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재미를 느낀 때는 언제부터였나요?
책의 재미는 늦게야 알게 되었습니다. 중고교 때에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어요. 어설픈 형태였지만, 삶이나 세상이 덧없다는 느낌이 앞섰습니다. 체계인 독서는 대학에 들어와서야 시작되었던 것 같아요. 그것도 강의나 대화를 통해서 촉발되었다기보다는 좌충우돌하며 그 필요성을 스스로 깨우쳤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홀로 독서하는 시간이 점차 늘어났어요. 대학 2-3학년을 지나면서부터 문학을 ‘직업’으로 삼겠다는 결심을 하였고, 그때 이후 매일 10-12시간 이상 책을 읽었던 것 같아요.
독서는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인간은 기껏해야 70-80년의 생애를 살 뿐입니다. 혹은 90년이나 100년 정도. 아니면 일찍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많죠. 사람들은 상투적인 느낌과 좁은 생각 그리고 구태의연한 말 속에서 자신의 제한된 경험이 전부인 것처럼 여기며 삶을 살아갑니다. 놀랍도록 가련한 존재가 아닐 수 없죠. 어떤 다른 가능성 ? ‘다른 삶’과 ‘다른 현실’의 가능성은 동시대 혹은 다른 시대 다른 사람의 이런저런 삶을 살펴봄으로써 비로소 조금씩 가늠될 수 있습니다. 책은, 전승되는 경험의 보고로서의 기록물은 삶의 이런 근본 제약을 넘어서도록 해줍니다. 물론 독서를 한다고 해서 덧없고 무의미한 삶을 피해갈 길은 없어요. 그러나 독서에서 경험되는 감각과 사고의 확장 속에서 덧없음이 무엇인지, 무엇이 무의미를 넘어설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은 한 번뿐인 삶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하죠. 삶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요즘 교수님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그 관심사와 관계하여 읽을 계획인 책이 있나요?
나의 예술론, 나의 미학을 쓰는 것이 나의 학문적 목표입니다. 그래서 문학에서 출발하여 그림과 음악, 건축과 영화 등을 시간 날 때마다 보고 감상하고 즐기고 명상하며 적으려 합니다. 플라톤을 좀더 체계적으로 읽고, 칸트와 헤겔을 다시 생각하고, 현대미학의 여러 문제를 정리해보려 합니다. 그러면서 예술을 통해 인간과 삶을 새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예술론은 예술이나 미에 대한 ‘개념적 규정’이나 ‘논증적 진술’에 만족하기보다는(이것도 필요하지만, 내게는 너무 지루합니다) 나날의 생활 속에서 다양한 예술작품을 통해 내가 경험한 세계의 경이를 기록한 겁니다. 거기에는 철학이 필요하고, 유려한 언어와 면밀한 사고도 요구됩니다. 그 외에 인간 이해나 현실분석도 불가결합니다. 말하자면 세계관적 깊이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결국 삶 전체를 깊이 있게 공부하되, 이 모든 공부가 예술론으로 수렴되길 나는 바랍니다. 이런 글을 통해 독자가 삶의 숨겨진 놀라움을 경험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교수님의 최근작과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최근에 『조용한 삶의 정물화』 가 나왔습니다. 아무리 바쁘고 정신 없는 나날이지만, 결국 삶은 일정한 제약 속에서(어떤 삶이라도 한계는 있기 때문에) 어떻게 그 삶을 만들어갈 것인가에 달려있을 겁니다. 나는 각자의 일상이, 비록 늘 그럴 수는 없다고 해도, 적어도 하루의 어떤 시간 혹은 순간만큼은 스스로 돌아볼 수 있기를, 그래서 ‘조용한 삶’의 한 순간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하나의 정물화처럼, 그리하여 작품처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의 매 순간은 정물화적 관조 속에서 더 넓고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또 다른 방식의 행복체험입니다.
장 자크 루소 저/이용철 편
이 책도 마찬가지다. 놀랍도록 솔직하고, 놀랍도록 회고적이다. 우리가 겪고 만나고 보고 생각하는 것을 이토록 생생하게 기록할 수 있다면, 그 삶은 이미 충분히 살 만한, 그리하여 아무런 후회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충만함이었을 것이다.
미셸 푸코 저/심세광 역
고대 그리스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나 세네카나… 이들 모두는 자기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살았고, 그런 고민을 담은 것이 그들의 사상이고 철학이었다. 푸코의 해석은 유려하고 깊고 일관적이다. 결국 철학이든 학문이든 이 문제 –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를 넘어설 수는 없을 것이다. 삶의 문제는 모든 학문의, 특히 인문학의 시작과 끝이 아닐 수 없다.
몽테뉴 저/손우성 역
500년 전에 쓰인 책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하여 한 놀라운 인간의 놀라운 자의식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의 삶을 진정 삶답게 그리하여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이런 자기의식일 것이다. 이 자기의식이란, 나는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으며, 삶 속에서 무엇을 하고, 이 삶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깨어있는 자의식이다.
김우창,문광훈 공저
김우창 선생의 사유는 초기 저작들 - “궁핍한 시대의 시인”이나 “지상의 척도” 이후 한국 현대 학문사에서 이미 ‘하나의 고전’으로 자리매김된다. 그 외에도 “자유와 인간적인 삶”이나 “정치와 삶의 세계” 같은 여러 훌륭한 저작이 있지만, 무엇보다 “세 개의 동그라미”와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는 현대 한국인문학이 도달한 사유의 정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 개의 동그라미”는 삶의 많은 문제를 깊고 넓게 들려주는 편안하지만 깊이 있는 대화집이고, “기이한 생각의 바다”는 인문학의 길을 서사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책은 아마도 앞으로도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이 두 권은 “김우창 전집” 속에 들어있다.)
문광훈 “삶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독서” 문광훈 교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