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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1회 대상 작가] 조소연 “자신의 가장 아픈 곳을 스스로 돌봐주길”

『태어나는 말들』 조소연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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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저의 아픔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타인들의 무수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이 아픔은 저만의 것이 아니라 세상과 연결된 고통인 것이죠. 글을 쓰는 과정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024.07.12)

“쓰일 수밖에 없는 글이 있다.” 제11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출간된 『태어나는 말들』에 대해 시인 허은실이 쓴 추천사의 첫 문장이다. 어머니를 잃고 비통의 구렁텅이에서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위해 쓰인 이 책은 이제껏 볼 수 없던 애도에 대한 기록이자, 억압된 여성의 삶과 욕망에 대한 분석이다. 글쓰기가 어떻게 삶을 재건할 수 있는지를 『태어나는 말들』을 통해 증명한 조소연 작가는 13년 차 편집자에서 ‘자기 해방 글쓰기’의 최전선에 서 있는 작가로 다시 태어났다. 기념비적인 데뷔작을 출간하며 새로운 작가의 탄생에 목말라 있을 독자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존재가 된 조소연 작가를 인터뷰로 만나보자. 


제11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을 수상하신 걸 축하드려요. 우선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작년 봄에 출판사를 퇴사하고 제주도로 내려오게 됐어요. 처음 몇 달간은 펜션에 틀어박혀 혼자서 글을 쓰다가 요가원에서 만난 친구들을 모아 글쓰기 모임을 하기 시작했어요. 사람들과 같이 글을 쓰면서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죠. 그해 7월에 초고가 나와서 글쓰기 모임 사람들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게 글을 공개해 반응을 살펴보고 싶었어요. 그런 면에서 브런치스토리는 다수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최적의 플랫폼이었어요. 온라인으로 책을 발행할 수도 있어서 흩어진 글들을 책의 형태로 묶어 보는 경험도 할 수 있고요. 기획 의도, 목차 구성, 타깃 독자, 표지 디자인 등을 창작자가 직접 하는 온라인 발행 형식이 상당히 흥미롭더라고요.

대상작 발표 때와 책으로 출간되었을 때의 감회가 다를 것 같은데요. 특히 13년 차 편집자이셨는데, 직접 작가가 되시는 기분이 어떠신가요? 

‘작가’라는 호칭이 여전히 낯설고 어색해요. 야생의 들판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 들어요. 『태어나는 말들』을 쓰면서 다 쏟아내다 보니 허탈하기도 하고 다시 새로운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하면 두렵기도 해요. 백지 앞에 서는 일이 삶을 살아내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불안함과 불확실 속에서 매일 매일 하루를 살아내듯이, 무얼 쓸지 불확실한 상태에서 계속해서 한 글자씩 써 내려가는 일이 서로 참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또 늘 작가님들 곁에서 일을 해왔기 때문에 저 자신이 작가로 불린다는 사실이 약간 멀미를 일으키기도 해요. 제가 어디쯤 서 있는지조차 가늠이 안 되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는 그런 상태 말이죠. 제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과 떨림이 공존하고 있어요.

문장이 너무나 유려한데, 그건 역시 ‘글’을 다루는 직업에 종사하셨기 때문일까요? 가장 영향을 받은 작가가 누구인지도 궁금합니다.

편집자의 일도 ‘글’을 다루는 일이지요. 『태어나는 말들』에도 썼듯이 저는 편집자의 시간을 혹독한 글쓰기 훈련의 시간으로 생각해요. 십 년 넘게 편집자로 일해왔어도 보도자료를 쓸 시간만 되면 정말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이제 막 인쇄를 넘겼는데, 처음부터 다시 원고를 들여다봐야 하니까요. 그런 도망가고 싶은 마음과 매일 싸우며 써낸 글들이 편집자를 단련시키는 거지요. 그런데 편집자에서 창작자로 위치가 바뀌었을 때 저는 언어의 불구자가 된 심정이었어요. 일로 쓰는 글이 아니라, 저에 대해서 쓰려고 하면 단 한 글자도 쓸 수가 없는 상태였어요. 그때 쓴 일기들을 보면 문장의 형태도 아닌, 단어 몇 글자만 간신히 나열할 정도로 어린아이의 어휘력에 머물러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한 글자, 한 글자, 아주 느리게 써 내려갔습니다. 정말로 하고 싶은 말에 집중하다 보니 조금씩 문장에 대한 감각이 살아나는 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쓰고 싶다는 절실함이 문장을 깨어나게 하더군요.

가장 영향을 받은 작가는 한 명만 뽑기가 정말 어려운데, 우선 『태어나는 말들』을 쓰면서 글을 쓰는 태도나 관점이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와 참 많이 연결돼 있구나, 하는 걸 발견했어요. 처음부터 그런 의도를 가지고 쓴 것은 아닌데, 쓰면서 공통점을 많이 발견했죠. 자신의 사적인 경험에서 출발하여 내적 진실에 충실하되 개인과 연결된 사회적 외연으로 점차 확장해 나가는 방식에서 말이지요. 언어 자체에 대한 감각은 에밀리 디킨슨과 에밀리 브론테가 쓴 시들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들은 고립된 환경에서 일평생을 살았는데, 그 감옥 속에서 단단하고 말간 조약돌 같은 언어를 건져 올렸지요. 처음부터 어휘를 다시 배우듯 잃어버린 감각을 일깨워주는 영감을 받았어요.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해 가감 없이 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아요. 글이 막히거나 포기하고 싶으신 적은 없으셨을까요? 그런 슬럼프가 왔다면 어떻게 이겨내셨을까요?

어머니에 관해 글을 쓴다는 것이 그녀의 치부를 드러내 그녀를 훼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갈등이 컸습니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계속해서 저에게 쓰도록 종용했죠. 한마디로 무언가에 ‘붙들려’ 있는 상태였어요. 저를 계속 쓰게끔 만든 것은 한 여성의 삶을 억압하는 것의 실체를 ‘알고자’ 하는 욕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 대한 이 글은 한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임과 동시에 질곡의 역사를 관통해온 우리 어머니 세대의 억눌린 욕망에 대한 사회적 해부도입니다. 저는 그것이 쓰고 싶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막히거나 전혀 써지지 않을 때, 저는 저 자신을 일부러 낯선 환경에 뚝 떨어뜨려 놓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낯선 환경은 모든 감각을 새롭게 깨어나게 하는 효과가 있어요. 숙소에서 작업하다가도 글이 막힐 때마다 밖으로 나가서 무작정 해안 도로변을 따라서 걷고 또 걸었어요. 걷다 보니, 타인에 얽힌 진실을 백 프로 완벽하게 알 수 없다면, 그 명백한 한계를 인정한 채로 계속 써보자, 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됐어요.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그렇게 다시 용기 내어 글을 쓰다가도 또 막힐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글쓰기 모임 동료들로부터 수시로 제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누군가 제 글을 읽어준다는 사실만으로 힘이 나서 계속 쓸 수 있었어요.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상실과 상처가 있는데, 작가님께서는 이걸 글로 승화하셨잖아요. 혹시 비슷하게 자신의 상처를 글로 쓰고 싶은 분들에게 조언해주실 말이 있을까요?

아픔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는 일은 부끄러운 일도 수치스러운 일도 아니에요.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문제는 남의 상처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두려워하는 건 그것 때문인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그들을 두려워한다면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요. 자신의 가장 아픈 곳을 스스로 돌봐주길 바랍니다. 자기 자신을 돌보려 할 때 글쓰기는 가장 안전한 자기 치유의 방식일 수 있어요. 설령 글을 공개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쓰는 동안에는 자기와 정직하게 대면하는 시간을 갖게 되니까요.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나의 욕망과 희망은 무엇인지 점차 뚜렷하게 드러나는 진실들을 발견하는 일이에요. 저 역시 글을 쓰면서 터널 속에서 어둠을 직시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스스로의 힘으로 오롯이 서 있다는 기분이 저를 신뢰하게 해주었어요. 거기서부터 회복은 서서히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현재 제주에서 ‘자기 해방의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고 계신데 ‘자기 해방의 글쓰기’란 무엇일까요?

제가 글을 쓰면서 변화해온 과정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저의 아픔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타인들의 무수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이 아픔은 저만의 것이 아니라 세상과 연결된 고통인 것이죠. 글을 쓰는 과정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슬픔을 글로 기록할 때, 그 글은 타인에게 가닿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갇혀 있던 고통은 비로소 세상으로 나가 흐르기 시작합니다. 저는 여기서부터 해방으로 가는 여정이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곪아 터지려는 상처에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거지요. 

그렇지만 글쓰기로 고통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다고 확언한다면 그건 사이비 종교나 다름없지요. 글쓰기는 해방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글쓰기는 다만 우리가 삶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붙잡아줄 뿐이지요. 우리 삶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고 있을 때, 정직하게 자기 이해에 도달하는 하나의 방편으로서 글쓰기를 권하는 것이죠. 먼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불가능한 꿈을 꾸게 하는 그런 비현실적인 위안이 아닌, 자기 진실을 직시함으로써 현재라는 땅에 단단하게 발붙이고 일어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책을 읽는 독자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말로 할 수 없는 아픔과 상실 속에 있는 분들이 저의 글을 읽으실 것으로 예상합니다. 저의 글은 당신에게 가닿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저의 글에서 말들의 흐름이 생겨났듯이, 저의 글을 읽고 당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의 감옥을 열고, 당신의 목소리를 내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은 이야기를 품고 있고, 그것은 태어나기를 늘 바라고 있으니까요. 당신이 가진 목소리와 언어의 힘을 믿어주세요.


*조소연

13년간 문학 인문 예술 분야 출판 편집자로 일했다. 2023년부터 제주에서 글쓰기 공동체 ‘자기 해방의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세상의 경계에 서 있을 ‘당신’을 발견하기 위해, 당신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기억하고 싶을 때 글을 쓴다.


*조소연 작가 브런치스토리 //brunch.co.kr/@soyeon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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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태어나는 말들

<조소연> 저15,12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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