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에는 시간의 점이 있다./ 이 선명하게 두드러지는 점에는/ 재생의 힘이 있어/ 이 힘으로 우리를 파고들어/ 우리가 높이 있을 때는 더 높이 오를 수 있게 하고/ 우리가 쓰러졌을 때는 다시 일으켜 세운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1770-1850)는 알프스 여행을 할 때 보았던 알프스의 한 풍경이 평생 머릿속에 남아 있으면서 시인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곤 했다고 고백합니다. 이렇게 기억에 떠오를 때마다 힘을 주는 자연 속의 한 장면을 워즈워스는 ‘시간의 점’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내용은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저도 이런 ‘시간의 점’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몇 년 전 아들과 함께 지리산종주를 할 때의 일입니다. 세석산장에서 잠을 자다 알람 소리에 갑자기 잠에서 깨었습니다. 함께 간 아들을 깨웠습니다. 아들은 시간을 보더니 이제 12시 20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잠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세석산장에는 온통 하얗게 눈부신 달빛들이 농익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거대한 장관이었습니다. 그 순간은 제게 ‘시간의 점’으로 각인이 되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 생각만으로 에너지를 얻습니다. “내가 혼자 완락재에서 잘 때인데, 한밤중에 일어나 창을 열고 앉았더니, 달은 밝고 별을 깨끗하며 강산은 텅 비어 조용하고 쓸쓸해서, 천지가 열리기 이전의 세계인 듯한 생각이 들었다.” 이는 퇴계 이황(1501~1570)의 제자들이 ‘논어’처럼 스승의 가르침을 엮은 ‘퇴계언행록’에 나오는 말입니다. 퇴계가 한밤중에 일어나 그윽이 달빛을 바라보고 있을 장면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눈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독서가 가장 즐거운 순간은 바로 ‘시간의 점’들을 만나는 순간입니다. 재생의 힘이 되고 또한 삶의 활력을 주는 내용들을 책에서 만나고 또 실제로 그런 경험들을 떠올려볼 때야말로 독서가 주는 카타르시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독서는 ‘시간의 점’입니다.
2013년 5월부터 매경이코노미에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 읽기’ 칼럼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제 거의 반환점을 돌고 앞으로 50선 정도 더 진행해야 합니다. 고전의 핵심을 재미 있게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글쓰기! 이게 어쩌면 최고의 관심사이자 숙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 자크 루소는 그 유명한 교육소설인 ‘에밀’에서 교육의 목적은 ‘판단’을 잘 하는 지혜를 배우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인간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의존해야 할 많은 새로운 관계 속에서 판단을 내려야 하므로 그에게 올바른 판단을 내리도록 가르쳐야 하는데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사회에서는 악인이 잘 살고 올바른 사람은 학대당하고 있다는 것이 일상의 사실이기에 이러한 악인들 속에서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판단력은 필수라는 것입니다. 루소는 “모든 잘못은 판단에서 오는 것이므로 판단할 필요가 없다면 배울 필요가 없다.”고 강조합니다. 그 판단의 근거가 되는 지식과 지혜는 바로 책 속에 있다고 말합다. 그런데 루소는 12살 이전까지는 아이들을 뛰놀게 하면서 좋은 습관을 키워주고, 12살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읽게 해도 늦지 않다고 강조합니다.
최근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을 출간했는데 조선시대에는 아이들에게 먼저 ‘소학’을 가르쳤습니다. 대부분 12살때까지 먼저 ‘소학’을 가르쳤는데 이 책에서는 좋은 생활 습관과 예의를 가르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물론 ‘소학’을 공부한 아이들이 모두 바른생활을 실천한 아이는 아니었을 테지만 이를 공부의 문화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기본이 무너져 국가적인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 위기는 바로 우리 국민들에게 재앙을 주고 있습니다. 국민 모두가 기본공부의 중요성을 다시금 인식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윌리엄 셰익스피어 저/최종철 역
흑인 장군 오셀로가 부하 이아고의 간계에 빠져 아름다운 아내의 정절을 의심하다 결국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아고는 자신이 바라던 오셀로 장군의 부관 지위를 카시오에게 빼앗기자 오셀로를 파멸시킵니다.
박경리 저
이제는 볼 수 없는 박경리 선생의 진솔한 마음을 만날 수 있습니다.‘사람의 됨됨이’라는 시에서 박경리 선생은 “베풀지 않는 삶이란 한낱 굴러다니는 돌멩이와 다를 바 없다”고 강조합니다.
조설근,고악 공저/최용철,고민희 공역
주인공들은 차츰 나이가 들고 인생의 곡절을 겪으면서 하나둘씩 불행으로 떨어집니다. 작자는 꿈같은 세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청춘의 그 아련한 세월에 대한 참회를 그리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봄은 오지만 또 누구에게나 봄은 짧습니다.
정약용 저/박석무 역
다산은 자녀 교육에 가장 힘써야 할 시기(39-57세)를 고스란히 유배지에서 보내 아버지로서 직접 자녀 교육을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컸습니다. 유배지에서 다산이 자녀교육을 위해 활용한 것이 바로 편지를 활용한 ‘서신교육’입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저/안정효 역
카잔차키스가 그가 죽기 2년 전에 쓴 작품으로, 출생에서부터 청년시절까지의 방황과 여행 등 삶의 격정을 그립니다. 이 책을 읽으면 방랑에 오르고싶은 유혹에 빠져들곤 합니다.
빌 어거스트
제목(원제 Pelle The Conqueror) 이 좀 어울리지 않습니다. 덴마크로 일자리를 찾아온 스웨덴 노동자이자 늙은 아버지인 라세와 그의 아들 펠레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를 보면 마지막 장면에서 아들와 아들의 이별장면이 바닷가를 배경으로 펼쳐지면서 막을 내립니다. 하얀 눈보라가 치는 그 마지막 장면을 보면 절로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시울을 적시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엄마가 아이를 안고 활짝 웃는 사진이 있습니다. 영화로 보면 김미화처럼 생긴 그 엄마는 아이를 안고 찍은 그 사진을 고이고이 간직해오다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자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작은 상자를 하나 남깁니다. 이 영화는 릴리 프랭키의 소설 '도쿄타워'가 원작인데 소설로도 읽어도 재미있습니다.
비토리아 데 시카
밥이 절박할 때, 가장은 무엇보다 밥을 해결하는 게 우선입니다. 그 밥벌이는 즐거운 일이라기보다 절박한 일입니다.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이탈리아 영화 ‘자전거 도둑(원제 Ladri Di Biciclette)’은 먹고살기조차 힘든 시절 밥벌이에 나섰다가 곤경을 겪게 되는 한 가장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