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되었을 때, 지식의 증가는 조금도 저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책을 딱 끊었고 음악, 술, 여행 등 풍류의 세월을, 좋게 표현하면 지성 대신 감성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10년의 공백 후 40대에 접어드니 다시 고향에 돌아가듯 책을 집어 들게 되더군요. 제가 추리작가인데 자꾸만 SF 쪽으로 관심이 가서 곤란합니다. 판사가 소설을 써서 주목받으려면 법정소설을 써야 할 판에 본격추리소설을 썼으니 벌써 여기서부터 핀트가 약간 어긋났는데, SF를 쓴다면 누가 읽을까요.
그래도 요즘엔 인간의 ‘뇌’라는 것에 어쩔 수 없이 관심이 갑니다. ‘뇌과학’에 관련된 책을 읽어보려 합니다. 소설 『유다의 별』은 사이비 믿음에 빠진 자들이 벌이는 위험한 게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광신이란 것에 대해 조금 더 범위를 넓혀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는 유독 크고 작은 광신이 득세하는 것 같습니다. 사이비종교나 피라미드조직은 물론 이성이 앞서야 할 법조계에도 광신이 숨어 있습니다. 이데올로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지만, 어느 방향이든 팩트와 상식을 무시하는 극단적인 세력을 보면 소름이 끼칩니다. 그 사람이 극우인가 극좌인가는 단지 환경과 우연의 산물일 뿐 논리적인 귀결이 아니며, 광신이란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장르문학계는 열악합니다. ‘일본 미스터리’라는 확고한 브랜드로 지지받는 일본작품들은 도도하고 불친절해도 찬사를 받지만, 한국추리는 조금만 어설퍼도 바로 버려집니다. 일본 미스터리가 구찌, 샤넬이라면 한국 미스터리는 동대문표 신세입니다. 이 ‘브랜드’라는 걸 단기간에 깨고, 만들기란 거의 불가능 수준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더 해보려 합니다. 방화라고 천대받던 한국영화가 지금은 할리우드조차 밀어냈고, 한국 가요는 K-pop이 되어 세계를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추리라고 안 될 이유가 없겠죠. 외국, 일본 콤플렉스가 없는 독자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고미카와 준페이 저/김대환 역
20대 중반, 처음에는 4권짜리 번역 만화로 접했습니다. 큰 감동을 받았고, 여자 후배한테 선물을 주려고 샀다가 배신당해 안 주고 제가 소장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현재 이 절판 만화책의 국내 유일 소장가라는 생각에 뿌듯합니다) 소설로는 두 번 읽었고, 언젠가 다시 읽으려 합니다.
로버트 매캐먼 저/배지은 역
‘이것이 소설이다’를 당당하게 보여줍니다. 마녀재판이 지배하던 17세기 미국 동부의 한 마을에 흠뻑 빠졌다 나오는 경험을 하게 해줍니다. 제 책 판매가 부진해 실망하던 차에, 이 책의 판매지수를 검색해보곤 불만을 갖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책이 이렇게 밖에 안 팔리는 판에 내 책이 뭘...!
슈테판 츠바이크 저/안인희 역
고고한 자존심을 지키던 메리 스튜어트는 온갖 수모를 겪다가 머리가 잘렸고, 엘리자베스 같은 거만한 인간이 결국 역사에서 승리했습니다. 메리 스튜어트의 인생을 현미경으로 때론 광각 렌즈로 들여다보면서 인간과 역사의 원리를 밝혀냅니다. 예리한 지성, 품격 높은 문장. 이 책을 읽고 나면 미인 여왕 메리 스튜어트가 아니라 슈테판 츠바이크의 팬이 됩니다.
박범신 저
늙으면 오욕을 초극하고 세상을 관조하게 될 것 같지만 전혀 아니며, 여전히 욕망과 미망 속을 헤매게 된다는 비밀을, 늙어보신 박범신 선생이 솔직하게 말해주었습니다. 이 책은 노인과 소녀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늙음에 관한 처절한 고찰입니다.
이청준 저
한센병 환자들이 모인 소록도 병원에 부임한 조백헌 원장은 암담한 현실을 바꾸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데... 무언가, 누군가를 위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겸허하게 읽어보아야 합니다. 판사들이 아무리 숙고해 판결을 한다 해도 그건 결국 피해자가 되어보지 못한 이들이 서류 위에서 구축한 ‘판사들의 천국’에 불과하다는 우울한 진실을 저에게 남겨줬습니다.
유진위,주성치,오맹달,막문위,주인
블레이드 러너를 제치고 30대 이후 ‘내 인생의 영화’로 등극했습니다. 마지막 씬은 가슴에 구멍을 뚫어버리는데, 이런 장면은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모르겠습니다. 엔딩곡인 노관정의 ‘一生所愛’는 천신만고 끝에 mp3를 구했고, 아끼고 아껴서 1년에 한번쯤 듣습니다. (그 중 한 구절은 제 작품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에서 출처를 밝히고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나가이 고 글,그림
20년 전, 일본에 여행갔다가 서점에 들렀습니다. 어렸을 때 저를 매혹시켰던 만화 대부분의 저자명에 이 ‘나가이 고’란 이름이 있는 걸 보고 경이로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도대체 어떤 인간일까? 천재를 만났을 때의 두근거림을 느꼈습니다(김연아나 손승연을 보았을 때 그랬듯이...). 선과 악이 뒤집히고, 인간의 악은 악마마저 울립니다.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놀라운 상상력이 어떤 것인가를 연구하려면 이 작품에서 시작해도 좋습니다.
20대까지 ‘내 인생의 영화’였습니다. 4년만 사는 안드로이드가 자신을 만든 회사로 잠입해 사장에게 생명연장약을 요구하다가 거절당하자 그를 목졸라 죽입니다. ‘창조주 살해’의 불경하고도 엄숙한 순간입니다. 마지막에 안드로이드는(룻거 하우어) 해리슨 포드를 구해주고 빗속에 앉아 죽어가며 말합니다. “난 너희 인간들이 상상치도 못할 것들을 보아 왔다. 은하계에서의 전투, 빛에 잠긴 바다... 이제 그 모든 기억들이 사라지려 한다. 빗속의 내 눈물처럼.” 젠장, 또 코끝이... 이 영화는 유한한 생명을 부여받은 인간의 신에 대한 항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