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들이 병원에서 의사를 대하는 심리는 전적인 기대감과 일방적인 신뢰로 이루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찌 보면 현대의 직업군 중에서 가장 신에 가까운 직업을 찾으라 하면 의사가 그 상위를 차지하고 있으리라 하는 추측은 아주 온당한 편견입니다. 게다가 윤리와 정의의 문제를 표현하기에도 의사라는 직업만큼이나 수월한 구조를 지닌 것도 없습니다. 인간의 생과 사를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사명은 치정극의 윤리의식의 수위를 넘어서는 대단한 재미를 안겨주며, 실낱같은 삶에 대한 희망을 현실에서 실현시켜 주는 전문기술은 오히려 법정 드라마의 유려한 설레발보다 때로 더 감동적인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ER〉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조지 클루니가 재계약을 거부하고 빠진 시점에서부터 〈ER〉 또한 예의 그 폭풍 같은 환호를 뒤로 한 채 조금씩 누수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포스트 〈ER〉 시대’의 메디컬 드라마의 판도는 예상보다 빠르고 탄탄하게, 게다가 아주 만족스럽게 진행되었습니다. FOX의 〈하우스〉와 ABC의 〈그레이 아나토미〉가 그 선두주자들인데, 그 둘 중에서도 ‘포스트 〈ER〉 시대’의 적자를 자처할 수 있는 드라마가 바로 〈그레이 아나토미〉입니다.
〈그레이 아나토미〉는 이제 막 의사로서의 삶을 시작한 인턴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사회 초년병들, 그 중에서도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 방법”에 대한 의사들의 해결책이 “인턴 시키면 된다”라는 말이 있듯, 의사로서의 생애에서 가장 얄궂고 지난한 시기를 맞이하게 된 시애틀 그레이스 병원의 인턴 다섯 명의 생활을 그린 작품이지요. 메디컬 드라마의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 캐릭터를 인턴, 즉 전문의가 아닌 수련의로 설정한 〈그레이 아나토미〉는 기존의 메디컬 드라마보다 좀 더 젊은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었습니다. 그 기반을 효과적으로 풀어내듯 〈그레이 아나토미〉는 오프닝 인트로에서부터 아주 감각적인 영상과 매혹적인 음악이 사용됩니다. 뿐만 아니라 극중 분위기에 잘 들어맞는 최신 팝음악은 감각적인 영상미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다섯 명의 1년차 인턴들은 선배 의사들에게 인정받아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앞길이 그리 순탄해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그들을 담당하는 바로 위 레지던트는 과장 의사들에게도 소신을 굴하지 않을 정도로 뚝심이 있고, 인턴들에게는 나치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미란다 베일리입니다. 게다가 메레디스는 인턴 출근 바로 전 날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원 나잇 스탠드를 즐겼는데, 그 남자가 다름 아닌 병원의 외과과장인 데릭 셰퍼드였답니다. 너무 어리고 착해 보이는 인상에 힘이 좀 약해 보였지만, 의외로 멋있게 늙어가고 있는 배우 패트릭 뎀시가 분하고 있지요.
이 드라마도 보통의 메디컬 드라마처럼 단막극 형태로 그때그때의 에피소드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쩐지 좀 더 강한 중독성을 안겨주는 면모가 있답니다. 〈ER〉도 의사들의 삶을 실감나고 드라마틱하게 그리고 있고 캐릭터와 구성 등이 이보다 더 탄탄할 수는 없어서, 그보다 더 재미있는 메디컬 드라마는 나오기 힘들지 않겠느냐는 감탄을 자아냈던 드라마입니다. 하지만 〈그레이 아나토미〉는 그런 지존 같은 존재가 있는 상태에서도 그에 필적할 만한 드라마를 만났다는 의외의 즐거움을 안겨줍니다. 우선 젊어진 의사들의 이야기는 자극적이고, 덜 익은 풋풋함이 주는 신선함이 있지요. 여기에 정치판을 방불케 하는 인턴들의 생존경쟁도 강력한 양념이 됩니다.
능력을 인정받는 유능한 의사가 되기 위해서,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 벌이는 처절한 암투에, 일선에서 처음으로 직접 접하게 된 환자들의 고통에 대응하는 모습에서, 유능함에 인간성을 더하는 의사가 되려는 과정에서, 각각의 개성과 드라마가 가미되어 저 높은 전문 직업 의사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한껏 충족시켜 줍니다. 유능한 냉혈한은 보통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다른 업계보다 생과 사를 다루는 의료계는 실수가 용인 받을 수 있는 여지가 훨씬 팍팍하지요.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풋내기 인턴들이 그 첨예한 긴장감 속에서 의사로서, 찌르면 피 나오는 인간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좌충우돌이 겹겹의 매력을 선사합니다. 칼잠만으로 1년을 나야 하는 인턴들이지만, 젊은 혈기로 벌이는 애정행각도 당연히 조미료가 되어주고요.

“게임이라는 건 할 줄 아는 사람만이 참가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의 엄마는 최고 중 하나였다. 그에 비해 난 완전 꽝이다.” 그리고 마지막 즈음 역시 메레디스의 다음과 같은 내레이션이 향후 전체적인 드라마의 방향을 지시해 줍니다. “내가 외과의사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단 한 가지도 생각해 낼 수 없다. 하지만 그만둬야 하는 이유는 수천 가지나 생각해 낼 수 있다. 그래서 더 어렵게 느껴지나 보다. 우리 손에 사람들의 생명이 달려 있다. 게임이라고 하기엔 너무한 순간도 있다. 그럴 땐 받아들이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딛거나, 돌아서서 도망가는 수밖에 없다. 그만둘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난 이 게임이 좋다.”
메레디스의 독백에서 읽을 수 있듯 〈그레이 아나토미〉는 자신들이 선택한 의사라는 게임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풋내기 인턴들의 일과 사랑의 세레나데입니다. 그것도 아주 달콤하고 매혹적인 유혹의 세레나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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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lla1004
2019.07.30
마감시간내에 작성하여 바로 아래에 제출하였으나
팟빵아이디를 누락하여 동일한 내용에 팟빵아이디를 추가하여 다시 신청합니다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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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뵙고 싶던 유시민 작가님과의 시간을 간절히 바랍니다
28년전 대학생때 유럽 교환학생 1년의 시기를 거치며, 당시 어린나이에 직접 유럽의 문화를 체험하며 역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작가님과의 소중한 만남으로
지금의 제 생각과 경험을 통한 관점으로 유시민 작가님의 생각을 직접 듣고 싶습니다.
빡빡하고 건조한 제 삶에 잠시나마 생각의 여유를 갖게 되는 시간이 제게 주어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팟빵 아이디: dulla1004@yahoo.co.kr
dulla1004
2019.07.29
28년전 대학생때 유럽 교환학생 1년의 시기를 거치며, 당시 어린나이에 직접 유럽의 문화를 체험하며 역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작가님과의 소중한 만남으로
지금의 제 생각과 경험을 통한 관점으로 유시민 작가님의 생각을 직접 듣고 싶습니다.
빡빡하고 건조한 제 삶에 잠시나마 생각의 여유를 갖게 되는 시간이 제게 주어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From Heri Hwang
tmdgns4ever
2019.07.29
작가로서의 유시민 선생님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가까이에서 들어보고싶은 마음에요. 무엇보다 여행기여서 더욱 더 친근합니다. 생각하는 것을 말로 너무나 아름답고 명료하게 표현하시는 선생님. 유시민의 글쓰기 때부터 팬이었어요. 부디 만나뵐 구 있기를 바래봅니다. 인생의 순간의 힘을 믿어보러구요^^
팟빵아이디:shyn4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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