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 “퇴사 대신 여행을 선택하게 한 책”
어떤 책들은 ‘읽기 전의 나’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도록 만드는 것 같아요.
글ㆍ사진 채널예스
2021.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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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 한 줄 못 외우지만 엄연히 카피라이터. 회사를 꾸준히 다닌 덕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라는 직함까지 얻게 되었다. 회의 시간의 치밀한 필기를 바탕으로 『우리 회의나 할까?』를 냈고, 평소의 다양한 기록을 바탕으로 『모든 요일의 기록』이라는 책을, 틈틈이 떠난 여행에서의 기록을 바탕으로 『모든 요일의 여행』을 썼다. 덕분에 종종 작가로 불리기도 하지만 본업은 여전히 광고이며 일룸 ‘가구를 만듭니다’, e편한세상 ‘진심이 짓는다’, SK브로드 밴드 ‘See the Unseen’, SK텔레콤 ‘사람을 향합니다’, T ‘생각대로 T’ 등의 캠페인에 참여했다. 최근 여행이 금지된 시기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는 편지 책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를 출간했다.


책의 재미를 느꼈던 때는 언제부터였나요? 

믿을 수 없을 수도 있겠지만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엄마가 도서관에 데려다줬고, 몇 시간이나 혼자 책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어릴 때부터 책은 진짜 좋아했던 것 같아요. 백화점에서도 엄마가 쇼핑할 때 저 혼자 책 코너에 가 있었고, 친구 집에 놀러 가도 늘 그 집 책장부터 살펴보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책 사달라고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써놓는 어린이였어요.

하지만 그건 전부 어린 시절의 기억이고요. 그때 어떤 책들을 좋아했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아요.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고, 책에 재미를 느낀 건 대학생이 되면서부터였어요. 너무나도 넓은 도서관의 세상이 한꺼번에 저한테 열려버렸으니까요. 물론, 모든 세상이 열렸지만, 제가 탐닉한 세상은 거의 소설뿐이었습니다. 아직도 소설에 편중된 독서를 하는 편이에요. 고치려고 노력하지만 쉽게 고쳐지진 않네요. 하여튼 대학생 때는 시험기간이건 아니건 매일 도서관에 갔어요. 아침부터 제일 좋아하는 창가에 자리를 잡아놓고, 읽고 싶은 책들 쌓아 놓고 별일 없는 많은 순간에 그곳에 앉아있었어요. 거기에 좋아하는 책들이 너무 많아서 안 갈 수가 없었어요. 

그때 생긴 책 근육이 아직도 남아있어서, 회사를 다니면서도 계속해서 책을 읽고, 책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결국 책을 쓰는 사람까지 되어버렸네요. 

책 읽는 시간은 작가님께 왜 소중한가요? 

모든 책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드물게도 어떤 책들은 ‘읽기 전의 나’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도록 만드는 것 같아요. 책 자체의 강렬함도 있고, 아마도 그 당시에 개인적인 상황과 톱니바퀴처럼 딱 맞물려버려서 아예 예상치도 못한 곳으로 저를 이끈달까요. 

예를 들어 대학생 때 도서관에서 한강 소설가님의 『검은 사슴』을 읽다가 그 어둠이 마음에 쿡 박혀버리면서 눈물이 줄줄 흐르는 거예요. 뭔가 말로 설명하긴 좀 힘들었어요. 다만 그때부터 몇 년 간은 『검은 사슴』의 정서가 저의 기본이 되어버렸어요. 어둡고 침잠하는 정서랄까요. 직장을 그만두고 싶어 발을 동동거리던 30대에는 카뮈의 『결혼 여름』을 읽었어요. 그 우연한 독서가 결국 저를 회사에 계속 머물면서 행복을 찾도록 만들었어요. 더 나아가서 그 태도가 지금의 저를 만들어버렸다, 라고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독서가 ‘20대 『검은 사슴』의 어둠’에서 '30대 『결혼 여름』의 지중해 햇살’까지 나아가도록 만든 힘이 된 거죠. 

유난히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어제 읽은 책의 내용이 뭔지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데,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책이 기적적으로 저를 바꿔놓을 거라는 걸 아니까. 책을 읽을 때마다 어떤 보석을 만나게 될까 그건 또 어떻게 나를 바꿀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도저히 내려놓을 수가 없으니까. 

요즘 작가님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그 관심사와 관계하여 읽을 계획인 책이 있나요? 

요즘은 여성들이 어떻게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그 목소리를 표출해왔는가, 동시에 어떤 식으로 억압되어 왔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누런 벽지』『허랜드』 같은 오래 전 작품부터, 『19호실로 가다』『컬러 퍼플』『빌러비드』『시선으로부터』『아무튼 연필』과 같은 여성작가의 소설들와 에세이까지 다양한 시간대의 다양한 방식으로 터져 나온,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읽는 것이 요즘의 제게 가장 재미있는 독서입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더 현실을 자각하게 되고, 더 단단히 제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해요. 동시에 여성작가들의 다양한 목소리에 더 큰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요.

또 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시’인데요. 실은 시의 독법에 익숙하지 않기는 합니다. 하지만 제가 좋아하고 유독 가슴에 오래 남는 글들이 시인들의 에세이더라고요. 한정원 시인님의 『시와 산책』이나 박연준 시인님의 『모월모일』『소란』 그리고 김소연 시인님의 『시옷의 세계』까지. 유난히 진동이 오래 가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시집을 읽고 싶어서 구입을 계속 하고 있는데요. 아직 자주 손이 가진 않아요. 점점 그쪽 세계와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만, 간절합니다. 물론 이 두 분야는 지속적으로 친해지고 싶은 분야들이고요. 귀가 얇은 편이라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책들에 언제나 욕심이 많네요. 많이 읽고 많이 느끼고 싶어요. 쉽진 않지만요. 

최근작과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최근에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라는 여행 편지 책을 냈어요. 여행이 금지된 시기에 여행에 대한 책을 낸 거죠. 용기 있죠? 처음 생각은, ‘여행에 관한 책’이 아니라 ‘책 자체가 여행’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지난 여행의 우리가 생각이 나면서, 기억 속에서 멀리 멀리 여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책이 되는 거죠. 코로나가 아무리 우리 발을 꽁꽁 묶어도, 우리 마음까지 묶을 순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의 지난 여행들을 떠올리면서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에게, 그곳에서 겪은 일들을 전하고 싶은 지인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숙소를 못 구해서 울어버렸던 저녁에 만난 할아버지에게도 편지를 쓰고, 아일랜드 펍 옆 자리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에게도 편지를 쓰고, 오래전 남자친구에게도(지금은 남편이지만), 짝사랑한 친구에게도, 회사 팀장님에게도 편지를 썼어요. 물론 쓴 장소와 시간은 다 다르고요. 

가장 기쁜 건, 이 책을 읽고 독자분들이 각자의 여행 기억을 떠올려줄 때에요. 이 책을 쓴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으니까요. 그래서 제목도 『나는 나를 잊지 못하고』가 아니라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로 지었고요. 



『재즈』 

토니 모리슨 저


재즈
재즈
토니 모리슨 저 | 최인자 역
문학동네


소설이 제목 그대로 재즈 연주 같다. 인생이라는 멜로디가 흘러가고 있고,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그 위에 얹는다. 모두 공평하게.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각자 다른 멜로디와 박자의 삶들이 겹쳐졌다가 흐려졌다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가 그러니까 원래 삶이 그런 것처럼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모양으로 굴러간다. 원래 재즈 태생이 그런 것처럼.



『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저


다시, 올리브
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저 | 정연희 역
문학동네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은 이후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작품이라면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하물며 『올리브 키터리지』의 속편인 『다시, 올리브』라니. 올리브, 더 늙고, 더 느려진 올리브. 홀로 남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올리브를 만나볼 수 있다. 죽음이 어떤 식으로 사람을 가격하는지, 죽음 이후에 남겨진 사람은 또 어떻게 늙어가는지, 그 삶에 어떤 빛은 가능한 것인지, 그걸 빛이라고 불러도 되는 것인지, 여러 가지 생각을 내게 선물해준 책이다.



『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저


잊기 좋은 이름
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저
열림원


자신이 좋아하는 광활한 세계에 대해 또렷한 언어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광활한 기쁨의 영역이라는 걸 이 책을 보며 깨달았다. ‘또렷한 언어’는 이 책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할 수 있는데 실은 그녀가 문학에 대해서 말하는 언어들은 정교하고 아름답고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가느다란 빛이 되어주는 그런 언어들이기 때문이다. 내내 한숨을 쉬면서 책을 읽었다. 아름다워서, 내가 막연히 사랑하는 세상을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해준 것이 너무나도 고마워서.


『느낌의 공동체』

신형철 저


느낌의 공동체
느낌의 공동체
신형철 저
문학동네


불가능하겠지만, 아니 불가능하다는 걸 명확히 알지만, 이 책을 읽고는 이런 식의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 섬세하고 사려깊은 글쓰기. 아는 척도 잘난 척도 없이 다만 자신이 이해하는 선 안에서 깊고도 넓게 알려주는 글쓰기. 캄캄한 어둠을 조심스레 해치며 시로, 문학으로 이끌어주는 글쓰기. 이 책 이후로 ‘신형철’이라는 이름은 내게 일종의 종교가 되었다. 언제나 깊게 믿을 수 있는.



『결혼 여름』

알베르 카뮈


결혼, 여름
결혼, 여름
알베르 까뮈 저 | 김화영 역
책세상


얼마나 많은 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오래 이 책을 추천한지 모른다. 글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책, 책의 힘이 이토록 세다는 걸 경험하게 해준 책, 퇴사 대신 카뮈 묘지를 목적지로 둔 여행을 선택하게 한 책. 아마 평생 한 권의 책을 읽으라면 이 책을 택할 것이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환희가 되는 책, 읽을 때마다 더없이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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