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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서재

책의 재미를 느낀 때는 언제부터였나요?

 

중, 고등학생 시절부터였던 것 같아요. 남중, 남고를 다녔는데 보통 그 나이 때 아이들이 재밌어 하고 즐거워하는 할 것들이 저한테는 대체로 재미없고 지루한 것들이었어요. 왜 그런가 궁금했죠. 모두한테 똑같은 교복을 입히고, 두발을 단속하면서 모두가 똑같이 진학에만 힘써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도 믿을 수 없었고요. 나한테 맞는 재미, 어른들이 말해주지 않는 세계가 있진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공공도서관에 드나들기 시작했고, 주말에 도서관에 가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자주 발생했어요. 거기 있음으로 해서 책을 손에 쥐게 되었고요. 그즈음부터 교과서 아래 다른 책을 펼쳐놓고 몰래 읽기 시작했습니다. 몰래 읽는 책만큼 재미있는 게 없잖아요.

 

독서는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독서가 치매 예방 등 두뇌 건강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다 잘 아실 것 같고요, 예일대의 한 연구진에 따르면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2년 정도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독서가 정신건강, 마음치유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도 여러 사례들을 통해 입증되고 있고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하여 큰 돈 들이지 않고 해볼 수 있는 가장 동적이면서도 소극적인 행위가 독서입니다. 적극적인 생활을 동경하나 태생적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독서는 어떤 행위의 실마리가 되어 주기도 하는 셈이죠. 행위의 실마리. 독서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요. 오늘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행위를 통해 저는  『아무튼, 택시』 에서는 유머를 잃지 말고 볼 일, 하고 생활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요즘 저자님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그 관심사와 관계하여 읽을 계획인 책이 있나요?

 

요새는 건강에 관심이 많습니다. 세상의 어떤 일이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쓰는 일이야말로 건강해야 가능한 일이거든요. 더군다나 저같이 오랜 시간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사무 노동자이자 작가인 사람은 한 해가 다르게 부쩍 허리와 목과 손목과 안구와 오장육부의 건강에 신경을 쓰게 되지요. 오늘만 해도  『백년 허리』 , 『백년 목』  (정선근, 사이언스북스 2015) 같은 책을 찾아보았습니다. 건강에 관심이 부쩍 많아지다 보니까 자연히 따라서 생기는 관심은 역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겁니다.  『출판하는 마음』  (은유, 제철소 2018)은 어떤지,  『오늘의 인생』  (마스다 미리, 이봄 2017)에서 느낀 건 뭔지, 남의 건강한 실생활에 부쩍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시도, 산문도 기웃거림의 일환이지요.

 

저자님의 최근작과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또는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책을 읽는다는 건 우정을 쌓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책과 나 사이에 우정이 생긴다는 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일일까요. 얼마나 많은 노력(거듭되는 독서) 끝에 한 권의 책과 나는 서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각자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그리고 그 우정은 책과 책을 읽은 사람인 나를 얼마나 변화시키게 될까요. 두 번째 시집  『입술을 열면』  을 내면서 적은 ‘시집소개서’에 저는 이런 말을 넣었습니다. “반드시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시집은 육체를 가지고 있고, 또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살아 있다는 거지요.” 책은 살아 있는 거라는 생각, 책이 읽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책은 나보다 훨씬 더 지혜로운 친구 같고 그래서 꼭 옆에 두고 두고두고 살갑게 지내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어느 날, 궁금해지게 됩니다. 이 책도 나를 친구로 생각할까? 책을 읽는 행위는 그렇게 한 걸음씩 나와 책이 서로를 향해 다가서는 겁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책과 나의 거리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걸까요. 

명사의 추천

장 그르니에 저/김화영 역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심하지만, 「고양이 물루」라는 산문을 좋아합니다. 그 부분만 거듭거듭 읽어서, 너덜너덜해져서 얼마 전에 새 책을 샀습니다. 태어나 고양이를 한 번도 키워보지 못했지만, 「고양이 물루」를 읽고 나면 어쩐지 한 마리 고양이를 키웠고, 여러 마리 고양이를 무지개다리 너머로 보낸 듯한 마음이 되곤 합니다.

그해, 여름 손님

안드레 애치먼 저/정지현 역

얼마 전, 이 소설을 각색하여 만든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소설보다 영화가 더 좋았습니다. 그런데도 이 책을 굳이 이 목록에 넣어두는 이유는 이 소설이 가장 최근에 제가 읽은 ‘퀴어’소설이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어떤 인생의 목록은 상징을 필요로 하기도 합니다.

에밀리

마이클 베다드 글/바바라 쿠니 그림/김명수 역

밥을 먹으면서도 읽고, 화장실에 앉아 볼일을 보면서도 읽고, 잠자기 전에도 읽고, 두껍고 무거운 책에 질렸을 때도 읽는 책이에요. 그런 이유로 제 시 「은판사진」에는 ‘에밀리’라는 이름과 ‘영원전골’이라는 음식이 들어갔습니다.

훔쳐가는 노래

진은영 저

이 시집을 지금도 계속해서 읽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아직 진은영 시인의 새시집이 출간되지 않아서요. 누군가가 시가 얼마나 무용하고 전투적인 것인지, 시가 얼마나 유용하고 평화로운 것인지 설명을 요구한다면 저는 이 시집을 가만히 들어 보이고 싶습니다.

Hotel AFRICA 호텔 아프리카 애장판 (1~4권 세트)

박희정 글,그림

학창시절에 열렬히 좋아했던 박희정 작가의 만화책이에요. 만화잡지 『윙크』에 연재될 때부터 따라 보았는데, 처음 보자마자 ‘박희정 1등!’을 외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시절, 한 살 터울의 누나와 함께 야밤에 분식을 먹으면서 강경옥, 나예리, 신일숙, 원수연, 이미라, 이은혜 등의 순정만화를 보는 일이 작은 즐거움이었어요. 상상력의 원천이었죠. ‘사람들은 누구나 소중한 그 누군가를 기다리며 사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라는 대사가 당시엔 철학이었고 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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