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재미를 느낀 때는 언제부터였나요?
책이 재미있을 때는 혼자 있을 때인 것 같아요. 혹은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저의 경우 사춘기 시절 진정한 의미에서의 탐미적 독서가 시작되었어요. 좋아하는 작가, 좋아하는 작품을 반복해서 읽었지요. 그것들이 저의 소우주가 되었어요. 홀로인 저를 자멸하지 않게 해주었죠.
독서는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앎을 위해서예요. 진정한 앎은 우리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죠. 좋은 책은 정확한 언어, 새로운 언어를 가지고 있어요. 우리는 그 언어를 통해 나 자신과 세계에 한 발 다가갈 수 있어요. 속임수와 기만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삶을 목도할 수 있게 되지요.
요즘 작가님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그 관심사와 관계하여 읽을 계획인 책이 있나요?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서 비로소 죽음이 두려워졌어요. 죽음은 완전한 끝, 종말, 헤어짐이니까요. 그전에는 그런 것들이 두렵지 않았어요. 어디서 끊어져도 그뿐 이라고 생각했었죠. 요즘 하는 생각은 인간의 탄생만큼 죽음에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운도 필요하죠. 따뜻한 곳에서,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최근 필립 로스의 『아버지의 유산』 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작가님의 최근작인 『친절한 이방인』 과 관련해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 책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사는 거짓말쟁이에 대한 이야기예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하고 살아가죠.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때로는 더 나은 대의를 위해서라고 변명을 하지만 어쨌든 거짓말은 거짓말이에요. 인간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약하기 때문이겠죠.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진실에 다가서기가 더 쉬워져요. 우리는 너무나 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라는 사실이요. 그러기에 관계란 늘 불안한 것이고, 우리에게 더 큰 노력을 요구하지요. 결국 누구도 ‘나는 너를 안다’고 말할 수 없을 거예요. 건강한 관계란 그러한 인정에서 시작하는 것이겠죠.
토니 모리슨 저/최인자 역
어떤 책은 마주하기 전에 준비가 필요해요. 작품의 힘에 빨려들어가서 영영 헤어나오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토니 모리슨은 위대한 작가예요. 그의 책을 읽기 전에는 깊은 심호흡을 해야 합니다.
엠마뉘엘 카레르 저/윤정임 역
에마뉘엘 카레르를 좋아해요. 그에게 소설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이며, 자신의 존재를 해부하여 보여주는 작업이에요. 표지에 있는 눈꺼풀 없는 눈동자처럼, 작가의 시선은 생생하고 끔찍하게 인간 내면의 진실을 드러내지요.
귀스타브 플로베르 저/김중현 역
플로베르는 소설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줘요. 허구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실성을 획득하는지, 『보바리 부인』은 그 씨실과 날실을 보여주는 소설이에요. 이를 위해 소설가가 어디까지 인내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면 절로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이 됩니다.
크리스토프 바타유 저/김화영 옮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어요. 짧고 명료한 문장 사이사이 깊은 침묵이 내려앉아 있는 책. 그 끝에는 완전한 망각이라는, 다다를 수 없는 심연이 놓여 있습니다.
오르한 파묵 저/이난아 역
이십대의 어느 여름, 터키 여행을 하면서 『내 이름은 빨강』을 읽었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독서였죠. 오르한 파묵은 재치 있고, 지적이고, 무엇보다 치밀해요. 이스탄불의 아름다운 풍경과 늘 함께 떠오르는 책이에요.
정한아 “독서, 우리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한다” 소설가 정한아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