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연>을 안보셨다면 조용히 계세요.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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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스티븐 스필버그의 <뮌헨>이 개봉되었습니다. 예상대로 사방에서 온갖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는 중이죠. 어느 쪽에서는 스필버그가 이스라엘을 배반했다고 외치고, 다른 편에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을 너무 가볍게 대했다고 외치며, 가운데에선 영화가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양쪽 편을 모두 들거나 양비론을 내세우고 있다고 외칩니다. 전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그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이런 반응이 일어날 줄 알았습니다. 아마 스필버그도 만들기 전부터 알고 있었겠죠.

뭐, 자기 생각에 반하는 영화를 비판하는 게 나쁜 일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사실 종종 한 영화에 대한 모순되는 의견 모두가 맞을 수도 있습니다. 우린 하나의 일관된 논리로 완벽하게 설명될 수 있는 세계에 살고 있지 않아요. 종종 한 주제에 대해 어긋나는 의견들은 하나의 대상을 온전하게 관찰할 수 있는 상보적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뮌헨>에 대한 다양한 모순된 의견들은 모두 의미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의미 있는 비판들이 스필버그의 의도와 어긋나고 그 영화에 부정적이라고 해도, 그런 비판들을 끌어냈다는 것만으로도 전 스필버그가 가치 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 일반론에 기대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전 이 영화를 아직도 보지 못했으니까요.

문제는 이들 중 몇몇 평이 영화를 보기도 전에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잭 앵겔하드가 쓴 『Spielberg is no friend of Israel』은 실제 영화 감상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예술가가 특정 소재를 특정한 방식으로 다루었다는 소문 자체에 화가 난 것입니다. 아마 이런 사람들 중 몇 명은 영화를 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해가 가요. 그들에겐 그런 영화를 선택하는 것 자체가 혐오스러운 경험일 테니까요. 드문 일이 아니냐고요? 사실이 먼저여야 할 저널리스트 세계에선 정말 웃기는 일이지만 이런 일들은 예상 외로 흔합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건 몇 년 전에 있었던 에밀 쿠스투리카의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몇몇 비평이었지요.

최근 이와 비교될 만한 일이 우리나라에도 있었습니다. 바로 <청연>이죠. 지금 인터넷의 분위기를 보면 <청연>은 친일 영화이며 이 영화를 보면 맞아 죽어도 쌀 인간입니다. 웃기는 건 이 영화가 막 언론 시사회와 VIP 시사회를 끝낸 직후이며, 일반 시사회는 아직 가지지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영화에 대해 육두문자를 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 중 영화를 직접 본 사람은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영화를 빼고 박경원에 대해서만 따질 수 있지 않겠냐고요? 영화를 보지 않고 그 영화가 박경원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어떻게 압니까? 그리고 솔직히 말해 여러분이 박경원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공평하고 진실된 것인지 어떻게 확신합니까? 전 인터넷에 욕지거리를 남기는 사람들 중 한 달 전까지 박경원에 대해 피상적인 지식이라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영화는 그렇게까지 중요한 존재는 아닙니다. 우린 영화가 없어도 충분히 먹고 삽니다. 영화가 그 중 가격대비 효용도가 높은 편이긴 하지만 영화를 제외한 다른 오락들도 많고요. 아마 자신의 사상이나 신념과 어긋난다는 이유만으로 보지도 않은 영화를 욕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진짜로 중요한 일을 할 시간을 영화 따위에 낭비할 생각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게임의 규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저는 치즈 케이크가 그렇게까지 대단한 영적 가치가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특정 제과점에서 만든 치즈 케이크의 질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는 일단 그걸 먹어 본 다음에 토론에 끼어들 것입니다. 그게 정직한 행동입니다. 영화도 마찬가지죠. 제가 하려고 하는 말은 간단하고 상식적인 것입니다. 그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고 그 영화가 다루는 소재에 대해 옆에서 주워들은 말밖에 아는 게 없다면 그냥 입 다물고 있는 게 옳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58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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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40

2006.06.24

흠..친일이라는게 참 사람들의 주목을 많이 끌어오는군요..저는 듀나님의 글쓰기 스타일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사람들이 알면서도 웬지 말꺼내기 그래서 숨겨둔 주제를 잡아내는 것만은 재밌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밑의 반론글들을 쭈욱 읽어봤는데, 듀나님글의 적절한 반론이되는건 별로 없는것같더군요. 워낙 논란거리인지라 욱하신분들은 많은거 같은데, 논지는..박경원이 친일이었느냐가 아니냐가 아니라, 청연이란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왜 보지도 않고 논하느냐였으니까요. 남대문 안가본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저는 영화를 봤는데, 박경원의 환경배경보다는 꿈을 이루기위해 노력했던 한개인의 삶이 와닿더군요. 그리고 비행씬도 헐리웃 영화와 비교해 손색이 없을만큼 훌륭했습니다. "청연"의 시비를 떠나서, 실제로 자신의 눈으로 보거나 경험하지 않고 남의 말과 편견에 휩싸인 몰매주기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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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uz

2006.03.10

저도 예전에 이분 글 읽고 발끈한 적이 있지요. 근데 몇 번 읽어보니 이 스타일을 쭉 밀고 나가는 것 같더라구요. 누가 뭐랜다고 고쳐질 게 아닌 듯. 그래서 투덜투덜인가봅니다. 전에는 글 제목에는 영화평처럼 써 놓고 실제로는 영화가 아닌 시사회에서 생긴 사고 가지고 투덜대더군요. 그땐 좀 어이가 없었지만...
저도 한 가지 안 좋은 선입견이 생기면 아예 그 영화를 보지 않는 편인데, 때로는 그런 선입견 때문에 좋은 영화를 놓치는 경우도 왕왕 있었습니다. 나중에 정말 볼 게 없어서 빌려보면 아....그게 아니었구나..하는 경우가 있었거든요.
이 영화는 친일문제도 있었지만 개봉당시 경쟁작들에 밀려서 일찍 내려갔기 때문에 보지 못했습니다. 친일미화에 대한 얘기가 나오기 전에는 꼭 보고 싶었던 영화고 그 이후에도 정말 그런지 제대로 보고나서 평가하고 싶었는데...
아무튼 일본은 멀쩡한 남의 나라를 침략해서 해방 후 60년이 넘도록 그 후손들을 괴롭히는군요... 일본이 침략하지 않았다면 박경원도 어쩌면 자유로운 비행사로 좋은 이름을 남겼을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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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live

2006.03.01

셋째, 무언가를 보고 비판을 하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합니다. 워낙 많은 논객들이 활동하다 보니, 좀 더 유명해지고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일부러 자극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앞서 말한 김완섭 같은 이가 대표적이지요. 그리고, 듀나님 당신의 똥폼 운운하는 비아냥거리는 문체도 충분히 역겹습니다. 물론 그건 나만의 개성적인 문체이고, 마음에 안 들면 읽지 않으면 되지않냐고 말하겠지만요. 이건 매우 주관적인 거라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 적어도 제겐 당신 글도 육두문자에 불과하답니다. 남에게 규칙운운하기 전에, 먼저 자신은 규칙을 지키고 있는 지 반성해 보는 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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