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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담의 추천사] 보철여인의 키스

안담의 추천사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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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누가 나한테 키스해 주지? 그것을 걱정하며 전전긍긍하는 한 주를 보냈다. 치아 교정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2024.06.05)


이제 누가 나한테 키스해 주지? 그것을 걱정하며 전전긍긍하는 한 주를 보냈다. 치아 교정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서른 넘어 교정을 마음 먹는 일이 얼마나 고민스러웠는지를 길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어느 날 내가 찍힌 사진을 보다가 변해버린 입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는 정도의 상투적인 얘기니까. 반면 누구에게도 키스 받지 못하리라는 두려움, 또는 누군가 내게 키스한다고 하더라도 느낌이 좋지 않으리라는 걱정은 내게는 실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느껴진다.

현재 내 입에는 악궁 확장기라는 이름의 장치가 들어서 있다. 이 장치의 힘으로 치아 사이사이를 벌려서 치아가 이동할 공간을 확보해야 본격적인 교정을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악꿍확짱기. 모든 음절이 강렬한 이 기구를 인터넷에 검색했다가 나는 덜컥 겁을 먹었다. 구식의 목공 클램프 아니면 고문 기구가 연상되는 이미지들이 와르르 쏟아졌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마개조 끝에 새로 태어나는 보철 인간을 상상하며 떨었건만, 무안하게도 치과에서 준 장치의 생김새는 하나도 하드코어하지 않았다. 어색하고 불편하기야 하지만 내 예상만큼 아프지도 않았다. 착용 기간도 한 달 정도로 짧고, 탈착식으로 잠깐씩 빼둘 수도 있다.

단,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발음이 완전히 뭉개진다는 것이다. 입천장의 대부분이 플라스틱으로 덮이는 바람에, 혀끝을 치아에 대거나 구강 내 공간을 좁혀서 내는 발음을 구사하는 게 불가능했다. 내 입에서 ‘선생님’이 ‘덩댕님’ 내지는 ‘셩섕님’이 되어 나오고, 그 어눌한 부름에 치위생사 ‘셩섕님’이 끝내 웃어버리던 순간, 나는 내가 자아의 많은 부분을 화술에 의지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똑똑하고 명료한 말하기란 게 언제나 장점만 있는 것도,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 늘 유리한 기술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나 이미 나는 약간 상처받은 뒤였다. 누구도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으리라는 낙담이 주는 상처. 통제할 수 없는 소리로 말하는 경험이 주는 상처. 내가 이 경험을 다른 어떤 이유도 아니고 다만 미세하게나마 더 아름다워지고 싶어서 스스로 선택했다는 사실이 주는 상처.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동안 상처란 단어를 제대로 발음할 수 없으리라는 전망이 주는 상처….

공교롭게도 확장기를 착용하기 며칠 전 오른쪽 입천장에 상처가 났다. 뜨거운 찌개를 신나게 먹다가 살 껍질이 벗겨졌는데, 아무리 약을 발라도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새살이 돋을 틈 없이 확장기로 꽉 덮어두기 때문인 것 같다. 혀를 올려 입천장을 쓸어보면 체온으로 미지근해진 플라스틱 덩어리가 만져진다. 나의 새 피부. 상할 일이 없는 이 무감하고 단단한 피부 아래 상하고 회복하길 반복하며 늙어가는 구식 피부가 있다. 신기하게도 이 플라스틱이 상처를 압박하고 있는 동안에는 아프지 않다. 그러다 장치를 빼면 눌러두었던 통증이 구강 전체에 뭉근하게 퍼진다. 확장기를 벗을 때마다 나는 그 상처를 혀로 지그시 눌러본다. 그러면 소름 끼치게 아프다. 확장기를 다시 차고 같은 자리를 혀로 눌러본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 극단적인 차이가, 장치를 더 할수록 무언가 모자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나를 불안하게 한다. 타인의 혀를 입속으로 불러들여서 확인하고 싶다. 내가 여전히 느낄 수 있는지를 알고 싶다. 딱딱한 새 피부로도 누군가를 느끼게 할 수 있는지를 알고 싶다. 살과 철 사이, 유기물로 된 살과 무기물로 된 살 사이, 그 경계면에서 번식하는 상처와 통증까지 포함해 내가 온전하고 건재하다는 사실을 알고 싶다.

입속의 낯선 보철을 핥으면서 나는 이런 키스를 기다린다. “딱딱하지 않아?”라고 물으면 “물론 딱딱하지.”라고 대답하는 키스. “느낌이 이상하지 않아?”라고 물으면 “느낌이 이상하지.”라고 대답하는 키스. “내 말 알아듣기 어렵지 않아?”라고 물으면 “뭐라고?”라고 대답하며 이어지는 키스. 키스를 똑바로 발음할 수 없는 사람에게야말로 더더욱 심하게 퍼붓는 키스. 사람에게는 때로 타인의 타액으로만 지울 수 있는 흉이 있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 그런 키스를. 상상 속에서 그런 키스 이후의 나는 내 이와 잇몸과 보철을 전부 드러내며 활짝 웃는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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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안담(작가)

1992년 서울 서대문에서 태어났다. 봉고 차를 타고 전국을 떠돌다가 강원도 평창에서 긴 시간 자랐다. 미학을 전공했으나 졸업 후에는 예술의 언저리에서만 서성였다. 2021년부터 ‘무늬글방’을 열어 쓰고 읽고 말하는 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2023년에 활동가들을 초대해 식탁에서 나눈 대화를 담은 첫 책 《엄살원》을 함께 썼다. 가끔 연극을 한다. 우스운 것은 무대에서, 슬픈 것은 글에서 다룬다. 그러나 우스운 것은 대개 슬프다고 생각한다. 정상성의 틈새, 제도의 사각지대로 숨어드는 섹슈얼리티 이야기에 이끌린다. 존재보다는 존재 아닌 것들의, 주체보다는 비체의, 말보다는 소리를 내는 것들의 연대를 독학하는 데 시간을 쓴다. 주력 상품은 우정과 관점. 얼룩개 무늬와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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