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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호정의 옛 담 너머] 바다를 메워야?

현호정 칼럼 -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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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강한 나라, 권력 쥔 사람, 시시한 사익 앞에서 아까운 줄도 모르고 스스로 깎고 허물어 그 거룩하던 산들을 몹시 무너뜨린 뒤에야 바다는 약간 그나마도 어설피 메워진다. (2024.04.09)


현호정 소설가가 신화, 설화, 전설, 역사 등 다양한 옛이야기를 색다른 관점에서 읽으며, 현대와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을 전합니다. 격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아이가 바다에 빠져 죽었다. 아이는 죽은 뒤에도 원통해, 새로 환생해 다시 그 바다로 갔다. 그리고 산에서 돌과 나뭇가지를 물어다 바다에 던지기 시작했다. 자신을 죽인 바다를 없애고 싶어서. 『산해경』 「북산경」편 ‘정위’ 이야기다.1

새 하나가 백 년을 산들 이룰 수 없는 일이었으니 그 자손들이 뒤를 이어 계속했다. 이런 옛이야기의 돌발성은 ‘계속’이라는 단어에 있다. 지금도 먼바다 어딘가에서 새 한 무리가 같은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먼바다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런 가능성을 ‘계속’이라는 단어는 준다.

그러나 영화 <수라>2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바다는 그런 식으로는 절대로 메워지지 않는다. 부강한 나라, 권력 쥔 사람, 시시한 사익 앞에서 아까운 줄도 모르고 스스로 깎고 허물어 그 거룩하던 산들을 몹시 무너뜨린 뒤에야 바다는 약간 그나마도 어설피 메워진다. 그러니 산 위로 날아가 돌을 물고 내려오는 새 정위의 수고가 인간들에게 웃음거리가 된 작금의 현실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웃음을 자아낸다. 비웃음과 코웃음이 파도처럼 연달아 서로를 밀고 잡아당긴다.


쿠훌린. 출처: 위키피디아


켈트신화 속 영웅 ‘쿠훌린’은 파도에 맞선 자이다. 그가 자신의 오판으로 아들을 죽인 뒤의 일이다. 뒤늦게 사실을 깨달은 쿠훌린이 광란 상태에 빠지자 사제인 ‘카흐바드’는 바다의 파도를 군대로 만들어 그와 싸우게 했다. 이 사건을 시점을 달리해 생각해 볼까. 그는 자신이 아들을 죽였음을 알게 된 후 매우 동요한 상태에서 해일처럼 밀려오는 적군을 마주한다. 파도는 그치지 않고, 싸움은 끝나지 않고, 쿠훌린의 절망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결국 쿠훌린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칼로 그들을 내리쳤다”3 는 말로 서술은 마무리되지만, 이 마지막 문장은 그가 앞선 행보에서 보인 강인한 모습과 맞물려 또다시 ‘계속’의 마법을 발생시킨다. 영웅 쿠훌린은 지칠 수 있는가? 슬픈 아버지 쿠훌린은 쓰러질 수 있는가? 지금도 먼바다 어딘가에서 싸우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리 먼바다가 아닐 수도 있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싸우는 영웅은 예브게니 시바르츠의 희곡 「드래곤」(1943)4 에도 나온다. 이 희곡은 드래곤으로부터 마을을 구하는 중세 동화의 플롯을 가져와 근현대사를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드래곤’은 독재자고 ‘랑셀로’는 그에 맞서는 자이며 ‘고양이’는 고양이를 의미한다. 전후 레닌그라드에서 초연하자마자 상연 금지될 연극의 운명을 미리 알기라도 한 듯, 이 고양이는 매사에 너무 심드렁한나머지 랑셀로에게 드래곤과 싸워달라고 부탁할 때조차 본질적 무심함을 감추지 않는다.

“제발 그놈과 한판 붙어 주세요. 물론 드래곤이 당신을 죽이겠죠. 하지만 죽기 전까지는 화덕 앞에 퍼질러 누워서 우연이든 기적이든, 이렇게든 저렇게든, 어떻게든 당신이 드래곤 죽이는 걸 상상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마침내 대면한 랑셀로와 드래곤의 결투 장면이 이렇게 시작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무대에는 랑셀로와 드래곤, 그리고 요새 성벽에서 잔뜩 웅크리고 졸고 있는 고양이만 있다.”

그렇다. 결국 극을 통틀어 랑셀로와 드래곤의 불평등한 결투를 가장 적극적으로 돕는 이는 바로 이 고양이다. 고양이는 랑셀로에게 자신이 거기서 졸고 있을 테니 몰래 자신에게 오라고 귀띔까지 해 둔 채 기다린다. 드래곤은 영웅이 고양이 손까지 빌린 뒤에야 완전히 죽는다.

동화와 달리 이 희곡에서 드래곤의 죽음은 평화로 이어지지 않는다. 드래곤이 죽은 뒤 랑셀로도 죽고, 드래곤의 앞잡이 역할을 하던 ‘시장’은 드래곤을 물리친 게 자신이라 주장하며 ‘대통령’이 된다. 고양이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독재자의 소소하고 확실한 죽음에 놀라 혁명의 광휘를 등지고 박쥐처럼 도망치던 밤, 랑셀로 곁에 남아 홀로 그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점점 작아지다가 마침내 들리지 않게 되자 혼자 집으로 돌아가 랑셀로의 죽음을 알렸고, 그 뒤로 다시는 등장하지 않는다. 장이 바뀌고 막이 바뀌어 또 다른 혁명이 일어나도, 더 많은 이들이 힘을 모으고 심지어 죽었다고 알려진 랑셀로까지 살아 돌아와도, 모두가 최소한의 정의를 찾아 기뻐하는 자리에도 우리의 이 작은 고양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고양이는 그대로 집에 머문다. 연극이 끝날 때까지.


 

당연히 나는 이 이야기의 끝이 처음과 맞물려 있다고 생각한다. 극의 앞부분에서 고양이가 보인 지나친 무력감의 근거는 극의 뒷부분에 있다고. 용기를 내 드래곤을 물리치는 데 힘을 보탰지만 사회는 오히려 더 비열한 방식으로 나빠졌다. 의로운 동지는 내 눈앞에서 죽었고 민중은 흩어졌고 텅 빈 광장에서 ‘대통령’이 독재자의 모든 것을 이어받았다. 그러니 매일 창밖을 내다보며 고양이는 바랐으리라. 이제 다시는 랑셀로 같은 사람이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게 해달라고. 그러나 그런 마음은 왜 간절한 기다림과 뿌리를 공유하는가?

나는 이와 같이 배웠다. 누가 무엇을 오래 기다리다 굳어져 돌이 되는 ‘화석설화(化石說話)’에서 그들을 돌로 만드는 것은 간절한 마음이라고. 랑셀로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고양이는 돌이 될지도 모른다. 달리 말해 랑셀로가 없는 동안 고양이의 나날은 창턱에 올려둔 돌의 나날과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랑셀로는 그 돌을 물고 세상으로 날아가는 정위인지도 모른다. 사는 동안 우리의 어떤 마음은 새가 되고 어떤 마음은 돌이 되니, 그 새가 그 돌을 물고 날아가는 일을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자는 가소롭다.

쿠훌린이 마침내 지쳐 쓰러진대도 그 일을 쿠훌린의 패배라고 부를 수는 없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베어진 적들이 피를 뿜으며 붉은 윤슬로 번져나갈 때, 그 시뻘건 바다 한가운데서 쿠훌린이 염두에 둔 것이 애초에 승리가 아니었으므로.

드래곤과 본격적으로 싸우기 위해 비행 양탄자를 타고 떠오르는 랑셀로를 향하여 고양이는 이렇게 말했다. “안녕, 내 친구. 아휴, 근심 걱정이 한 가득이구나. 아니지, 차라리 절망하는 게 속 편할지도 몰라. 아무 기대 없이 잠이나 자면 되니까.” 하지만 요새 성벽에서 웅크린 채 졸던 고양이는 랑셀로가 찾아오자 눈을 뜨고 이렇게 말했었다. “사랑하는 랑셀로, 겁먹지 말아요.” 이 당부는 드래곤을 죽인 뒤 숨이 멎어가는 랑셀로가 텅 빈 광장을 돌아보며 내뱉는 대사에 다시 등장한다. “이거 참 화나는데. 모두 숨어 버렸잖아.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건 불행이야. (...) 저승사자가 날 부르며 재촉하네 (...) 아직 말 못한 게 있는데... 어이, 여러분! 겁먹을 거 없어요.”

겁 없는 영웅 쿠훌린이 파도가 아닌 실제 적과 싸우다 정말로 죽던 날, 창에 관통된 그는 심한 갈증을 느낀다. 쿠훌린은 호수로 가 물을 마시고 목욕을 한 뒤 물에서 나온다. 그러고는 커다란 돌에 자기 몸을 묶고 선 채로 죽는다. 그때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그의 어깨에 내려앉는다.

“우리 위로 맑은 하늘이 있을 거고, 그 누구도 감히 우리를 방해할 수 없을 겁니다.”

언젠가 랑셀로가 마을 사람에게 건넨 약속을, 까마귀 정위가 죽은 쿠훌린에게 다시 건네는 상상을 한다. 거대한 돌이 되어 쿠훌린의 의지를 지키던 고양이가 그런 정위를 향해 “사랑하는 정위, 겁먹지 말아요.” 속삭이는 상상도. 그 말을 들은 정위가 다시 날아올라 향하는 바다는 이제 마냥 두렵고 싫은 곳이 아닐지 모른다. 더 무거운 돌을 찾으러 깊은 산속 오래된 성벽에 날아들면, 거기서 졸고 있던 고양이가 기다렸다는 듯 눈을 뜨고 기지개 켜며 인사하리라. “안녕, 내 친구.”

그 끈질긴 인사를 이제 내가 이어받아 당신에게 건넨다. 애원도 협박도 조롱도 없이, 염두에는 돌멩이나 하나 둔 채로, 우리의 이 거칠고 막막한 바다 앞에서.

“사랑하는 당신, 겁먹지 말아요. 우리 위로 맑은 하늘이 있을 거고, 그 누구도 감히 우리를 방해할 수 없을 겁니다.”


1  “이 산에는 정위라는 새가 산다. 생김새는 까마귀를 닮았으나 머리에 무늬가 있으며 부리가 하얗고 발은 붉다. 이 새는 자기 이름을 부르는 듯한 소리를 내며 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염제의 막내딸 여와가 동해로 놀러갔다가 바다에 빠져 돌아오지 못하고 정위라는 새로 변했다고 한다. 이 새는 항상 서산의 작은 가지와 자잘한 돌을 물어다가 동해를 메운다.” 예태일·전발평 편저, 서경호·김영지 번역, 『산해경』, 안티쿠스, 2008.  

2  황윤, 2022. 새만금 수라갯벌의 생명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3  찰스 스콰이어 지음, 나영균·전수용 옮김, 『켈트 신화와 전설』, 황소자리, 2009.

4  예브게니 시바르츠 지음, 백승무 옮김, 『드래곤』, 지만지드라마,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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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현호정(소설가)

『단명소녀 투쟁기』 『고고의 구멍』, 『삼색도』 등을 썼다. 2020년 박지리문학상, 2023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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