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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경의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 독서클럽

<월간 채널예스> 202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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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난독증은 자발성이 위축되고 즐거움이라는 감각이 극도로 퇴화되는 것에 가까웠다. 책을 읽는 것이 즐겁지 않으니 읽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다. 독서클럽은 이 부분에 대한 절묘한 해답이 되어주었다.

일러스트_김미화

2014년 봄, 세월호 사건이라는 전대미문의 충격에 온 국민이 집단적인 우울증과 상실감에 시달리던 계절에, 딸 꿀짱아가 다니던 중학교에서 ‘학부모 독서클럽’을 조직한다는 가정통신문이 날아왔다. 그 무렵 교육청에서 학교별로 학부모 동아리를 조직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학교에서는 독서클럽이니 꽃꽂이니 하는 몇 가지 동아리를 급히 신설해 학부모 동아리 회원을 모집한다고 알렸다. 

개인의 일상이 온통 허무하게 여겨지고 국가 시스템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환멸에 잠겨 있던 그 시기에, 학부모 동아리 회원을 모집한다는 가정통신문의 건조한 문체는 내 눈에 한심하기 그지없게 보였다. 세상에 하등 쓸데없는 어용 집단을 만든다는 식으로 짜증스럽게 여겼고 그런 일에 참여할 의욕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꿀짱아의 담임 선생님은 국어 선생님이었고 신설되는 학부모 동아리의 책임 교사였다. 담임 선생님은 학급 아이의 학부모가 소설가인 것을 쉽게 알아보았고 내가 독서 동아리를 맡아줄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도무지 사양할 핑계를 떠올릴 수 없는 외통수였다. 울고 싶은 심정으로 신설되는 학부모 독서클럽을 맡게 되었다. 

학부모 동아리 활동이란 것이 그다지 신나는 것은 아니라서, 첫 모임에 나타난 회원들은 모두 나처럼 담임 선생님의 권유에 등 떠밀려 온 비자발적 참여자들이었고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나는 독서클럽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이전까지 아무 경험이 없었고 처음 입학한 학교에서 동아리라는 형식으로 낯선 학부모들을 만나는 게 두렵기도 했다. 어색하고 우왕좌왕한 채로 독서클럽이 시작되었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나는 독서클럽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독서와 친목 경험에 정신없이 푹 빠져들기 시작했다. 

3년 뒤 꿀짱아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그곳에서 3개의 독서클럽을 더 만들었다. 이미 졸업한 중학교에서도 또 하나의 독서클럽을 더 만들어 총 5개의 독서클럽을 꾸리게 되었다. 각 독서클럽에서 매달 1권씩만 읽어도 매달 5권의 책을 읽어야 했다. 그 무렵 EBS 라디오에서 매주 한 권씩 책 소개도 하고 있었으므로 기본적으로 매달 9~10권을 읽어야 하는 셈이었다. 꿀짱아의 입시는 다섯 개의 독서클럽과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눈코 뜰 새 없는 가운데 정신없이 흘러갔다. 

매달 꾸준히 9~10권의 책을 읽는다면 내 기준에 결코 적은 독서량이 아니다. 그런 사람을 난독증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난독 상태의 나에게는 기절할 것 같은, 불가능에 가까운 독서량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독서클럽을 위해서라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3년에 걸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에 접어들었을 때 어쩔 수 없이 독서클럽 활동을 축소하게 되었다. 2개는 영상 모임으로 명맥을 이었고 3개는 활동을 중단했다. 솔직히 책 읽기가 힘겹기도 했으므로 한숨 돌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독서클럽이 없어지자 나는 커다란 허전함을 느꼈고 사회적 거리 두기가 끝났을 때 다시 2개 모임을 부활해서 지금은 4개의 독서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난독증 한가운데에서 책 읽기가 극도로 어려웠던 시기에 교육청 정책에 등 떠밀려 타의에 의한 독서클럽을 시작하게 되었다. 마지못해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행복의 원천이 되었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난독증자인 내가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정말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책 읽기가 극도로 어렵기도 했지만, 독서클럽의 주제 도서를 읽지 못한 채 모임에 간 적은 한 번도 없다. 어떻게든 읽었다. 

난독증이 가장 심했던 시절에도 나는 몇 가지 문학상이나 창작지원기금의 심사 위원으로 위촉되었는데, 그것은 수십 편의 원고를 짧은 기간 안에 집중해서 읽어내야 하는 일이었다. 심한 두통이나 익숙한 공포심이 찾아오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나는 읽어야 하는 원고들을 성실하게 읽었다. 좋은 작품을 가려내는 감각에도 이상이 없었다. 심적으로 고되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할 수 있었다. 난독증이라는 괴상한 증세에 대해 내가 한 가지 알고 있는 것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은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내가 겪은 난독증은 자발성이 위축되고 즐거움이라는 감각이 극도로 퇴화하는 것에 가까웠다. 책을 읽는 것이 즐겁지 않으니 읽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다. 독서클럽은 이 부분에 대한 절묘한 해답이 되어주었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북적북적한 만남을 좋아한다. 함께 읽는 책이 항상 내 취향을 저격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즐거운 모임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책 읽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일러스트_김미화

독서클럽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느끼는 일일 텐데, 같은 책을 읽고서도 사람들의 감각과 생각이 얼마나 천차만별 다를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정말이지 놀랍고도 신비한 일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좌절감을 느낄 때가 많다.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그게 독서클럽의 책이라면 이런 희망으로 견딜 수 있다.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다른 분들이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실 거야.’ 그리고 독서클럽은 이런 믿음을 한 번도 배신하지 않았다. 다른 회원들조차 의미 있는 지점을 하나도 찾아내지 못한 책이라면? 그렇다면 그날의 모임은 저자를 신나게 비판하는 것으로 대동단결하면 된다.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의 경험과 생각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같은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눈길이 머무는 지점이 모두 다르고 좋아한 것, 싫어한 것의 포인트가 모두 다르다. 수없이 여러 번, 우리는 ‘이 책에 이런 문장이 있었나요!’ 하고 놀라고 감탄했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아름다운 문장과 통찰들이 함께 읽는 독서클럽 회원들의 눈으로 숱하게 찾아졌다. 우리는 그런 순간들에 언제나 매료되고 감사함과 일체감을 느꼈다. 독서클럽에 관해서 이야기하다 보면 잘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렵거나 위험하지 않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나에게도 처음에는 그런 두려움이 있었고 실제로 매우 대하기 어려운 회원들을 몇 번 겪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진상 회원의 비율은 거의 무시할 만큼 미미하고, 독서클럽이 주는 안정감과 화목함 속에서 그들이 일으키는 문제들은 점점 희석되어 사라져 갔다. 그렇게 모난 부분이 둥글어져 가는 과정에서 독서클럽 회원들의 결속력과 애정은 더욱 단단하게 단련된다. 

처음에는 내가 운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책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회원 중에는 항상 책을 가까이하는 고급 독서가도 있지만 대부분은 ‘독서클럽 가입을 계기로 책과 친해져 보고 싶다.’ 라고 생각하는 보통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상당한 결심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이 단계에서 체질한 듯 많은 것들이 걸러진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어보겠다.’는 결심 그 자체가 모종의 성실성과 겸허함을 담보하며 많은 문제의 싹들을 앞서 제거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책을 읽어보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에 느끼는 가벼운 두려움과 어지러움을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깊이 이해할 사람은 없다. 처음 독서클럽을 경험하는 회원들은 덜덜 떨면서 어렵게 말문을 열지만, 곧 그곳이 마음 편한 공유의 마당임을 깨닫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모임을 기다리게 된다. 누구나 자신이 주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을 받아 들고 가슴이 한껏 뿌듯해져 돌아오게 된다. 

첫 독서클럽을 만들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약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원조 독서클럽 회원들은 십년 지기 친구가 되었다. 10년간 다섯 개의 독서클럽 모임을 통해 나는 내가 사는 삭막한 도시에 이렇게 좋은 곳들이 많았단 말인가 싶을 만큼 많은 좋은 시간과 공간들을 경험했다. 

100년 된 유럽식 고택에서 독서 모임을 할 때는 UN 여성회의 대표가 된 것처럼 우아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고, 우리만의 아지트로 삼은 아늑한 한옥에서 귤과 떡볶이를 먹으며 처마에 흐르는 흰 구름을 보기도 했다. 날씨 좋은 계절이면 독서 모임은 흔히 야외에서 둘러앉는다. 어느 가을에는 진관사 앞 은행나무 숲에서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한 그루씩 껴안고 사진을 찍었고, 어느 여름날에는 우이령 고개를 함께 넘어 백숙집으로 쏙 들어갔다. 텃밭에서 상추를 뜯고 고기를 굽기도 하고, 한강 공원에서 캠핑도 했다. 연말에는 빨간 루돌프 머리띠를 두르고 소녀들처럼 꺅꺅거리며 송년 파티를 한다.

10년간 한결같이 책 읽는 행복을 보장한 독서클럽의 기적 같은 혜택을 나는 그 누구보다 크게 누렸다. 난독증이 가장 심했던 시기조차도 독서클럽을 통해 책 읽기의 끈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좋은 책을 만나 감동을 나누며 이 모든 것이 책 덕분이다 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애써 고른 책이 실망스러울 때조차 책 모임은 넘치도록 충만한 것을 수없이 경험하게 했다. 그러고 보면 책은 거들 뿐, 결국 독서 클럽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사람들 자체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책과 사람이 서로 행복하도록 돕는 아름다운 시공간, 그것이 독서클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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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심윤경

소설가. 장편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 『영원한 유산』, 『설이』 등과 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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