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화 어린이책 평론가는 웅진출판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등에서 일하며 25년간 어린이책을 다루어왔다. 독서운동가, 사서, 현직 교사들 사이에서 ‘책으로 아이와 소통하는 법을 가장 잘 아는 어린이책 전문가’로 손꼽힌다. <한겨레>에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를 연재 중이며, 교육지원청, 도서관 등에서 학부모, 사서, 교사를 대상으로 독서교육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아홉 살 독서 수업』, 『아이를 읽는다는 것』 , 『이토록 어여쁜 그림책』 등이 있다.
책의 재미를 느낀 때는 언제부터였나요?
“언제 처음 책이 재미있었나요” 하는 질문은 제가 잘하는 말입니다. 저는 이 물음을 한 사람이 어떻게 독서가가 되는지 그 계기를 더듬어보곤 합니다. 그동안 이 질문을 통해 찾은 공통분모는 독서가는 초등 중학년 무렵 ‘스스로 만난 책에서 재미를 발견한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초등학교 4학년 무렵 학급문고에서 우연히 계림문고 중 한 권을 손에 집었습니다. 제목은 ‘셜록 호움즈’였습니다. 앞 몇 장이 찢어져 있었다는 것도, 자극적이고 으스한 분위기하며 호움즈의 추리가 멋져 보여 흉내를 내었다는 것도 기억납니다. 이 책으로 읽기의 재미에 눈을 뜨게 된 것이지요. 저는 이런 ‘자발적으로 눈을 뜨는 경험’이 독서에서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책 읽는 시간은 작가님께 왜 소중한가요?
사람들은 저마다 오랫동안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만들고 그에 맞추어 살아갑니다. 어떤 것이 옳고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를 뿐입니다. 저는 혼자 있는 고요한 시간으로 충전합니다. 외부를 향해 발신하고 나면 어김없이 충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충전은 지식의 충전일 수도 있고, 감정의 충전일 수도 있습니다. 책을 읽을 때 저는 가장 충만하다고 느낍니다.
요즘 작가님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그 관심사와 관계하여 읽을 계획인 책이 있나요?
책을 읽고 소개하는 일이 저의 직업입니다. 오랫동안 문학부터 요리책까지 많은 분야의 책들을 살펴왔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분야는 그림책과 어린이문학입니다. 어린이의 마음으로 느낀 이야기, 어린이의 눈으로 본 세상 이야기에 오랫동안 매혹되어 있습니다.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미성숙한 존재에게 그 근원을 탐구하는 마법을 부려 주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책을 통해 어린 시절을 복기합니다. 나의 미성숙함을 아프게 자각합니다. 이 관심사가 뇌과학, 심리학, 옛이야기 등 다양한 분야로 저를 이끌고 가곤 합니다.
최근 출간된 『아홉 살 독서 수업』 과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아홉 살 독서 수업』 은 이제 막 글을 배운 7-9세 어린이들의 읽기를 다룬 책입니다. 우리는 늘 독서를 공부와 연결 지어 말합니다. 책을 읽어야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에 간다는 논리입니다. 저학년 무렵부터 읽기의 재미를 느껴 꾸준히 읽어나간 아이라면 12살 무렵 즈음이면 고급한 독자가 됩니다.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어휘력, 문해력, 집중력 등이 갖춰진 아이가 학과 공부를 잘할 확률도 높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시작부터 공부를 위해 독서를 강요합니다. 강요 속에서 독서가는 탄생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독서를 숙제로 여기고 손을 놓아버립니다. 고급한 독자가 되려면 오랜 시간 꾸준하게 읽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러자면 적어도 이제 막 스스로 읽기를 시작한 초등 저학년 시기에 읽기가 재미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비벌리 클리어리 저/선우미정 역/이승민 그림
엄마와 단둘이 사는 소년 리 보츠가 동화작가인 헨쇼 선생님에게 편지를 쓰며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담은 동화입니다. 시간을 두고 이 작품을 여러 번 읽었는데 그때마다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거나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다고 믿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 순간이라도 우리는 자신을 어루만져주는 한 권의 책을 만날 수는 있습니다. 저에게 『헨쇼 선생님께』가 바로 그런 책입니다.
이금이 저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역사소설이자 두 여성의 드라마틱한 성장기입니다. 논 서 마지기 값에 몸종으로 팔려 왔지만 수남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보기 드문 여성 캐릭터입니다. 수남과 채령, 두 여성을 따라가면 한국, 일본, 만주, 미국까지 장대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수남이 마지막에 수동적 선택을 합니다. 수남이 왜 그랬을까 하는 숙제가 풀리는 순간 인간의 욕망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은실 글/변영미 그림
한국 현대아동문학사를 기록한다면 반드시 들어가야 할 저학년 동화입니다. 맨 앞에 실린 「할아버지 숙제」를 읽다 포복절도했던 작품입니다. 단편집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있는 그대로의 나와 가족의 모습을 긍정하기’입니다. 유머러스하지만 가슴 저린 단편들이 담겨있고, 특히 어린이문학을 처음 접하는 어른들이 읽기 좋은 책입니다.
마시 캠벨 글/코리나 루이켄 그림 /김경미역
그림책은 글뿐만 아니라 그림으로도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읽어내는 사람에게 놀라운 장르입니다. 코리나 루이켄은 그림의 연출력이 뛰어난 작가입니다. 그림으로 에이드리언과 클로이의 대립, 거짓말로 여겨지는 에이드리언의 상상을 탁월하게 형상화해 냅니다. 그림책을 읽으며 말이 몇 마리 있는지 꼭 찾아보세요.. 당신이 찾은 것 이상의 말들이 숨어있습니다.
필리파 피어스 글/에디트 그림/김경희 역
고전의 반열에 오른 판타지 동화입니다. 동생이 홍역에 걸려 이모네 집에 온 톰은 한밤중에 13번 종을 치는 괘종시계 소리를 따라갔다가 아름다운 정원을 발견합니다. 밤에만 존재하는 정원에서 톰은 헤티라는 소녀를 만나지요. 정신없이 읽다 보면 독자는 서서히 톰의 정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궁금해집니다. 예기치 못한 놀라운 결말과 시간의 의미를 전하는 작품입니다.
한미화 “어린이책으로 미성숙함을 깨달아요” 출판평론가 한미화 작가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