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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서재

솔직히, 저는 초등 시절에 경험한, ‘고전읽기 대회’라는 트라우마가 있어요. 재미로 읽는 게 아니라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무슨 대회에 나가 상을 받기 위해 책을 읽어야한다는 게 정말 고통스러웠거든요. 막상 대회에서 나가서는 아무 상도 타지 못했고요. 그것도 상처일 수 있는데, 사실, 당연한 일이죠. 재미가 없는데 머리에 쏙쏙 들어갈 리 없죠. 바로 이런 경험 때문에, 사실 저는 책 읽는 재미를 제대로 느낀 게 40대 이후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물론, 대학 시절에 읽은 『소유냐 존재냐』나 『철학에세이』 같은 인문사회과학 도서들은 재미보다는 의미 중심으로 읽었는데, 대부분 제 의식의 지평을 확 넓혀주었지요.

 

요즘은 신문이나 잡지 등에서 좋은 책 소개를 보고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 그 책을 찾아 읽게 됩니다. 물론, 여기저기서 서평을 해달라고 할 때도 있지만, 그것조차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 기꺼이 응하지요. 결국, ‘재미’가 핵심이라 봅니다. 관심사는 역시 교육 문제입니다. 기업에서는 ‘인적자원’을 어떻게 육성하고 관리해야 하는가 라는 관점에서 연구하기를 원하지만, 저는 돈벌이 경영보다 살림살이 경영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삶의 주체 바로 세우기’ 관점에서 교육 문제를 보고 있지요. 사실, 한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스스로도 바로 서면서 더불어 살아갈 힘을 키운다면 그 이상 바랄 게 뭐가 있겠어요? 그런데 돈벌이 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이 사회 시스템은 아이가 스스로 서거나 더불어 사는 능력을 기르는 것보다는 일류 대학에 들어가고 일류 직장에 취업해 돈을 많이 벌고 높이 승진하며 출세하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지요. 그러다 보니, 갈수록 경쟁은 치열해지고 스트레스는 높아지며 빈부 격차도 벌어지지요.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11년 전에 쓴 책이 『나부터 교육혁명』이란 책인데, 요즘엔 이 책의 2탄이 나와야 하지 않겠나, 싶어 새로운 책을 쓰는 중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다시 읽거나 새롭게 읽어야 할 책들도 제법 됩니다. 예컨대, 이반 일리치 선생의 『학교 없는 사회』,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 매트 헌의 『학교를 버려라』, A. S. 닐의 『서머힐』, 스탠리 아로노위츠의 『교육은 혁명의 미래다』 등과 같은 책을 들 수 있지요.

 

제 서재를 ‘깨우침의 놀이터’라고 말합니다. 박사 학위를 하고 교수가 되었지만, 깨우침에는 나이도 없고 종점도 없다고 생각해요. 죽을 때까지 작은 것 하나라도 부단히 깨우쳐가는 과정일 뿐이죠. 제사 지낼 때 ‘현고학생부군신위’라 쓰는 경우가 있지요? 큰 벼슬을 하지 않은 보통 사람을 ‘학생’이라 표현하는데, 저는 그런 의미에서 평생 학생으로 살기를 원하고 그것이 가장 마음 편하다고 생각해요. 부단히 깨우친다는 의미의 학생이죠. 그런데 사실, 공부하고 깨우친다는 건 그렇게 재미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공부, 의미를 부여하는 공부, 가치를 발견하는 공부, 삶의 진실이나 진리를 탐구하는 공부는 의외로 재미가 있어요. 물론, ‘개콘’ 같은 데서 느끼는 재미와는 차원이 다른 재미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제 서재가 일종의 놀이터라고 봅니다. 그러니, 종합하면 ‘깨우침의 놀이터’가 되는 것이죠. 이거, 말이 좀 되나요?

 

올해 나온 책으로 두 가지가 있어요. 대학생이나 어른을 위한 것으로 『나부터 세상을 바꿀 순 없을까?』가 있고요, 청소년을 위한 것으로 『잘 산다는 것』이 있죠. 『나부터 세상을 바꿀 순 없을까?』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세상이 아무리 미워지더라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나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바꿔보자. 그런 마음으로 다른 이들과 손잡고 사회적 실천도 함께 해나가자. 당장 어떤 효과가 크지 않더라도 쉬지 않고 그렇게 나가다보면 뭔가 좋은 변화가 온다. 설사 기대한 결과가 안 와도 그 과정이 즐겁고 의미 있지 않은가, 뭐,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정치, 경제, 노동, 사회, 교육, 문화 등 모든 삶의 분야에서 생각을 바꾸고 가치관을 바꾸며 나의 실천은 물론 사회 구조의 변화까지 꿈꾸어보자고 제안하게 된 것이지요. 『잘 산다는 것』에서는 청소년들이 올바른 경제관이나 인생관을 갖고 나름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죠. 거기서 꼭 하고 싶었던 말은, 돈벌이 경제가 아니라 살림살이 경제를 위해 나부터 할 수 있는 걸 하자, 그러면서 나라 살림살이 전체도 건강하게 바꾸어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내가 참여할 수 있는 것에 동참하자, 이런 이야기입니다.

명사 소개

강수돌 (196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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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작가 : 인문/사회 저자

최신작 : 김철과 한국의 사회민주주..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독일 브레멘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부터 2021년까지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지금은 고려대 명예교수이다. 지은 책으로 『지구를 구하는 경제책』, 『지구를 구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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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추천

노동 사회에서 벗어나기

홀거 하이데 저/강수돌 등역

원래 하이데 교수는 독일 브레멘 대학에서 약 20년 간 연구하며 교육했는데, 단행본 책을 내신 적은 없어요. 하지만 때마다 예사롭지 않은 에세이나 논문을 쓴 뒤, 제자들에게 읽히거나 친구들에게 두루 돌리기도 했죠. 그런데, 제가 유학하던 시절(1989~1994)과 그 이후에 스승님의 글들을 읽다 보니, “우리가 안고 있는 노동 문제, 또는 사회경제 문제 등, 이에 대한 시각을 근원적으로 다시 정립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그것들을 모아 번역해 단행본으로 낸 것이죠.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삶의 패턴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안정된 소득을 구한 다음에 내가 갖고 싶은 것, 내가 쓰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소유하고 마음대로 소비하면 행복해질 것이다,” 이런 논리로 살아가는데 그런 삶의 가치관은 개인적인 가치관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집합적인 가치관이기도 하거든요. 그런 부분을 근원적으로 뒤흔들어 줄 수 있는 책이라 보죠. 그 책이 나온 뒤 9년 만에 하이데 교수와 제가 상호 학문적 소통을 한 결과를 공저로 냈는데, 『자본을 넘어, 노동을 넘어』(이후, 2009)가 바로 그것이죠. 『노동사회에서 벗어나기』와 함께 읽으면 좋을 것이라 봅니다.

삶의 의미를 찾아서

빅토르 프랑클 저/이희재 역

빅터 프랭클은 원래 의사였는데,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의 강제노동수용소로 끌려갔죠.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은 생존자 중의 한 사람인데, 이 책을 숨죽이면서 읽으면서도 감동했던 부분이 있어요. 그것은 자기처럼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 중엔, 수용소에서 주어지던 빵 한 개를 다 먹어도 배가 고플 그 시점에, 또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 절박하고 불안정한 그 시점에조차 작은 빵 한 쪼가리라도 옆 사람하고 나눠 먹으면서 우애와 인정을 나누었던 사람, 아니면 자신처럼 꼭 살아남아서 이 사악한 역사적 범죄 행위를 낱낱이 고발하겠다는 명확한 나름의 삶의 목표를 가졌던 사람들이었다는 부분입니다. 한마디로, 극단적인 불확실성 아래서도 ‘삶의 의미’를 가졌던 사람들, 최악의 조건 속에서조차 자기 삶에 대한 나름의 자유로운 결정권, 즉 ‘영혼의 자유’를 가졌던 사람들이야말로 삶의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셈이죠. 방황하는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찾고 멋진 인생을 살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적극 추천합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E.F. 슈마허 저/이상호 역

우리나라 환경운동 단체인 녹색연합에서 나오는 잡지 이름이기도 하지요. 이 책은 원래 1970년대 초에 나왔어요.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와 시기나 문제의식이 비슷하죠. 슈마허 박사는 우리가 쓰는 자원 중엔 재생 불가능한 것도 많은데, 마치 얼마든지 재생 가능한 것처럼 펑펑 쓰고 있다고 고발합니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시하는 생산과 소비 양식을 총체적으로 성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흥미로운 점은 서양 사람인 슈마허가 동양의 불교의 가르침에 주목하고 ‘불교 경제학’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다는 것이죠. 크게 두 가지가 핵심이죠. 간소함과 비폭력이 바로 그것이어요. 불교 경제학에서는 우선, 인간적 필요에 따른 단순 소박한 삶, 절약하는 삶을 지향하기 때문에 무의미한 사치나 낭비, 허세를 예방할 수 있어요. 또, 생산과정에서도 손노동이나 도구를 중시하기 때문에 사람의 기술이나 지혜를 고양하고 서로 협동하게 하며, 자연을 해치지 않고 삶의 필요에 걸맞은 것만 만들어내려고 하죠. 결국, 이 책의 부제가 말하듯이 슈마허 선생은 ‘사람이 중시되는 경제’를 회복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어요. 오늘날 돈벌이 경제가 거품을 만들고 투기와 파괴를 확산시키는 시점에서 대단히 시사적인 책이라 할 수 있어요.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 저/최혁순 역

1980년대 초 대학생 때 읽었는데, 제 나름 고뇌하며 삶의 방향을 모색하던 시기라 이른바 ‘삘’이 꽂혔던 것 같아요. 프랑크푸르트 학파 철학자인 E. 프롬은 여기서 인생의 두 갈래 길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소유양식과 존재양식입니다. 돈이나 권력, 명예 같은 걸 부단히 축적하려는 방식이 소유양식의 삶인 반면, 살아 있는 존재 그 자체, 그리고 그런 존재들 사이의 살아 있는 관계에 방점을 두는 방식이 존재양식의 삶이죠. 오늘날 현대인의 삶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도 결국은 소유양식의 삶과 그런 걸 강요하는 사회 구조가 문제라는 데 공감했던 것 같아요. 대안은 당연히 존재양식이죠. 이것은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라는 철학적 질문과도 맞닿는 문제이죠. (실은 제가 경제를 돈벌이 경제와 살림살이 경제로 나눠 고찰하는 것도, 그 배경엔 소유냐 존재냐 하는 이런 공부와 성찰이 밑거름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의 청년들에게도 꼭 추천하고픈 책입니다.

[HD리마스터링] 찰리채플린 - 모던타임즈 (본편 + 부가영상) 2DVD

감독:Charles Chaplin, 주연:Charles Chaplin

저는 책보다 영화를 더 좋아하는 편이죠. 좋은 영화 만드시는 분을 내심 엄청 존경하고요. 내 인생의 영화라면 단연코,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가 1위이죠. 1936년에 나온 무성영화인데, 1929년 이후의 경제 대공황 상황을 배경으로 깔고 있죠. 거의 말이 나오지 않지만 정말 웃기기도 하고 자본주의 공장, 기계, 실업, 노동, 가난, 감옥 등의 문제를 날카롭게 짚어주기도 하죠. 지금까지 약 100번은 본 것 같은데, 보면 볼수록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좋은 영화라고 봅니다.

녹색평론 (격월간) : 5,6월 [2014]

녹색평론 편집부

늘 “<녹색평론>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국민 교양 도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살아가는 데 닥치는 모든 문제를 은폐하거나 회피하는 식이 아니라 정면으로 직시하고 나부터 참여하면서 문제를 고쳐나가려고 하는 그런 자세나 관점이 중요한데, <녹색평론>은 이런 면에서 대단히 지성적이면서도 실천적이죠. 저는 솔직히, 대한민국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라는 회의가 들 때마다 <녹색평론>을 집어 들고 눈길 가는 대로 아무 글이나 하나 읽고 나면 뭔가 후련해지고 작은 희망의 끈이라도 잡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껴요. 그래서 꽤 오래 전부터 제가 가르치는 고려대 학생들과 ‘독서 모임’을 해왔고요, 최근엔 지역 사회의 관심 있는 시민들과도 함께 ‘독자 모임’을 하고 있어요. 삶의 현실이 갑갑하고 해답이 보이지 않을 때, 비록 정답은 아닐지라도 이 책을 중심으로 만나서 얘기 나누고 좋은 내용을 공유하며 서로 배워나가는 과정이 참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쉰들러 리스트 (일반판) : 블루레이

감독:스티븐 스필버그 출연:리암 니슨, 벤 킹슬리

독일 나치 하의 참상을 잘 보여주기도 하고, 전쟁의 와중에도 돈벌이에 눈이 먼 기업들이 있는가 하면, 쉰들러 같은 사람처럼 본연의 인간성을 잃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점을 잘 드러낸 영화라고 보아요. 사실, 나치의 등장과 제2차 세계대전은 1929년 경제 대공황의 국면에서 히틀러 식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나온 사건들이죠. 전쟁이 근거 없이 발생하는 게 아니라 자본의 위기 돌파 전략의 일환이라는 가르침을 준다는 점에서 할리우드 영화치고는 수준이 꽤 높지요.

쇼생크 탈출

프랭크 다라본트

억울하게 살인죄로 몰려 종신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 주인공 앤디, 그리고 수차례 가석방 심사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며 좌절감을 느끼는 레드, 이 두 사람 사이에 천천히 싹트는 우정도 참 좋고요. 원래 은행간부였던 앤디가 감옥 안에서 교도소장의 재산 관리를 도와주며 승승장구하는 장면이나 어느 날 갑자기 허락도 받지 않고 온 교도소에 멋진 음악을 틀어 주어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장면도 좋았지요. 교도소 내의 폭력이나 비리를 까발리는 장면도 흥미로웠고요. 또 다른 노인 죄수 브룩스가 자유를 얻어 나간 뒤에 적응을 하지 못해 ‘자유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침내 자살을 선택하는 장면은 대단히 시사적이죠. 그러나 무엇보다 통쾌했던 것은, 종신수 앤디가 날마다 조금씩 벽 뒤로 터널을 파서 20여 년 만에 탈출에 성공하는 장면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마침내 가석방된 레드가 멕시코 어딘가에 숨어 사는 앤디를 찾아가 서로 반갑게 만나는 순간은 정말 가슴 짜릿하죠. 이 영화 포스터엔 이런 인상적인 구절이 있어요. “두려움은 당신을 죄수로 가두지만, 희망은 당신을 자유롭게 만든다.” 멋지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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