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라, 58년 개띠들아
동아일보에 연재될 때 띄엄띄엄 읽었는데 크게 개작해 장편으로 내놨다.
200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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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이 나오면 무조건 찾아 읽게 되는 작가들이 있다. 가령 은희경, 배수아, 김영하의 작품들. 이유야 간단하다. 일단 재미있으니까. 총기와 세련이 적재된 에너지가 펄펄 끓어 두어 시간을 정신없이 보내게 된다. 통상적인 재미와는 약간 거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역시 꼭 찾아 읽게 되는 작가들로 윤대녕, 하일지가 추가된다. 서로 정반대의 내면성을 보여주는 듯하지만(촉촉과 삭막?) 이들의 작품에서는 존재의 심연이 느껴진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두 번 만난 인연밖에 없지만 어쩐지 ‘희경아’라고 부르고 싶은 작가 은희경이 펴낸 『마이너리그』. 동아일보에 연재될 때 띄엄띄엄 읽었는데 크게 개작해 장편으로 내놨다. 이전 작 『그것은 꿈이었을까』의 변신이 별로 주목을 끌지 못한 데 대한 반작용인지 『마이너리그』는 『새의 선물』 시절의 통통 튀는 요설과 반어를 더욱 밀고 나간 작품이다. 일요일 하루 종일 로버트 솔로몬, 캐슬린 하긴스의 『한 권으로 읽는 니체』를 간신히 읽었는데 『마이너리그』는 저녁 먹고 단 두 시간 만에 독파했다. 잘 읽히는 것은 작품의 미덕이고 작가의 능력이다.
『마이너리그』는 58년 개띠 네 친구들의 25년간에 걸친 성장소설이다. 이 글을 쓰는 내가 바로 58년 개띠이니 그 시간의 흐름을 체험적으로 추적해나가는 게 가능하다. 1974년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77학번 또는 재수하여 78학번이 되고, 10?26사태와 5?18광주민중항쟁을 거쳐 사회인이 된 후 1987년 6?10민주항쟁을 체험하고 1990년대 들어 이른바 중견 사회인이 되는 인간집단들이다. 6?25전쟁이 끝나고 일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전형인데, 무슨 까닭에서인지 ‘환상의 58년 개띠’라고 하여 좀 유별난 시선을 받아오기도 했다(57년 닭띠 내지 59년 돼지띠라고 별칭하는 사회적 이디엄은 없다).
작가에게 58년 개띠들의 연대기는 어떻게 포착되었을까? 먼저 네 명의 주인공들을 보자. 작중화자 격인 나 김형준은 ‘책가방 속에 항상 남들이 모르는 고상한 책들을 넣고 다니며 책벌레라는 별명을 얻는 데 성공한 자칭 수재’로서 목욕탕집 아들이다. 연애편지를 중심으로 남의 글을 대필하는 게 그의 평생 과업. 다음은 이름이 조국으로, 유난히 큰 머리통과 유난히 땅딸한 다리를 지녔으며 “보이스 비 앰비셔스!”를 시도 때도 없이 우렁차게 외친다. 늘 세계로 뻗어나가는 미래를 꿈꾸는 단순무식형. 또 한 친구는 하얀 얼굴의 배승주. “그의 눈을 보면 여름 한낮 세숫대야에 담긴 물그림자가 처마 밑에 반사되어 아른아른거리는 장면이 떠오르는” 매혹의 사나이. 하지만 머리가 텅 비고 유아적이며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여자 꼬드기는 재주뿐이다. 끝으로 장두환. 두환이라는 의도적인 이름에서 연상되듯이 가방에 아령 한 벌을 넣어 다니며 “학교에 와서 하는 일이라고는 바지 뒷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복도에 내놓은 다리 한 짝을 맹렬히 떠는 것밖에 없는” 얼치기 깡패. 이들의 한가운데에 환상의 베아트리체 격인 인근 여학교의 양소희가 있다.
인물 소개에서 얼추 전개될 이야기의 분위기가 떠오를 것이다. ‘만수산 드렁칡’이라는 별칭으로 엮인 이들 4인방은 사고뭉치요 아웃사이더요 갈데없는 2류 인생들이다. 이들의 좌충우돌 속에 엉터리 펜팔 전시회, 교련 실기대회, 올드 팝송, 이소룡, 임예진이 섞이고, 유신 ‘긴급조치’, 월남 패망,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 박정희 사망, 5?18광주민중항쟁, 휴거, 넥타이 부대들의 6?10민주항쟁 같은 역사가 흘러간다. 역사와 시대는 메이저리거들의 몫이라고 여겨서일까. 이들 만수산 드렁칡 4인방들은 가령 대통령이 총 맞아 죽어도 교외선 타고 야유회 가서 기타 치고 노래할 뿐이다. 아무리 커다란 사회 상황에 직면해도 “쟤들 왜 저래?” 하는 게 만수산식 대응. 당연히 이들이 다니는 대학도 직장도 또는 각각의 사랑과 결혼도 한심무쌍의 변두리 인생길일 따름쳀다.
온통 조롱과 야유로 범벅이 된 스토리를 따라가며 어정쩡한 기분이 들었다. 따라 웃자니 우리 세대에 대한 모독 같고, 불쌍해하며 거리를 두자니 나 또한 만수산 멤버에서 그리 멀다고 자신할 수가 없다. 작가가 노린 전략이자 틈새가 바로 그것이 아닐까. 거대담론에 익숙하고 시대의 대세를 눈치껏 추종해온 세대. 흡사 시대의 불행을 자신의 전존재로 받아들인 듯이 떠벌리지만 사실은 제 한 몸의 영달에 모든 것을 걸었던 개띠들. 평화 시에 팔자 좋게 축제판 같은 운동을 한 거라고 후배 세대를 마냥 경멸하는 개띠들. 작가는 한심한 네 명의 인물을 들이대며 “자, 이것이 당신들의 숨은 그림자 아닙니까?” 하고 묻는 것 같다.
이 소설의 가장 우둔한 독법은 적어도 자신의 삶은 만수산들과는 다르게 진지하고 치열했노라고 자위하는 일이다. ‘이보다 더 한심할 수 없는’ 인물들에게서 위안 받는다면 작가의 교묘한 조롱에 말려 들어가는 것일 테니까. 다음으로 우둔한 독법은 개띠들의 초상을 잘못 그렸다고 작가에게 항변하는 일이다. 의외로 신문서평에 그런 지적이 많이 보인다. 한데 작가가 언제 58년 개띠의 대표선수를 선발하겠다고 했나. 또 하나의 우둔한 독법은 소설의 배경에 흐르는 역사적 정황들에 지나치게 주목하는 일이다. 그것은 단지 세태소설의 환경을 이루는 익숙한 장치일 따름으로 풍자의 본래 목적에서 주요한 변수라고 볼 수 없다(채만식의 「탁류」에서 일제하의 수탈상만 지겹게 따지고 드는 논문을 많이 봤다).
그럼 어떻게 읽는다? 글쎄, 어디 정답이 있을까마는 흘러간 코미디 ‘추억의 책가방’을 보듯이 막 킬킬대며 즐겁게 읽는 게 어떨까.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약간 찝찝해지는데 그건 나중에 곰곰 생각해보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두 번 만난 인연밖에 없지만 어쩐지 ‘희경아’라고 부르고 싶은 작가 은희경이 펴낸 『마이너리그』. 동아일보에 연재될 때 띄엄띄엄 읽었는데 크게 개작해 장편으로 내놨다. 이전 작 『그것은 꿈이었을까』의 변신이 별로 주목을 끌지 못한 데 대한 반작용인지 『마이너리그』는 『새의 선물』 시절의 통통 튀는 요설과 반어를 더욱 밀고 나간 작품이다. 일요일 하루 종일 로버트 솔로몬, 캐슬린 하긴스의 『한 권으로 읽는 니체』를 간신히 읽었는데 『마이너리그』는 저녁 먹고 단 두 시간 만에 독파했다. 잘 읽히는 것은 작품의 미덕이고 작가의 능력이다.
『마이너리그』는 58년 개띠 네 친구들의 25년간에 걸친 성장소설이다. 이 글을 쓰는 내가 바로 58년 개띠이니 그 시간의 흐름을 체험적으로 추적해나가는 게 가능하다. 1974년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77학번 또는 재수하여 78학번이 되고, 10?26사태와 5?18광주민중항쟁을 거쳐 사회인이 된 후 1987년 6?10민주항쟁을 체험하고 1990년대 들어 이른바 중견 사회인이 되는 인간집단들이다. 6?25전쟁이 끝나고 일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전형인데, 무슨 까닭에서인지 ‘환상의 58년 개띠’라고 하여 좀 유별난 시선을 받아오기도 했다(57년 닭띠 내지 59년 돼지띠라고 별칭하는 사회적 이디엄은 없다).
작가에게 58년 개띠들의 연대기는 어떻게 포착되었을까? 먼저 네 명의 주인공들을 보자. 작중화자 격인 나 김형준은 ‘책가방 속에 항상 남들이 모르는 고상한 책들을 넣고 다니며 책벌레라는 별명을 얻는 데 성공한 자칭 수재’로서 목욕탕집 아들이다. 연애편지를 중심으로 남의 글을 대필하는 게 그의 평생 과업. 다음은 이름이 조국으로, 유난히 큰 머리통과 유난히 땅딸한 다리를 지녔으며 “보이스 비 앰비셔스!”를 시도 때도 없이 우렁차게 외친다. 늘 세계로 뻗어나가는 미래를 꿈꾸는 단순무식형. 또 한 친구는 하얀 얼굴의 배승주. “그의 눈을 보면 여름 한낮 세숫대야에 담긴 물그림자가 처마 밑에 반사되어 아른아른거리는 장면이 떠오르는” 매혹의 사나이. 하지만 머리가 텅 비고 유아적이며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여자 꼬드기는 재주뿐이다. 끝으로 장두환. 두환이라는 의도적인 이름에서 연상되듯이 가방에 아령 한 벌을 넣어 다니며 “학교에 와서 하는 일이라고는 바지 뒷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복도에 내놓은 다리 한 짝을 맹렬히 떠는 것밖에 없는” 얼치기 깡패. 이들의 한가운데에 환상의 베아트리체 격인 인근 여학교의 양소희가 있다.
인물 소개에서 얼추 전개될 이야기의 분위기가 떠오를 것이다. ‘만수산 드렁칡’이라는 별칭으로 엮인 이들 4인방은 사고뭉치요 아웃사이더요 갈데없는 2류 인생들이다. 이들의 좌충우돌 속에 엉터리 펜팔 전시회, 교련 실기대회, 올드 팝송, 이소룡, 임예진이 섞이고, 유신 ‘긴급조치’, 월남 패망,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 박정희 사망, 5?18광주민중항쟁, 휴거, 넥타이 부대들의 6?10민주항쟁 같은 역사가 흘러간다. 역사와 시대는 메이저리거들의 몫이라고 여겨서일까. 이들 만수산 드렁칡 4인방들은 가령 대통령이 총 맞아 죽어도 교외선 타고 야유회 가서 기타 치고 노래할 뿐이다. 아무리 커다란 사회 상황에 직면해도 “쟤들 왜 저래?” 하는 게 만수산식 대응. 당연히 이들이 다니는 대학도 직장도 또는 각각의 사랑과 결혼도 한심무쌍의 변두리 인생길일 따름쳀다.
온통 조롱과 야유로 범벅이 된 스토리를 따라가며 어정쩡한 기분이 들었다. 따라 웃자니 우리 세대에 대한 모독 같고, 불쌍해하며 거리를 두자니 나 또한 만수산 멤버에서 그리 멀다고 자신할 수가 없다. 작가가 노린 전략이자 틈새가 바로 그것이 아닐까. 거대담론에 익숙하고 시대의 대세를 눈치껏 추종해온 세대. 흡사 시대의 불행을 자신의 전존재로 받아들인 듯이 떠벌리지만 사실은 제 한 몸의 영달에 모든 것을 걸었던 개띠들. 평화 시에 팔자 좋게 축제판 같은 운동을 한 거라고 후배 세대를 마냥 경멸하는 개띠들. 작가는 한심한 네 명의 인물을 들이대며 “자, 이것이 당신들의 숨은 그림자 아닙니까?” 하고 묻는 것 같다.
이 소설의 가장 우둔한 독법은 적어도 자신의 삶은 만수산들과는 다르게 진지하고 치열했노라고 자위하는 일이다. ‘이보다 더 한심할 수 없는’ 인물들에게서 위안 받는다면 작가의 교묘한 조롱에 말려 들어가는 것일 테니까. 다음으로 우둔한 독법은 개띠들의 초상을 잘못 그렸다고 작가에게 항변하는 일이다. 의외로 신문서평에 그런 지적이 많이 보인다. 한데 작가가 언제 58년 개띠의 대표선수를 선발하겠다고 했나. 또 하나의 우둔한 독법은 소설의 배경에 흐르는 역사적 정황들에 지나치게 주목하는 일이다. 그것은 단지 세태소설의 환경을 이루는 익숙한 장치일 따름으로 풍자의 본래 목적에서 주요한 변수라고 볼 수 없다(채만식의 「탁류」에서 일제하의 수탈상만 지겹게 따지고 드는 논문을 많이 봤다).
그럼 어떻게 읽는다? 글쎄, 어디 정답이 있을까마는 흘러간 코미디 ‘추억의 책가방’을 보듯이 막 킬킬대며 즐겁게 읽는 게 어떨까.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약간 찝찝해지는데 그건 나중에 곰곰 생각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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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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