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재미를 느낀 때는 언제였나요?
중학교 2학년 올라가는 겨울방학 때였습니다. 시골집에 내려갔는데 다섯 살 많은 이모가 『꽃들에게 희망을』 을 선물해 줬어요. 당시 내 감성에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이모 책상에서 달력으로 표지가 덮여 있던 『별들의 고향』 과 『채털리 부인의 연인』 (당시 제목은 ‘연인’이 아니라 ‘사랑’)을 훔쳐보고서 문학에 눈을 떴지요. 이모 책상에서 읽을 책이 없어지자 시골집에서 24킬로미터 떨어진 서점에 가서 책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재수가 끝날 때까지 6년 동안 ‘삼중당 문고’를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독서는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굳이 독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내 아이들에게 독서를 종용하지도 않습니다. 우리 인생은 짧고 하고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직접 해보고 싶은데 그걸 다 할 시간이 모자라요. 이런 판에 독서할 시간이 어디에 있겠어요? 그런데 인생이 정말 짧더라고요.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은 먹고 살기 위해서 써야 해요. 직접 경험할 시간이 없어요. 만나서 이야기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만나주지도 않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책을 읽습니다. 책 말고 다른 방법이 있으면 그걸 하겠지만 책밖에 방법이 없어요.
요즘 저자님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그 관심사와 관계하여 읽을 계획인 책이 있나요?
갑자기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고 적당한 용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중요한 아젠더가 되었지요. 많은 분들이 제게 묻기도 합니다. 이젠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앞으로 보름 동안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는 길』 ,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짓말』 등을 집중적으로 읽을 예정입니다.
저자님의 최근작과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독자분들은 보통 과학이 매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과학은 어렵습니다. 그런데 과학만 어려운 것은 아니지요. 역사, 철학, 경제, 문학… 모두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읽을 수는 있어요. 우리 자연어로 쓰여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과학은 자연어로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수식과 기호 그리고 그래프로 되어 있었죠. 그래서 유난히 더 어려워 보일 뿐입니다.
과학이란 ‘의문에 대한 잠정적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죠. 과학은 의심과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거기서 얻은 답은 진리가 아니라 잠정적인 답일 뿐이죠. 그리고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과정이며 태도입니다. 우리가 과학을 하는 까닭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삶의 태도를 합리적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서 남의 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고 주체적인 결정을 할 수 있겠죠. 그리고 과학에서 얻은 답은 잠정적이므로 겸손한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에서 하고 싶은 말은 “과학은 쉽지 않습니다. 과학은 과학자에게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 삶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트리나 폴러스 글,그림/김석희 역
애벌레가 변하여 결국 나비가 된다는 내용이 어린 나이의 감성에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옷이나 장난감, 학용품을 제외하고는 제 첫 번째 소유물이었습니다. 제 인생의 첫 책이라고 할 수 있죠.
김동인 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재수할 때까지 6년 동안 손에서 ‘삼중당문고’를 놓지 않았습니다. 잉게보르크 바흐만, 루이제 린저, 헤르만 헤세를 여기서 만났죠. 한국 작가 가운데는 김유정과 김동인이 좋았다. 특히 김동인의 『젊은 그들』은 나를 역사 소설의 세계로 인도했고, 역사 특히 근현대사에 대한 시각을 갖도록 이끌어 준 첫 번째 책입니다.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저/노승영 역
과학적 탐구와 문학적 글쓰기 가장 잘 결합한 작품입니다. 지은이는 생태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이죠. 근무하는 학교 근처의 숲속에 지름 1미터 정도의 작은 공간을 ‘만다라’라고 칭하고는 자주 찾아갑니다. 만다라에서는 일어나는 온갖 생명들의 생로병사를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그에게 숲은 우주로 통하는 창입니다. 우주로 통하는 창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 책입니다.
김탁환 저
윗세대에게 1950년 6월 25일이 있다면 내게는 2014년 4월 16일이 있습니다. 절망과 공포 그리고 슬픔이 쓰나미처럼 나를 덮쳤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죠. 국정농단 세력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가슴에 못을 박았습니다. 이 슬픔에서 영원히 헤어나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었죠. 김탁환은 끔찍한 불행 앞에서도 침몰하지 않는 아름다운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내게 새로운 희망이 되었습니다.
D.H.로렌스 저/이인규 역
『꽃들에게 희망을』을 보고 책에 맛을 들인 후 이모 책꽂이에서 『별들의 고향』을 찾아내서 읽었습니다. 어린 가슴에 불을 질렀죠. 이모 책장에는 이런 류의 책이 몇 권 더 있었는데 마지막 책이 바로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었습니다. 제가 읽을 때는 제목에 ‘연인’ 자리에 ‘사랑’이 있었죠.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읽은 다음에는 이제 제가 책을 직접 사게 됩니다.
이정모 “어쩔 수 없이 책을 읽습니다” 서울시립과학관장 이정모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