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희 저
여성 작가의 관능에 관한 자기고백입니다. 사실 이 작가는 제 법대 후배예요. 법대를 졸업하고 파리로 영화 유학을 떠나더니, 지금은 헐리웃에 살며 글을 쓰더라고요. 예전부터 ‘sophie ville’이라는 필명으로 페이스북 등에 글을 썼었는데, 왠지 마르그리트 뒤라스, 프랑수아즈 사강, 전혜린 등을 떠올리게 만들더군요. 열정적이고, 대담하고, 제목처럼 관능적인 글을 씁니다. 언젠가 꼭 이 친구가 쓴 자전적 소설을 읽어 보고 싶다는 기대를 갖게 만드는 책입니다. 벌써 열성적인 팬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아 부럽더군요.
로맹 가리 저/이선희 역
비로소 보다 일반적인 용례의 관능에 관한 작품이네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만년의 로맹 가리가 ‘관능의 소멸’에 대한 공포와 집착을 그린 작품입니다. 왠지 박범신의 「은교」가 연상되더라고요. 노작가가 남성으로서의 자신(중의적으로)을 잃어가는 과정의 찌질하기까지 할 정도로 솔직한 자기고백이라는 점에서 말이죠.
파트리크 쥐스킨트 저/강명순 역
냄새 얘기를 하다 보니 쥐스킨트의 「향수」를 빼놓을 수 없네요. 그야말로 감각의 제단에 바쳐진 제물 같은 작품이지요. 주인공이 지각하는 무수한 냄새에 대한 현란한 묘사를 읽다보면 4DX 극장도 아닌데 진짜로 냄새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연쇄살인도 불사하며 자신이 추구하는 감각, 그 아름다움의 궁극을 소유하려는 주인공과 자신의 사형장에서 비로소 완성된 그의 예술작품, 그리고 그 작품이 감상자인 군중들에게 선사하는 것은 악마와 마녀들이 난교하는 발푸르기스의 밤과 같은 관능의 광기. 잊기 힘든 작품입니다.
그레고리 데이비드 로버츠 저/현명수 역
인도 뭄바이를 배경으로 한 자전적 소설입니다.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놀라운 이야기지요. 저는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묘사되는 인도 자체에 더 매혹되곤 합니다. ‘봄베이에 도착한 첫날, 내가 처음으로 느낀 것은 냄새가 다른 공기였다.’라는 도입부는 인도 여행을 해 보신 모든 분들이 공감할 듯합니다. 특히 바라나시의 그 무수한 개똥, 소똥 냄새, 릭샤 왈라의 땀 냄새, 무수한 향신료 냄새, 갠지스 강가 가트에서 시신을 태우는 냄새, 길거리 음식 냄새… 작중 여주인공은 ‘세상에서 최악으로 기분 좋은 냄새’라고 부르지요. ‘데브다스’ 등 인도 영화에 매혹되곤 하던 저를 결국 인도로 떠나게 만들었던 책입니다.
목소리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갑자기 음악도 소개하고 싶어지네요. 데뷔 앨범 때부터 밴드 롤러코스터의 팬이었는데, 그 팔할은 보컬 조원선의 목소리에 끌려서예요. 나른하고, 절제된, 그런데 묘하게 유혹적인 목소리. 그녀의 솔로 앨범에서 특히 ‘나의 사랑 노래’가 좋았습니다. 햇살 가득 쏟아지는 마당을 바라보며 연인의 무릎을 베고 누워 귓가에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다 소르르 잠이 들듯 말듯한 순간의 느낌, 그런 노래지요.
다이나믹 듀오 (Dynamic Duo) 7집 - Luckynumbers [재발매]
작년 여름 한동안 출퇴근 때마다 운전하며 듣던 자작 앨범이 빈지노, 범키, 프라이머리, 다이나믹 듀오 노래만 모은 것이었네요. 그중에서도 다이나믹 듀오의 ‘날개뼈’가 인상적이었습니다. ( 니가 머리를 올려 묶을 때 살짝 보이는 날개뼈 너의 날개뼈 아름다워 넌 나의 천사 물기가 마른 다음 날개 펴) 멋지지 않나요? 시각적 관능을 이렇게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으니 역시 래퍼들은 시인입니다. 다듀 노래는 다 개코, 최자 공동 작사로 되어 있지만 이 노래 가사는 개코가 혼자 썼을 거라고 생각하자고요. 남성분들 최자 때문에 괜한 억측 끝에 컨트롤비트 다운받지들 마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