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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 칼럼] 라스베이거스에서 생긴 일

이소연의 소비냐 존재냐 - 6화 “테무와 기술혁신은 우리 삶을 구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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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하는 인간 ‘호모 콘수무스 Homo Consumus’는 이제는 지구마저 소비하게 됐다. 바라는 것을 모두 살 수 있다. 그것이 지구일지라도. (2024.03.29)


기후위기 시대, 소비와 소유를 넘어 존재하는 법을 고민하는
이소연 에디터의 에세이. 격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pexels


미국 여행을 계획하며 라스베이거스에 가자는 언니의 제안에 나는 꾹 눌린 스프링이 터져 나가듯 반응했다. 사막 한가운데에 만든 카지노 시티를 가자고? 왜? 돈이 돈을 낳으며 돈으로 자급자족하는 완벽한 자본의 세계. 안 그래도 온통 돈뿐인 세상인데 여행까지 가서 라스베이거스에? 굳이?

라스베이거스 공항에 착륙하기 한참 전 ‘지구상 가장 큰 원형 건축물’이라는 스피어Sphere가 몇천 피트 상공에서 보이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창문 쪽으로 가까이 붙었다. 나도 흘끗 보았지만 괜히 ‘참나’와 함께 한숨을 내뱉었다. 전 세계 3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매년 4억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3조 원을 들여 저런 광고판을 또 만들었다고? (스피어 외관에는 밤낮 할 것 없이 24시간 대형 전광판에 광고가 재생되는데 하루 광고 단가가 6억 원이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했던가. ‘비싸기만 한 광고판’ 안에 들어갔을 때 나는 호기심이 가득한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다. 완벽한 반구 형태의 내부에 깔린 16K 해상도의 초대형 LED 스크린에는 초현실적 세계가 펼쳐졌다. 인공지능 기반 스피커는 바람과 온도, 음향 제어 시스템을 통해 손 뻗으면 닿을 듯한 생생한 감각을 만들어냈다. 이 정도 기술에 자본이면… 빈곤, 기후, 불평등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지 않을까.

“지구에서 온 엽서 Postcard from Earth” 한 사람당 99달러를 낸 사람들의 눈앞에는 유토피아가 펼쳐졌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탄성을 자아냈다. 어둠 속에서 파란빛을 내는 물고기 떼는 아름다운 춤을 추듯 자유롭게 헤엄쳤고, 새하얀 눈이 뒤덮인 산에서 여우는 간간히 앞발의 눈을 핥아가며 느릿느릿 걸어갔다. 다른 곳도 아닌 라스베이거스에서 ‘지구’를 만날 줄은 몰랐다. 그래, 이게 지구였지. 우리가 살아가는 푸른 지구.

‘소비하는 인간은 모든 것을 소비품으로 만든다.’

에리히 프롬이 1967년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에서 이 말을 했을 때, 그는 아마 인간이 지구마저 소비하게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껏해야 휴식을 호캉스로, 취향을 한정판으로, 일상을 브이로그로, 사랑을 명품 웨딩밴드로 바꾸어 놓는 정도일 줄 알았겠지만, 소비하는 인간 ‘호모 콘수무스 Homo Consumus’는 이제는 지구마저 소비하게 됐다. 바라는 것을 모두 살 수 있다. 그것이 지구일지라도.

그런 믿음이 있다. 과학 기술의 혁신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무한한 경제 성장과 소비만 있다면 인류는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답니다,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술 낙관주의. 자본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에서 나는 그 편리한 낙관을 잠깐이나마 맛 보았는데, 이는 건물 주차장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꺾였다. 화려한 카지노 호텔 뒷골목에는 현실이란 것들이 온통 발에 채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주 노동자들은 카지노에서 나온 수십 개의 큰 쓰레기통을 더 큰 쓰레기통에 비워내고 있었고, 가슴을 드러낸 채 공짜 술을 나르던 여성들은 아무런 표정 없이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이 지극한 현실을 피해, 지구라는 초현실에 감탄하는 꼴이라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아니 그렇다고 믿는 지구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발전과 성장이 거듭된 지난 50년 동안 동물 개체수의 70%는 멸종했다. 60도의 폭염, 기록적인 폭우에 사람들도 죽어간다. ‘우리의 지구’는 구독료를 내야 하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서나 존재한다. 진짜 지구에는 파도가 끊임없이 토해내는 쓰레기만 쌓여있고, 인류에겐 이 모든 성장의 대가로 단 하나의 의무 ‘소비’만이 남아있다.

“억만장자처럼 쇼핑하라, Shop like a Billionaire.”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던 날, 미국 슈퍼볼 결승전을 앞두고 온라인 커머스 ‘테무’의 광고가 전광판을 뒤덮었다. 테무는 아마존, 알리익스프레스, 쉬인마저 비싸다며 95원짜리 속옷, 252원짜리 악기, 1532원짜리 전자기기를 판매하는 초저가 이커머스 플랫폼이다. 테무는 슈퍼볼 기간 초당 3억 원꼴의 광고비를 썼는데, 덕분에 도시 전체가 광고 전광판인 라스베이거스 도심에는 ‘억만장자처럼 쇼핑하라’는 바이블이 곳곳에 새겨졌다. 라스베이거스라는 도시와 딱 어울리는 광고였다. (테무는 마침 마케팅의 한 수단으로, 카지노 슬롯머신을 착용하고 있다. 코인을 모아 룰렛을 돌리면 제품을 공짜로 살 수 있다.)

완전한 소비의 시대, 우리는 과연 이 모든 소비 끝에 더 ‘잘’ 살 수 있을까.

밤하늘의 비행기에서 다시 내려다본 라스베이거스는 여전히 빈틈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전 세계 8억 명이 기아에 시달리고 있지만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호텔 조명은 꺼지지 않는다. 기후재앙이 12억 명의 난민, 아니 그 이상의 피해가 오기 전에 뭐라도 합시다, 라는 그 핏대 높인 외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보다 더 끔찍한 미래가 와도 사람들은 여전히 룰렛을 돌리고 테무(혹은 또다시 등장할 새로운 이커머스 플랫폼)의 초저가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으며 평범한 일상을 이어갈 것이다. 사랑하는 것들을 위해 일한다고 믿으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을 기꺼이 포기하고, 한 해에 한 번 떠나는 해외여행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이 정도면 괜찮은 삶이라고 위안할 것이다. 이게,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다.

좋은 노래를 듣고 울림을 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가끔은 여행도 하며 기술혁신에 감탄하는, 이런 평범한 삶의 영위는 어디까지 더욱 고도화될까?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비인간 존재의 삶은, 어디까지 바닥 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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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소연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자)

싼 가격에 ‘득템’하는 재미에 푹 빠져 기쁘나 슬프나 옷을 사다, 2019년부터 새 옷을 사지 않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미디어 스타트업 뉴닉에서 3년간 에디터로 일하며 기후위기, 환경, 포스트팬데믹 뉴노멀에 대한 글을 썼다. 바닷속과 바닷가의 쓰레기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해양환경단체 시셰퍼드 코리아 활동가가 됐고, 스쿠버다이빙을 통해 바다 깊은 곳에 버려진 폐어구를 수거하는 정화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생태전환 매거진 [바람과물]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릿터] [코스모폴리탄] [1.5도씨매거진] 등 다수의 매체에 기후위기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2019년 아산정책연구원 영펠로로 선발돼 워싱턴에서 미국의 분리배출 및 폐기물 정책 디자인을 연구했고, 2020년 제2회 아야프(아시아 청년 액티비스트 리서처 펠로십)에서 국내 재활용 정책 및 현황을 연구했다. 그 밖에 스브스뉴스 「뉴띵」, 모비딕 「밀레니얼 연구소」, EBS FM 「전효성의 공존일기」, KBS 라디오 환경의 날 특집 같은 예능·교양 콘텐츠에 출연하거나 환경 교육 및 특강을 진행하는 등 일상적인 방식으로 기후위기, 그린워싱, 패스트패션의 허와 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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