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니어링 저/김라합 역
죽음까지도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었던 한 실천적 진보주의자의 경건하고 검소한 삶이 펼쳐집니다. “한 근본주의자의 위대한 생애”라는 이 책의 소개말에 동의합니다. 스콧 니어링이 살았던 100년은 진정으로 의미 있고 충만한 인간적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인류가 아름다운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 지구상에 그와 같은 삶을 완성시키고 간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에 존경을 느꼈습니다.
폴 오스터 저/황보석 역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서사가 직선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작가 폴 오스터의 개인적인 삶에 대한 정보를 먼저 가지고 있다면 독서하기가 수월할 것입니다. 사라져가는 기억을 추적해가는 글 쓰는 자의 안타까움과 에너지가 충돌하여 조각조각 부서집니다. 한편의 부조리극이 연출되는 연극무대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어요. 그러다가 저 밑에 숨어 있는 깊은 상처 앞에서 서늘해지지요. 얼음구덩이 속에 파묻힌 아버지의 얼굴과 마주치듯 우리도 우리의 깊은 곳에 잠겨 있는 상처의 얼굴들과 만나게 되지요. 아버지가 왜 사랑을 잘 베풀지 못하는 인간이 되었는지 알아가는 일은 고독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건 나를 알아가는 일이며 인간을 알아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크리스토프 바타유 저/김화영 옮김
오래 전부터 책장에 꽂혀 있었던 걸 이제야 읽었습니다. 원제는 안남(安南)입니다. 어린 베트남 황제 칸과 번역자의 표현에 따르면 죽음의 의미를 찾아내려는 듯한 일단의 프랑스인 도미니크 수사와 카트린 수녀의 이야기. 내가 지금 무엇을 읽고 있는지를 모를 정도의 정갈한 고독의 세계로 끌려들어갈 것입니다. 기이한 것은 그 속에서 인간의 아름다움이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을 쓰던 때의 크리스토프 바타유의 나이가 스물 한 살이었다고 하여 책장을 덮으며 나의 스물한 살을 잠깐 생각해봤습니다.
김훈 저
김훈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독자들에게 포괄적으로 읽힌다는 것은 매우 희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훈의 문장이 독자들에게 별 거부감 없이 읽힌다면 이제 소설 읽기에 대해 독자들을 탓할 수 없게 되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김훈의 문장들을 소화시킬 수 있는 내성을 가진 독자들이 그토록 많이 존재한다면 우리 소설이 읽히지 않는다 할 때 책임이 작가에게 있기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습니다.
윤성희 저
감기에는 11편의 단편들이 담겨 있습니다. 주인공들이 대부분 해결되지 않을 난제를 앞에 놓고 있는 가난하고 외로운 인간들입니다. 하지만 칙칙하지도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아요. 하소연을 늘어놓지도 튀어보겠다고 나서지도 않아요. 무덤덤한 것 같은데 가만 보면 위트와 재치가 넘쳐 흘러서 어느덧 웃고 있습니다. 우리가 눈길 한번 주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이 제 식대로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 은근히 안심도 됩니다. 상상이나 하고 말 것 같은 엉뚱하고 장난 같기도 한 일들을 윤성희의 주인공들은 간단하게 슬쩍 해냅니다. 그 순간을 목도할 때 무척 유쾌하지요.
앨리슨 맥기 글/피터 레이놀즈 그림/김경연 역
읽는 데 일 분이면 충분합니다. 일 분 후 마음이 쩡하니 갈라지는 듯한 여운과 만날 겁니다. 그 여운이 몇 주일이 흐른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토록 짧은 글이 생을 확 뚫고 지나갑니다. 곁에 두고 싶었으나 그림과 글을 찬찬히 다시 본 뒤 그날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던 어린 딸을 가진 엄마에게 건넸습니다. 그 엄마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일 분 후에 가만히 책을 가슴에 갖다 대더군요.
황석영 저
황석영의 최근작입니다. 문장보다는 구성이 중요하다고 강변하셔서 문장에는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으셨나? 했더니 아닙니다. 『바리데기』의 문장은 담백하고 쉽고 진취적으로 바리를 끌고 나갑니다. 이 지구상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모든 문제들과 대면한다고 보면 맞는 바리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그동안 어둡고 칙칙하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정당한 것을 외면해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 인생이 이토록 험난하다면 어떻게 살아가나 바리를 염려하면서도 만약 바리가 생명수를 구해왔다면 실망했을 겁니다. 구해오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외면해왔던 많은 것들이 생명수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할레드 호세이니 저/이미선 역
저자 칼레드 호세이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해서 이 소설을 영어로 썼습니다. 샨사가 중국에서 태어나 불란서로 이주해 그곳에서 불어로 소설을 쓴 경우와 흡사합니다. 우리 작가 중에서도 그런 작가가 나왔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습니다. 주인공 아미르가 어른이 되면서 겪는 인생을 향한 도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김영하 저
출간될 때 읽었던 것을 읽을 일이 있어 다시 읽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귀환 명령을 받은 남파 간첩 가족의 하루가 시간 단위로 쪼개져 펼쳐집니다. 구성이 절묘합니다. 스파이의 하루가 우리의 일상과 너무 닮아서 잠시 저이도 혹 스파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정해서도 따뜻해서도 안 된다고 굳게 다짐한 이처럼 그가 구사하는 문장은 대상과 거리가 뚜렷하고 사막을 껴안은 듯 건조합니다. 책장을 덮을 때쯤에야 이 작품의 주인공이 스파이가 아니라 8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우리의 오늘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어떤 소재든 이처럼 자유자재로 소화할 수 있는 작가는 드뭅니다.
[낭독의 밤] “인간관계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면…” 신경숙 『모르는 여인들』 : 관계의 네 가지 단상 세계인과 소통하는 한국문학의 살아있는 감성
[작가와의 만남]신경숙 작가에게 문학은 ‘사람에 대한 연민’ -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언어 속에서 영원불멸 시키는 작업, 그것이 소설이고 더 넓게는 문학’
청춘에게 띄우는 그녀의 안부 인사, 잘 지내나요, 청춘? -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설사 꿈이 없더라도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
[아름다운 책 人터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슬픔을 느끼게 한다 -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한국에서 엄마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
신경숙 한 시절의 순수를 찾아서 자기 자신을 소모해버린 끝의 긍정
[작가와의 만남] 『리진』 신경숙 너무나 비범했던 19세기 여인, 리진을 만나다
신경숙의 『리진』 책 읽는 사람들과 함께 오늘 읽을 책은 신경숙의 ‘리진’입니다. 프랑스 초대 공사 콜랭의 눈과 마음을 빼앗은 궁중 무희 리진. 분명히 존재했으나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는 리진의 삶은 작가 신경숙에게서 새롭게 태어납니다.
속삭이듯 멀리 퍼지는 종소리 - 신경숙 신경숙 작가를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