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 특집] 서이제 “무언가 변해야만 소설을 끝낼 수 있어요”
2024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투표
저는 잘 알고 있는 것을 쓰기보다 알아가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노출하고 싶고, 나와 인간의 시선의 한계를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요. (2024.06.14)
예스24는 매년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를 찾습니다. 올해는 총 12명의 후보를 모아 6월 17일부터 7월 14일까지 투표를 진행합니다. 어떤 작가들이 있는지 만나볼까요?
예스24 2024 젊은 작가 후보가 된 소감
젊은 작가로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소 얼떨떨했지만 기뻤어요. 위트 있게 소감을 말하고 싶은 부담을 느끼면서... 내 안에 들끓고 있는 개그 욕심을 깨달았습니다. 헛된 욕심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인터뷰에 진지하게 임할 예정입니다.
제목을 짓기까지의 과정
기술의 변화는 인간의 감각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디지털 기술에 대한 사유 없이, 지금 이 시대를 이해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았어요. 그래서 소설을 통해 ‘디지털 기술’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했어요.
우리는 매일 일상 곳곳에서 디지털 기술을 경험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기억과 감각은 디지털 기술로부터 비롯될 수밖에 없지요. 저 또한 소설을 쓰면서, 저의 수많은 기억들이 디지털 기술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어요.
디지털 이미지로만 얼굴을 알고 있는 관계들, 유튜브를 통해 본 사건사고 등. 실제로 만난 적 없는 배우가 생을 마감했을 때 저는 제가 아는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했고,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며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카메라 어플을 통해 왜곡되고 변형된 얼굴을 ‘나 자신’의 모습으로 인식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디지털은 재현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디지털은 1과 0의 정보 값으로 이뤄진 새로운 시공간이자, 이 세계를 왜곡하거나 변형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기술입니다. 아날로그와는 전혀 다른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우리의 기억과 감각이 무엇으로부터 형성되었는지 함께 떠올려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낮은 해상도로부터'라는 제목을 짓게 되었습니다. 소설집에 수록된 소설 전체를 품을 수 있는 제목이에요.
원고가 잘 안 풀릴 때
원고가 잘 풀리지 않는다고 예전처럼 괴로워하진 않는 것 같아요. 그저 ‘또 시작이구나, 또 이러는구나.’하고 생각합니다. 올 것이 또 왔다는 생각으로 일상을 환기시키려고 노력해요. 청소를 하거나 요리를 하거나 햇살 받으며 산책을 합니다. 친구를 만나 영화를 보거나 미술관에 가는 느긋한 오후의 시간을 가져보기도 하고요. 배가 부르면 집중력이 떨어지니까 쓰는 동안에는 가볍게 먹으려고 노력합니다.
공간이나 자세를 바꾸는 것도 도움이 되었는데요. 눕거나 일어서서 쓰기도 해요. 휴대폰을 들고 산책을 나가서 조금 걷다가 쓰고 걷다가 쓰기를 반복하기도 합니다. 이 방법은 저에게 아주 잘 맞아요. 그러고 보니, 누군가의 눈에는 길거리에 서서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기도 하네요.
퇴고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내 생각이 얼마나 확장되고 구체화되었는지 확인하려고 해요. 소설은 변화를 다루는 작업인 만큼, 그 작업에 임하는 나 자신 또한 변화를 겪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상치 못한 변화라면 더 좋겠지요. 나 또한 이 소설을 통해 무언가 변해야만 소설을 끝낼 수 있어요. 저는 잘 알고 있는 것을 쓰기보다 알아가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노출하고 싶고, 나와 인간의 시선의 한계를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요.
글 쓸 때 사용하는 기기 및 프로그램
새로 산 지 일주일이 갓 넘은 맥북 위에 바나나주스를 쏟아서 다시 맥북을 사야 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새 맥북을 받았는데도 기분이 좋지 않았거든요. 그게 지금 제가 사용하는 맥북입니다. 이 맥북으로 두 번째 소설집도 내고 많은 작업들을 해왔는데도 불구하고, 그만큼 정을 주지 못한 것 같네요. 이 질문을 받고, 지금 사용하는 맥북에게 사과하고 싶어졌어요. 고생했다, 얘야. 함께해줘서 고마워.
가장 좋아하는 단어? 자주 쓰는 단어?
좋아하는 단어는 리듬이에요. 제 인스타그램 아이디에도 이 단어가 들어가요. 단어의 형태도 단정한 느낌이고, 어감도 부드러워서 좋아요. 리듬 이외에 자주 쓰는 말로는 방식, 운동성, 동선, 메커니즘 등이 있는 것 같아요. 작품이나 어떤 현상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그 단어들을 꼭 사용하게 되더라고요.
또 친구들이 제가 자주 쓰는 말에 대해 이야기해준 적이 있는데요. 저는 잘 모르고 있었는데, 제가 상대방의 말을 따라 하는 습관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예를 들면, 상대가 “그래서 화가 많이 났어.”라고 말하면 제가 “화가 많이 났구나.”하는 식이요. 어떤 사람은 제가 계속 장난치는 줄 알았다고...
최근에 즐겁게 읽은 책
일 때문에 전주를 방문했다가, 서점 카프카에서 메리 루플의 『가장 별난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의 사유재산』을 즐거이 읽었던 터라서 망설임 없이 골랐는데요. 역시나, 어쩜 이리도 아름다운 산문이 있을까. 한 문장 한 문장 감탄하면서 읽었습니다. 아름답다는 말을 아낌없이 쏟아도 좋을 책이었어요.
책을 고르는 기준 / 주로 무슨 책을 사나요?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은 출간되면 바로 구매하지만, 이외에는 대부분 우연에 기대고 있어요. 아무 페이지를 펼쳐서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이 보이면 바로 선택합니다. 문장이 저를 이끄는 것 같네요.
요새 좋아하는 물건
예전에 친구로부터 직접 만든 비누를 선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걸 사용하는 내내 매일 그 친구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비누는 매일 사용하는 물건이니까요. 천연 비누라서 그런지, 피부가 정말 촉촉하고 부드러워지더라고요. 그렇게 비누에 관심이 생겨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세상에 정말 다양한 비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모양도 용도도 정말 다양해요. 현재는 바디용 비누, 세안용 비누, 각질 제거용 비누, 샴푸 비누, 설거지용 비누 등을 사용하고 있어요. 아직 사용하지 않은 예쁜 비누도 많네요.
차기작 계획
이번 달에 자음과 모음 트리플 시리즈 『창문을 통과하는 빛과 같이』가 출간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쉬지 않고 계속 작업할 예정이라서 끊임없이 차기작을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세이, 단편, 장편 골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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