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모니카 부는 사나이, 뮤지션 전제덕
지난 2004년, 달랑 하모니카 하나로 음악계에 일대 ‘바람’을 불러일으킨 뮤지션이 있다. 국내 유일의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 그 뒤 전제덕은 언론과 방송의 절대적인 관심을 받으며 TV 광고 모델로 나섰고,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7.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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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달랑 하모니카 하나로 음악계에 일대 ‘바람’을 불러일으킨 뮤지션이 있다. 국내 유일의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 그 뒤 전제덕은 언론과 방송의 절대적인 관심을 받으며 TV 광고 모델로 나섰고, 내친김에 MBC <전제덕의 마음으로 보는 콘서트>의 MC를 맡기도 했다. 물론 이 같은 바람의 증폭제는 ‘시각장애’라는 그의 특수성 때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제덕을 말할 때면 언제나 따라붙는 ‘시각장애’ ‘앞이 보이지 않는 장애를 딛고…’와 같은 꼬리표가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그러나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 그는 엄연히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하모니카 연주자다. 그의 데뷔 음반은 2005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부문을 수상했고, 전제덕은 지난 2년여 동안 단독 콘서트는 물론 수많은 공연과 음반에 참여하는 열정적인 음악 활동을 펼쳐왔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그의 음악적 성숙을 드러낸 2집 『What is Cool Change』를 발표하고, 크리스마스 공연에 이어 빡빡한 공연 일정으로 무대에서 팬들과 만날 것을 예고한다. 3월 14일 단독 콘서트를 여는 전제덕 씨를 홍대 앞 사무실에서 미리 만나봤다.


2집, 연주 음반으로는 더 가치 있어

2년 만에 2집 앨범 『What is Cool Change』로 우리 곁을 찾아온 전제덕
“내 것이랑 같은 거네, 이거 소니 거죠?” 녹음하려고 건넨 마이크를 쥐며 전제덕 씨가 반가움을 표했다. “아 그게…” 늘 가지고 다니면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상표를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그러네요, 소니 거네요”라고 답한다. “녹음할 때 이 마이크 쓰거든요. 연주한 걸 mp3 플레이어에 녹음해서 듣는데, 마이크 성능이 굉장히 좋아서 깨끗하게 들어와요”라며 그는 마이크 사용법을 몇 가지 더 알려줬다. 뭐, 기자와 인터뷰이 사이에 신경전을 벌일 필요는 없겠으나, 일단 기자의 기세가 꺾이는 순간이다.

보통 발라드 가수들이 달콤한 사랑노래를 부르는 게 일반적인 ‘화이트데이’, 특별히 화이트데이에 콘서트를 여는 이유가 있는지 궁금했다. “어찌 보면 싱글을 위한 공연입니다.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는 연인을 위한 날이잖아요. 그런데 사실 연인은 특별히 뭘 안 해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 좋고 재밌거든요. 반면에 싱글은 외롭잖아요. 갈 곳 없는 싱글들, 저희 공연 오세요. 물론 화이트데이 특성상 로맨틱한 곡도 많이 연주됩니다. 전체적으로 정규공연보다는 많이 부드러울 거예요.” 처음에는 어려운 곡으로 시작해서 차츰 친숙하고 일반적인 멜로디가 이어지는 전제덕의 공연은 후반으로 갈수록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격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묘미가 있다.

2집이 발매된 지 3달째, 체감하는 반응은 어떨까? “요즘 전체적으로 음반 판매율이 저조하니까 음악을 하는 입장에서 답답하죠. 평론가 쪽에서는 좋은 반응입니다. ‘좀 더 아티스트가 돼 가는 것 같다’라고도 하고요. 한편 대중은 음악이 어려워진 것 같다고도 해요.”

‘대중의 취향에 맞추기보다는 뮤지션으로서 해보고 싶은 음악을 했다’는 2집. 그래서인지 1집과 2집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1집은 아무래도 대중에게 다가가는 게 중요했으니까 서정적이고 어쿠스틱한 멜로디가 많았죠. 하지만 2집은 연주자 간 인터플레이도 많고, 각 연주자의 느낌이나 악기의 테크니컬한 면도 많아서 연주 음반으로는 더 가치가 있을 겁니다. 분위기도 활달하고, 하모니카 소리를 앞으로 끌어내서 좀 더 거칠게 표현한 부분도 많고요.” 전제덕은 이번에 솔(soul)을 바탕으로 한 음반을 만들고 싶어서 많은 고민을 했다. 그래서 앨범을 준비할 때도 제임스 브라운, 레이 찰스 등 흑인 뮤지션의 음반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애잔함과 거침을 모두 지닌 하모니카

“악기로서의 하모니카는 접하기 쉬운데, 연주로서의 하모니카는 접하기 어렵죠.” 1996년 우연히 벨기에 출신 하모니카 연주자, 투츠 틸레망(Toots Thielemans)의 연주를 듣고 하모니카도 리드 악기가 될 수 있음을 깨달은 그는 본격적으로 하모니카 연주에 도전한다. “세계적인 연주자인 만큼 일단 연주 실력에 감탄했죠. 특히 그분의 연주는 서정적이고 따뜻한 감정이 묻어나요. 특이한 점은 보통 하모니카 음색은 슬프고 애잔한데, 그분의 연주는 여유가 느껴지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하모니카는 크기가 한 뼘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음은 50여 개나 됩니다. 또 숨을 들이마실 때도, 내쉴 때도 소리가 나니까 거기서 표현되는 감정의 폭이 무척 깊어요. 하모니카의 음색은 바이올린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클래식할 때 보면 바이올린과 앙상블이 잘 되고요, 또 색소폰과도 어울려요.” 바이올린의 애잔함과 색소폰의 거침을 모두 지닌 하모니카, 전제덕은 그 매력에 빠져 하모니카를 독학으로 섭렵했다.

독학?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하모니카에 대해서는 대부분 기본적인 지식이 있잖아요. ‘도’는 내쉬고 ‘레’는 들이마시고….” 물론 하모니카의 특성을 잘 몰랐던 초창기에는 하모니카가 망가지도록 연습하고 공부했다. “음악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니까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된다’라는 공식이 성립할 때까지는 입술이 마르고 닳도록 연습했죠(웃음).” 앞이 보이지 않는 그에게 라디오는 좋은 스승이 됐다. 듣고 또 듣고, 그리고 책과 음반을 통해, 다른 뮤지션들을 통해 한층 깊은 지식을 쌓아갔다. “계속 듣다 보면 음악이 들어오죠, 기교적인 면도 들리게 되고요.”

그렇게 쌓인 음악적 지식은 초창기 다른 뮤지션의 세션으로 참가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됐다. “뭐든지 악보를 들이대고 해야 한다면 저 같은 사람은 살아남지 못하죠. 청음연습, 말할 때 빨리빨리 받아들이는 방법이 몸이 배어 있어서 세션 작업할 때도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그런데 재즈공연에는 즉흥연주가 있다. “일단 재즈 하는 사람들은 재즈 스탠더드 대표곡을 외우고 있어요. 또 공연을 한두 번 하는 게 아니니까 저절로 팀플레이가 형성돼 있죠. 재즈라는 형태는 기본적으로 멜로디 한 번 연주하고, 똑같은 멜로디의 박자와 리듬 코드에 베리에이션하고, 다시 멜로디를 하는 구조로 돼 있거든요. 그걸 응용하고 변화하는 거라서 어렵지 않아요. 사실 악보만 보고 연주를 한다면 그건 머릿속에 음악이 들어 있는 게 아니라 콩나물 대가리가 들어 있는 거겠죠.”

“음악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니까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된다’라는
공식이 성립할 때까지는 입술이 마르고 닳도록 연습했죠.”

악보를 볼 수 있으면 1분이면 할 걸…

생후 보름 만에 찾아온 열병으로 잃게 된 시력. 전제덕은 시각장애인 특수학교인 ‘혜광학교’에서 사물놀이와 인연을 맺어 김덕수 산하에서 활동하다,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모습이 눈에 띄어 다른 뮤지션들의 세션으로 참여하게 됐다. 4년 전 지금의 소속사 김주엽 대표와 정수욱 프로듀서를 만나 음반을 발표하고 여기까지 왔다.

그는 언론에 대해 섭섭함을 표현했다. “2집을 내고 활동하고 그러면 인터뷰할 때는 새 앨범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공백 기간에 어떤 걸 했는지 그런 걸 물어봐야 하는데, 매번 거꾸로 돌아가서 앞이 보이지 않는 것만 자꾸 얘기해요.” “많이 유명해지셨지만 아직 전제덕 씨를 모르는 분도 있으니까요”라고 에둘러 말한다. 그러나 전제덕을 말할 때 그의 장애를 언급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는 국내 음악계에 리드 악기로서 하모니카를 제시했고, 무엇보다 그 테크닉과 표현력에서 ‘영혼을 울린다’라는 찬사까지 받는다. 모래주머니를 단 그가 누구보다 높게 뛰어오른 것이니 당연히 더 빛나는 게 아니겠는가?

“그 얘기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어요(웃음).” 어려운 질문이었지만 장애로 겪은 힘들었던 점을 물어봤다. “눈이 안 보이는 건 심각한 장애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안 해서 그러는데 앞이 안 보여서 겪는 불편은 너무 많아요. 가장 큰 건 바로 생존의 문제죠.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몇 개쯤 될 것 같아요? 10개도 안 돼요. 우리는 ‘이건 하기 싫어’라는 게 없어요. 해야 하는 거죠, 선택이 아니고 생존이니까. 그래서 주위 친구들도 힘들어하고. 작년에 헌재 위헌 결정 때(헌법재판소가 시각장애인만 안마업을 할 수 있게 한 관련 규칙에 대해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라는 이유로 위헌선고를 내렸다) 투신자살하고 그런 거, 그만큼 절박한 겁니다. 지금도 많은 불편한 점을 극복…까지는 아니고 적응, 계속 적응해가는 거죠.”

음악활동을 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음악을 할 때 가장 불편한 건 악보가 있으면 1분이면 할 것을 1시간이 걸린다는 거죠. 예를 들어 세션을 갈 때도 보통 사람들은 현장에서 악보 보고 녹음 들어가서 연주하고, 빠르면 10분 만에 끝낼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저는 사전에 소스가 없으면 가서 다 듣고 외우고 해야 하니까 시간이 오래 걸리죠.” 그래서 악보 한 번 보면 해결될 작업을 위해 그는 미리 듣고 또 듣는다. “덕분에 한 번 작업한 음악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아요. 그 음악은 평생 기억하는 거죠.” 작곡이나 음반 작업을 할 때도 그가 곡을 연주하면 프로듀서가 악보에 적는 과정을 거친다.

얼굴이 알려지면서 혹시 활동 전보다 더 상처받은 적은 없을까? “그런 거 없어요. 데뷔하고 나니까 아주 좋아요.” 이 답변이, 그가 쉽게 꺼내지 못했던 지난날의 어려움과 설움(비단 금전적인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금 행복하세요?” “어… 우리가 ‘행복’을 얘기할 때는 많은 경우의 수가 있죠. 글쎄요, 불행하지는 않아요. 불행하지 않은 게 행복일 수도 있겠죠.”


평생 연주자로 살고 싶어

올해 희망이 있는지 물었다. “글쎄요, 아무래도 음반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음반이 잘돼야 여러 사람이 편하니까. 그리고 계속 공연하고요.” 이제는 공연장이 더 편하고, 무대 위가 자신의 터라고 생각한다는 전제덕. “아직은 공부하면서 조심조심 생각을 연주로 표현하는 상황이죠. 지금까지 학습해온 것 가운데 좋은 것을 빼내고 있는데, 이론과 음악적 체험을 더 많이 해야죠. 어떻게 되든 평생 연주자로 살아갈 수 있다면 전 이 사회에 감사합니다.”

“평생 연주자로 살아갈 수 있다면 전 이 사회에 감사합니다.”

당일 전제덕 씨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지 않아 줄곧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얘기했다. 그 눈을 통해 그의 마음이 느껴져 훈훈했다. 앞을 보는 대신 자신의 내면을 누구보다 오랜 시간, 그리고 깊게 들여다봤을 그이기에 앞으로도 그가 쏟아내는 음악은 찡한 울림이, 진한 감동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전제덕이 불러일으킨 ‘바람’은 그가 하모니카를 들고 무대 위에 서 있는 한 쉽게 잦아들지 않을 것이다.




#전제덕
68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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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맘마

2019.12.30

공수처법 통과 기념으로 강연을 신청합니다(공수처법지지 가족 4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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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key

2019.12.30

강연회 신청합니다. 저 한 명입니다. 헌법에 대해 알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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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미르

2019.12.30

2명 신청합니다. 헌법이 바로 서야 법이 바로 서고 대한민국이 바로 서는 그의 글과 생각을 응원합니다. 꼭 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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