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떼를 쓸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 어디에 나를 부려놔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바닥에 내려앉지 못하고 떠도는 눈송이처럼 부유하던 그때, 난 도망치듯 도서관으로 숨어들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은 나를 안아주었고 토닥였고 마침내 문 밖으로 나설 힘과 심지어 은밀한 교감을 한 자에게만 주는 팁도 주었다. (작가를 완전히 따돌리고 우리 둘이서만 만들어 낼 수 있는 독특한 세계가 따로 있다. 그건 아는 사람만 안다)
문학은 내게 재미와 상상여행의 티켓과 내 삶을 객관화시킬 줄 아는 능력을 주었다. 심리학 책들은 내 마음을 옥죄던 유해한 끈들을 풀어 헤쳐 주었고 역사책들은 삶을 통째로 보는 법을 선보였다. 골고루 유익하고 색색가지의 맛을 누릴 수 있던 시간들이었다. 덕분에 내 영혼에 살이 붙고 그것들이 근육이 되어 제법 튼실한 내가 되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진심으로 마음을 다하여 책과 사귀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단언컨대, 책은 읽는 게 아니라 사귀는 거다.
나의 최근작은 비룡소 블루픽션상을 받은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로 청소년 소설이지만 이 순간에도 성장하고 있는 살아 있는 모든 이들에게 ‘반드시 다시 돌아오는 모든 것’을 환기시키고자 썼다. 그리고 목하 작업 중인 작품은 ‘가족은 신성하지만 가족주의는 불온하다’ 란 구절을 읽다가 시작하게 된 작품으로, 가족 판타지로 인해 가족이란 늪에서 허덕이는 이들에게 자아 분화를 권유하는 소설이다. 그래서 가족에 관련된 이런저런 심리학 책을 읽는 중이다. 존 브레드쇼의 『가족』, 아치볼드 하트의 『숨겨진 감정의 회복』, 최고의 명작 M. 스캇 펙 『아직도 가야 할 길』을 다시 섭렵 중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젊은 시절, 솔직히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는 가운데 하루키 소설을 독파했었다. 하루키의 문체와 그만이 가진 차분한 호흡, 그리고 우아하게 고독한 캐릭터들에게 위로를 받았다. 소설가란 직업을 가진 하루키의 자기 변호도 그만의 색깔이 있어서 좋다. 그리고 그의 성실함을 닮고 싶어서 이 책을 자주 들여다본다.
스리니바산 S. 필레이 저/김명주 역
내 안에 잘못 세팅되어 있는 사고의 패턴들을 다시 바로 잡을 기회를 얻게 한 고마운 책 이다. 두려움 때문에 발을 선뜻 못 내미는 주변의 소심한 지인들에게 내가 수없이 권했다. 두려움은 파괴적인 감정이다. 두려움을 내쫓지 않으면 두려움에 잡아 먹힌다. 그러니 의지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제임스 보그 저/정향 역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 자기 계발 도서는 비교적 진부한 내용이 많은 편이라 선호하는 편은 아니나, 극단적으로 긍정적인 나의 태생적인 성격에 이론적 명분을 얻기 위해 이 책을 내 편으로 만들었다. 난 아직까지는 소심한 긍정주의자다.
박하령 “내 삶을 객관화시킬 줄 아는 능력” 소설가 박하령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