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결혼 원정기>의 영리함
2005.11.16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제결혼은 능력 있거나 세련된 몇몇 사람들의 몫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의미가 바뀌었죠. 지금 우리가 국제 결혼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이미 혼기를 놓치고 국내에서 신붓감을 구할 수 없는 남자들이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만만한 여자들을 데려오는 광경입니다. 별로 로맨틱한 모습은 아니지만 세상이 로맨틱하기만 할 수는 없는 법이죠. 앞으로 이런 걸 우린 계속 보게 될 겁니다. 세상에 그런 게 존재한다면 당연히 텔레비전이나 영화와 같은 매체에 반영되기 마련이고요. <하노이 신부>와<나의 결혼 원정기>는 모두 그 결과물들입니다.

그러나 이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작품 사이엔 부인할 수 없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회피적인 작품들이라는 거죠. 모두 시골노총각의 원정 결혼 행사로 시작하고 있긴 하지만 그 시골 노총각의 국제결혼으로 끝나는 작품은 없습니다. <나의 결혼 원정기>에서 로맨스는 원정결혼행사의 굴레 밖에서 벌어지고, <하노이 신부>에서 대학까지 다닌 베트남인 처녀 티브는 시골 노총각의 엄청 재수 없는 의사 동생과 맺어집니다.
따로 떼어놓고 보면 이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매체가 무엇이건, 이야기꾼은 전체가 아닌 개인을 다루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나름대로 ‘원정 결혼’을 테마로 잡은 영화 두 편이 모두 가장 흔한 상황, 즉 자국의 결혼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은 한국의 시골 노총각이 상대적으로 빈곤한 나라의 젊은 여자를 물건 사듯 데려와 결혼하는 설정을 외면하고 있다는 건 뭔가 잘못된 겁니다.

여기서 전 자꾸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회피가 <나의 결혼 원정기>에서처럼 영리한 것이건, <하노이 신부>에서처럼 투박하고 야만적인 것이건, 결국 회피이고, 자신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는 비겁함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비겁함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신을 타자화시킬 수 있는 객관성을 기르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우리에게 그런 능력은 우리가 툭하면 흠잡는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해도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하노이 신부>보다 몇 십 년 전에 나온 <수지 왕의 세계>보다 나은 게 뭡니까? 적어도 윌리엄 홀든은 점잖고 예의바르기라도 했습니다. <하노이 신부>의 이동욱(<하노이 신부>에서 한국인 의사 역할)에서는... 말을 맙시다. 이런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이 이동욱 캐릭터의 행동을 당연시했다는 걸 안 것만으로도 전 우리의 미래에 큰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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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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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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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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