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18. 존 B. 베리의 『사상의 자유의 역사』(바오출판사, 2005)를 읽다.
1914년 영국에서 출간된 존 B. 베리의 『사상의 자유의 역사』(바오출판사, 2005)가 우리나라에 초역된 것은 1958년(신양사 교양신서)이고, 같은 역본이 재간된 것은 1975년(박영사 박영문고)이다. 그런데 이 책을 다작?다역으로 소문난, 존경하는 아나키스트 법학자 한 분이 다시 번역했다. 뭣 하러 역자는 출간된 지 한 세기나 되어 가는 이 케케묵은 책을 새로 번역한단 말인가?
‘6?25는 통일 전쟁’이라는 하나 마나 한 소리를 갖고 온 나라가 ‘개그콘서트’장같이 되어 버린 요 며칠간, 상기한 책과 복습 삼을 요량으로 조국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책세상, 2001)를 찾아 놓고 나서 왈칵 짜증이 치밀었다. 서구에서 벌어진 길고 험난했던 ‘사상의 자유의 역사’를 개괄하고 있는 베리의 책은,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에 대한 관용책을 쓰고(313) 로마의 국교로 받아들이면서부터 “이성이 속박되고 사상이 노예화되며 지식이 전혀 진보하지 못한 천 년”이 되었다고 말한다. 사상의 자유를 얻기 위한 서양인의 고투는 절대성과 배타성에 기반한 기독교의 등장과 관련되어 있다는 게 이 책의 요지이다.
기독교가 서구 사회를 장악하기 이전의 그리스?로마 시대는 인류 최초의 계몽 시대였다. 그들에게는 성서聖書나 성직 제도가 없었다. 이것은 그들이 누린 자유의 표시이자 중요한 조건으로, 그리스와 로마 양兩 시대는 온갖 종교에 관용적이었다. 두 나라의 눈부신 학문과 철학은 종교적 관용을 바탕으로 이성과 토론의 자유가 마음껏 발휘된 경우였다.
그런데도 기독교는 종교적 관용 사회였던 로마에서 박해를 받았다. “황제들이 기독교의 경우에 한해 자신들의 관용 정책에 예외를 두었다면, 그 목적은 관용을 수호하는 것이었다”라는 간명한 설명은, 기독교가 사이좋게 공존해 온 제국 내의 다른 종교에 대해 ‘인류의 적’이라는 공격적인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흥미로운 것은, 양심의 자유라는 원칙이 국가에 대한 모든 의무보다 우선했기에 순교를 마다하지 않았던 기독교가 로마를 접수하고 나서는, 곧바로 이교異敎는 물론이고 같은 기독교 교파에 대해서마저 불관용했다는 것이다.
16세기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은 중세의 암흑을 걷어 내고 종교적인 자유와 개인적 판단의 권리를 확립하게 해 준 일대 사건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견해이다. 루터와 칼뱅을 위시한 숱한 종교개혁가들은 신앙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들어 교황과 통치자들에게 저항하고 탄원했지만, 개혁의 주류가 득세한 곳에서 숱한 프로테스탄트 분파의 자유는 문자 그대로 ‘불태워’지기 일쑤였다. 종교개혁의 주체들은 자기 교파의 진리만 중요시했지, 사상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 그리고 관용이라는 사회적 문제들을 한 번도 보편 의제로 고찰하지 않았다.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국가 안에서는 자유를 요구하지만, 자신이 권력을 잡은 곳에서는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곧 자신의 의무가 됨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는 저자의 공박은, 고문과 화형을 무기로 1천 년 넘게 다양한 ‘이성의 진보와 사상의 자유’를 가로막아 온 서구의 기독교계에 대한 단죄이면서, 한국의 자유 민주주의자들이 가진 이중성마저 폭로해 준다.
4?19와 1987년 6월 민주 항쟁은 온 국민의 합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사상의 자유’는 소위 ‘자유 민주주의’의 정체를 지킨다는 중도적 보수 세력의 전유물이다. 이 땅의 루터나 칼뱅 같은 개혁가들은, ‘학문?표현?양심’의 자유가 민주 사회의 보루이며, 국가보안법이 언어도단의 법이라고 절실히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강정구 같은 사람을 ‘민주화 세력을 분열시키고, 보수 세력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는 철없는 사람’으로 매도하기 일쑤이다. 베리가 묻는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들이 멈춰 선 곳에 우리가 똑같이 멈춰 서야 한단 말인가?” 진도는 나가지 않은 채 죽어라 복습만 시키는 한국 사회가 바로 짜증의 정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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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