1980년대 초만 해도 우수한 생산 기술이나 감각적 특징을 일컬었다. 높은 사회적 지위와도 연결되었다. 하지만 20세기 막바지 식품과 관련한 불미스런 사건들이 잇따르자 “품질이라는 말을 ‘민주화’할 필요가 생기면서 이 말은 곧 결국 위생상의 안전성을 갖춘 물질, 혹은 적어도 ‘지역적’이며 ‘전통적’인 성질과 같은 의미를 얻게” 된다.
카를로 페트리니는 ‘농산업(agroindustry)’을 비판한다. “이 불행한 용어는 많은 모순을 숨기고 있다. 사실 이 말 자체가 (형용) 모순이다.” 그는 농업의 탈산업화를 역설한다. 이를 위해 집약적인 생산방식을 지양하고 지역품종을 선호하라고 촉구한다. ‘유전자 조작 생명체(GMOs)’는 안 된다. ‘유전자 조작 생명체’는 환경적인 측면에서 지속 가능하지 않아서다.
농업의 탈산업화는 산업형 식량 생산 체계를 거부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아울러 “농업의 탈산업화는 인간과 자연 간의 새로운 관계를 요구한다.” 그것은 복잡성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갖고, 새로운 생산양식의 지속 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해 모든 과학적 수단을 활용할 줄 아는 접근법이다.
페트리니는 ‘손기술’에 가치를 부여한다. “손기술은 단순 작업을 하고 있는 그 사람과 재료 간에 직접적인 관계를 형성해 줌으로써, 재료에 대한 그 사람의 존중심을 보여 주며 그 재료에서 최고의 감각적 특징들을 뽑아내는 그 사람의 능력 또한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슬로푸드, 맛있는 혁명』은 미식학 입론(入論)이자 미식학 원론이다. 立論이라 하지 않은 것은 미식학과 관련한 의론(議論)의 체계를 정초(定礎)했다기보다는 그것을 세우기 시작한다는 느낌이 더 진해서다. 그러면, 원론은 뭐냐? 그래도 미식학의 현주소와 거의 모든 것을 담은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미식학(gastronomy)은 복합과학이다.”
한편으로 이 책은 새로운 미식가를 위한 훌륭한 지침서다. 하여 미식가에 대한 왜곡된 일반적 인식에서 출발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나 같은 미식가에 대해서, 주위 세상에 신경 쓰지 않는 이기적인 식탐쟁이로 치부해 버린다.”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당신이 단순히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미식가가 될 수는 없다. 자신의 이론을 실천으로 옮겨야 하며, 호기심을 가져야 하고, 되도록 많은 다양한 환경들과 접촉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맛을 보면서 자신의 감각을 가지고 현실을 해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당신이 단순히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미식가가 될 수는 없다. 소농들과, 식량을 생산하고 가공하는 사람들, 생산 체계와 소비 체계를 공정하게 만들고자 애쓰면서 좀 더 지속 가능하고 즐겁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나 보아야 한다.”
미식가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기에 그래야 하는가? “전 세계 수백만 소농들(특히 우리와 가까이 살고 있는 소농들)의 생활 조건을 평가하고 이런 농부들을 알아 가며,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공정 무역’ 가격을 통해 그들에게 공정한 보수를 보장해 줌으로써 ‘깨끗하고, 좋은’ 생산물의 생산을 지원하는 것은 새로운 미식가의 과제다.” 나는 페트리니의 다음과 같은 생각에 동감한다. “산업화 과정이 진행되면서 한 세기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기술 관료들에 의한 일종의 독재정권이 들어섰다. 여기서는 이윤이 정치보다 우세하고, 경제가 문화보다 우월하며, 인간의 활동을 판단하는 데 유일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기준은 양적인 측면이다.”
이윤보다 정치를 부추기고, 경제보다 문화를 높이며, 인간 활동의 질적인 측면을 고려하는 게 우리의 과제가 아닐까. 카를로 페트리니가 엮은『슬로푸드』(김종덕?이경남 옮김, 나무심는사람, 2003)는 국제 슬로푸드 협회지 <슬로(Slow)>에 실린 글을 모았다. 카를로 페트리니의 한국어판 편?저서 두 권을 공동 번역한 경남대 김종덕 교수의『슬로푸드 슬로라이프』(한문화, 2003)는 느리게 먹고 천천히 사는 삶의 입문서로 제격이다.
“오늘날 우리는 속도의 노예가 되었다. 전 인류가 ‘패스트라이프’라는 지독한 바이러스에 걸렸다. 이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패스트푸드’를 먹으라고 강요한다. 속도가 인류를 멸종시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속도를 제거해야만 한다. 우리의 방어는 ‘슬로푸드’와 함께 식탁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패스트푸드를 추방하고 토속음식의 맛과 향을 재발견하자. 패스트라이프가 우리의 땅과 환경을 위협하고 있는 오늘날, 슬로푸드만이 진실된 진보적 대안이다.”(슬로푸드 선언문에서)
최성일
thanks2u2
2008.12.29
Mondenkind
2008.05.20
seheeys
2008.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