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사를 공부하고 미술품 경매회사의 신입으로 입사한 직후 컬렉팅을 시작했습니다. ‘컬렉터가 되어야지!’ 목적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작가와 작업이 내뿜는 에너지에 매료되어 나의 세계에 들이다 보니 어느새 작고 소중한 컬렉션이 만들어졌더군요. 이후 100% 재택근무를 하는 미국회사에 입사 이후 개인사업, 이직한 현 직장에서까지 집에서 근무를 하게 된 지 4년 차.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다보니, 일할 때도 밥 먹을 때도 나와 함께하는 이 작품들이 나의 단조로운 일상에 부어주는 이 상큼하고 따스한 에너지를 새삼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미술시장에 몸담고 있다보니, 미술품을 시장 관점으로 바라보고 설명하고 구매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구매 후 가치가 올랐을 때 다시 재판매한 작품도 많구요. 그러나 한두푼이 아니기에 투자를 생각하며 소장하게 된 작품이라도, 집에 걸어두게 된 작품들은 결국 제 일상 속에 스며들고 깊은 정이 들어버려 ‘내 새끼’가 되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희노애락을 조용히 다 바라보고 있는, 작가의 숨결이 담겨있는 그 작품들과 매번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연재에서는, 나의 작고 소중한 컬렉션의 ‘내새끼들’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제 ‘작소컬’의 시작과 현재를 사적이지만 누구나 쉽게 따라해볼 수 있는 이야기들로 녹여 공유해보겠습니다.
일상에 심겨진 사랑의 꽃 - 나난의 롱롱타임 플라워
나난과 롱롱타임 플라워. 나의 세계와 나난의 세계가 만났던 그 첫 시작은 부산 출장길에서였다. 부산에서 열린 아트페어 참석을 위해서였고, 같은 팀 선배인 워킹맘 책임님과 함께 한 출장이었다. 주말을 낀 출장이었던지라 책임님의 당시 3살짜리 딸 인경이도 우리와 동행했다. KTX를 타고 3시간, 부산역에서부터 페어장까지 또 이동하는 강행군을 거치자 아가는 페어장에 도착하자마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현대미술을 아기한테 설명해줄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엄마의 출장에 동행한 기억을 좋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고민이 시작되던 찰나에 책임님이 아기와 나를 이끌고 어딘가로 당당히 향했다. 바로 나난의 롱롱타임플라워샵 부스.
롯데 개인전 당시 꽃집 전경. 출처 : 작가 인스타그램
첫인상은, 신선했다. 꽃집이잖아! 그리고 뭐지? 했다. 당시만 해도 아트페어는 컬렉터들과 미술관계자들만 모이는 곳이었기에 부스들은 몇몇이 대화를 나눌 뿐 한산한 분위기었는데, 이 부스 앞에는 길게 줄이 늘어서있었다. 줄을 구성한 사람들도 각양각색, 남녀노소 다양했다. 줄을 서서 드디어 우리차례가 되었고, 우리는 나난의 꽃집에서 우리만의 종이 꽃다발을 맘껏 골랐다. 아기 인경이도 신이 나서 “이거랑, 이거랑, 이거랑 이거 !” 하며 자신만의 꽃다발을 골랐고, 작가님과 함께 사진도 찍고 싸인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아트페어에서 이렇게 양손 두둑히 내가 원하는 아트피스를 고르고 사올 수 있다니. 아트페어에서 작품소장의 문턱을 낮춰 대중들에게도 향유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향기로운 부스잖아,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2년 후 - 2021년의 봄, 나는 나난 작가님의 두번째 개인전 “롱롱타임플라워”를 기획자이자 담당자로 함께하게 되었고 그 인연은 계속 또 계속 깊어져 나는 그녀의 팬이자 동료이자 친한 친구가 되었다.
작가를 매우 가까이서 지켜본 바, 더욱 확신하게 된 그녀 작업세계의 키워드는 ‘사랑’이다. ‘시들지 않는 꽃’ 롱롱타임 플라워가 시작된 계기부터 그러하다. 친한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어떻게 자신의 사랑을 전해줄까 고민하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시들지 않는 사랑의 꽃을 그려주자- 해서 자연스레 ‘그림 꽃 부케’를 선물하게 되었던 것이 계기가 되었고 이후 주변인들의 폭발적 사랑과 인증샷을 시작으로 대중들에게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영원한 것이 없는 세상을 살아가지만, ‘사랑’ 만큼은 영원하다는 것. 그 사랑을 자신이 가진 재능인 그림을 통해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것. 그 단순하지만 강력한 비전이 작가의 왕성하고 에너제틱한 활동의 샘솟는 원천이다.
친구들을 위해 그린 꽃을 나누며 시작된 롱롱타임플라워 시리즈. 사진 : 나난
우선, 롱롱타임 플라워 원화 작업이 탄생하는 과정은 이러하다. 매일 새벽부터 집 뒤의 남산을 한시간씩 산책하며 그 시기에 피는 꽃들을 탐미하고 휴식을 얻는 작가의 자연 사랑은 유별난데, 그러한 꽃들 중 본인에게 영감을 주는 꽃을 택하고 종이에 채색한다. 꽃, 잎, 그 사이의 오브제들을 다 모양을 떠서 그린 후, 꽃다발처럼 배열을 하고 캔버스에 올려본다. 사다리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고 다시 배열을 수정한 후 다시 사다리에 올라가서 하는 작업을 반복한 후 드디어, 꽃다발을 묶어 캔버스에 고정한 후 비침이 없는 무반사 액자에 넣어 영구히 보존되는 꽃다발을 만들어낸다.
출처 : 작가 인스타그램
이러한 원화 작업은 당연히, 캔버스 사이즈 별 소장가격이 높은 편이기 때문에 모든 대중들이 향유하기는 어렵다. 여기서 작가의 ‘사랑포인트’가 다시한번 나타난다. 원화에 쓰인 꽃 오브제들을 하나하나 종이꽃으로 만들어서 꽃집을 열면, 중학생 고등학생도 나이가 지긋하신 노인분들도 오셔서 나만의 꽃다발을 소장해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 송이에 6-7천원. (내부자로써 알고 있는 꽃 하나에 담긴 공정과 과정, 제작비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작가의 사랑과 고집이 담긴 가격이다. 실제로 작가의 전시 때 꽃집 안에서 응대하며 꽃을 사가시는 분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중고등학생이 엄마가 좋아하는 걸 알고 용돈을 모아 오는 경우도 있고 저 멀리 대구에서 ktx를 타고 엄마, 이모들의 ‘구매대행’을 위해 출장을 온 대학생 등 남녀노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은 마음을 갖고 오신다. 어떤 꽃이 어떤 잎과 어울리나요? 등등의 질문도 굉장히 많은데, 나는 막 이런 저런 모양을 제시하고 싶으나 작가님은 항상 “선생님이 만드신 꽃이 가장 예쁜 꽃입니다” 대답하시니 함구하게 될 따름이다.
다시 이 연재의 주제인 나의 컬렉션으로 돌아가보자. 나의 공간 뿐 아니라 우리 가족의 집들에도 나난 작가님의 롱롱타임 플라워는 항상 만개해 있다. 그 중 특별한 몇점만 소개해보자면, 우선 작가님과 처음 함께 일하게 된 전시에서 소장하게 된 판화.
강연이나 연재를 할 때 프로필사진으로 항상 쓰곤 하는 요 사진의 실크스크린 판화는 굉장히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준 아이이다.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컬렉터들의 요청으로 작가님의 작품 중 한 점을 판화로 제작하기로 했고, 나에게는 판화공방을 찾는 것부터 가격 책정, 포장을 구상하는 것 까지 모든 미션이 퀘스트처럼 주어졌었다. 너무 감사하게도 이건용 등 대가 작가들의 판화를 제작하시는 공방을 알게되어 경기도 공방에 작품을 들고 찾아가서, 판을 뜨고 겹겹이 쌓아 작품 한점이 만들어지는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직접 알게 되었었다. 이후 전시가 시작된 후에는 전시장에서만 판매한 100개 에디션 짜리 작품이 전시 시작 후 일주일만에 솔드아웃 되어 엄청난 문의들에 응대해야 했던 경험도 생생하다.
또 한점의 특별한 작품은 이 작품. 전시를 준비하며 함께 정말 많이 들었던 BTS의 다이너마이트 카세트 테이프에 작가님이 시그니쳐 소나무와 나비들을 그려서 선물해주셨는데, “다이너마이트 같은 전시와 미래를 함께 꿈꾸자” 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집 현관 옆에 걸어놓았었다.
마지막으로 당연히, 항상 나의 집 한켠에 시즌마다 다른 디자인으로 자리하고 있는 롱롱타임 플라워 종이꽃. 지금 집에는 나난x국립중앙박물관 초충도 에디션과 이전의 에디션을 섞어서 달항아리에 넣어 배치해 두었다. 나난의 작업 시리즈 중 한국적 색채가 작가의 미감으로 재해석된 작업물들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인데,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나난이 재해석한 국중박의 이 꽃은 솔드아웃 되지만 않았다면 20개는 사두고 외국인 비즈니스 파트너나 친구들에게 자랑스레 선물해주었을 것이다.
‘Sharing Love through my work. 나난 작가의 인스타그램 대문에 몇년간 바뀌지 않고 써있는 한 마디의 문구이자 작가의 신조. 가까이서 지켜볼 수록 더욱더 이 한마디를 푯대로 삼고 새로운 항해로를 향해 끊임없이 돛을 펴고 달리는 나난의 항해에 함께할 수 밖에 없게된다. 평생에 걸쳐 추가될 내 컬렉션 속 나난의 작품들을 기쁘게 상상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About 나난 ✔️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는 국내 최초 원도우 페인터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등 다양한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원도 페인팅의 영역을 처음 개척한 이후 뉴욕 31 갤러리, 홍콩 월드트레이드센터, 영국 한국문화 원, 예술의 전 당에서 전시하였으며, 외교부, 보건복지부, 통일부, 산림청, 대한항공 등 공공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선보여 소비자 가 뽑은 좋은 옥외광고상(대한항공) 을 수상한바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농업박물관, 뮤지엄 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와 더불어 신세계 백화점, 롯데 백화점, 현대 백화점, 룰루레몬, SSG, KAKAO, 국민카드, 록시땅, 광주요 등과 협업하며 상업과 순수의 경계를 넘나드는 활동을 통해 미술계에서의 인지도와 함께 대중적인 영향력과 인기를 탄탄히 구축해왔다.
2013년부터 선보이고 있는 대표작 '시들지 않는 꽃' <롱롱타임 플라워-Long Long Time Flower> 시리즈는 사람과 사람이 꽃다발을 주고받을 때에 전하는 마음이 시들지 않고 오래도록 간직되기 원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 자신의 작업을 통해 사랑을 나누며 살고싶다는 작가의 철학이 모든 창작에 스며들어 있다.
아티피오는 ART ‘예술’ + PIONEER ’선구자’라는 비전 아래 온라인에서 고품격 예술 콘텐츠와 아트테크를 체험할 수 있는 투명하고 안정적인 시스템을 제공하는 문화예술 플랫폼입니다. 누구나 아티피오를 통해 일상 속에서 미술을 향유하면서 안심하고 미술품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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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널위한문화예술 시니어 아트 디렉터)
이화여대에서 사회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한 뒤 영국 런던대 SOAS에서 동양미술사학 석사과정을 마친 김예지 씨는 서울옥션 홍콩 경매팀과 글로벌 사업팀, 세계 최대 글로벌 온라인 미술작품 거래 플랫폼 ‘아트시(ARTSY)’의 아시아 비즈니스팀 서울 담당 디렉터로 재직하며 전시 기획, 국내외 갤러리, 기관, 작가들과 협업을 통해 글로벌 미술 시장에 대한 전문성을 쌓았다. 현재는 문화예술전문미디어 널위한문화예술에서 시니어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