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주로 스마트폰에 e북을 다운 받아 책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책을 읽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연히 스마트폰으로 e북을 보았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빨리 나가고 책에 집중이 잘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길을 걸을 때도, 지하철로 이동할 때도, 누군가를 기다릴 때도, 심지어 집에서 침대에 누워있거나 화장실에 있을 때도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멍하니 있는 것을 못 참는 강박증이 있는데, e북 덕분에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지적으로 풍부해진 느낌입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렇겠지만, 저 역시 오랜 직장생활을 하며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책들을 많이 샀습니다. 때로는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는 힐링책을 사기도 했고, 때로는 더 강해지고 독해져야겠다는 생각에 권력에 접근하는 책을 사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제 서재를 본다면 성공에 대한 목마름으로 가득 채웠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며 ‘그 때는 이러한 일도 있었지’, ‘그 때도 이렇게 극복했는데’ 하며 위로를 받습니다. 제게 서재는 근심을 덜어내는 ‘해우소’입니다.
최근 초등학교 3학년인 딸아이의 도서목록을 보다가 제가 생각보다 세계문학에 무지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어린 시절 동화책으로 요약해놓은 세계문학책들은 기억이 안 나고, 그 나마 읽은 것도 몇 개 없더라고요. 무엇보다 나이가 들어 다시 세계문학을 읽으니 이제야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보다 무식한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이번 여름 세계문학전집에 도전하려고 합니다. 한 남자 탤런트가 “외로우면 홈쇼핑을 즐겨본다”고 이야기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저 역시 TV 뉴스가 답답하고, 드라마가 짜증이 날 때는 홈쇼핑으로 채널을 돌려 넋 놓고 본 적이 많습니다. 마케팅과 영업 때문에 고민하던 어느 날, 홈쇼핑을 보며 무릎을 탁 쳤습니다. 하나의 물건을 가지고 저렇게 다양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다니, 3만 원짜리 물건 하나를 팔기 위해 저렇게 열심히 설명을 하다니. 과연 마케터로서의 나는 내가 담당한 상품에 대해 저만큼 애정을 갖고 스토리를 개발하고 판매에 열성을 보인 적이 있었나 반성을 했습니다.
이번에 펴낸 책 『욕망을 기획하라』는 미치도록 히트상품을 만들어보고 싶어했던 마케터가 고수들의 판매기법을 꼼꼼히 적어놓은 메모를 공개한 책입니다. 이 책이 히트상품에 대한 독자 여러분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비드 사피어 저/이미옥 역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안 되고 묻히는 것을 보면 ‘내 수준이 낮은 건가’ 소심한 반성을 하게 된다.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든 어떠랴. 내게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책’이란 이런 것이었다. 잘 나가는 여자 아나운서가 죽으면서(그야말로 개죽음) 시작하는 이 책은 주인공이 지렁이, 딱정벌레, 다람쥐 등 자신의 업에 따라 여러 차례 환생하는 스토리 구조를 갖고 있다. 환생의 형태는 다르지만, 환생의 장소는 주인공의 남편과 딸이 살고 있는 집이라는 상황을 설정해 눈물을 빼놓는 감동 요소도 놓치지 않았다. 윤회사상을 놀랍도록 재치 있게 풀어낸 책이다.
오쿠다 히데오 저/정숙경 역
딸부잣집에서 태어나 여중, 여고, 여대를 나온 나는 직장생활을 하며 남자에 대한 환상이 사라졌다. TV 속에 나오는 ‘실장님’은 현실에 없었고, 남자들이란 치졸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늘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오쿠다 히데오는 ‘마돈나’를 통해 내게 남자들을 이해하라고 유쾌하게 충고했다. 마돈나를 읽고 난 후 옆 자리의, 앞 자리의 남자들을 훨씬 부드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오쿠다 히데오는 ‘공중그네’나 ‘마돈나’ 같은 유쾌한 책만 썼으면 좋겠다. 정형돈이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진행하는 듯한 느낌의 ‘침묵의 거리’ 같은 책은 다른 작가에게 양보하고.
로버트 그린 저/안진환,이수경 공역
도쿠가와 이에야스부터 마오쩌둥과 헨리 키신저까지, 지난 3천 년간 등장했던 수많은 인물들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분석해 권력을 얻는 방법에 대해 다룬 책이다. ‘착하게 살라’는 이야기만 듣고 살아왔던 사람들에게는 다소 거북함이 느껴지겠지만, 정글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강한 의지를 준다. 다양한 사례가 등장하는 꽤 두꺼운 책이지만, 결국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감정에 휩싸이지 말라’는 것.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일과 인간관계에서 낭패를 보았던 어느 날, 왜 이 책을 진작에 읽지 않았을까 후회가 되었다.
하정우 저
인생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 누구냐 묻는다면 나는 배우 하정우를 꼽는다. 나보다 한 달 늦게 태어난 이 친구는 영화를 만들고 싶으면 영화감독이 되고,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화가가 된다. 그런데 그게 취미 삼아 한 번씩 건드려보는 수준이 아니라 꽤 내공이 느껴진다. 하정우가 좋아서 산 책이 아니라, 하정우가 질투 나서 산 책인데 책을 덮는 순간 질투심이 더욱 커졌다. ‘연예인의 겉멋이 싫다’고 이 책을 폄하하는 사람들에게도 책 중간에 나오는 하정우의 대본 사진은 꼭 한 번 보라고 권하고 싶다. 대본을 읽은 횟수만큼 바를 정(正)자로 표기해놓고, 대사 옆에 본인의 의견을 빼곡히 적어놓은 하정우의 열정을 보면 노력 없이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게리 켈러,제이 파파산 공저/구세희 역
단순함에 대해 다룬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쏟아지는 요즘에 걸맞은 책이다.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어온 사람에게는 별 감동이 없는 책. 그러나 자기계발서라는 게 어떤 상황에서 읽느냐에 따라 ‘뻔한 소리’가 될 수도 있고, 가슴을 후벼 파는 ‘인생의 one thing’이 될 수도 있다. 지루하게 이 책을 절반쯤 읽던 중 ‘초점탐색 질문’이라는 부분에서 정신이 번쩍 뜨였다. “당신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 -> 그것을 함으로써 -> 다른 모든 일들을 쉽게 혹은 필요 없게 만들 바로 그 일은 무엇인가?”라는 3단계를 거쳐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대목이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이 책을 꼼꼼히 읽으면서 나는 내 인생의 중요한 해답을 얻었다.
뒤늦게 우디 앨런에 빠져 ‘애니홀’부터 ‘블루 재스민’까지 한 달 동안 섭렵을 했다. 우디 앨런 영화는 별로 야하지도 않으면서 ‘청소년 관람 불가’인데, 우디 앨런은 자기 영화가 어른들만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도 이제야 어른이 된 걸까. 어른 흉내가 내고 싶어 40년 전 우디 앨런의 영화를 찾아 볼 필요는 없다. 80세의 노인이지만, 우디 앨런의 영화는 여전히 지적이고 유머러스하다. ‘블루 재스민’, ‘로마 위드 러브’, ‘미드나잇 인 파리’, ‘환상의 그대’ 등의 최근작들이 VOD 서비스로 나와있다. 내 안의 찌질함을 건드려 ‘불편한 즐거움’을 준다는 면에서는 홍상수 감독과 다르지 않지만, 우디 앨런의 빵빵한 예산 덕에 근사한 배우들과 화려한 배경이 눈을 즐겁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