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집어든 책에 나도 몰래 빠져들 때지요. 여행과 비슷합니다. 갈 수밖에 없는 곳에 가면 즐겁지 않지요. 비즈니스 여행이 그렇지요. 원해서 가는 곳은 어쩔 수 없이 가는 곳보다 즐겁지만 원하는 바가 분명하고 대부분 커서 원하는 바를 이루기 쉽지 않지요.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면 아쉬움이 남지요.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뜻하지 않은 것을 만나는 즐거움에 비할 바가 못 되지요. 계획 없이 떠나 우연히 만나는 풍경과 사람과 사건들만큼 여행을 즐겁게 만드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노래도 그런 것 같아요.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우연히 들었을 때 그 슬프면서도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을 잊을 수 없습니다. 책 읽기도 마찬가지지요. 어쩔 수 없이 읽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습니다. 시험공부를 위해 읽거나 리포트를 쓰기 위해 읽는 경우가 그렇지요. 원하는 책을 읽는 경우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즐겁지가 않지요. 대부분 책 읽기는 이 두 경우지요.
그래서 가끔씩 우연한 독서 여행을 떠납니다. 도서관으로 가서 아무런 기대 없이 수많은 책 가운데 우연히 눈에 들어오는 책을 집어 들고 아무 곳이나 펼쳐 읽습니다. 요즘 ‘불안’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한국 사회를 한마디로 특징지을 수 있는 열쇠 말이 있다면 아마도 불안이 아닐까 싶어요. 어린 학생들부터 청년, 중년, 노년 할 것 없이 모두 불안해합니다. 불안의 근원적인 원인과 그 해결책을 찾아보고 싶네요. 그래서 오랜만에 키에르케고르의 「불안의 개념」을 다시 읽을 생각입니다.
최근 『김광석과 철학하기』를 펴냈습니다. 김광석은 가수이지 철학자가 아닌데 어울리지 않는 무리한 시도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감히 ‘김광석의 철학’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김광석을 철학자로 둔갑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김광석의 노래와 철학의 만남을 엿보았을 뿐입니다. 어쩌면 김광석이 노래하는 삶의 슬픔이나 아픔과 철학의 만남을 엿보았다고나 할까요?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에서 감정과 이성 사이의 갈등을 들여다보고 이 문제를 다룬 데카르트의 <이성의 철학>을 떠올렸고,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에서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행복 사이의 갈등을 들여다보고 이 문제를 다룬 헤겔의 <자유의 철학>을 떠올렸습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에서 무한한 시간을 사는 공허한 삶과 유한한 시간을 사는 절절한 삶 사이의 차이를 들여다보고 이 문제를 다룬 하이데거의 <죽음의 철학>을 떠올렸고, “그녀가 처음 울던 날”에서 공정하지 못한 사랑과 행복하지 못한 사랑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이 문제를 다룬 롤스의 <정의의 철학>을 떠올렸습니다. 김광석이 삶의 슬픔이나 아픔을 노래했다면 저는 그 근원적 원인과 해결책을 철학적으로 찾아보았습니다. 김광석의 노래와 김광식의 철학은 손가락일 뿐입니다. 부디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찾아보는 지혜로운 책 읽기를 하길 바랍니다. 여러분 삶의 슬픔과 아픔의 모양에 어울리는, 행복하게 사는 법을 스스로 찾길 바랍니다.
프리드리히 니체 저/정동호 역
열등감과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내가 어때서, 이만하면 나도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대책 없는 자신감과 자존감을 되찾아준 책이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 세대들에게 강추한다. 자기에 대한 긍지와 사랑이야말로 무기력하고 절망적이거나 시기심과 증오심에 가득 찬 병든 마음을 치유하고 이기적인 자기를 넘어서 베푸는 삶을 살도록 하는 바탕이 된다. 체념하거나 시기심에 사로잡히는 나를 의지나 열정으로 끊임없이 넘어서 자기를 긍정하고 창조하는 초인이 되라는 가르침은 무한경쟁으로 시기심과 증오심에 빠진 젊은이들이 자신과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마르틴 하이데거 저/전양범 역
어렸을 때부터 내 생의 가장 큰 고통은 삶의 지루함을 견디는 거였다. 오죽하면 <권태>라는 시를 짓고 소설을 썼을까. 고등학교 때 너무나 지루해서 대학생 누나가 사 놓은 세계문학전집을 읽었다. 다 읽고 나니 또 지루했다. 그래서 누나가 세계문학전집을 살 때 1+1로 덤으로 받은 세계사상전집을 읽었다. 그때 이 책을 만났다. 지루함이야말로 존재 전체를 만날 수 있는 축복 받은 기회라고 말하는 이 책. 그 축복받은 지루함 때문에 철학을 하게 된지도 모른다. 지루해서 미치겠다면 이 책을 읽어라. 축복 받을 지니. 그 지긋지긋한 지루함과 불안함을 축복으로 바꾸어줄 지니.
움베르또 마뚜라나,프란시스코 바렐라 공저/최호영 역
“잃는 것은 쇠사슬뿐이요, 얻는 것은 세상 전부다.”는 마지막 말이 내 삶을 뒤흔들었다. <무소유의 힘 선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법정의 <무소유>의 고전판이라고나 할까. 잃을 것이 없는 이는 불안해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 잃을 게 없는 이야말로 삶과 세상을 뒤바꾸어 놓을 혁명을 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 불안한 이들에게 불안 근본 치유책으로 이보다 나은 게 없다.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저/이진우 역
어렸을 때부터 내 생의 가장 큰 고통은 삶의 지루함을 견디는 거였다. 오죽하면 <권태>라는 시를 짓고 소설을 썼을까. 고등학교 때 너무나 지루해서 대학생 누나가 사 놓은 세계문학전집을 읽었다. 다 읽고 나니 또 지루했다. 그래서 누나가 세계문학전집을 살 때 1+1로 덤으로 받은 세계사상전집을 읽었다. 그때 이 책을 만났다. 지루함이야말로 존재 전체를 만날 수 있는 축복 받은 기회라고 말하는 이 책. 그 축복받은 지루함 때문에 철학을 하게 된지도 모른다. 지루해서 미치겠다면 이 책을 읽어라. 축복 받을 지니. 그 지긋지긋한 지루함과 불안함을 축복으로 바꾸어줄 지니.
아리스토텔레스 저/강상진,김재홍,이창우 공역
상대적 박탈감으로 행복은 ‘너희들의 리그’일 뿐이라고 투덜댈 때, 뒤통수를 친 책이다. 무엇인가 얻으려 전전긍긍하고, 얻으면 잃을까봐 또 전전긍긍하며, 왜 나만 불행할까, 라는 생각이 들면 이 책을 읽어라. 행복은 명사가 아니라 부사란다. 행복이 무엇인지 묻지 말고 행복하게 산다는 게 무엇인지 물어야 한단다. 행복을 추구하지 말고 잘 살아가다 보면 행복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단순한, 하지만 쉽지 않은 행복의 비법을 배울 수 있다.
데니스 위버,에디 파이어 스톤
단순함 속 복잡함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준 영화다. 등장인물 단 두 명이 펼치는 단 하나의 사건이 손에 땀을 나게 하는 긴장감 넘치고 흥미진진한 영화다. 어쩌면 우리 인생의 대부분의 불행들도 사소한 것들에 대한 집착 때문에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 상황에 매몰되면 목숨을 걸 정도로 엄청나게 중요해 보이는 착시를 일으키는 게 집착이다. 법정의 <무소유>의 헐리우드판이라고 할 수 있다.
시드니 루멧 감독; 헨리 폰다 출연;
말과 논리의 힘을 깨닫게 해준 영화다. 하나의 공간에 12명의 사람들이 모여 단지 말 하나로 한 가지 진실을 밝혀내는 자칫 지루할 수 있는, 하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고 긴장감 넘치고 흥미진진한 영화다. 이해관계만 있지 진실에는 전혀 관심 없는, 그래서 힘겨루기만 하는 한국 정치인들이 꼭 좀 보았으면 한다. 전공지식만 중요하게 여기며 글쓰기나 말하기와 같은 기초교양교육을 소홀히 여기는 이들도 꼭 좀 보았으면 한다. 대학이 길러내야 할 바람직한 인재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력을 갖춘 인재가 아쉬운 요즘이다.
김광식 “우연한 독서 여행을 떠나 봅시다” 김광식 교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