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천운영 “책을 읽다 스페인 식당까지 차렸어요”
기대를 가지고 책을 고르는 순간부터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입니다. 읽던 장을 가만히 덮고 눈을 감게 만드는 책은 더욱 소중하지요.
글 : 채널예스 사진 : 한정구(HANJUNGKU STUDIO)
2021.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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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첫 소설집 『바늘』을 시작으로 소설집 『그녀의 눈물 사용법』『엄마도 아시다시피』,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생강』 등을 발표한 천운영 소설가는 새로운 여성 미학의 선구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2013년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스페인에 머물며 『돈키호테』에 매료되었고, 한국으로 돌아와 스페인 가정식 식당 ‘돈키호테의 식탁’을 운영했다. 『돈키호테의 식탁』은 등단 21년 만에 처음 선보이는 산문집으로, 소설집 『엄마도 아시다시피』 이후 7년여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다. 


책의 재미를 느꼈던 때는 언제부터였나요

어린이였을 때 추리소설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용돈이 좀 모이면 책을 사러 시내 서점으로 달려가던 시간이 떠오릅니다. 서점에 머무르던 시간도요. 추리소설 코너가 서점 입구에서 가까웠는데 거기 딱 붙어 서서 한참을 훑어보다, 구입할 단 한 권의 책을 선택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용돈은 그리 많지 않았고, 입구 쪽은 늘 붐볐으니까요. 추리소설에 처음 빠져들게 만들었던 책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무튼 재밌어서 읽고 또 읽곤 했었지요. 

책 읽는 시간은 왜 소중한가요? 

그저 좋습니다. 기대를 가지고 책을 고르는 순간부터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입니다. 중간에 덮어버리거나 끝까지 읽지 못한 책도 많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읽던 장을 가만히 덮고 눈을 감게 만드는 책은 더욱 소중하지요.

저자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그 관심사와 관계하여 읽을 계획인 책이 있나요?

요즘 행동생태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꼼꼼히 읽게 되었는데 정말 놀라웠습니다. 이어지는 질문들도 많았습니다. 지금은 찰스 다윈의 서간집을 읽고 있습니다. 『종의 기원』을 쓰게 만든 머릿속 마음속 과정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 책이 끝나면 마들렌 치게의 『숲은 고요하지 않다』를 읽을 예정입니다. 

최근작과 관련하여,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최근에 『돈키호테의 식탁』과 『쓰고 달콤한 직업』을 출간했습니다. 소설만 쓰며 살아온 지 21년 만에 낸 에세이집입니다. 한동안 돈키호테의 음식을 찾아 헤맸고, 그 음식들로 소설 돈키호테를 읽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스페인 식당까지 하게 되었는데, 식당을 하는 동안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처음으로 낸 에세이집인데 묶고 나서 읽어보니, 제 목소리가 그대로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 목소리가 어쩐지 생생했습니다. 살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꿈을 꾸는 일은 그런 거로구나 싶었습니다. 독자분들도 꿈을 향해 한 걸음 걸어보시길. 인생에서 가장 어떠어떠한 것을 꼽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아주 여러 번 읽은 책을 꼽아보기로 했습니다. 


『돈키호테』

세르반테스 저



지난 5년간 읽고 또 읽고 끊임없이 찾아본 책입니다. 돈키호테에 빠져 지내던 시간이었으니 당연했지요. 매번 새롭고 매번 흥미로웠습니다. 그 시절에 어떻게 이런 인물들을 만들어 냈을까 감탄스럽기도 하고요. 2권은 특히 재미있습니다.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피에르 베르제 저



이브 생 로랑의 연인이자 사업파트너였던 피에르 베르제가, 연인이 죽고 나서 쓴 편지들을 모은 책입니다. 이브 생 로랑을 좋아했던 것도 아닌데, 그리 길지 않은 사적인 편지 구절들인데, 평소 그런 글들을 즐겨 읽지도 않는데, 그냥 먹먹해지면서 따뜻해졌습니다. 너의 명민함, 너의 다정함, 너의 부드러움, 너의 힘, 너의 용기, 너의 아름다움, 너의 고집과 욕구, 그렇게 이브 생 로랑을 불러올 때,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그렇게 살아보기를 다짐해 봅니다. 그래서 어쩐지 힘이 빠질 때, 나의 이브 생 로랑을 펼치고, 소리 내 읽곤 합니다. 너의 명민함, 너의 용기, 하면서요.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드 저



10년 전에 나온 소설인데, 소설을 쓰기 전에, 소설창작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지금도 한 번씩 펼쳐보곤 하는 책입니다. 인간을 이해하고 싶게 만드는 책이라고 할까요? 무언가 쓰고 싶게 만드는 책이라고 할까요. 닮고 싶은 소설이라고 할까요? 섬세하고 명확하고 은근하게 강력합니다. 



『북극을 꿈꾸다』

배리 로페즈 저



제 인생의 책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북극을 꿈꾸게 만든 책입니다. 인간이 우주의 아주 미세한 존재라는 걸 느끼게 해준 책입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면 떠오르는 책입니다. 시인이 되고 싶어지는 책입니다. ‘언젠가는 북극에 가겠습니다, 우주의 존재라는 걸 느끼기 위해서’ 하며 먼 훗날을 계획하게 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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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저/<권상미> 역

출판사 | 문학동네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저/<권상미> 역

출판사 | 문학동네

북극을 꿈꾸다

<베리 로페즈> 저/<신해경> 역

돈키호테 2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저/<안영옥> 역

출판사 | 열린책들

돈키호테 1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저/<안영옥> 역

출판사 | 열린책들

돈키호테 2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저/<안영옥> 역

출판사 | 열린책들

돈키호테 1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저/<안영옥> 역

출판사 | 열린책들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피에르 베르제> 저/<김유진> 역

출판사 | 프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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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

천운영은 1994년 한양대학교 신방과를 졸업했으며 1997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현재 고려대 국문대학원에 재학중이다. 지난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바늘」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2001년 제 9회 대산문화재단 문학인 창작지원금을 받았으며 같은 해 등단작을 표제로 한 소설집 『바늘』을 출간했다. 2004년 소설집 『명랑』을 출간했고, 지난해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를 발표하며 평단과 독자들의 찬사와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1990년대 들어 문단의 전면을 장식하며 등장했던 일군의 여성 작가들과는 전혀 다른 작품 세계와 작가관을 선보여 새로운 여성 미학의 선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3년 신동엽창작상, 2004년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했다. 사람의 얘기를 쓰는 천운영은 그만큼 사람을 좋아한다. 대학시절 그의 자취방은 공부하던, 회의하던 친구들이 저녁마다 주막처럼 들러서 국수를 말아먹고 갔던 곳이다. 애들 교육은 못 시켜도 이웃에 떡은 돌렸던 할머니의 천성을 이어받았다는 천운영은 남들 음식 해 먹이고 챙겨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기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뚜렷한 사회 인식이 아니라 토익, 토플, 상식 따위이기에 명지대 신입생 강경대가 공권력에 쓰러졌던 시절, 천운영은 손목에는 청 테이프를, 옆구리에는 대자보를 끼고 다녔고 맨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출석만 부르고 도망가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소설가의 꿈은 정말 우연히 찾아왔다고 말한다. 4학년 때 들은 평론수업 시간, 당시 김영삼 정권의 금융실명제 실시에 관한 평론을 쓰는 과제에서 선생님이 그의 평론을 재밌게 읽고는 차라리 소설을 써보라던 한 마디가 순간 한 줄기 빛으로 천운영의 머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당시 평론을 논설문이 아닌 현실을 빗대는 이야기를 만들어 썼다는 천운영은 선생님이 농담처럼 덧붙인 한 마디에 소설가의 길과 우연히 마주쳤다. '잘 하는 것 하나 없지만 소설은 잘 쓸 수 있겠다'는 확신에 한양대학교 졸업 후 서울예대로 진학했고 2년 동안 수많은 책을 읽었다. 수업시간에 모르는 작가의 이름이 나오면 몰라도 아는 척 하며 메모를 했다가 저녁 때 서점에 들러 모두 읽어버리던 천운영은 그 2년 동안 평생 읽은 책보다 대여섯 배 많은 책을 읽었다. 천운영에게 어느 날 한 줄기 빛이었던 소설에 대한 꿈을 키운 서울예대 2년은 "소설에 관해 얘기하는 친구도 얻었고, 좋은 선생님도 만났고, 소설을 고민하는 열정을 배운" 시기였다고 한다 천운영은 소설을 쓰면서 매 순간마다 집중하는 '화두'가 있다.「바늘」의 미와 추, 「명랑」의 삶과 죽음, 그리고 요즘 고민까지. 지금 이 순간 끊임없이 생각하고 되씹다 보면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한다. 천운영의 소설들은 다르다. 그저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차이는 자못 의식적일 정도이다. 가령, 「바늘」의 주인공은 남자들 몸에 문신을 새기는 젊은 여자이고, 「숨」에는 마장동에서 소머리를 분해하는 일을 하는 남자가 등장하며, 「당신의 바다」는 곰장어를 구워 파는 부부의 이야기이다. 이밖에도 고물상(행복고물상), 유원지의 도깨비집 관리인(유령의 집), 건축공사장 노동자(등뼈) 등 천운영 소설의 주인공들은 최근 한국 소설에서는 만나보기 어려웠던 인물들이다. 그렇게 낯설고 독특한 이들의 세계를 매우 사실적으로 그린다는 점 역시 천운영 소설의 특징이다. 직접 발품을 팔고 꼼꼼히 취재한 노력이 돋보이거니와, 그것은 이웃의 삶에 대한 작가의 애정어린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