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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스 콘란 “뜻밖의 영화를 기다려요”

『필수는 곤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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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뜻밖의 영화, 제가 기대하지 않았던 재밌는 영화를 기다려요. 모르는 곳에서 온 재밌는 작품을 보면 그게 제일 좋은 추억이죠. (2024.01.16)


“20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나의 한국 영화 사랑도 운이 많이 작용했다”고 그는 적었다. 처음 한국 영화와 만난 건 실수 때문이었다. 잘못 고른 DVD가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이었고, 이 “미친 영화” 덕분에 빠르게 한국 영화와 사랑에 빠졌다. 대학교 졸업 논문으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에 대해 썼고, 이후 영국의 작은 공항에서 우연히 봉준호 감독과 만났다. 그 즈음 그에게 한국행을 권한 것은 <기생충>의 번역가로 유명한 달시 파켓이었다. 2012년에 한국에 온 뒤로 한국의 영화, 드라마와 관련해서 다양한 일들을 하게 됐고, 이경미 감독과 가족이 되었으며, ‘권필수’라는 한국 이름도 갖게 됐다. 역시, 우연이 반복되면 운명인 걸까.

첫 번째 에세이 『필수는 곤란해』를 펴내며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내 인생이 이미 한국 영화와 깊이 엮이게 되어서, 내 삶과 한국 영화는 떼어낼 수 없다.” 그래서 책에는 피어스 콘란의 삶이 담겼고, 한국 영화의 이야기가 담겼고, 둘이 교차하는 순간이 담겼다. 피어스 콘란은 애정 가득한 눈길로 한국 영화를 바라보는 동시에, 그 안에 담긴 한국 사회의 민낯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그의 낯설고 새로운 시각이 반갑다. 추천사를 쓴 박찬욱 감독은 “바로 그래서 우리 한국인이 필수 씨 말을 경청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피어스 콘란 저자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스위스에서 자랐으며, 더블린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영화와 프랑스문학을 전공했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관련해 기자, 프로듀서,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문 웹사이트 <KoBiz>의 편집자로 오래 일했고, 현재 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에 한국 드라마 평론을 기고한다. 이상우 감독 작품의 프로듀서를 맡고 있으며, 각본을 쓰고, 영화와 드라마 대본을 번역한다.



한국 영화에 빠진 이유

제목 『필수는 곤란해』는 박찬욱 감독님의 제안이었다고요. 처음 제목을 들으셨을 때 어떠셨어요? 

너무 재밌었어요. 말놀이로써도 재밌는데 책의 핵심(essence)도 담고 있었어요. 그 제목을 보기 전에는 제가 쓴 책이 무엇인지 잘 몰랐어요. 박찬욱 감독님이 제목을 제안하신 다음에 ‘내가 그런 책을 썼구나’ 싶었어요. 아주 알맞은 제목인 것 같아요.

출간 제안을 받고 반년 동안 괴로워하셨다고요. 

물론 제안을 받았을 때 너무 영광스러웠어요. 그런데 제가 그때 정말 바빠서, 책 쓰는 일은 시간이 꽤 걸릴 테니까,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어요. 그리고 15년 동안 기자로서 평론가로서 매일 글을 썼지만, 그런(에세이 같은) 글을 써본 적이 없었어요. 맨날 객관적으로 쓰는 사람인데, 에세이라면 개인적인 이야기도 해야 하잖아요. 또 그동안 제가 쓴 모든 글의 독자는 한국 사람은 아니었어요. 해외에 있는 독자들에게 글을 많이 썼어요. 그래서 ‘내가 한국 사람에게 할 만한 이야기가 있을까’ 그런 고민이 있었어요. 그런데 경미(이경미 감독)가 ‘깊은 생각 없이 그냥 해. 그냥 그렇게 하면 돼’라고 했어요. 물론 맞는 말이었어요. 일단은 시도해야죠. 시도해야 나아지니까요.

책을 쓰기로 마음먹으신 다음에는 ‘어떤 내용을 쓸지’ 고민하셨겠죠.

물론 한국 영화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외국인으로서 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도 쓰고 싶었고, 개인적인 이야기도 담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어떤 스타일의 에세이를 쓰고 싶은지 생각했고, 구조를 생각한 다음에는 어떤 주제를 담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처음 쓴 챕터는 「투신자살하는 회사원」이었는데, 아마 다른 챕터랑 조금 다를 거예요. 왜냐하면 개인적인 이야기는 조금밖에 없고, 제가 평소에 영화 기자로서 쓰는 영화 에세이 같은 느낌이거든요. 그 챕터를 쓴 다음에 제가 정말 그런 에세이를 쓰고 싶은지 생각해 봤는데, 조금 더 도전하고 싶어서 스타일을 바꾸게 됐어요.

「투신자살하는 회사원」에서 이렇게 쓰셨습니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는 하나같이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해온 문제들이 얽혀 있다.” 한국 영화가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많이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세요? 

정말 많이 해요. 그래서 처음에 제가 한국 영화에 빠지게 됐어요. 아주 솔직하고 깊게 사회 문제를 탐색(explore)해요. <박하사탕>은 제가 두 번째로 본 한국 영화인데, 오프닝에서 굉장한 충격을 받았어요.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고?’ 하고 놀랐어요. 시간을 되돌려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 너무 좋았어요. 이미 사회에 문제가 있었다는 증거죠.

이경미 감독님이 추천사에 쓰시길, 작가님이 책 쓰기를 “마치 혹부리 영감의 혹처럼” 달고 다녔다고 하셨는데요. 집필을 마친 뒤에는 어떠셨어요? 개운하신가요? 

조금 다행이었고, 큰일이 끝난 다음에 찾아오는 괜찮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지금은 책이 나오고 나니까 ‘어떻게 될까? 잘 될까?’ 그런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어요. (웃음) 책이 나온 다음에 뭘 해야 되지? 하는 생각도 하고요. 솔직히 작년에 새로운 책 아이템을 생각했는데, 다음에는 소설 쓰기에 도전하고 싶어요. 몇 년 전에 경미랑 어떤 아이템을 디벨롭 시켰는데요. 제가 트리트먼트를 썼고, 계속 이 아이템에 대해 생각하다가 (이경미 감독에게) ‘이 아이템을 소설로 바꾸면 어떨까요?’ 했더니 ‘그럼 해’라고 해서 써보려고 해요.

어떤 이야기인지 조금만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약간 장르 소설인데, 가족 드라마도 있고 미스터리 스릴러 요소도 있고요. 살짝 공포도 있고, 아마 SF가 될 거예요. 아직 정확하지는 않고 시놉시스 만드는 중이에요.



상상력 없어진 한국 영화

언제부터 영화를 좋아하셨어요? 

아이였을 때는 영화를 거의 안 봤어요. 부모님이 다른 취미가 있으셔서 영화를 잘 안 보시는 분들이었어요. 특히 어머님은 책을 아주 많이 읽으셨는데, 그래서 저도 아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어요. 그런데 열두 살에 중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그때 아일랜드의 기숙학교에 다녔는데요. 너무 외롭고 힘들었어요. 제가 (스위스에서 자라면서) 영어보다 불어를 배웠기 때문에 아일랜드의 학교에 갔을 때 영어가 부족했거든요. 제가 아일랜드 사람인데도 영어를 쓰는 게 어색했고 그래서 힘들었어요. 그런데 중학교에 가고 6개월 후에 학교 옆에 새로운 극장이 생겼어요. 그때부터 맨날 가서 (상영하는) 모든 영화를 봤어요. 그 극장 때문에 (현실에서) 도망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너무 재밌었어요. 그런데 돈이 없으니까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DVD를 빌려주고 돈을 받아서 영화표도 사고 새로운 DVD도 샀어요. 제가 가진 모든 돈을 영화 보는 데 썼어요.

영화가 재밌다고 느끼신 이유는 뭐였어요?

글쎄요. (영화로) 도망치는 것, 아마 그때는 그게 제일 중요했을 거예요. 제가 책을 많이 좋아했는데, 빠져드는 이야기를 극장에서도 봤을 때 재밌었어요. 그런데 책하고 비교했을 때 영화의 다른 점도 너무 좋아했어요. 미장센이라는 거 있잖아요. 촬영, 음악, 편집, 이 모든 것들을 포함해서 다 너무 재밌었어요.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유니크한 것이었어요.

처음 한국 영화를 보셨을 때 ‘지금까지 봐온 다른 영화들과 다르다’고 느끼셨어요? 

네, 아주 달랐어요.

어떤 점에서 다르게 느껴졌나요? 
일단은, 제가 <복수는 나의 것>을 우연히 찾게 됐어요. 그때는 일본 영화를 많이 좋아했는데 구로사와 아키라, 미이케 타카시, 키타노 타케시 같은 감독들을 좋아했어요. (그 전에) 학교에서 문학 수업 시간에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공부했는데 『맥베스』를 각색한 모든 영화를 보고 싶었어요. 로만 폴란스키 버전도 있고, <거미의 성(蜘蛛巢城, The Throne of Blood)>이라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버전이 있는데, <거미의 성>을 아주 재밌게 봤어요. 아직도 제일 좋아하는 영화 중에 하나일 정도로. 그래서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들을 본 다음에 새로운 일본 영화도 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복수는 나의 것>을 실수로 고르게 됐어요. (웃음)

일본 영화인 줄 알고 고르셨던 거죠. (웃음) <복수를 나의 것>을 본 느낌은 어땠나요?

너무 놀랐어요. 영화가 아주 잔인했고, 정말 이해 못했어요. 그래서 솔직히 화가 났어요. 주변 사람들한테 ‘정말 잔인하고 미친 영화를 봤는데 너무 싫다’고 많이 화풀이 했어요. 그런데 몇 주 후에도 제가 계속 그 영화를 생각하고 있어서, 다시 보게 됐어요. 그때는 아주 재밌게 봤어요. 그래서 더 알고 싶었어요. 다시 DVD 가게에 갔고 새로운 DVD 구입했는데 <박하사탕>과 <섬>이었어요. <박하사탕>은 저한테 어떤 역사책 같았어요. 그 영화 때문에 많이 배웠어요. 너무 좋은 영화예요. <섬>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인데, 다른 색깔 있죠. 그 영화들은 물론 스타일과 미장센이 있었고, 한국 사회나 한국 역사를 많이 담고 있었는데, 힘든 이야기를 두려움 없이 분명하게 이야기했어요. 그 점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20년 전에 나온 새로운 한국 영화들은 다른 나라 영화보다 야심이 많았고 새로운 스타일에 도전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너무 신선하게 느꼈고 빨리 (한국 영화에) 빠졌어요.

지금의 한국 영화는 어떤가요? 2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사라진 모습들도 있겠죠?

물론 20년 전과 완전히 달라요. 특히 요즘은 아주 힘든 기간이잖아요. 그리고 제 생각에는 한국 영화 산업이 정말 성공해서, 그것 때문에 영화 색깔이 많이 변했어요. 20년 전에 CJ처럼 큰 스튜디오는 생긴 지 얼마 안 됐었어요. 아마 그때는 자신감이 조금 없어서 제작사를 더 신뢰해야 했을 거예요. 그래서 아주 독특한 영화를 만들 수 있었어요. <지구를 지켜라!>처럼요. 지금은 CJ 같은 회사들이 많이 성공했고, 경험도 많아졌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흥행이) 잘 되는지 잘 아니까, 좀 엄격한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모니터링 시스템 같은 거죠. 단점은 상상력이 좀 없어졌다는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롭게 시작하는 감독(신인 감독)이 스튜디오의 규정대로 해야 돼요. 예를 들면 <지구를 지켜라!>를 만들 때 장준환 감독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할 수 없어요. 예를 들면 독립 영화에서 <세이레>의 박강 감독, <다섯 번째 흉추>의 박세영 감독, <같은 속옷을 입은 두 여자>의 김세인 감독처럼 너무 좋은 신인 감독들이 있어요. 이 감독들이 어느날 상업영화에 도전할 수 있는데 그때도 자신만의 색깔을 보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확신할 수 없어요. 그래서 걱정이 많이 돼요. 이렇게 재능 있는(talented) 감독들이 영화 산업 안에서 디벨롭 할 수 없다면, 앞으로 거장(master) 감독이 나올까요? 20년 전에 큰 상업영화 감독들은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 감독님이었어요. 그리고 나홍진 감독님이 있죠. 아주 성공한 감독으로 김용화 감독님과 윤제균 감독님이 있고요. 그런데 지금도 똑같아요. 예술적이면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는 이 감독들의 영화예요. 물론 새로운 감독은 어디에나 있어요. 하지만 지금의 이 시스템 안에서는 발달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슬퍼요.

요즘 한국 영화에 ‘돈’이 많이 모이기는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규모가 큰 작품만 만드는 것 같기도 해요. 작은 영화들을 보기 힘들어진 것 같습니다. 

네, 그것도 슬퍼요. 물론 큰 예산 영화가 많고 <신과 함께> 같은 몇몇 작품은 정말 잘 됐는데요. 10년 동안 이런 큰 예산의 영화가 계속 나오는데, 대부분은 그 정도로 (흥행에) 성공하지 않아요. <노량> 같은 경우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보는데, 손익분기점이 750만 명인가 돼요. 너무 많지 않아요? 솔직히 이해가 안 돼요. 아주 잘 되는 영화가 항상 예산이 큰 건 아니에요. 예를 들면 <7번방의 선물>이나 <극한직업> 같은 영화는 아직도 잘 돼요. <범죄도시>도 지금까지 잘 되고요. 그런데 스튜디오들은 할리우드처럼 큰 예산 영화만 하고 있어요.



뜻밖의 영화를 기다립니다

영화를 보는 환경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영화관이나 블루레이를 이용하지 않고 스트리밍(OTT) 플랫폼을 통해서 보는 경우가 많은데요. 작가님은 영화와 책을 수집하는 사람으로서 “미래의 시네필들은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든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TCM(Turner Classic Movies)이라는 영화 채널을 많이 봤어요. 영화에 빠지게 된 후에 그 채널을 통해서 정말 많은 고전 영화를 알게 됐어요. 그리고 영국 영화 잡지도 많이 읽었고요. 지금은 넷플릭스나 디즈니, 아마존 프라임이 있죠. 물론 좋은 영화들이 많은데, 문제는 큐레이션이 좀 없는 것 같아요. 알고리즘이 정말 효율적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가끔 들어요. 봉준호 감독님이나 박찬욱 감독님은 어렸을 때 AFKN을 통해서 많은 고전 미국 영화와 ‘뉴 할리우드’를 봤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새로운 걸 알게 된 거죠. 그런 게 좋은 거예요. 지금의 스트리밍 플랫폼을 보면 그런 큐레이션은 없어요. 시네필로서나 영화인으로서 새로운 거에 도전해야 된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냥 인기 많은 거, 아니면 알고리즘을 통해서 똑같은 취향의 영화만 보면 발달할 수 없어요.

스트리밍(OTT) 플랫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작품만 계속 상영되는 거잖아요. 메이저만 남고 마이너한 것은 점점 자리를 잃게 되는 것 같습니다. 

네, 정말 힘들어요. 영화 복원(restoration)과 관련해서도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기술은 계속 바뀌고 있고 오래된 것은 사라지고 있어서 힘들어요. 저는 끝까지 블루레이 수집가로 있을 거예요. 지금 2,500편 정도 가지고 있는데 대부분은 어떤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도 못 보는 영화들이에요.

장르 영화도 좋아하시잖아요. ‘한국의 SF나 호러가 예전만 못하다’는 아쉬움은 없으세요? 

제가 한국 공포 영화를 많이 좋아하는데요. 물론 20년 전에 정말 재밌는 영화가 많았고 지금 그 정도로 많지는 않지만 아직 있어요. 요즘은 독립 영화에서 <다섯 번째 흉추> <세이레> 같이 잘 만든 공포 영화들을 볼 때가 많아요. 제가 SF도 정말 좋아하는데, 아마 SF에는 조금 엄격할 거예요. 대부분 한국 SF 영화는 SF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고 있는가,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어느날 어떤 좋은 SF 영화가 나타날 수 있겠죠. 지금은 아직 기다리고 있어요. 봉준호 감독님 영화는 제외하고.

현재 봉준호 감독님이 촬영 중인 작품도 SF죠?

맞아요. <미키 17>이에요. 원작 소설(『미키7』)을 읽었는데 재밌었어요.

한국에 오시기 전에, 봉준호 감독님을 우연히 만난 적 있으시죠?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한국에 올 결심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때 제가 ‘모던 코리안 시네마(Modern Korean Cinema)’라는 블로그(한국영화 팬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영국의 어떤 컨퍼런스에 초대 받아서 방문했었어요. 그때 런던의 아주 작은 공항에서 봉준호 감독님을 우연히 만나게 됐어요. 그리고 몇 달 후에 이탈리아의 우디네 극동영화제(Udine Far East Film Festival)에서 달시 파켓을 만나게 됐어요. 그전까지 이메일만 주고받다가, 직접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달시는 제가 한국에 가면 좋겠다고 했고, 그때 설득 당했어요. 그리고 두 달 뒤에 한국으로 이사하게 됐어요.

작가님과 한국 영화 사이에 운명적인 순간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네. 봉준호 감독님과의 우연한 만남도 그렇고, 특히 <복수는 나의 것>을 잘못 구입한 건 너무 좋은 실수였죠. (웃음) 그리고 한국으로 이사한 다음에는, 정말 우연이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예요. 그때부터 제 인생의 모든 것이 한국 영화와 관련이 됐으니까요. (한국 영화는) 그냥 인생이죠.

『필수는 곤란해』에는 한 편의 글과 한 편의 영화가 짝지어져 있습니다. 이런 연결은 어떻게 떠올리셨어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통해서 제 취향을 보이고 싶었어요. 아주 유명한 영화가 아니라 조금 특이한 영화로써, 저의 개인적인 면을 보이고 싶었어요. 일단은 큰 리스트를 만들고 좋아하는 작품, 특히 제목이 재밌는 영화를 포함시켰고요. 몇몇 주제를 선택했을 때 어떤 영화와 연결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새로운 주제를 떠올렸을 때 목록에서 알맞은 영화를 찾지 못하면 새로운 걸 생각해야 했고요. 그래서 언급하고 싶었던 영화들을 말하지 못하기도 했어요.



작가님은 어떤 영화를 기다리고 계세요?

너무 뜻밖의 영화, 제가 기대하지 않았던 재밌는 영화를 기다려요. 물론 봉준호 감독님과 박찬욱 감독님의 신작을 늘 기다리지만, 모르는 곳에서 온 재밌는 작품을 보면 그게 제일 좋은 추억이죠. 그래서 영화제에 가는 걸 너무 좋아해요. 한국 독립 영화는 거의 다 보고요. 가끔 좋은 영화를 발견할 때 정말 재밌어요.

책을 읽으면서 작가님은 ‘뻔하지 않고 새로운, 어떤 의미에서는 충격을 주는’ 영화를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주 뻔한 영화도 가끔 좋아해요. 장르 영화도 괜찮아요. 예를 들면 필름누아르 같은, 비슷한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지만 잘 만든 영화는 너무 재밌어요. 아니면 잘로(Giallo) 영화, 1970년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추리 영화들의 경우에는 다 비슷하지만 재밌어요. 그런데 보통은 뻔하지 않은 영화가 제일 멋있어요.

만났을 때 ‘미친 거 아냐? 이렇게 만들었다고?’ 하는 반응이 나오는, 놀라운 영화들이 있죠. 

맞아요. 그래서 작년에 제일 좋아한 영화들은, 한국에서는 <킬링 로맨스>였고, 해외에서는 <Poor Things>였어요. <Poor Things>는 아직 한국에서 개봉하지 않았는데, 부산영화제에서 봤어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작품인데, 너무 미친 영화인데 너무 재밌어요.




*피어스 콘란(권필수)

한국 이름 권필수, 영화인.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관련해 기자 및 프로듀서, 컨설턴트로 일한다. 2012년부터 한국에 살고 있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스위스에서 자랐으며, 더블린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영화와 프랑스문학을 전공했다. 현재 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에 한국 드라마 평론을 기고한다. 스위스 프리부르 국제영화제 및 미국 판타스틱 페스트 프로그래밍 자문, 아시아 필름 어워즈와 들꽃영화상의 자문을 맡고 있으며, 영화와 드라마 관련 한국 TV와 라디오에도 출연한다.
영화진흥위원회 영문 웹사이트 〈KoBiz〉의 편집자로 오랫동안 일했고,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제작사이자 에이전트인 XYZ필름에서도 일했다. 주로 이상우 감독 작품의 프로듀서를 맡고 있으며, 때때로 각본을 쓴다. 영화와 드라마 대본을 번역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단역으로 영화에 출연하기도 한다.




필수는 곤란해
필수는 곤란해
피어스 콘란 저 | 김민영 역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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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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