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저/안세민 역
최근 읽은 책 중에 베스트였습니다. 경영서가 아니라 철학서이자 심리학 서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이 책은 가변적인 삶, 깨어져도 다시 이어 붙이는 삶, 극단과 중용이 함께 하는 삶에 대한 몽상을 하게 만듭니다. 인문학적 개념과 통찰력을 삶의 전반에 적용시키는 도저한 직관력이 도드라지고, 깨어지지 않기보다, 깨어져도 다시 겹겹이 이어 붙이는 중층의 ‘태도’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심노숭 저/안대회,김보성 등역
『자저실기』의 심노숭 역시 제사 음식을 잘못 다룬 여종을 개와 함께 묶어서, 그 개가 여종을 뜯어 먹었다는 사실까지 적었다고 하니, 그가 세필로 그려낸 조선이 어떤지 꼭 읽어볼 참입니다. 세상은 잔인하고 후덕하고 자상하고 불친절하고 불평등하고 정의로운 다양한 국면을 가지고 있는 곳입니다. 조선도 현재처럼 그러한 모습으로 흘러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곳에 타임머신을 타고 가보고 싶은 것이지요. 그런데 사실 이런 책들은 제 전공과는 거의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냥 읽어보고 싶네요.
앤드류 솔로몬 저/민승남 역
우울증에 관한 가장 심도 깊고 폭넓은 연구서이자 에세이라고 할 만합니다. 인간 정신의 불가해성, 마음의 신비를 우울증이라는 키워드로 종횡무진 하는 저자의 식견과 필력은 마성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읽을 때마다 우울증 환자의 내면이 그대로 느껴져서 몹시 힘들기도 했지만, 진정성과 솔직함으로 뭉친 저자가 어머니의 자살 혹은 안락사 장면을 담담히 묘사할 때는 울컥하는 감동이 밀려들었습니다.
마르틴 하이데거 저/전양범 역
인간이 무엇인가 생각해보고 심리학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가장 큰 영향을 준 철학서 중의 하나가 이 책이었습니다. ‘다 자인’으로서의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에 이토록 깊이 천착할 수 있구나 하는 감탄. 부모도 조국도 성별도 사회적 지위도 선택하지 못한 우리가 세상에 던져져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을 때, 등대가 되어준 책이죠.
심보선 저
심보선 시인의 2011년 시집 <눈 앞에 없는 사람>은 부재함으로써 존재하는 피안의 세계에 대한 절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중을 긁적이며’, ‘새’, ‘이 별의 일’ 등은 술 취할 때마다 제가 지인들에게 낭송을 하는 애송시들이기도 합니다. 심보선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문디(mundi)라고 하던데, 그 정의할 수 없는 말해지지 않는 어떤 것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더 살 만하게 해주는 것은 아닌지 싶었습니다.
제 인생의 영화는 언제나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입니다. 초등학교 때 본 영화였는데, 내용은 잘 이해가 안 갔지만, 백치 같은 젤소미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잠파노가 해변에 앉아 엉엉 울던 그 장면이 화인으로 가슴에 남아 있지요. 이때부터 어렴풋이나마 개념도 잘 모른 채, 사람에 대한 연민이 무엇인지 많이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압델라티프 케시시
최근 본 영화 중에서 인상 깊은 작품을 꼽으라면, 압델라프 케시시 감독의 <가장 따뜻한 색, 블루>과 지아장커 감독의 <천주정>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은 성차, 여성의 몸에 깃든 관능과 시선의 문제, 계급의 문제가 한 소녀의 사랑의 감정선과 그대로 어우러져 있습니다. 두 레즈비언 커플의 수년간에 걸친 사랑의 감정의 가변차선을 따라가면서, 피할 수 없는 사랑의 생로병사의 아픔이 그대로 전달됩니다. 아델 역의 아델 엑사코플로스의 연기는 탁월하고요. 물론, 이 세계에서 네모는 가장 둥글고, 파랑은 가장 따뜻한 색이죠.
지아 장 커
<천주정>은 부산 영화제에서 처음 보았는데, 기존의 롱샷에서 벗어나 스테디 캠을 써서 새로운 영상 미학을 보여주는 지아장커의 변신에 일단 놀랐습니다. 무협물과 사회 부조리를 병치시킨다거나, 스릴러물적인 반전을 꾀한다거나 하는 장르적인 속성도 더 진해진 것 같고요.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변화하든 지아장커의 부조리한 중국 사회와 인간 본성에 대한 서늘한 시선과 눈을 떼기 힘든 영상은 여전합니다. ‘A touch of Sin’이라는 영화의 영어 원제처럼, 이토록 강렬하면서도 서늘한 죄의 맛, 죄의 색깔, 죄의 감촉은 중국 영화 역사상 전례가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