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 새로운 만남을 꿈꾸는 한국 장르문학의 작가들
작년 여름에 나온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에 이어 올여름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가 나왔다. 잠 못 이루는 여름밤을 오싹하게 해줄 공포가 그리웠던 독자들에게는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이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7.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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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에 나온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에 이어 올여름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가 나왔다. 잠 못 이루는 여름밤을 오싹하게 해줄 공포가 그리웠던 독자들에게는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이다.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은 척박한 한국 장르 문학이 일구어낸 멋진 결실이다. 처음 공포 단편집을 계획했을 때만 해도 작품을 쓸 작가조차 없을 정도였지만 후속권을 1년 만에 낼 만큼 양적으로 질적으로 성장했다. 작가들의 고군분투가 눈에 선할 정도다.

공포 문학 분야만 성장한 것이 아니다. 작가층이 얇은 것으로는 공포 문학보다 더 심각한 추리에서도 외국 추리 문학과 경쟁할 만큼 잘 쓴 작품이 나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최혁곤의 『B컷』이다.

장르의 계절 여름,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를 낸 이종호와 김종일, 『B컷』으로 한국형 추리 스릴러의 가능성을 보여준 최혁곤, 국내외의 장르소설을 소개하는 황금가지의 ‘밀리언셀러 클럽’ 시리즈 담당 편집자 김준혁을 만나 한국의 장르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매드클럽, 한국 공포 문학을 풍성하게 꽃피우다

사회자 1년 만에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가 나왔습니다. 1년 만에 한국 공포 문학이 성큼 성장했다는 것을 느낄 만큼 좋은 작품이 많았습니다.

이종호 3년 전에 공포 문학 단편선을 기획했을 때 작가도 독자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공포를 쓸 작가를 찾아보겠다는 기획자의 입장에서 시작했죠. 온라인에서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 중에서 가능성이 보이는 작가들과 연락해서 하나씩 작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처음 만난 작가가 김종일 씨였어요. 지금 공포 작가 모임인 ‘매드클럽’에는 열네 명의 작가가 있어요. 그렇게 되기까지 3년이 걸렸어요. 작가군이 그 정도 형성되니까 작품집이 1년에 한 권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분신사바』『흉가』『이프』의 작가 이종호. 한국 공포 문학 창작 집단 <매드클럽>을 이끌고 있는 한국 공포 문학의 대표작가다.
사회자 1년 사이에 작품의 질이 크게 좋아졌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김종일 작가들은 누구나 자기 글에 대해 자부심이 강해요. 그래서 작가 모임을 가보면 상처받지 않을까,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하고 서로 글에 대해 비평하는 걸 자제하는 분위기죠. 그런데 매드클럽은 비평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모임에 적응하기 어려워요. 클럽에 들어온 지 오래되거나 그렇지 않거나 상관없이 작품만으로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어요. 냉정하게 각자의 작품을 비평하죠. 이 점은 좋다, 이 점은 안 좋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분위기예요. 그게 발전하는 데 득이 돼요. 혼자 써서 이 정도면 됐다고 출판사에 보내는 게 아니라 작가들끼리 서로 돌려 읽으며 수정하고 보완하면서 어느 정도 검증이 된 상태에서 나가니까 독자들에게 받는 질타가 적어요.

이종호 작품이 좋으면 어떤 장르든 독자는 모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매드클럽 사람들은 굉장히 무자비해요. 단편선에 실린 작품 중에는 보통 3개월, 길게는 6개월 정도 작품을 고친 것도 있어요. 통과될 때까지 계속 고쳐요. 문장부터 작품의 전체적인 부분까지 세심하게 뜯어보고 고칠 부분은 고치는 거죠.

김준혁 편집자의 입장에서 봐도 1권에 비해 2권의 퀄리티가 굉장히 높아졌어요. 작가들이 이런 활동을 통해 단련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1권의 첫 원고를 받았을 때는 ‘이건 좀 아니다’ 싶은 작품도 있었고 손을 본 작품도 있었지만 2권의 작품은 거의 손댈 데가 없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공포 문학은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비평해주고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으니까요.

사회자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이 19금 판정을 받아서 마음고생이 심하셨을 텐데요. 혹시 2권을 집필하면서 신경 쓰이진 않으셨나요?

이종호 네, 그랬죠.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는 밝게 가려고 했어요.

사회자 그건 아니던데요. 굉장히 무서웠습니다.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이종호 작가들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했는데 자기 것 때문에 19금 받으면 부담스럽잖아요. 자체검열이 된 것 같아요.

김준혁 이번 작품집에 이를 전부 다 빼버리는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이것 때문에 19금 받는 거 아닌지 전 조마조마했습니다.

이종호 있는 그대로 쓰는 것보다 거짓말로 쓰는 게 더 사실 같을 때가 있어요. 허구적으로 만들어내는 게 더 무섭죠.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에 나오는 묘사는 대부분 사실이 아니에요. 그 분야 전공자들이 봤다면 ‘어, 말도 안 돼’라고 했을 걸요. 그런데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이 ‘사실적인 묘사’ 때문에 19금 판정을 받았어요. 얼마나 황당하고 아이러니한가요.


한국 추리스릴러의 가능성 『B컷』

최혁곤 저는 공포 문학 하시는 분들이 클럽을 만들어서 활동하시는 것을 보면 부럽습니다. 예전에 추리 문학도 그렇게 돌려 읽으면서 작품을 검증하곤 했는데 지금은 아예 작가들이 없으니까 그렇게 하는 건 엄두도 못 내고 있어요. 추리는 작가도 없고 외국의 수준 높은 작품들이 번역되고 있어 이중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한국 추리 역사를 80년이라고 하는데, 80년대와 90년대 초반 추리소설이 한창 인기를 얻었을 때 질 떨어지는 작품이 쏟아져서 독자들에게 외면받았죠. 추리 시장에는 10만 권을 파는 한 사람보다 만 권을 파는 작가 열 명이 절실하게 필요해요. 추리소설 카페에 가보면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가 굉장히 많고, 외국 원서를 직접 읽을 정도로 수준 높은 독자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국내 창작 추리에는 관심이 없으시죠.

김준혁 외국 추리를 읽는 독자는 계속 늘고 있어요. 국내에서 재미있는 소설, 읽히는 소설이 팔리기 시작하면서 외국 장르물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재미있는 소설 붐에 한국 장르 문학은 별로 덕을 보지 못하고 있어요. 일본 추리소설을 읽고 ‘우리 추리에는 무슨 작품이 있을까? 한 번 읽어 볼까?’가 아니라 ‘다른 작품 더 번역해 주세요’라고 하거든요. 그렇지만 곧 한국 장르 문학이 우리 독자들에게 읽히리라고 생각해요. 『B컷』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외국이 배경인 작품을 읽다 보면 너무 낯선 나라 이야기라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심정이 들잖아요? 그에 비해 롯데리아가 나오는 『B컷』을 읽다 보면 내가 사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읽는 쾌감이 있어요.

김종일 맞아요. 만날 샌프란시스코, 런던 어쩌고저쩌고하다가 소나타가 나오고 한남대교가 나오고 하면 반갑죠.

사회자 최혁곤 작가님은 직장(경향신문)을 다니면서 작품을 쓰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추리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최혁곤 어렸을 때부터 추리소설 마니아였어요. 열심히 읽다 보면 창작을 하고 싶어지잖아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스포츠신문 공모전에 냈는데 계속 떨어졌어요. 재능이 없는 것 같아 접었는데 서른이 지나니 또 하고 싶어지더군요. 전업 작가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계속 글을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시 책도 읽고 공부를 하면서 단편을 썼는데 투고할 데가 없어서 장편을 썼어요. 1년 반 정도 걸려 첫 장편 『B컷』을 썼는데 운 좋게 책으로 나왔습니다.

김준혁 『B컷』은 처음부터 눈에 확 띈 작품이었어요.

『몸』으로 제3회 황금드래곤 문학상을 수상한 김종일.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1, 2』에 참여했다.
최혁곤 작품 투고를 한 다음에 황금가지에서 연락이 와서 출판사로 찾아가는데 어찌나 흥분이 되고 기쁘던지. 일산에서 지하철을 타고 출판사에 가는데 지하철이 너무 느리게 가더라고요. ‘아, 언제 도착하나’ 싶었어요.(웃음)

김준혁 사실 편집자는 작품에 몰입하거나 공감해서는 안 되거든요. 작품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되니까. 그런데 『B컷』을 읽으면서 무척 마음에 와 닿았어요. 제임스 패터슨의 소설이 연상되기도 했고…. 가정에서 버림받은 남편의 이야기인데, 남자 분들이 많이 공감하는 평을 올려주셨어요.

최혁곤 그 이야기에 공감하는 남자들을 여자들이 싫어하죠.(웃음) 『B컷』은 첫 장편이고 부족한 점이 많은 작품인데 과분할 만큼 좋은 평을 해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냉정하게 생각하면 앞으로 단련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추리 쪽으로도 투고가 많이 들어오나요?

김준혁 많진 않지만 꾸준히 투고가 들어옵니다. 그런데 외국 작품을 그대로 따라하려고 했지만 어설프게 그친 작품이나 아주 옛날식의 추리 소설 -셜록 홈즈가 활약했을 시절의- 을 써서 보내는 분들이 있어요. 답답하죠. 추리뿐만 아니라 장르 문학의 투고자는 계속 늘고 있지만 출판할 만한 것은 적습니다. 요즘은 주로 인터넷에서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내 고정 독자가 몇 만이다’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 독자들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게 문제죠. 글 수준이 떨어져도 일단 재미만 있으면 조회수는 올라가잖아요. 그러나 그것을 인쇄물로 낼 때 과연 누가 살까요?

최혁곤 장르의 최고 미덕은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만 원짜리 책을 팔 때 그럭저럭 재미있는 걸로는 부족하죠. 책을 읽을 때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 책을 덮지 못할 만큼 재미가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치열하게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욕을 하면서도 끝까지 읽히는 작품을 써야 한다고 봐요. 드라마 <하늘이시여>처럼요. 욕하면서도 어쨌든 끝까지 보잖아요. 궁금해서요.


장르 문학, 영상으로 거듭나다

사회자 순수문학 쪽 작가들은 대부분 일정한 단계를 밟아 문단에 데뷔하는데 장르 문학 쪽 작가들은 어떤가요?

이종호 자신이 투고하기도 하고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기도 해요. 저는 출판사에 투고를 했어요. 『흉가』 같은 작품도 몇몇 출판사에 투고를 했는데 연락이 와서 책으로 나왔어요.

한국형 스릴러의 가능성을 보여 준 『B컷』의 작가 최혁곤
최혁곤 추리 쪽은 좀 다른데, 추리 쪽은 스포츠신문 신춘문예가 예전에 있었어요. 매년 세 명에서 다섯 명 정도 추리작가들이 데뷔를 했죠.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도 있고요. 나름대로 과정을 거쳐 작가로 데뷔했는데 지금은 신춘문예도 다 없어지고,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도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니까 새로운 작가 충원이 잘 안 돼요. 요즘에는 작가 분들이 개인적으로 활동을 하시죠. 자기가 써서 직접 투고하는 식으로 공포 쪽처럼 변하고 있어요.

사회자 순수문학 쪽은 창작기금이나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이 있잖아요? 장르 문학도 그런 혜택이 있나요?

이종호 굳이 장르 문학을 배제하진 않아요. 지원서를 보면 장르 문학은 안 된다는 말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지원금을 받은 분은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지원은 없다고 봐야죠. 조선일보에서 이번에 뉴웨이브 문학상을 제정했는데 그 정도예요. 장르 문학에 대한 눈에 띄는 지원은.

사회자 순수문학 쪽에서는 단편은 지원도 많고,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어서 소설가들이 단편 쓰기를 선호한다고 하는데요. 장르 문학 쪽은 어떤가요?

이종호 단편은 발표할 지면이 없어요. <판타스틱> <파우스트> 정도. 장르잡지가 별로 없어요.

최혁곤 단편을 써서는 평생 주목받기가 어려워요. 현실적으로 장편을 써서 영화 판권이 팔리지 않으면 어렵죠.

사회자 영화 판권은 어느 정도인가요?

이종호 작가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보통 이천에서 삼천 정도. 영화 흥행에 따른 인센티브가 있고요.

김준혁 출판사 입장에서도 2차 판권에 관심이 많아요. 장르 문학은 책을 팔아서 작가 분들을 즐겁게 해드리진 못하거든요.(웃음) 영화 판권을 열심히 팔아서 그 돈을 해드리려고.

최혁곤 영화가 나오면 책도 많이 팔리고.(웃음)

이종호 영화가 나오면 공포를 책으로 보지 않은 독자들이 책으로 몰려요. 새로운 독자가 생기는 셈이죠. 앞으로 공포영화 몇 편이 큰 성공을 하면 공포 소설이 좀 탄력을 받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회자 영화화되는 것이 집필에도 영향을 미치겠네요?

이종호 간과하진 못하죠. 가능하면 영화가 되는 소재를 찾으려고 하죠. 공포 장르는 비주얼적인 면을 신경을 쓴 소재나 이야기가 재미있어요. 어차피 공포가 심리적인 공포와 시각적인 공포가 같이 가야 하니까. 외국을 봐도 영화화되는 비율이 가장 높은 게 공포 장르거든요.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이 나왔을 때 단편인데도 영화 계약을 하자는 영화사가 있었어요.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를 낼 때는 작가들이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좀 길게 썼어요. 책이 좀 두꺼워졌죠.(웃음) 영화가 없었으면 작품 활동하기가 더 어려웠을 거예요. 제 경우에도 문학 담당 기자들은 만난 적이 거의 없어도 영화 담당 기자는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여름이면 취재 요청으로 정신이 없을 정도예요.

사회자 작품 자체보다는 영화의 소스로 더 주목받는다는 것이 자존심 상하진 않으세요?

이종호 작품의 완성도를 빼고는 모든 자존심을 버렸습니다. 장르 문학의 환경이 워낙 척박해서요.

사회자 밀리언셀러 클럽의 고정 독자는 어느 정도인가요?

김준혁 초판을 소화하지 못하는 책이 많습니다. 제가 보기엔 좋은 작품이고 충분히 잘 나갈 것 같다고 보는데 잘 안 나가요. 작년에 나온 데니스 루헤인의 『가라, 아이야, 가라』가 그렇습니다. 작품이 상당히 좋아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예상만큼 책이 안 나갔어요. 올해 말에 영화가 개봉하는데 그때 열심히 팔 생각이에요. 각 장르의 골수 고정 독자는 천 명이 안 돼요. 잘 나가네 하면 2만 부 정도. 『13계단』이 그런 책이죠. 아무리 작품이 좋아도 시장에서 나가는 작품은 따로 있어요. 기리노 나쓰오의 『아임 소리 마마』가 잘 나간 건 의외였어요. 『아웃』이나 『그로테스크』에 비하면 작품성은 떨어지는데 순식간에 만 부가 넘어갔어요. 그래서 『잔학기』『암보스 문도스』를 냈는데 잘 안 나가요. 스티븐 킹의 『셀』도 이전 작품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만 부가 넘어갔어요. ‘어, 스티븐 킹이 좀 나가네. 그럼 신작을 한 번 내보자’ 해서 『리시 이야기』를 냈는데 또 안 나가요. 매번 이런 식이죠.(웃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고정 독자층이 얇기 때문이죠. 장르를 좋아해서 읽는 독자보다 이슈가 되거나 ‘이 작품 재미있다’는 소문을 듣고 읽는 독자가 더 많죠. 올 상반기 베스트셀러였던 『살인의 해석』이 좋은 예죠.

이종호 그래도 국내 작가는 수는 적지만 독자층이 형성되는 것 같아요. 그 점이 희망적입니다.

김준혁 아무래도 국내 작가의 책을 낼 때는 작가의 가능성이나 미래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투고되는 원고를 보면 톡톡 튀는 재미는 있는데 문장이나 구성이 떨어지는 작가가 꽤 있어요. 편집자로서 어떻게 조련할 것인가를 많이 생각하는데, 이 조련 과정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많아요. 문장에서 해결이 안 되면 책은 출판되기 어렵습니다. 영화로는 대박 날 스토리지만 소설로 옮기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소설은 이야기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장르 문학이 발전하려면 가야 할 길이 멀지만 투고되는 작품들을 보면 가능성이 보여요. 재능 있는 작가들이 장르 문학에 도전하고 있고, 특히 공포 쪽에 좋은 작가들이 많아요.

최혁곤 옛날과 비교해서 지금은 무척 좋은 작품이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작품들을 자양분 삼아 뛰어난 작가들이 곧 나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지금도 골방에서 열심히 창작하고 있는 작가들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추리 소설 쪽에서 젊은 작가들이 많이 나왔으면 해요.


내 안의 드러나지 않은 어둠을 바라본다

사회자 공포도 그렇고 추리도 그렇고 인간의 어두운 부분을 주목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어두운 이야기를 쓰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영향을 받는 일은 없는지 궁금한데요.

이종호 영향을 받긴 받아요. 사회의 불합리한 부분이나 악의적인 사람들, 뉴스를 보통 사람보다 오래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어떤 작가는 분노를 오래 가지고 있기도 하고.

김종일 제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은데.

황금가지 ‘밀리언셀러 클럽’ 시리즈 담당 편집자 김준혁
이종호 김종일 작가님이 그렇죠.(웃음) 저는 저한테 대입하는 경향이 많아요. 쓸데없는 걱정거리를 만드는 편이에요. 저는 자연재해에 대해 공포가 많아요. 글을 쓰면서 내용이 이입이 되어서 ‘어, 이거 정말 이럴 수도 있겠네’ 하는 생각이 들면 애들 미래 생각에 며칠 괜히 우울하기도 하고.

사회자 작품의 소재는 주로 어디서 찾으시나요?

최혁곤 저는 신문을 만드는 일이 직업이다 보니 신문을 굉장히 샅샅이 읽어요. 어떤 사건을 읽고 이야기가 되겠다 싶으면 계속 살을 붙여보죠.

이종호 공통적인 거 같아요. 신문을 자주 보고 신문에서 소재를 얻는다는 건. 호러 작가들도 그렇거든요. 현실이 제일 무서워요.

김종일 맞아요.

사회자 그렇지만 현실 그 자체가 소설이 되진 않잖아요? 현실은 논리적이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소설은 논리적이지 않으면 대번에 독자들에게 플롯이 헐겁다는 비판을 들으니까요.

이종호 현실에선 이유 없는 살인이 일어나지만 그걸 그대로 소설로 옮길 순 없어요. 소설은 현실 같은 픽션이지 현실이 아니니까요. 현실을 그대로 가져오면 구성이 헐거워지고 독자들도 논리에 공감하지 못해요. 특히 장르 소설은 철저히 계산되어서 쓰여야 합니다.

김종일 예전에 어느 소설가가 우연히 지하철역에서 첫사랑을 만났어요. 서로 반대편에 서 있다가 ‘어’ 하고 발견했다는 이야기로 글을 썼는데 ‘작위적’이라고 비판을 받았다고 해요. 현실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소설에서는 그렇게 써선 안 되죠.

최혁곤 신문을 보면 사건 사고가 넘쳐나지만 추리소설에 쓸 만한 소재는 늘 빈곤해요. 원한 아니면 사고, 폭력밖에 없으니까.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난 것처럼 써야 하니 어렵죠.

사회자 공포 소설에는 부인이나 여자친구, 여자가 난도질당하는 일이 많이 나오잖아요.

이종호 이번에 나온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에는 남자도 난도질당하는데요.(웃음)

김종일 여성이 아무래도 약자다 보니 감정이입이 더 잘 되기 때문인 것도 있어요. 여성이 더 섬세하고 감정적이니까. 세세한 면을 더 잘 드러낼 수 있고. 여성이 피해자인 것이 공포를 배가할 수 있어요.

사회자 세 분 모두 결혼을 하신 걸로 아는데 사모님이 싫어하진 않으세요? 소설에서 매번 여자가 죽고 그러니까.

이종호 그런 적은 없고, 좀 더 무섭고 잔인하게 못 쓰느냐고.(웃음) 집사람이 워낙 공포 장르를 좋아해서 쓰려면 제대로 쓰라고 그래요.

김종일 저는 그런 거 안 썼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어요. 허구인 걸 알면서도 찝찝하다고. 특히나 애들 어떻게 되는 이야기 같은 거 쓰지 말라고.

이종호 이번 단편선에 실린 작품에선 부인이 아기를 유산하는 이야기죠?

김종일 예. 이상하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그런 이야기를 많이 쓰게 되네요. 가족도 대가족이고, 소설 속의 이야기와는 다른데 소설에서는 항상 가족이 파괴되거나 애들이 어떻게 되는, 가족의 분열로 많이 가게 되더라고요. 그걸 처가 무척 싫어해요.

사회자 오히려 잘 크신 분들,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공포나 어둠에 더 주목하는 것 같아요.

이종호 저도 가족에 만족하고 지금의 환경에도 만족하는데 항상 불안하죠. 이 행복에 균열이 생길까 봐. 그래서 불안에 주목하는 거 같아요.


장르 문학에 대한 오래된 오해들

사회자 글을 쓰시는 분들은 늘 문장에 대해 고민하게 마련인데, 장르 문학을 하는 분들은 특히 더 문장에 대해 고민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이종호 문장에 대해 늘 고민합니다. ‘나는 문장이 됐어’ 라고 생각하는 작가는 없어요. 아직도 문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군더더기가 보이고. 구성 못지않게 문장에 공과 시간을 많이 들이는 편이에요. 그런 과정을 거쳐 책을 낼수록 문장이 점점 나아지는 것 같아요.

김종일 저는 지금도 구양수의 삼다(三多)가 진리에 가까운 이야기라고 봐요. 많이 쓰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는 게 제일 좋아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습작을 시작했는데, 그때는 순문학 쪽이었어요. 군대에 가기 전까지 순문학을 썼고 제대하고 나서 쓰고 싶은 걸 쓰다 보니 공포 문학, 장르 문학을 하게 되었어요. 장르 문학이라고 해서 문장력 쪽에, 문장은 약해도 상관없다, 재미만 있으면 되지, 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좀 아니라고 봅니다. 뭐든지 기본은 문장입니다. 재미, 주제의식도 중요하지만 문장이 안 되면 문학이라 할 수 없죠. 초기작을 보면 정말 이거 뺐어야 하는데 싶은 것이 눈에 많이 띄어요. 문장 쓰기는 완성의 단계가 없는 것 같습니다. 끊임없는 연마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혁곤 저도 문장에 대해 콤플렉스가 심해요. 검증받은 적이 없어서. 그래서 문장에 제일 신경을 많이 써요.

김준혁 순문학을 하다가 실패한 사람이 장르 문학으로 갔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 순문학을 하다가 장르 문학이 훨씬 재미있어서 그쪽으로 창작을 하게 된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또 독자들은 장르 문학 하시는 분들이 문장력이 안 좋다고 오해하시는데 사실 오히려 문장에 대해서는 순문학 하시는 분보다 더 고민하고 계십니다. 이런 편견은 깨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종호 저도 그렇고 장르 문학을 하는 분들은 순문학에 대해 열등의식이 없습니다. 쓸데없이 관념적인 순문학 작품을 보면 이야기의 측면에서 장르 문학이 훨씬 우수하고 완성도도 높다는 생각도 듭니다. 요즘의 순문학은 이야기가 거의 없지 않나요? 독자의 외면을 받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요.

한국 장르 문학은 지금 한창 실험 중이다. 작가는 작가대로 우리 현실에 맞는 새롭고 재미있는 작품을 쓰고자 노력하고, 편집자도 좋은 작가를 발굴하고 장르 문학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이고자 힘쓰고 있다. 장르 문학이라면 으레 외국 작품을 떠올리는 것이 현실이지만 몇 년 후 우리 현실과 젊은 감각에 맞는 좋은 작품이 쏟아져 나와 많은 사랑을 받으리라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그러려면 독자들의 비평과 참여도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장르문학 #이종호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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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2.04.01

한국의 장르문학의 종류가 거의 희박하죠. 사실 영어권일어권유럽권에 비해 출간되는 양도 턱없이 적고...문하계에서 장르 문학을 폄하해서 등단이나 출간도 쉽지 않죠. ㅎㅎ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읽고 계실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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