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김현영 저자는 자신만의 시선과 목소리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고 이야기해온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다. 이화여대 여성학과에서 공부하며 이화여대, 국민대, 성공회대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고, <한겨레>, <씨네21>,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등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여 페미니스트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언니네 방 1~2』,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등의 편저,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성폭력에 맞서다』, 『대한민국 넷페미사』, 『미투의 정치학』 등의 공저가 있다.
책의 재미를 느꼈던 때는 언제부터였나요?
어릴 때 당시 전집이 유행이었는데요. 그때 학원출판사에서 낸 어린이청소년대상 문학전집 ABE 88권을 한 권씩 읽으면서 책 읽는 재미를 느꼈어요. 88권 중에 가장 좋아하는 책들은 10번 이상씩 읽었고, 매년 좋아하는 책이 달라져서 신기하기도 했었어요. 그걸 기회로 집에 잘 모셔져 있던 각종 전집, 백과사전 같은 것들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었죠. 당시 용돈을 1주일에 2천 원인가 받았는데, 그걸로 문고판으로 나온 천 원짜리 책이나 추리소설 천오백 원 중에 무엇을 살지가 늘 고민이었어요. 그러다가 중3이 되어서는 대학생이 된 언니의 책장에 꽂힌 각종 소위 ‘불온’한 사회과학 서적들을 읽게 되면서 또 다른 세계가 열렸죠.
책 읽는 시간은 작가님께 왜 소중한가요?
책과 영화를 꽤 많이 읽고 보는 편인데, 그중에서도 책을 읽는 시간은 그 고요함이 좋아요. 영화는 블랙큐브 앞에서 집중하지 않으면 그대로 시간이 흘러가 버리는, 관객을 꽤 수동적으로 만드는 매체잖아요. 반면에 책은 내가 이해한 만큼만 책장이 넘어가고, 때로는 접어두고 한참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죠. 책을 읽을 적당한 공간을 찾는 것도 좋아하는데, 그럴 때는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공간에서 들리는 입체적 감각을 온전히 내 시간으로 만드는 느낌이 들어요. 좋아하는 공간에서 잠깐이라도 책의 세계에 푹 빠져들게 되었다가 문득 빠져나올 때, 드물게 행복한 기분이 들어요.
요즘 작가님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그 관심사와 관계하여 읽을 계획인 책이 있나요?
최근 읽고 싶어서 주욱 모아두고 있는 책들은 진화론과 고고학 관련된 책들이에요. 정작 아직 읽은 책은 그다지 많지 않은데, 2016년에 다윈 100주년 기념 여러 학술대회가 열렸었는데 그때 다윈주의자이자 페미니스트인 진화생물학자들이 지금까지 연구성과를 꽤나 집적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흐름을 알고 싶어서 그쪽 관련 책들을 챙겨 읽고 있는 중이고, 젠더고고학 관련해서 새로운 발견들이 최근 많이 업데이트되었다고 해서 관심을 가지고 ‘쟁여두고’ 있는 중이에요.
최근작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와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번에 낸 책의 부제는 '진화하는 페미니즘'인데, 저는 언제나 진화라는 말에 매혹되었던 것 같아요. 혁명은 언제나 반혁명과 함께 비극으로 끝나지만 진화는 버티는 힘과 언젠가는 반드시 나아진다는 낙관 같은 느낌이잖아요. 그렇지 않아도 이 책을 읽고 한 독자가 “차분히 밀어 올려주는 낙관”이라는 표현을 해주었는데, 그 마음이 닿은 것 같아서 기뻤어요.
알랭 쉬피오 저/박제성,배영란 공역
정치가들은 사회적 합의를 주장하지만 실제로 그 합의를 위한 정치적 노력은 하지 않는다. 정치도 사회도 사라진 곳을 채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법인데, 문제는 법이 한 사회의 보편적 믿음체계를 대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사회도 국가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법이란 무엇이며, 법률적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는 이 책을 지금 읽는 이유는 그래서 아주 혁명적인 이유에서이다.
케이트 본스타인 저/송섬별 역
자살률 1위의 나라에서, 어떤 위로의 말도 통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이유는 이 나라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지 정말 힘들다고 생각될 때였다. 이 책은 스스로 어떤 규범에도 속하지 않는 무법자라고 소개하는 케이트 본스타인은 자기 같은 청소년, 괴짜, 무법자들에게 자살 대신 할 수 있는 101가지를 말해준다.
디디에 파생,리샤르 레스만 공저/최보문 역
어느 때보다 폭력의 문제에 대해 모두의 고민이 집중해있는 이때, 저자는 ‘트라우마는 어떻게 해서 고통을 대변하는 말이 되었는가’ 하는 통렬한 질문을 던지고, 이 시대의 폭력과 폭력의 상흔을 말하는 방법에 보다 정교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박지리 저
엘리트, 학원, 판타지, 사회비판, 추리소설 그 어떤 분류에도 맞지 않는다. 이 엄청난 소설은 장르가 없다. 설국열차, 해리포터, 죽은 시인의 사회에 3대에 걸친 살인과 심리게임. 그리고 말 그대로 ‘악’의 탄생 과정을 보여준다. 박지리에 따르면 악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악은 어떤 종류의 양심을 스스로 성공적으로 탁월하게 제거했을 때 비로소 작동한다.
애슐리 몬터규 저/최로미 역
뷰티 산업에서 환영받는 대상이었던 ‘피부’를 인류학적 관점에서 다시 볼 수 있게 해준 책이자 섹스산업에서 부차적인 행위로 취급되었던 다양한 촉각적 접촉 경험, 즉 만지고 끌어안고 핥아주고 쓰다듬는 행위 자체의 가치를 다시 느끼게 해준 책.
엘레나 페란테 저/김지우 역
여자들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좋아하는 소재인데, 거기에다가 2차 세계대전 직후 1950년대는 특별히 흥미로워하는 시대. 1권을 정신없이 빠져서 읽다가 수업을 못 갈 뻔한 다음 학교가 방학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송효정,박희정,유해정,홍세미,홍은전 공저
증중화상사고를 겪는 일곱 사람을 인터뷰해 실은 책. 이런 종류의 기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섣부른 동정도 타자화도 극복기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이 책이 특별한 건 사람들이 화상을 입은 이들을 보는 것 자체를 힘들어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있는 그대로 보라”라는 책의 제목 있는 그대로.
프랑코 베라르디 저/서창현 역
우리는 왜 자발적으로 기꺼이 착취의 수레바퀴에 몸을 던지는가. 불안정한 조건 자체를 구조로 안정시킨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의 노동문제를 어떻게 재사유해야 하는지의 단초를 던져준 책. 무엇보다도 자율성이라는 근대적 가치의 허구를 드러낸다.
다나카 미쓰 저/조승미 역
1970년 “변소로부터의 해방” 팸플릿 글로 유명해진 다나카 마쓰의 활동을 통해 일본의 여성운동의 한 역사를 일별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다나키 마쓰는 말뿐이 아니라 정말 엉망인데, 그래서 어떤 본질에 다가가 무서운 질문을 던진다.
권김현영 "책 읽는 시간의 고요함이 좋다"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