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재미를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학생 때는 시험 기간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약간의 죄책감에 시달리며 읽는 책이 재미있었어요. 요즘은 내 글이 안 풀릴 때,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도피하듯 책을 읽는 것이 즐겁고요. 책에 관해 가장 순정해지는 순간은 수업을 위해 같이 읽을 작품을 고를 때예요. 함께 이야기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작품을 선정할 때 기대에 부풉니다. 독서의 즐거움은 금기와 의무 사이에서 넘실댑니다.
독서는 왜 중요할까요?
책 안에는 작가가 탐구하고 직조한 인간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에 해당하는 다양한 모습들이 작가의 시선과 문장으로 표현되어있죠. 특히 소설에는 고민하는 인간, 소통을 갈망하는 인간, 좌절하고 실패하는 인간, 찰나의 아름다움과 자신을 관통하는 감정에 전율하는 인간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나와 비슷하거나 나와 다른 사람, 때로는 내가 모르고 만날 일 없고 상관없으며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사람들입니다. 내 안의 그들을 감지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나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관심사와 관련해서 읽을 계획인 책이 있나요?
이전부터 인간의 변화에 관심이 많았고 그런 이야기들을 소설에 담고 싶었습니다. 인간이 변하는 지점과 변화를 촉구하고 변화를 위해 무언가를 희생하는 순간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과 더디게 변화하는 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변화와 목소리에 대해 고민하다가 아는 게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국현대사산책』 시리즈를 장바구니에 담아두었습니다.
최근작 『홀딩, 턴』 과 관련해서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홀딩, 턴』 을 통해서 타인이 지인이 되고 연인이 되어가는 과정, 연인이 부부가 되고 부부가 타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호감은 어떻게 사랑이 되고 사랑은 어떻게 결혼으로 이어지고 결혼은 어떻게 생활이 되는지. 짚어보고 싶었어요. 관계의 변모와 사랑의 변화에 대해 관심 있는 분들이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한강 저
좋은 책을 읽고 나면 언제나 독서 전과 후에 변화가 생긴다. 소설 속의 인물과 사건 때문에 마음에 물결이 일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최근에 나를 가장 많이 건드리고 독서 전과 후가 극명하게 나뉘었던 책이 바로 이 작품이다. 휴일 낮에 집어든 책은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마지막 페이지에 도착했는데 책을 내려놓는 순간 나는 평화롭던 휴일과 나 자신이 달라져있음을 깨달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저/김진욱 역
무라카미 하루키가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그리고 변주하는 세계관을 가장 드러내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와 자아에 대한 탐구와 사유가 몽환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 소설을 너무 좋아해서 원주에서 소설을 쓰던 시절에는 노트의 앞장에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주랜드’라고 적어두었다. 노트의 첫 장이 나의 벽, 뛰어넘기를 갈망하는 현실이라는 점은 지금도 변함없다.
밀란 쿤데라 저/이재룡 역
20대에 이 책을 읽었을 때 소설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고, 30대에 다시 읽었을 때 긴 소설을 써 보자고 결심했다. 읽을 때마다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달라지고 다른 인물에게 매료되는 마법 같은 책이다.
앤드루 포터 저/김이선 역
이 책의 표제작을 몇 번이나 읽었을까. 동명의 단편도 좋지만 수록작도 저마다의 개성으로 빛난다. 한동안 나는 이 작가에 대한 질투와 애정을 주체하지 못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이 책을 소개하곤 했다. 사람의 심리에 능통하면서 적당한 거리감을 확보한 작가. 그의 다른 책을 기다리고 있다.
이윤 리 저/송경아 역
이민자 작가들이 포착하고 그려내는 세계의 이중성과 정체성의 혼란에 관심이 많다. 첫 단편집인『골드 보이 에메랄드 걸』과 이 책 모두 몰입해서 읽었고 감탄을 연발하며 책장을 넘겼다. 이 괴물 같은 작가는 어디에서 왔단 말인가. 이런 작가를 만나면 머리를 쥐어뜯는 수밖에 없다.
서유미 “내 안의 그들을 감지하게 만드는 일” 소설가 서유미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