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대한 역사 만화 - 『나라가 불탄다』
2005.11.22

『나라가 불탄다』는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유스케와 요헤이의 행적을 따라간다. 자신의 땅이 없는 가난한 농민들의 삶을 위해 풍요로운 만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 유스케는 만주 이주 계획을 세우고, 장제스와 함께 싸우며 신임을 얻은 요헤이는 일본군의 침략을 만주에서 멈추기 위해 군벌 장쉐량과 관동군을 만나는 등 동분서주한다. 『나라가 불탄다』는 유스케와 요헤이의 꿈이 깃든 만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웅대한 역사만화다.
마침내 1931년 만주 사변이 발발한다. 독단적으로 행동을 시작한 관동군은 잇따라 만주의 도시들을 함락시키고, 마침내 1932년 3월 만주국 건국을 선언한다. 일본에게 만주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땅이다. ‘가난한’ 일본에게는, 반드시 만주가 필요했다. 하지만 만주를 점령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만주사변을 일으킨 관동군의 참모이자 젊은 장교들의 리더 이시하라는 획기적인 생각을 한다. 물론 일본인의 입장에서. ‘중국과 일본이 대등한 동지가 돼서, 대아시아의 공영을 위해 구미의 제국주의에 대항’하자는 이시하라는, 일본이(만주에서) ‘멈추지 않는다면 일본은 파멸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만주국은 일만한선몽, 즉 일본인, 만주인, 중국인, 조선인, 몽고인의 다섯 민족이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지니는 새로운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마지막 황제 부의가 만주국의 황제가 되겠다는 데에 동의한 이유 역시, 만주국이 한족의 것이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이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유스케조차도, 이미 현혹되어버렸다. 이미 만주를 본 인간은, 결코 만주를 포기할 수 없다. 그 광대한 땅의 매력을 알아버린 후에 돌아갈 수는 없다. 선한 의도였다 해도, 그것 역시 허튼 욕망이다. 만주국은 단지 일본군의 꼭두각시에 불과하고, 차별과 박해가 연속된다. 평등이란 건, 단지 구호에 불과할 뿐이다. 이시하라 역시 그런 흐름을 막지 못한다. 일본이란 나라는 이미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폭주가 무참하게 ‘이상’을 파괴한다.
일전에 케이블TV에서 <비운의 왕비>라는 일본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부의의 동생인 부걸과, 그와 결혼한 일본 명문귀족의 딸 히로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일본군은 만주와 일본의 친선을 위한 것이라면서 거의 강압적으로 부걸과 히로의 결혼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인품에 매료된다. 그리고 진정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일본과 만주만이 아니라 아시아 민족 모두가 평등하게 공존할 수 있는 만주국의 건설을 위해서 일로매진하겠다고. 그들은 정말로 그렇게 믿었다. 그것이 서로의 행복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모든 꿈은 처참히 무너지고, 부걸은 러시아의 포로가 되어 이후 수 십 년간 히로와 딸들을 보지 못하게 된다.

『나라가 불탄다』는 그 지난한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낸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라가 불탄다』가 직접적으로 난징 대학살을 묘사하면서 일본 극우단체의 공격을 받아 연재가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샐러리맨 김태랑』등 인기작을 내놓았던 모토야마 히로시의 명성도 소용없었다. 『나라가 불탄다』 단행본을 내면서 ‘작품에 묘사한 1920년대 중후반의 일본과 현재가 너무나 흡사하다’고 말했던 모토야마의 말이 적중하는 사건이었다. 점차 극우화하며 자신의 욕망만을 추구하는 것이, 30년대의 일본이며 바로 지금의 일본이다.
하지만 생각해 볼 것이 있다. 분명 일본의 정치 편향은 점차 우로 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일본이라는 나라 전체일까? 우리가 무조건 일본‘인’을 욕해도 좋은 것일까? 망언을 일삼는 극우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나라가 불탄다』 같은 만화도 만들어진다. 극우교과서가 만들어지지만, 채택률은 10%도 되지 못한다. 일본 사회에는 건전한 상식을 갖춘 사람들이 여전히 다수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대화를 할 사람, 바라보아야 할 일본인은 그들이다. 정치인이 망언을 한다고 교류를 끊는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과 더 많은 교류를 갖고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유스케와 요헤이가 원한 것은, 다섯 민족이 동등하게 대화하고 이해하는 만주국이었다. 그것이 비록 이상에 그치긴 했지만, 지금도 여전한 이상이다. 『나라가 불탄다』는 일본이란 사회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의 시선도 더욱 다양해져야 함을 말해주는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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