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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세계관의 서막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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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로서 제가 읽을 소설을 선택하는 첫 기준도 언제나 ‘재미’였기 때문에, 독자들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다는 것이 제가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시작을 함께한다는 건 ‘조금은 걱정’스럽고 ‘비할 수 없이 벅찬’ 일이다. 하지만 그 누군가가 이미 어떤 분야에서 ‘레전드’라고 불리는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조금은 벅차’고 ‘비할 수 없이 걱정’스러운 일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벅참과 걱정스러움이 당사자만 할까.

대한민국 레전드 프로파일러 표창원. 그는 최근 중단하고 뒤집어엎기를 반복하며 무려 10년 동안 준비한 범죄소설 『카스트라토: 거세당한 자』를 출간했다. 전문가의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고 말하며 쑥스러운 듯 웃는 그를 직접 만나 출간 소회를 들어 봤다.


우선 소설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이미 많은 책을 출간하신 경험이 있지만 감회가 새로우실 것 같은데요. 10년을 품고 있었던 작품을 출간하신 기분이 어떠신가요? 

전에 집필하고 출간했던 책들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사실’에 대해 ‘분석’하고 ‘의견’을 밝히는 작업이라 그 자체로 의미가 크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창작’은 전혀 다른 차원의 글쓰기 작업이었습니다. 『카스트라토: 거세당한 자』를 출간한 감회를 표현하자면 ‘출산’과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두 아이의 아빠로 두 번에 걸친 아내의 임신과 출산과정을 함께하면서 한편으론 산모가 겪는 괴로운 입덧과 엄청난 불편, 그리고 출산을 앞둔 공포와 출산 과정의 고통이 안쓰럽고 미안했고, 다른 한편으론 ‘내가 낳았다’는 자부심이 부러웠는데, 이번에 10년간 품었던 첫 소설을 낳은 감회가 마치 지켜보기만 했던 산모의 역할을 제가 직접 하게 된 느낌이었습니다.

방송에서 ‘전문가의 범죄소설이라는 부분에서 독자들의 기대에 대한 걱정이 컸다’고 말씀하신 걸 보았는데요. 작품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재미’였습니다. 재미가 있어야 읽고 싶고, 재밌게 읽어야 글 속에 담긴 의미도 전달될 수 있죠. 독자로서 제가 읽을 소설을 선택하는 첫 기준도 언제나 ‘재미’였기 때문에, 독자들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다는 것이 제가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었습니다. ‘범죄분석 전문가’라는 제 이미지 때문에 책이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질 독자들도 계실 것이고, 제가 ‘전문성’에 대한 기대에 너무 많은 부담을 가지면 소설이 아닌 논문이나 ‘전문서적’이 될 우려가 크기 때문에 ‘재미있는 이야기’ 구성에 가장 역점을 두었습니다.

물론 소설은 모두 허구의 이야기지만, “주인공 이맥=표창원?”이라는 궁금증이 생기는 것도 사실인데요. 경찰, 프로파일러라는 점 외에 주인공에게 작가님이 투영된 부분이 있을까요? 

어린 시절 성장 과정,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거쳐 경찰관 시절까지 ‘옳지 않다’고 느낄 때 부딪치고 저항하는 모습, 그 과정에서 쓰라린 좌절과 상처를 입고 힘들게 극복해 나가는 과정 등은 저를 포함해 ‘정의로운 삶’을 지향하는 많은 사람들이 겪는 경험들이죠. 제 경험도 투영했지만 제가 목격한 제 주변 사람들의 경험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이성과 관계 맺고 유지하는 데 서툴고, 감정 표현이 부족하고, 무리에 적응하기보다 외톨이를 선택하고…… 이런 측면들이 저를 닮아 있습니다.

경찰청 이상범죄분석팀 ACAT은 어떻게 만들어 내시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실제 경찰청에도 비슷한 조직이 있나요?   

실제 경찰청엔 없습니다. 있었으면 좋겠다는 제 희망과 꿈이 반영된 조직이죠. 1990년대 제가 영국에서 유학할 시절, 영국과 유럽 국가 경찰청들을 방문 연수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는데, 네덜란드 경찰청이 시각장애인을 특채해서 신고전화 음성과 배경음향 분석을 담당하는 전문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고 감탄과 충격을 느꼈고 영국 지방경찰청들에서도 하반신 마비 등 장애인들이 전산이나 문서 분석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에 존경심과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왜 우리는 경찰 업무에 ‘신체 건강’이라는 차별적인 조건을 내걸고 스스로 다양한 재능을 가진 인재들을 내치고 거부하고 있는가, 반성했죠. 아울러 1970년대 연쇄살인 등 이상동기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서 미국 FBI가 신설한 조직, ‘행동과학팀(Behaviour Science Unit)’ 역시 경찰과 다양한 민간 전문가들이 모인 특수 민관합동 대응팀이죠. 우리 경찰이 가진 폐쇄성과 경직성에 대한 저만의 작은 저항의 목소리가 ACAT입니다. 

등장인물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아무래도 주인공 이맥일까요? 주인공 외에 다른 인물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당연히 이맥은 제 자식 같은 인물이죠. 하지만 선과 악을 함께 가진 인물 차해용 역시 무척 애착이 가는 인물이고, 이번 책은 물론이고 앞으로 나올 ‘프로파일러 이맥 시리즈’ 여러 편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하게 될 캐릭터입니다. 이맥과 미묘한 감정 관계로 얽힌 과학수사 팀장 진경원, 서예정 국회의원, 그리고 재즈 가수 민진아 역시 애착이 많이 가는 인물입니다. 의문의 인물 유지수와 안순옥 기자 역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 줄 역할이라 애착이 큽니다. 조금 숨어 있는 부분은, 사실 관심 있는 분들께는 너무 명확해 보일 수 있는데요. 현실 속 표창원과 권일용을 모델로 하고 있는 인물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인 지 미리 밝히는 건 독자들께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공개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번 책이 ‘표창원 세계관’의 서막이라고 하던데요. 앞으로 나올 작품에 대해 살짝만 힌트를 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 집필 중인 다음 편은 ‘카스트라토’ 사건에 등장하는 차해용이란 인물이 어떻게 경찰을 떠나 의문스러운 역할을 하며 카스트라토 사건에 얽혀들게 되었는지, 그와 이맥은 어떻게 만나서 왜 갈라서게 되었는지 등 이맥을 중심으로 한 시리즈의 전체적인 세계관이 형성되게 된 배경을 밝히는 내용이 될 것입니다. 살인사건을 둘러싼 법정 드라마 형식을 띄게 될 것인데 흥미진진한 인물들 간 갈등 구조는 물론, 그전에 볼 수 없었던 치열한 과학수사 증거 다툼이 색다른 재미를 드릴 수 있길 바랍니다. 그 다음 작품에서 이맥을 둘러싼 관계와 배경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고, 이후 이맥이 사건 중심으로 프로파일링을 해 나가는 본격 시리즈물로 나아가기 위한 세계관이 확립되리라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영국의 셜록 홈스, 미국의 형사 콜롬보와 해리 보슈, 일본의 긴다이치 코스케, 프랑스의 비독, 벨기에의 (영국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가 만든) 포와로 등 각 나라를 대표하는 탐정 혹은 수사관 캐릭터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스릴 넘치고 흥미진진한 명작들이 많지만 아직 이렇다 할 대표 캐릭터는 없죠. K-POP이나 K-드라마 스타처럼 전 세계 추리/범죄 소설 독자들에게 알려질 한국형 프로파일러, K-Profiler ‘이맥’을 지켜봐 주시고 함께 키워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한 명의 대표 형사 캐릭터를 키우기 위해 작가는 물론 독자들과 출판 언론계 등 관련 분야 전체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제게 부족한 점들은 일깨워주시고 지적과 비판과 제안 기탄없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우리 함께 ‘이맥’ 제대로 잘 키워봅시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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