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든 문제는 너무 많은 생각에서 비롯된다!”
『생각이 너무 많은 나에게』 변지영 작가 서면 인터뷰
사람들은 온전히 지금에 집중하지 못하고, 불안감에 시달리다 부정적 사고 패턴으로 결국 지독한 자기 부정에 이른다. 대체 우리는 왜 자진해서 이러한 생각 감옥에 갇혀 버리는 걸까? (2024.06.04)
평소 긴장이나 불안을 자주 느끼는 사람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일 때문이야’ 혹은 ‘할 수 있었는데’, ‘그때 꼭 했어야 했는데’ 등 사실과 다른 가정을 떠올리면서 후회나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고, 어떤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떠올리며 계획을 세우는 데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쓰는 사람들, 과한 후회와 걱정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모두 ‘생각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다.
이곳에 갇힌 사람들은 온전히 지금에 집중하지 못하고, 불안감에 시달리다 부정적 사고 패턴으로 결국 지독한 자기 부정에 이른다. 대체 우리는 왜 자진해서 이러한 생각 감옥에 갇혀 버리는 걸까?
생각이 많은 사람들을 위한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생각이 많아서 괴롭다. 생각 때문에 명상도 할 수가 없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저는 그때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원인과 결과를 잘못 알고 있네요. 생각 때문에 명상을 못하는 게 아니라, 현재를 회피하기 위해 생각을 계속 지어내는 습관이 있는 것이고 도망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알아차리지 못할 뿐입니다. 그 순간을 알아차리는 게 명상이죠.’
현재의 불안, 현실의 불만을 회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방법은 생각으로 도망가는 것입니다. 일이 잘 되지 않은 이유, 내가 지금 이런 상황에 처한 이유, 불편한 관계나 불쾌한 감정의 원인을 알아내어 정리하고 분석해보려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을 해보지요. 이래서 이런 건가, 저래서 저런 건가... 하지만 늘 뭔가 미진합니다. 진짜 이유가 따로 있을 것 같고 설명이 부족해서 딱 맞아떨어지지 않습니다. 계속 생각해도 머릿속은 뒤죽박죽이고 설명은 엉성합니다. 내가 왜 그러는지, 내 삶이 왜 이런지 생각으로 명료하게 정리되지 않습니다. 생각이 뭔가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애초에 생각으로 경험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수행법에 관한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피해 어디로 도망가는 경향이 있는가? 이걸 알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줄어듭니다. ‘생각이 많아서 괴로우니 생각을 그만하라.’는 말은 소용이 없죠. 그 생각이 과연 무엇을 보완하거나 가리기 위한 것인지, 그와 연결된 감정이나 경험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많은 분들이 자기를 이해하려고 과거를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과거가 이랬기 때문에 내가 이렇고, 내 삶이 이렇다고 스스로 한정지으면서 슬퍼하지요. 과거에 대한 기억은 아주 일부 사실만 가지고 부풀리거나 왜곡한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전부 기억하는 사람은 없지요. 기억은 그 자체로 이미 왜곡인데다 삶의 핵심인 시간성과 움직임, 상호작용이 빠져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습관적 생각들, 익숙한 생각들은 다 기억이고 과거입니다.
내가 어떠어떠하다고 설명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분석과 해석이므로 생각이나 말로 규정되는 순간,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시간 일어나는 상호작용이어서 매순간 변하고 달라지기에 언어로 붙들어 맬 수 없습니다. 틀 안에 넣는 순간 왜곡이며 이내 변하고 달라집니다.
관계도 실시간 변하는 상호작용의 연속이며, 내가 오직 현재에 살아가듯 관계도 현재에만 살아 있습니다.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에게 귀 기울여 들을 때 그들은 지금 진짜로 만나고 있지요. 두 사람이 한자리에 앉아 있지만 한 사람은 ‘우리의 과거’를 추억하고 한 사람은 ‘우리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그 둘은 사실상 만남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만남에 발 담그지 않고 ‘현재’를 회피하고 있는 것이죠.
정신적 어려움, 관계의 어려움은 대개 현재를 회피하면서 일어납니다. 우리는 오직 현재에 살고 매순간의 현재는 복잡하고 모호하지요. 실시간 내가 경험할 느낌은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습니다. 생각을 계속 돌리며 현재를 회피하는 사람들은, 나쁜 일이 일어나거나 위협적인 상황이 펼쳐질까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지요. ‘알 수 없음’ 그 자체를 피하려는 것입니다. 현재의 모호함, 무한함,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억지로 생각을 만들어내어 ‘이러이러하다’고 분석하고 이름 붙입니다. ‘내가 이러이러하다’ ‘이 관계는 이러이러하다’ ‘저 사람은 이러이러하다.’
이렇게 생각으로 마음을 만들거나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책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마음을 바꾸려는 억지스런 노력이 우울, 불안, 강박, 공황장애 등을 일으킬 수 있지요. 지나치게 많은 생각은 오히려 인지 기능을 떨어뜨리고 현실의 문제들에 대처할 수 있는 에너지를 빼앗아 갑니다. 이 책은 일상의 수행을 통해 불필요한 생각은 줄이고, 매순간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마음의 원리는 체득하는 만큼 자유로워집니다.
이 책을 특별히 읽었으면 하는 독자가 있다면 어떤 독자일까요?
‘좋은 삶을 살아가고 싶다’, ‘기왕 태어난 거, 제대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모든 분들에게 권합니다.
작가님께서 명상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어렸을 적부터 산에서 도 닦고 수행하는 사람들을, 저와 아주 가깝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전부 제 스승이고 가족이며 세상 모든 사찰이 제 집이라는 이상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따금 템플스테이를 하거나 참선 수행 프로그램을 찾아갔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처럼 매일 새벽에 규칙적으로 참선을 하게 된 것은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인데요.
몇 년 전 어느 가을날 모든 것이 완전히 사라진 ‘허공’을 경험했습니다. 어떤 블랙홀 같은 것이었는데요. 완전한 공허가 느껴지는 커다란 구멍이었습니다. 그 구멍은 며칠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나 자신을 빨아들일 것처럼 위협적이었습니다.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종류의 낯선 공포가 엄습했고 저는 그 자리에 완전히 얼어붙었습니다. 그때의 감정이란 단순한 허무, 혹은 슬픔이나 두려움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내 육신과 정신을 총동원해 내려올 수 있는 바닥이로구나.’ 하는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바닥에는 정말로 아무 것도 없었고 형언할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뭔가를 찾게 되었습니다. 깊은 바닥에 내려간 나를 단숨에 끌어올릴 동아줄이 필요했지요. 내 온몸의 무게를 실을 수 있는, 검증된 동아줄이어야만 했습니다. 그때 운명처럼 만나게 된 스승이 도겐입니다. 도겐 선사는 지금으로부터 800년 전 일본의 선승으로 중국으로 유학해 깨달음을 얻고 돌아와 조동종을 일본에 뿌리내린 분입니다. 방대한 저서들이 아직 국내에는 제대로 번역되지 않았는데, 다행히 영어로 출간된 책들을 몇 권 구할 수 있었습니다.
1970년대 미국을 풍미했던 선zen 열풍도 도겐 선사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스즈키 순류, 카타기리 다이닌 등의 조동종 스님들의 가르침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스님들의 손가락이 향하는 대로, 저는 좌선을 동아줄 삼아 블랙홀에서 빠져나오게 되었지요. 특히 카타기리 선사의 책에는 제가 경험한 허공에 대해 매우 직접적으로 설명되어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권, 한 권을 통해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 가 불법을 전한 1대 조사 보리달마, 그의 제자 2조 혜가, 4조 도신, 6조 혜능에 대해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선종의 계보를 따라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도달하게 된 곳이 묵조선의 세계였습니다. 복잡한 설명 없이 간결하면서도 깊이가 있고 섬세한 묵조선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묵조선에 관한 논문과 책을 찾아 읽으며 만나게 된 분들이 동산양개, 굉지정각, 도겐, 스즈키 순류, 카타기리 다이닌, 셩옌 등입니다.
수행은 바른 견해를 갖고 바른 방법으로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요. 방대한 가르침을 기록으로 남겨주신 도겐 선사의 책들을 통해 바른 견해에 대해 상세히 이해할 수 있었고, 셩옌 선사의 책을 통해 바른 방법에 대해 익힐 수 있었습니다. 이분들 덕분에, 제게는 좌선이 밥을 먹는 것보다 먼저 챙기는, 생존 필수 목록이 되었습니다. 블랙홀을 맞닥뜨린 경험이 삶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여러분에게도 언젠가 이와 비슷한 경험이 온다면 두려워하지 마세요.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고 바른 방법을 구하세요.
생각이 많은 걸 없애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 된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책은 그들에게 마음 수행(명상)을 권하는데요. 마음 수행을 하면서도 너무 많은 생각이 떠올라서 잘 안된다는 분들도 많은데 그들에게 조언을 드린다면요?
책에서 이 문제에 대해 내내 설명하고 있듯, 생각에는 내가 일으키는 게 있고 내가 일으키지 않는 게 있습니다. 먼저 그 두 가지를 구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가 일으키는 생각에는 특정 의도와 주제들이 있어요. 현재 경험, 현재의 나로부터 도망가기 위해서 만들어내는 패턴이 있죠. 그걸 알아차리면 어마어마한 도약이 일어납니다.
한편 내가 일으키지 않는 것들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와 같은 것이니 내버려두면 됩니다. 우리 몸 여러 기관에서 끊임없이 호르몬이 분비되듯, 뇌에서는 지속적으로 생각이 분비됩니다. 뇌의 예측 기능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두 가지의 차이를 알아차리고 적절히 대처하는 능력도 꾸준한 참선과 수행을 통해 길러집니다.
명상을 하기 전과 후, 저자님의 삶에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요?
명상, 참선을 꾸준히 하는 분들은 아마 다 동의하실 텐데요. 현재를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고 할까요? 지금이 전부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도겐 선사는 “모든 존재가, 모든 세계가 매순간 바로 지금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시간과 영원이, 유한과 무한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시간을 단지 지나가는 것으로만 여기기 때문에 우리 존재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그는 강조했지요. 실상은 우리가 ‘시간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곧 시간이며 ‘시간으로서 존재’합니다. ‘땔나무가 변해 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무는 나무의 때로, 재는 재의 때로 각각 존재한다’고 한 도겐 선사의 땔나무 비유는 유명한데요. 여러 번 들여다보면 인식이 확장되고 전환될 수 있는 매우 놀라운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벚꽃 피는 봄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평소 꽃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쳐다보게 되는 게 벚꽃 풍경이지요. 화사하게 피어났다가 며칠 되지 않아 눈처럼 떨어지기에, 그 짧은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 사람들은 부지런히 구경을 나섭니다. 그런데 벚꽃이 떨어진 자리를 들여다본 적이 있으신가요? 때가 되면 벚꽃은 푸르른 이파리에게 자리를 양보합니다. 열흘 전만 해도 분홍빛이었던 나무가 어느 새 연두색, 초록색으로 옷을 갈아입지요. 그러면 꽃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꽃이 이파리가 된 것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꽃은 꽃으로 한때 존재하고 이파리는 이파리로 한때 존재합니다. 이것이 도겐이 말한 시간으로서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다섯 살 아기는 다섯 살의 때로 존재하고, 구십 살 할머니는 구십 살의 때로 존재합니다. 아기가 없어지고 할머니가 되는 것이 아니지요.
꽃이 지더라도 피어났던 ‘사건’ 그 자체는 불변이지요. 일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정성과 노력으로 꽉꽉 채웠던 순간들은 불변입니다. 이별하더라도 사랑했던 ‘사건’은 불변입니다. 불변은 곧 영원입니다. 이를테면 시시각각 우리가 보는 것은 파도입니다. 파도는 '물질'의 시공간이자 변화입니다. 하지만 파도는 동시에 바다입니다. 바다는 '사건'의 시공간이자 불변이지요. 그리해 매순간 우리가 보는 것은 영원입니다. 놀랍지 않나요?
오십 살 가까이 된 내가, 오백 년도 더 된 나무를 볼 때 영원을 봅니다. 풀잎에 맺힌 이슬에서, 우산을 타고 떨어지는 빗방울에서 영원을 봅니다. 그 순간,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다고 하는 깨달은 자들의 마음이 전해집니다. 영원은 현실 저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현실에 생생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그걸 실감하는 게 참선이고 수행입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근황과 앞으로의 집필 계획 등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삶에는 이상한 게 많습니다. 어떤 것을 내가 열정적으로 추구하다가도 그걸 얻거나 달성하고 나면 뭔가 허무하고 시들해집니다.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사람은 공교롭게도 아이를 가장 힘들게 하는 엄마가 됩니다. 자기 안에 흠, 나쁜 것, 모자란 점이 없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타인을 비난하고 괴롭힙니다. 누군가에게 의존하거나 집착하는 사람은 사실상 상대방과 관계를 맺을 생각이 없습니다. 참으로 역설적이죠.
우리는 내 안에, 내 삶에 좋은 것만 있기를 바랍니다. 나쁜 것이 자기 안에 없어야 한다고 믿으니까 고통을 겪는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것은 늘 나쁜 것과 함께 있지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제가 하는 수행과 글쓰기는 전부 다 이 주제로부터 파생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래 청정하고 자유로운 우리의 본성에 대한 이해, 본래의 마음에 대한 탐구를 계속 이어가려 합니다.
*변지영 작가, 임상·상담심리학 박사. 차의과학대학교 의학과에서 조절초점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신경과학의 최근 발견들을 토대로 심리학 이론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면서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과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번역했다. 지은 책으로 『내 마음을 읽는 시간』 『내 감정을 읽는 시간』 『항상 나를 가로막는 나에게』 『아직 나를 만나지 못한 나에게』 『좋은 것들은 우연히 온다』 『때론 혼란한 마음』 등이 있으며 『내가 좋은 날보다 싫은 날이 많았습니다』는 대만에서도 출간되었다. 현재 직장인들의 정신건강 증진과 자기조절 역량 강화를 위한 심리교육 모델을 개발하고 강의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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