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서주의자 표정훈 작가는 번역가이자 출판평론가이다. 그의 상상의 재료는 장서 2만 권. 서강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책ㆍ독서ㆍ출판에 관한 글을 쓴다. 한양대학교 특임교수,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강사로 일했다.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탐서주의자의 책』,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 등을 저술했고, 『중국의 자유 전통』, 『젠틀 매드니스』 (공역) 등을 번역했다.
책의 재미를 느꼈던 때는 언제부터였나요?
책의 재미를 느끼는 데에도 단계가 있다고 봅니다. 처음 재미를 느낀 건 초등학교 1학년 즈음이었습니다. 부모님이 그림이 많은 전래동화집 몇 권을 사주셨는데, ‘이야기라는 게 이렇게 재미있구나’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은혜 갚은 학’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 동화더군요. 그 이야기로 독후감이라는 것도 처음 써봤어요. 방학 숙제였는데 선생님이 칭찬해주셔서 신났습니다.
두 번째로 큰 재미를 느낀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쯤 『월탄 박종화 삼국지』 를 읽었을 때였어요. 말하자면 ‘어린이 이야기’의 세계에서 ‘성인 이야기’의 세계로 한 단계 점프한 셈인데, 나이가 나이니만큼 내용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사람 사는 게 이렇게 복잡하구나’ 느꼈습니다. 당시는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게임도 없고 TV 프로그램도 지금처럼 다채롭지 않았던 때라서, 어찌 보면 책과 가까워지기 좋은 환경이었죠.
세 번째는 중학교 1학년 때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었을 때에요. 여운이 남는다고 할까요. 읽을 때보다도 다 읽고 난 뒤에 긴 여운, 느낌이 남으면서 뭔가 계속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죠. 좋은 책이란 독자가 느끼고 생각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여백이 많은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린 왕자』는 삽화가 많아서 실제로도 책에 여백이 많지요.
책 읽는 시간은 작가님께 왜 소중한가요?
정현종 선생의 유명한 시로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게 있잖아요. 책이 바로 그런 섬이 아닐까 합니다. 사람들 사이에 책이 있고, 그 책에 가고 싶다는 거지요. 무슨 뜻이냐면 빠르게 돌아가고 복잡하기만 한 세상과 인간관계에서 조금 물러나서, 어떤 의미에선 임시로 담장을 좀 쌓고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행위가 독서라는 거죠.
‘책벌레’라는 말은 책에만 탐닉하고 세상 물정에는 어두운 사람을 조롱하는 뜻으로도 쓰이는데, 저는 그런 책벌레가 조롱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책벌레는 책을 통해 자기만의 세상에 푹 빠져 있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그런 사람은 세상에서 상처를 받거나 곤란을 겪더라도 빨리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책이라는 자기 세상이 있으니까요.
독일의 신비 사상가 토마스 아 켐피스의 말이라고 합니다만 이런 게 있습니다.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이 말은 책이 있는 공간에 관한 말이라 하겠지만, 책 읽는 시간으로 바꿔도 통하는 말이지요. ‘마침내 찾아낸, 책 읽는 시간보다 나은 시간은 없더라’는 거지요.
책 읽는 시간은 책과 나, 이렇게 단둘이 있는 시간이고 결국 나 혼자 있는 시간이죠. 네트워크로 모든 게 연결된 세상에서 온전히 나 혼자 있는 시간을 갖는 건 쉽지 않습니다. 혼자서 스마트폰 계속 들여다보고 있는 건 온전하게 혼자 있는 시간이 아닙니다. 반면 책을 읽는 시간은 온전하게 나 혼자 있는 시간이죠. 그래서 귀하고 소중한 시간입니다.
요즘 작가님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그 관심사와 관계하여 읽을 계획인 책이 있나요?
나이 들수록 고전에 대한 관심이 커지더군요. 예전에 다 읽은 줄 알았는데 잘 생각해보니 읽지 않았거나 일부만 읽었던 고전들이 많더라고요. 읽은 것 같은 착각이 든다는 게 고전의 특징 아닌 특징인 것 같기도 합니다. 고전 가운데서도 서양 고대에 성립된 고전들에 관심이 갑니다. 제가 철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플라톤 대화편 일부를 좀 읽어보긴 했지만 더 많은 고전들을 본격적으로, 또 집중적으로 읽지는 못했습니다. 지금부터 그렇게 읽고 싶습니다.
일단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부터 시작해야죠. 축약 번역을 읽은 적은 있는데 원전 완역을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도 모두 읽고 싶습니다. 크세노폰의 작품, 헤로도토스의 『역사』도 읽고 싶고요. 다행히 좋은 번역들이 나와 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저는 뒷부분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책이 사람을 만들 순 없어요. 만일 그렇다면 책을 많이 읽을수록 인간성이 좋아지거나 해야 하는 데 그렇지 않거든요. 이런 말씀 드리는 이유는 책을 너무 존중한다고 할까, 책을 우러러본다고 할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저자, 작가도 마찬가집니다. 저자, 작가는 나보다 우월한 사람도, 나보다 훨씬 더 뭘 많이 아는 사람도, 나보다 더 존경할만한 사람도 아닙니다.
독자들이 자신감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책에 대한 이해나 해석에서 독자의 권리, 독자의 몫이 매우 큽니다. 어떤 의미에서 책을 완성하는 건 독자의 몫입니다. 텍스트에 대한 단 하나의 올바른 해석이란 없습니다. 다만 설득력에 차이가 나는 다양한 해석들이 있을 뿐이지요. 심지어 저자, 작가 자신도 자신이 쓴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독점할 권리는 없어요. 독서란 그런 해석의 놀이이고, 독자란 그 놀이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카프카가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한 말로 유명합니다만 이런 게 있지요.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 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저는 이 말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책이 도끼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책은 무엇보다도 먼저 놀이라고 생각합니다.
리 호이나키 저/김종철 역
한 인간이 자신의 삶에 대해, 또 자신의 생각에 대해 거짓 없이 정직하게 성찰하고 돌아보며 또 자기만의 신념과 소신에 따라 새로운 길을 뚜벅뚜벅 간다는 것. 이 책의 저자 리 호이나키가 그런 드문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에드멘드 윌슨 저/유강은 역
에드먼드 윌슨의 『핀란드 역으로』는 1962년에 나온 『근대혁명사상사』라는 제목의 책으로 처음 접했습니다. 아버지의 서가에 꽂힌 책들을 살피다가 우연히 뽑아 들어 읽은 책인데, 이후 새로 번역되어 나왔지요. 이 책은 내용도 좋지만 저에겐 아버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책입니다.
나카지마 아쓰시 저/김영식 역
중국의 고전에서 제재를 가져다가 훌륭한 작품을 쓴 일본 작가 나카지마 아쓰시의 작품집입니다. 특히 표제작 ‘산월기’는 예술과 인생에 관해 많은 걸 성찰하게 해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카지마의 작품들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삶과 세상에 대한 통찰이 깊지요.
나관중 원저/박종화 역
월탄 박종화 선생의 『삼국지』를 초등학교 때 처음 읽고 새로운 이야기의 세계가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후로 다양한 『삼국지』들을 읽었지만 아무래도 첫 만남의 기억 때문인지 월탄 박종화 선생의 버전이 맘에 듭니다.
펑유란 저/정인재 역
대학 1학년 때 처음 읽은 중국철학사 책입니다. 당시엔 형설출판사에서 나왔었지요. 이후 좋은 중국철학사 책들이 많이 나왔지만, 중국철학의 세계에 처음 들어서는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던 책입니다. 대학 시절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해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표정훈 “독서는 온전히 나 혼자 있는 시간“ 출판평론가 표정훈 작가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