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재미를 느낀 때는 언제부터였나요?
유년 시절을 세탁소에 딸린 단칸방에서 보냈어요. 세 식구가 누우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좁은 방이었죠. 그만큼 세간살이 수납에 신경을 써야 했어요. 한 뼘의 자투리 공간도 허투루 쓸 수 없었죠. 그 와중에 부모님께서 서랍장 한 칸을 모두 책으로 채워주셨어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책을 파시던 분이 권해준 동화전집이었어요. 부모님이 일하시는 동안 제게 단칸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라곤 동화전집이 전부였어요.
단칸방은 행거에 촘촘하게 걸린 옷을 커튼 삼아 종일 어두침침했어요. 번번이 다리미에서 뿜어져 나오는 스팀이 들어왔고 재봉틀 소리와 드라이클리닝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뒤섞였어요. 책에 빠져있으면 단칸방이 꼭 다른 세계인 것만 같았어요. 숲이 되기도 했고 감옥이나 궁전이 되기도 했죠. 그때 책의 질감과 무게 그리고 문장이 주는 재미를 조금씩 느꼈던 것 같아요. 더 즐거웠던 것은 책의 내용을 제멋대로 부풀리고 다르게 그려보는 일이었죠. 그러다 보면 천장에 빼곡하게 걸린 와이셔츠나 코트 사이의 짙은 어둠도 수상해 보였고 다리미 스팀과 재봉틀 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음산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전집을 다 읽었지만 부모님께는 매번 여전히 절반도 못 읽었다고 했어요. 다 읽었다고 하면 싹 갖다버리고 서랍 안을 손톱깎이나 스웨터 같은 것으로 채워버릴까 봐.
독서는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는 일에 여전히 서툴죠. 그 사람의 생각과 입장을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일 뿐 온전한 그 사람이 아닐 때가 많아요. 이런 방향은 결국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시도를 멈추거나 늦추진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시도는 성공이 아니라 그 자체에 목적이 있기도 하니까요.
독서는 ‘저 사람은 슬프다’에서 ‘나는 슬프다’로 연결할 수 있는 가장 매끄러운 방식이 아닐까, 싶어요. 관찰자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던 시선에서 벗어나 직접 ‘내’가 되는 순간을 마주할 수 있는 간편한 방식이기도 해요. 그 과정에서 나를 공고히 다지는 일은 결국 타인에게 곁을 내주고 그 안에 들어서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독서가 중요하다면 그런 의미일 것 같아요. 나에게서 벗어나는 동시에 내 안으로 깊이 파고드는 일인 셈이죠.
요즘 저자님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그 관심사와 관계하여 읽을 계획인 책이 있나요?
최근 가까운 미래와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어요. 변화는 점점 빨라지고 있는데 그에 뒤처지는 인간과 앞서나가거나 주도하는 인간의 갈등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고 전개될지 주목하고 있어요. 특히 이미 시작되고 있는 무인화 시스템의 정착에 대해 생각해볼 때가 많아요. 미래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연결하다 보면 최근 일본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 접근하게 돼요. 그중에서 최근 살펴보고 있는 『인간증발』 속 ‘증발해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있어요. 발전과 변화의 어느 순간, 애쓰던 인간은 그저 증발해버리고 싶지 않을까요. 아직 다 읽진 못했지만 일본인이 아니라 외국 사람이 바라본 일본문화라는 점도 무척 인상적이에요. 어떨 땐 안에서 보는 시선보다 밖에서 안쪽을 기웃거리는 시선이 필요하기도 하죠.
저자님의 최근작과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감정을 훼손당하기 쉬운 시대인 것 같아요. 훼손은 외부로부터 시작되기도 하고 때로는 스스로 감행하기도 하죠. 훼손을 다루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도려내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것은 식물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이미 훼손된 감정을 복구하느라 애쓰다가 어느 순간 감정을 도려내는 쪽으로 기울어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틈에서 『밤이 아홉이라도』 가 나와 타인이 전하는 감정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손짓에 인사를 전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한국문화인류학회 저
다양한 목소리를 잘 버무려서 입문자를 위한 균형이 잘 잡혀있는 책입니다. 낯선 분야에 접근하는 방식을 몰라 머뭇거리고 있을 때 말랑말랑한 목소리로 손을 내밀어준 책은 쉽게 잊을 수 없습니다.
미나토 가나에 저/김선영 역
선과 악의 입장이 달라졌을 때 누구든 어리둥절합니다. 선인 줄 알았는데 악이었고 악인 줄 알았지만 이제는 선으로 바뀌었다면 우리의 태도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만약 그게 ‘나’일 수도 있다면 질문은 훨씬 깊어집니다. 누구에게나 평생 짊어져야 할 질문을 주는 책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게는 이 책이 그중 하나였습니다.
텐도 아라타 저/권남희 역
타인을 대하는 태도를 가장 깊이 있게 다룬 소설 중 하나였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제가 가지고 있는 거대한 슬픔을 비집고 침범하는 타인을 어떤 표정으로 마주해야 하는지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그 고민의 끝에서 타인은 순식간에 내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소설이 아니었다면 이런 식의 고민과 깨달음은 아예 없었거나 많이 미뤄졌을 것입니다. 소설은 이따금 시간을 앞당겨주기도 합니다.
수지 오바크 저/김명남 역
삶이 그나마 덜 지루하다면 몸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는 동안 수많은 몸의 변화를 겪으면서 그만큼 시간에도 마디와 결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몸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 번도 떨어져 있지 않았던 저의 몸과 몸이 지나쳐온 시간이 문득 낯설어집니다. 어떤 책은 그 낯섦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김형경 저
이 책은 불분명하게 얽혀있는 내면을 또렷하게 분석하려 애쓰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끌어안는 쪽을 선택합니다. 여행하듯 심리와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시선은 그동안 고집해왔던 나의 방식이 아니라 풍경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방식은 돌고 돌아 결국 내가 나의 감정을 보는 방식으로까지 번집니다. 어쩌면 좋은 책은 찌르거나 잘라내는 방식이 아니라 번지거나 물드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석순 “독서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는 일” 소설가 전석순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