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쯤 일어나 창밖의 어둠을 응시하면서 동이 틀 때까지의 몇 시간이 가장 소중한 나의 독서 시간입니다.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직 책 읽기에 몰두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때 늘 흩어진 퍼즐처럼 정돈되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생각의 편린이 어느 한 줄의 자극으로 순식간에 완정되는 순간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요즘 건국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조그마한 섬에 삼각파도가 몰아치는 형국과 마찬가지이지요. 이럴 때는 공자 맹자가 말하는 도덕적 경지보다는 현실 대책을 예리하게 천착해 놓은, 공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손무의 『손자병법』을 다시 한번 독파해보고 싶습니다. 특히 손자병법 원본보다는 중요한 의미를 현실 감각에 맞게 연역해놓은 화산華杉의 『講透孫子兵法』이 눈에 띄는데요. 이 책은 한양대학교 이인호 교수가 『온전하게 통하는 손자병법』으로 번역 출간하였습니다.
정년 이후의 삶을 인생 제2막이라고 하지요. 지금까지의 삶과는 전혀 다른 무대가 펼쳐지는 겁니다. 하루아침에 옷차림도 호칭도 달라진 낯설기만 한 삶, 자칫 잘못하면 방황하면서 마음의 병을 얻을 수도 있지요. 마음은 아직도 이팔청춘인데... 마음 따로 몸 따로 놀다 보면 혹여 주책이라는 소리 들을까 봐 아래 세대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기도 하지요. 황혼의 서글픔과 쓸쓸함이 밀려오면서 의기소침하기 십상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서리맞은 단풍잎, 봄꽃보다 붉어라』를 통해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봄꽃도 아름답지만 서리 맞은 단풍잎이 더 붉은 것처럼, 모진 풍상 겪으면서 살아온 삶의 혜지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고요. 온몸을 활활 불태우면서 뭇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단풍잎처럼 노후의 인생이 아름답다고요. 석양과 황혼이 광대하게 어우러지는 해질녘은 성찰과 미학의 시간입니다. 세계와 삶을 조율하는 해질녘의 운율, 그런 시에 주목하여 해질녘 정서와 비전을 만들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군요.
왕수이자오 저/조규백 역
장자적 삶을 산 소식蘇軾의 일생을 그린 임어당의 『소동파 평전』도 좋았습니다. 소동파는 「적벽부」에서 인간은 천지간에 떠도는 하루살이요, 푸른 바다에 던져진 한 톨의 좁쌀이라 했습니다. 우주물리학자 칼 세이건이 지구를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 하나, 혹은 창백한 푸른 점 하나라고 했는데 이는 시공을 초월하여 소동파의 생각과 직통하는 것이 아닐까요.
헤르만 헤세 저/전영애 역
청년기와 장년기 이후로 나누어 볼 때, 청년기에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데미안』의 주인공은 실은 에밀 싱클레어이지요. 헤세가 부제에서 밝혀놓기도 했습니다만, 성장기에는 누구나 한번쯤 싱클레어가 되는 게 아닐까요?
오강남 편
장년 이후 늘 업보처럼 전공과 연관된 책을 주로 손에 들었는데, 『장자』는 삶에 여유와 위로를 준다는 점에서 좋았습니다. 내려놓고 비울 줄 아는 삶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는 책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