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구입한 책을 바로 읽는 경우는 드뭅니다. 책상 위나 방 한구석에 두고 짧으면 며칠, 길면 몇 달을 묵혀두다가 어느 날 갑자기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그 책을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유예의 시간을 ‘게으름’이나 ‘망각’이라 하기보다는 ‘기다림’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기다림의 끝에서 좋은 책과 문장을 만났을 때 즐겁습니다.
이 세상에는 살아 있는 사람보다 이미 죽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평범한 사실을 오래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작고한 이들의 책에 눈이 갑니다. 『박정만 시전집』은 다시 읽으려 하고 『김지원 소설 선집』은 새로 읽으려 합니다. 좋은 책은 삶의 한 시절을 견디게 해주는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마음이 유난히 비좁고 가난해지는 세상의 날들을 잘 견디고 지났으면 합니다.
백석 저/고형진 편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 중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나는 밤에 잠을 자다가도 이 문장이 읽고 싶어 자주 백석의 시집을 펼친다. 물론 이것 외에도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문장들이 백석의 시에 가득하다.
앨런 와이즈먼 저/이한중 역
인간 없이 3일이 지나면 뉴욕 지하철이 침수되고 300년이 지나면 세계 곳곳의 큰 댐들이 무너진다고 한다. 이 책은 ‘모든 인류가 한순간 사라진다면’이라는 기발한 상상에서 시작해서 냉엄한 현실로 끝이 난다.
권정생 저
딛는 마음, 마음마다 폐허 같을 때 자주 펼쳐보는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의 산문집. 기독교와 신에 관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현실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에 더 가깝다.
이시영 저/김정환,고형렬,김사인,하종오 편
이시영 시인의 짧은 시들에는 여느 장편소설보다 더 길고 기구한 ‘서사’가 있다. 시인은 우리들의 삶에서 소박하지만 생명력 강한 이야기들을 찾아내어 그것을 시로 만드는 데 능통하다. 아울러 우리의 굴곡진 현대사를 온몸으로 지나온 시인의 경험들이 슬프면서도 즐겁게 녹아 들어 있다.
막스 피카르트 저/최승자 역
말과 침묵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책. 이 책을 읽으며 침묵은 말보다 더 힘이 세다는 것, 더 소란하다는 것. 그리고 침묵은 고독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랑의 사계(四季)를 보여주는 영화다. 서사에 맞게 변주되는 OST도 더없이 매력적이다.
“나 돌아갈래”라는 유명한 대사처럼 삶이 후회스러울 때마다 다시 보게 되는 영화다. ‘영화’ 자체가 아닌 영화를 보고 있는 ‘나’에 몰입하기에 이보다 좋은 영화는 없다.
[시인 특집] 박준 “비뚤어지자, 지자, 이기지 말자”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애매함과 어중간함에서 오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