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책 장바구니 특집 두 번째, 이번에는 책장 털이입니다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361회)
지난번 장바구니 털 때도 너무 내가 많이 드러나는 것 같다, 보통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역시나 사람은 어리석고 반복되는 실수를 한다고, 이번에도 내가 왜 또 책장을 터는데 동의했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냥)
한자(황정은) : 지난 시간에 미리 말씀을 드린 대로, 오늘은 ′책장 털기 특집′입니다.
단호박 : 탈탈 털어오셨습니까?
한자(황정은) : 그렇습니다.
그냥 : 부제는 ′민요상 책꽂이 특집′인가요? (웃음)
한자(황정은) : (웃음) 오해입니다. 오늘 방송은 민요상 책꽂이 특집이 아니고요. ′단호박 그냥 한자의 오프라인 책장 털기′ 방송이고요. 거기에 저희 집에 있는 민요상 책꽂이의 일부가 소개되는 것이죠.
단호박 : 민요상에 대한 설명 한 번만 더 해주세요. 무슨 책꽂이죠?
한자(황정은) : 민요상이라는 글자가 적힌 책장입니다. 제 조카가 코로나 막 시작될 즈음에 책장에다가 아무도 모르게 연필로 민요상이라고 써놓고 갔어요. 그걸 제가 한두 달 뒤에 발견해서, 처음에는 저랑 그 조카를 둘러싼 어른들이 누군가의 이름이라고 생각을 한 거죠. 그래서 ′이 아이가 한글을 쓰다니. 어느 누군가의 이름을 완성해서 쓰다니. 누구냐, 요상이가. 대체 누구냐, 민씨성을 가진 요상이가 누구냐?′라고 저희들끼리 막 설렁설렁했는데. 그러고 나서 거의 한 1년쯤 있다가 제가 문득 깨달았어요. 그 민요상이라는 글자가 적힌 책장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꽂혀 있더라고요. 민음사를 아이가 보고 따라서 그린 거죠. 그게 형태가 약간씩 일그러져서 민요상이라는 글자가 된 책꽂이이고요. 제가 그 책꽂이를 저의 사후에 조카에게 헌정하려고, (웃음) 그때까지 그 책들이 남아 있다면, 아니면 저희 집에 공간이 많이 부족해졌을 때든 언제든 좋은 책들을 골라서 거기를 채워서 조카에게 넘기자는 야심만만한 기획을 가지고 꾸리고 있는 책장입니다.
단호박 : 민요상이 포함된 책장 털기 특집, 그냥님부터 소개를 시작해 볼까요?
그냥 : 지난번에 장바구니 털 때도 ′내가 너무 많이 드러나는 것 같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이런 얘기를 했었는데요. 역시나 사람은 어리석고 반복되는 실수를 한다고, 이번에도 ′내가 왜 또 책장을 터는 데 동의했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내 발등을 찍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일단 시기적으로 보면, 어렸을 때부터 되게 오랫동안 갖고 있는 책들은 지금 살고 있는 집에는 없더라고요. 독립하고 나오면서 본가에 두고 오기도 했고, 독립했을 때 처음에는 부동산의 문제가 너무 커서 끌어안고 살 수가 없으니까 이사 다닐 때마다 본가로 책을 보냈어요. 그래서 오래된 책들은 기억을 되짚었습니다. 그중에 『마당을 나온 암탉』이 있고 『향수』가 있고요. 예전에 제가 소개한 적이 있는 장 지글러의 책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하고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도 계속 가지고 있고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엄마랑 같이 읽었던 책이라서 남다른 추억이 있어요.
그리고 최근 10년 정도 동안에 사서 모은 책들을 보면 양다솔 작가님의 『간지럼 태우기』가 있는데 이 책은 독립 출판물이에요. 구하기 쉽지 않을 수 있는데 이 책이 궁금하신 분들께는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을 추천하고 싶고요. 한때 채현국 선생님과 관련된 책들을 사서 읽고 꽂아두고 했었어요. 요즘도 여전히 그 말씀들에 대해서 생각을 해요. 내가 저렇게 늙을 수 있나. 그리고 제 유년의 책을 얘기하면서 정말 빼놓을 수 없는 책이 하나 있는데, 제가 고등학생 때 인생관이나 세계관이 형성될 무렵에 저한테 영향을 너무 많이 미쳤어요. 『산에는 꽃이 피네』입니다. 시절 인연이라는 것도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고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그 이상을 가지면 살뜰함이 사라진다′는 것도 배웠어요. 저는 종교가 없는데, 이 책에는 삶에서 중요한 것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어서 저한테는 바이블입니다.
최근에 책장을 채운 책들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가면, 제가 시인님들의 에세이를 참 좋아하더라고요. 박연준 시인님의 『고요한 포옹』도 너무 좋아서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두었고, 유진목 시인님의 『산책과 연애』도 굉장히 즐겁게 읽었습니다. 그래픽노블도 있는데 최근에 읽고 있는 것은 사라 레빗의 『엉클어진 기억』이에요.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게 동물 관련 섹션이에요. 고양이 책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는 합니다. 그중에서 추천하고 싶은 책들로 단단 작가님의 『사람의 일, 고양이의 일』 황인숙 시인님의 『해방촌 고양이』가 있습니다.
단호박 : 요즘에 제 책장을 보면 저는 뜬금없이 제 삶이 유한하다는 걸 느끼고 있거든요. 나는 내 책장에 있는 책을 전부 읽을 수가 있을까, 그쯤 되면 나는 생을 마감하지 않을까, 혹은 이 책장이 계속 바뀔 텐데 내가 계속 읽고 있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요새는 자주 하게 되고요. 도서관에 가면 오히려 쌓여 있는 책들을 보고 좀 즐겁거든요. 그런데 제 책장 앞에 서면 이상하게 마음이 좀 슬퍼지더라고요. 특히 어제 제 책장을 보면서 슬펐던 게, 시집을 모아놓은 책장이었는데 10대 때부터 긁어모은 시집들이 있거든요. 20대 때는 말 그대로 점심값을 아끼면서 시집을 사 모았던 때가 있었어요. 지금은 정말 마음껏 살 수가 있는데 오히려 시를 읽는 시간이라든지 시집이 있는 책장의 구간을 살펴보는 시간 자체가 없어진 거죠. 그래서 좀 슬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책장의 가장 왼쪽부터 설명을 해드리자면 현대문학에서 핀 시리즈를 처음 냈을 때 1번부터 6번까지 모아서 박스로 낸 적이 있었어요. 안미옥 시인의 『힌트 없음』이랑 임솔아 시인의 『겟패킹』이랑 서윤후 시인의 『소소소小小小』 신영배 시인의 『물모자를 선물할게요』 이영광 시인의 『깨끗하게 더러워지지 않는다』 김언희 시인의 『GG』가 있었는데 그 세트를 처분하지 않고 박스 채로 넣어놓은 상태고요.
그 옆에는 허수경 시인의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인데, 허수경 시인은 문학동네에서 나온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이라는 시집이 있는데 굉장히 큰 판형으로 시집을 낸 적이 있었거든요. 되게 신기해서 그 판형도 갖고 길쭉한 작은 판형도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이라는 시집을 가지고 제가 대학에 다니고 있을 때 공부를 했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 시집은 저한테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김현 시인의 『글로리홀』이 꽂혀 있고, 진은영 시인의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가 있죠.
그 옆에 시집은 아닌데 비슷한 판형이라 모아놓은 에드워드 고리 시리즈가 있습니다. 6권짜리 세트였는데 『미치광이 사촌들』이라든지 『불운한 아이』라든지 『이상한 소파』라든지 『윌로데일 핸드카』 같은 작품들을 모아놨습니다. 그리고 절판된 책이 하나 있는데 저는 이 책을 계속 가져갈 겁니다. 에드워드 고리의 『수상한 손님』이라는 책이 있어요.
그리고 그 밑에도 시집 칸으로 만든 곳이 있는데요. 나머지 핀 시리즈 책이 있고요. 아침달에서 출간된 시인 시리즈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침달 시리즈 중에서는 김소연 시인의 『i에게』가 눈에 띄었었고요. 유계영 시인의 『지금부터는 나의 입장』도 들어가 있었습니다. 유계영 시인의 시집 중에 유계영 시인이 저랑 대화를 나눴던 내용으로 쓴 시가 들어가 있는 시집이 있어요.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라는 시집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밑의 책장으로 가면 만화존입니다. 최근에 만화 책장에 있는 것 중에 친구들이 오면 추천하는 책으로는 『프린세스 메종』이라는 책이 있는데요. 6권짜리 책이고 아오이 이케베 작가의 책입니다. 일본 선술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여성이 나오는데요. 이 여성 노동자가 할부로 자기 집을 구입하기까지의 과정이 나와 있어요. 저도 제 집을 가질 때까지 이 만화를 두고두고 보게 될 것 같아요. 그 옆에는 돌배 작가의 『샌프란시스코 화랑관』이라는 만화가 있는데요. 샌프란시스코의 태권도 학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예요. 그 옆에는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라는 작품이 있고요.
그 옆에 꽂혀 있는 게 요새 제가 꽂힌 작품인데, 와야마 야마라는 작가의 작품 중에 『여학교의 별』이라는 만화예요. 여학교에서 가르치는 남 교사의 이야기인데 약간 이상한 캐릭터예요. 그런데 학생들이 다 그 선생을 좋아하고 그 선생이 뭘 하는지 시시콜콜 다 궁금해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 작가의 작품 중에 『가라오케 가자!』라는 작품도 있는데 되게 즐거워요. 그 옆에는 저의 인생 작가 요시나가 후미가 있죠. 『어제 뭐 먹었어?』라는 작품과 『서양골동 양과자점』 『사랑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해야 하는 딸들』 등의 작품을 남겼고요.
이 정도가 시집과 만화책 정도가 될 것 같고, 인문사회와 피아노 책장이 있습니다. 지금 집에 있는 피아노 책장에 있는 꽂혀 있는 책은 『김도훈 작곡법』이 있고요. 그 옆에는 『스타인웨이 만들기』라는 책이 있는데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다룬 책이에요. 그리고 옆에는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라는 에세이가 있고요. 그 옆에 제가 좋아하는 책 중의 하나인 『피아노 앞의 여자들』이 있는데요. 에세이에 가까운 형식인데 여성으로서 음악을 한다는 것 그리고 아마추어로서 음악을 한다는 것, 그 모든 것이 섞여서 매우 잘 짜인 한 편의 글입니다. 여성으로서 피아노를 치신다면 한 번쯤은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는 책이고요. 그런 식으로 피아노들에 대한 책이 조금 있습니다.
그다음에 옷방에 있는 책장에는 소설들을 모아놨습니다. 민음사 시리즈를 제일 맨 앞에 꽂아놨고요. 『82년생 김지영』이랑 『초급 한국어』 『중급 한국어』 『한국이 싫어서』 『고독사 워크숍』 『•••스크롤!』 『더 셜리 클럽』 『밤의 여행자들』 『딸에 대하여』 이런 책들이 꽂혀 있습니다.
한자(황정은) : 저는 책을 소개하려고 책장 앞에 계속 앉거나 서성이면서 ′이 책 더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 소개가 좀 됐으면 좋겠다′라는 조바심에만 잠겨서 제가 완전히 증발을 해버렸어요. 그래서 좀 괴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고르면서 대단히 아쉬웠던 점이 절판된 책이 너무 많았어요.
예를 들어서 들녘 출판사에서 출간된 토니 모리슨의 소설들이라든지 솔 출판사에서 출간된 안드레이 쿠르코프의 『펭귄의 우울』이라는 소설이 있거든요. 정말 좋은데 절판됐더라고요. 산도르 마라이 작가의 책도 많이 절판이 됐어요. 낭기열라에서 출판된 청소년 소설 시리즈가 좋은 소설이 되게 많던 그것도 다 절판이 되었더라고요. 그 책들의 조속한 재출간을 기대를 해보면서 저는 오늘 듣는 분들의 책꽂이에 책을 들이붓겠다는 느낌으로 (웃음) 양에 중점을 둔 특집이라서 정말 간략하게 안내를 해보려고 해요.
저는 주로 민요상 책꽂이를 털었습니다. 그런데 민요상 책꽂이가 한 개의 책꽂이가 아니에요. 민요상이라는 글자가 적힌 책꽂이 옆으로 나란히 자리 잡은 6개의 책꽂이, 그리고 다른 공간에 자리 잡고 있는 두 개의 책꽂이를 통틀어서 제가 민요상 책꽂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책꽂이에 제가 전작을 넣은 작가들이 있어요. 토니 모리슨, 프리모 레비, 제발트, 그 밖에도 폴 오스터, 레이먼드 카버 등등의 책이 꽂혀 있습니다.
순서대로 가보겠습니다. 토니 모리슨의 책 중에서 『파라다이스』는 토니 모리슨의 아름다운 문장과 대단히 풍성한 이야기를 듬뿍 만날 수 있는 소설입니다. 소설의 내용이, 다양한 인연으로 여성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가 만들어지거든요. 그런데 이들을 마녀로 몰아서 사냥하는 세상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그렇지만 중심은 소설에 등장하는 각각의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소설이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그들은 제일 먼저 백인 소녀를 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이 되는데, 마지막까지 백인 소녀가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아요. 작가의 의도죠. 들녘에서 2001년에 출간되었고 현재는 품절이에요. 절판인 것 같기는 합니다만 워낙 좋은 소설이라서 머지않아 재출간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하고.
그리고 제발트를 한 권만 추천한다면 저는 『이민자들』을 추천하겠어요. 중편이 모인 소설집이고요. 저는 제발트의 책으로는 『아우스터리츠』를 가장 좋아하거든요. 그 책은 제가 죽을 때까지 그냥 끌어안고 갈 책이에요. 여러 번 계속해서 읽고 있는 책이고 읽을 때마다 새롭고 너무너무 좋아하는 책입니다만, 제발트를 아직 접하지 못한 독자에게는 『이민자들』이 시작으로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그리고 프리모 레비는 웬만하면 이 분의 책을 전부 당신의 책꽂이에 다 채워 넣고 싶다는 욕심이 있고. (웃음) 특히 『주기율표』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은 독자라면 반드시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읽으셔야 합니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2014년에 출간이 되었어요. 프리모 레비의 글 중에서 인간에 대한 가장 어둡고 통렬한 전망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2014년에 출간되었을 당시에 그때 한국 사회가 가졌던 그리고 가져야 했던 질문들하고도 광범위하게 공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그때 많이 읽혔던 걸로 알고 있고, 이 책을 읽는 일이 지금도 여전히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을 권하고 싶고요.
그리고 애니 프루라는 소설가가 있습니다. 단편집 『브로크백 마운틴』이 있고, 장편소설로는 『시핑 뉴스』라는 책이 있어요. 배가 출항하는 지역에서 날씨를 예보하는 기상캐스터도 나오는 이야기라서 『시핑 뉴스』라는 제목인 것 같습니다. 요약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이야기이긴 한데 대단히 소박한 개인들이 서로를 구하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좀 많이 위안이 되는 면이 있죠. 좋은 사람들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저는 대단히 따뜻한 소설로 기억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언젠가 삼자대책에서 같이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비문학에서도 권하고 싶은 책이 있는데 마리아 포포바의 『진리의 발견』입니다. 많은 분들이 너무너무 좋아했던 책이에요. 출간 당시에 저도 나오자마자 읽었고 너무 좋더라고요. 밤하늘의 말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반짝거려요. 제가 느끼기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너무나 로맨틱하고, 친절하게 지적인 그런 책이었거든요. 이 책도 권하고 싶고.
그리고 2015년에 천년의상상이라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상상의 아테네』. 이 책은 제가 여러 번 이야기를 했죠.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도쿄·서울』이라는 제목이고요. 전진성 저자가 썼습니다. 책 표지에 작게 실린 문구를 읽어보자면 ′아테네를 상상한 근대수도의 계보학을 탐사하다′라고 쓰여 있어요. 짤막하게 소개를 해보자면, 베를린과 서울 두 도시가 거리로도 멀리 떨어져 있고 서로 연관성도 없어 보이잖아요. 여기에서 서울은 식민시대의 경성입니다. 연관성 없어 보이는 두 도시가 어떻게 도쿄라는 도시를 매개로 연결되는지를 살펴보는 아주 흥미로운 책이에요. 건축 이야기도 있고 역사 이야기도 있는 재미있는 책입니다.
그리고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 『살구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은 사라 베이크웰이 쓰고 조영 번역가가 옮기고 2017년에 이론과실천에서 출간된 책입니다. 주로 파리에 머물고 있던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현상학자부터 시작해서 실존주의자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르트르라든지 보부아르라든지 레몽 아롱, 카뮈 그런 학자들이 나오거든요. 그들이 다 서로 관계를 이루며 살았기 때문에 마치 이웃집 서사를 풀어내듯이 이야기를 써요. 너무너무 얘기가 재밌고 제가 아껴서 읽느라 사실은 다 읽지 않았어요. 3년째 읽고 있는 책입니다. 전혀 어렵지 않아요. 지금의 우리 생활과도 대단히 밀접한 이야기들이라서 재밌게 읽을 수 있어요.
그리고 이 책과 조금 비슷한 성격으로 역사 예술 정치를 같이 볼 수 있는 근사한 산문이 하나 더 있는데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 파리 좌안 1940-50』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것도 파리 좌안에 모여 있었던 실존주의자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아녜스 푸아리에가 쓰고 노시내 번역가가 옮겼고 마티에서 출간된 책입니다. 저는 이 책도 아껴 읽느라 1/3을 남겨뒀어요. 이것도 한 3년 된 것 같네요. 아껴서 읽고 있습니다. 파리 얘기가 나온 김에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쓴 『파리 스케치』라는 산문이 있거든요. 그 책도 꼭 권하고 싶습니다. 어떤 여행 안내서보다도 현지에서 많은 풍경을 보게 해주는 책입니다.
그리고 다이앤 에커먼의 『감각의 박물학』이라는 책이 있는데요. 저는 2004년에 출간된 책으로 읽었는데 올해 재출간되었더라고요. 동물이 가진 오감하고 거기에 공감각까지 더해서 감각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인데, 대단히 재밌고 읽으면서 감각이 선명하게 깨어나는 게 느껴지는 책이에요.
그리고 우치다 타츠루의 『하류지향』이라는 책이 있어요. 이 책은 제가 꼭 같이 읽고 싶어서 오늘 가지고 나왔어요. 일본의 10대들의 어떤 학습 패턴에 대해서 쓴 책이거든요. 2000년대 초반에 일본 사회를 지배했던 젊은 세대 그리고 학생들의 반지성주의에 대한 책인데, 지금의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사건이나 현상들하고 견줄 만한 이야기들이 대량으로 실려 있어요. 그래서 언젠가 같이 읽어보고 싶습니다.
소설로 다시 가보자면, 저희 집에 각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세계문학전집이 다 있어요. 그리고 저는 전집을 좀 신뢰하는 편입니다. 아직 실패한 적이 없어요. 오늘 이 자리에 몇 권을 골라서 나왔는데 기준이 좀 필요했거든요. 가급적 소설, 그리고 흥미진진하고 복잡한 이야기 위주의 소설이라는 기준을 세워서 몇 권 뽑아왔는데 출판사별로 한 권씩 소개를 해보려고 해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는 좋은 책이 정말 많습니다. 웬만해서는 기대를 배반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이 시리즈에서 한 권만 택하라면 저는 윌리엄 스타이런의 『소피의 선택』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서는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몰락하는 자』를 추천하고 싶어요. 글렌 굴드의 음악과 삶에 엮여버린, 그래서 평생 최고가 될 수 없었던 어떤 음악가의 이야기입니다.
창비 세계문학전집에서는 『통과비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비자 받으려고 너무너무 힘든 과정을 겪는, 어떻게 보면 좀 많이 지루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안나 제거스의 소설이 가지는 핍진성이 있어요. 그 이야기를 따라 읽는 쾌가 있어서 저는 이 책을 추천하고 싶고, 안나 제거스 같은 경우에는 『약자들의 힘』이라는 소설이 있는데 정말 좋습니다. 꼭 찾아서 읽어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도리스 레싱이 쓴 『금색공책』입니다. 너무너무 유명한 책이고 여성들 이야기고 재밌어요.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고.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에는 『아우스터리츠』가 있습니다. 이 책은 어느 정도 텍스트를 읽어온 사람이라면 그냥 좋아할 수밖에 없는 그런 책이에요. 삶의 어떤 필멸성이라든지 그럼에도 영속성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갖고 사랑할 만한 책이고요. 이 시리즈에는 토마스 만의 책이 있습니다. 『마의 산』을 저는 이 시리즈로 읽었는데 참 좋고.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인 체험』도 이 시리즈에 포함이 되어 있는데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을 읽으려는 독자라면 꼭 읽어야 하는 소설이라고 생각을 해요.
문학과지성사 세계문학전집에서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초조한 마음』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츠바이크는 제가 무척 좋아하는 산문책 『어제의 세계』를 쓴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초조한 마음』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고요.
열린책들에서는 폴 오스터의 책들을 다 권하고 싶고, 볼라뇨의 책 중에서는 한 권만 남기라면 저는 『2666』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현대문학에서는 세계문학단편선을 내거든요. 구성이 대단히 좋습니다. 좋은 작가의 좋은 단편들이 모여 있어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고요. 그리고 제가 최근에 주목하고 있는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중에서는 휴머니스트에서 출간되는 시리즈가 있습니다. 좋은 책이 정말 많고요. 근래에는 이 시리즈에서 나온 싱클레어 루이스가 쓴 『도즈워스』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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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