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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그날은 우리 집이 망한 날이었다 (G. 마민지 감독)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361회) 『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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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바탕이 된 영화 <버블 패밀리>의 감독이자 책의 저자인 마민지가 'K-장녀'의 시선으로 30년에 걸쳐 가족이 겪어온 부동산 흥망성쇠를 풀어낸다.


생각보다 땅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로 매일 안부를 묻다가 어느새 서로 신뢰를 쌓게 되어 그 사람이 회사에 방문하기도 했다. 지난 30년 동안 ′강남 불패 신화′를 보아온 사람들이었다. 정보가 없어서 남들 다 하는 투자를 못 하다가 이제야 땅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엄마도, 옆자리에 앉아 있는 퇴직한 교감 선생님도, 장사를 하다가 말아먹어 새로 입사했다는 옆 팀의 자영업자 사장님도, 땅은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불패 신화′를 믿었다. 퇴직금은 사라지고, 권리금은 날아가지만, 내 명의의 땅은 계속 남아 언젠가는 가격이 오를 것이었다. 그것이 땅의 순리였다. 누군가 계약을 따내면 전 직원이 함께 박수를 쳐주었고, 쟁반에 현금을 쌓아 인센티브를 전달했다. 그 땅이 내 땅은 아닐지언정, 이곳에서 다시 재기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피부로 체감했다.


마민지 감독의 책 『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에서 읽었습니다.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합니다. 



<인터뷰 - 마민지 감독 편>

오늘은 영화감독 한 분을 모셨는데요. ″한 사람의 생애를 깊게 이해하는 것은 그 시대를 이해하는 일″이라는 믿음으로 가시화되지 않는 이야기들에 주목하는 분입니다. 다큐멘터리 <버블 패밀리>를 만들고 이번에 에세이 『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을 쓴 마민지 감독입니다.  

황정은『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은 감독님이 만든 다큐멘터리의 후속 작업입니다. 2018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버블 패밀리>를 바탕으로 쓴 책이죠. 저희가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감독님에게 책 소개를 조금 듣고 싶은데요. 『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은 어떤 이야기를 담은 책인지 간략하게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마민지: 저희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고요. 저희 집이 1980년대, 1990년대에 엄청나게 잘 살았어요. 그러다가 IMF 외환위기 이후로 쫄딱 망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때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그리고 그 이면에 1980~90년대에 있었던 서울의 도시 개발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황정은 :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단순하게 활자로 옮기지는 않으셨더라고요. 물론 (다큐멘터리 제작) 이후에 진행된 이야기도 있었지만, 이야기가 영화에서 책으로 넘어오면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습니다. 예를 들어서 신문 기사라든지 논문이라든지 혹은 참고 도서들을 책에 많이 인용을 하셨더라고요. 특히 책에서는 감독님의 부동산 가족 중에 어머니 서사가 더 뚜렷합니다. 

마민지 : 일단 자료가 더 많이 들어간 부분 관련해서는, 제가 영화를 찍었을 때 리서치를 굉장히 오래 진행을 했어요. 2013년, 2014년도부터 리서치를 시작을 했었는데 그때는 강남 도시 개발 관련된 책이나 이야기들이 거의 나와 있지 않은 상태여서 주로 신문 기사나 관련된 자료들, 논문 같은 것들을 찾아보고 있었는데요. 아무래도 다큐멘터리는 처음에 팩트 체크가 되어야 하다 보니, 저희 부모님께서 부동산이나 도시 개발과 관련된 이야기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라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이게 정말 객관적인 사실인지 확인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자료들을 다 모아서 부모님이 이야기하시는 구술생애사 내용이랑 맞닿아 있는 부분들이 있는지 체크를 했었고, 부모님이 지으셨던 집의 순서들이 서울에 있었던 도시 개발 순서와 일치한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 영화 제작을 시작했어요. 영화는 그걸 다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작을 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내용들보다는 조금 더 캐릭터의 서사에 초점을 맞춰서 진행을 했었고요. 

제가 조금 더 흥미롭게 작업을 했었던 건 과거 자료들, 옛날 뉴스 자료들이나 원본 영상들을 보면서 이야기나 글로만 들었던 것들을 시각적으로 보는 데에 조금 더 흥미를 가지고 작업을 했었거든요. 그 이면에 있었던 다른 자료들을 공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굉장히 많이 있었고 그래서 이번에 작업을 하면서 그 자료들을 조금 더 보완해 나가면서 글로 읽을 수 있거나 신문 자료들을 가지고 증거로써 가지고 오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을 했고요. 

그리고 어머니 서사가 더 두드러지는 것 중의 하나는, 사실 이 이야기가 아버지나 저희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저희 어머니께서 그냥 주부로만 보였던 삶이 아니고 실제로 도시 개발사에 연관이 되어 있었고 IMF 외환위기 이후에는 가모장으로서 집의 경제생활을 모두 담당해야 했던 이야기들을 담고 싶었던 게 더 컸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조금 더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 어머니랑 아버지 분량을 같이 끌고 갔다면 책에서는 제가 조금 더 주목하고 싶었던 여성 서사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리고 책을 쓰는 동안 저희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책을 쓰면서 개인적으로는 애도의 글쓰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조금 더 어머니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서 쓰게 된 것 같습니다.

황정은 : 글쓰기로 넘어오면서 그밖에 또 어떤 점들이 달라졌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마민지 : 이를테면 영화에서는 제가 느꼈던 감정들이나 그 순간의 공기들이나 촉감이나 이런 것들을 전부 다 생생하게 그려내는 데는 조금 한계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이미지로 주로 묘사를 해야 하거나 사운드를 이용해야 하다 보니까, 최대한 전달을 하려고 하지만 세세하게 묘사하기보다는 감각적으로 조금 더 직관적으로 바로 전달받을 수 있게끔 영화적인 장치를 이용을 했다고 하면, 제일 첫 장에 나오는 ′집이 망하는 날의 풍경′ 같은 것들은 영화에서도 동일하게 그려지는 씬 중에 하나인데 영화에서 훨씬 짧게 묘사가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책에 쓸 때는 제가 그날 봤던 풍경, 그날 느꼈던 감각들, 그리고 시각적인 것들뿐만이 아니라 느꼈던 다른 감각들 혹은 감정에 대해서 세부적으로 묘사를 할 수가 있었어요. 제가 ′충분히 다 말하지 못했었다′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훨씬 더 자세히 서술할 수 있던 게 작업을 할 때 굉장히 재미있는 부분이었습니다. 

황정은 : 책에 IMF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IMF 사태가 1990년 중후반, 그리고 지금까지도 대단히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사건입니다. 당시에 경제적 몰락으로 많은 이들이 죽기도 했고요. 그리고 그때 비정규직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현재까지도 고용 불안이라든지 혹은 노동 조건, 노동 문제라거나 이런 것들에 많은 영향을 준 사건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IMF의 영향이나 규모에 비해서 아직은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IMF를 직접 겪은 사람들을 침묵하게 하는 어떤 분위기가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게다가 ′IMF′라는 대문자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게 너무나 뚜렷해서 거기에 사람들이 압도돼서 뭘 더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면이 분명히 있는 것 같거든요. 감독님에게는 어땠는지 듣고 싶어요. 부동산으로 가족사를 들여다보기 전에 IMF를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마민지 : 제가 처음에 이걸 생각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학부 시절에 강의를 듣다가 교수님께서 ′지금까지 살면서 수강생 각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사회적 사건이 뭔지 생각을 해보자′라고 얘기를 하셔서 저한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게 IMF 외환위기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런데 되게 놀라시더라고요. 좀 새로운 얘기로 들리셨나 봐요. 그래서 ′IMF 외환위기가 너한테 무슨 영향을 끼쳤니?′라고 되물으셔서 되게 당황스러웠던 것 같고. 그때 ′그게 저희 집이 되게 휘청거렸던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였고 제 삶에 가장 큰 변화를 만들어 온 주요한 사건이었다′라고 말씀을 드렸을 때 되게 놀라셨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후에 교수님과의 연구의 과정으로 영화가 이어졌기 때문에...

황정은 : 그래서 그 사건을 들여다볼 생각을 하셨군요. 당시에는 감독님도 IMF가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보지 않으신 거죠?

마민지 : ′IMF 때문에 우리집이 가난해졌고,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부모님과 사이가 안 좋아졌고, 지금 이런 경제적인 영향을 받았구나′라는 것까지는 생각을 했는데 왜 그렇게 됐는지는 몰랐어요.  

황정은 : IMF 체계에서 힘든 일을 겪은 사람들이 감독님하고 비슷한 정도의 기억으로 IMF를 회고할 것 같기도 합니다. 대단히 복잡한 경제 사건이기도 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따라가기 힘든 면이 분명히 있었어요. 우리 사회에서 IMF가 많이 이야기되지 않는 이유가 뭔지, 혹시 감독님 생각을 들려줄 수 있을까요? 

마민지 : IMF가 겉으로 보이기에는 ′가장들이 해고를 주로 당하고 가족들이 힘들어지고,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2000년대 들어와서 극복을 해냈고′ 하는, 아까 말씀해 주신 대문자로서의 IMF 서사가 뚜렷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그 이면에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걸 꺼리기도 하고요. 가난이라는 것 혹은 한 가족의 경제적인 흥망성쇠라는 건 개인의 몫으로 다 남아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입 밖으로 꺼내기가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요. 또 어머니께서 그 이후에 어떤 일들을 하시는지, 여성들이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서 무엇을 하게 됐는지, 신자유주의 체제가 도입이 되면서 어떻게 노동을 하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기에는 논의의 장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부분을 좀 얘기하고 싶었던 것도 있고요. 이거랑 마찬가지로, 저는 코로나도 그렇게 느꼈어요. 저희 어머니가 코로나 때문에 돌아가셨는데, 전국민적인 영향을 받은 사건의 경우에는 이걸 충분히 얘기를 하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황정은 : 맞아요. 그런 거 있었죠. 2001년에 한국이 IMF에 조기 상환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IMF를 최단시간에 극복한 나라라는 식의 어떤 자부심 같은 걸 공유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기도 했거든요. 이미 극복을 한 거예요. 그런 사건이라고 여기면서 뒤돌아보지 않는 면이 분명히 있었던 것 같고요. 그리고 전 세대에 걸쳐서 너무나 많은 사람이 겪은 사건이라서 다 안다고 생각을 해서 얘기가 안 되는 면도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미 지나간 사건, 극복한 사건인 셈 치면서 뒤돌아보지 않는 것들′이 한국 현대사에서 숱하게 반복돼 온 일인 것 같거든요. IMF가 그중에 좀 이상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독님의 이번 책을 반갑게 읽었습니다.  

황정은『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은 중산층 가족의 넉넉했던 삶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IMF 체계에서 대출금의 고금리를 감당 못 하고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면서 그것이 가족 경제의 붕괴로, 그리고 이른바 ′정상 가족′의 해체로 이어지는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이 과정에서 ″IMF 키드″라는 말을 사용하셨어요. 작가님의 책을 따라서 읽다 보니까 세대에 따라서 겪은 바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요. IMF 때 어린 시절을 보낸 감독님에게는 그 시기가 어떤 흔적을 남겼을지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더라고요. 어땠나요?

마민지 : 아마 대부분의 분들이 생각하는 거랑 비슷할 것 같아요. 거의 금 모으기 운동, 아나바다 운동 이런 것들이 생각이 나고. 그리고 동네의 특성도 조금 있었을 것 같기는 한데 영향을 받은 집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 같아요. 강남 송파 쪽 동네에서. 그런데 다들 많이 숨겼고. 뭔가 이 집에 변화가 일어났다, 이 집은 약간 달라졌다, 라고 하는 친구들끼리 같이 놀았어요. 각자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변화들을 같이 체감을 했던 것 같아요.

황정은 : 다큐멘터리 <버블 패밀리> 그리고 이번 책을 통해서 감독님은 어떻게든 부동산을 향한 부모님의 욕망 그리고 믿음을 이해해 보려고 하신 것 같아요. 두 번의 작업을 통해서 일단 부모님을 조금은 이해를 하게 되셨습니까?

마민지 : 부모님을 이해하게 된 부분은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이전에는 사실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굉장히 무능하기 때문에 지금 우리 집이 이렇게 됐다′라고 조금 납작하게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과거의 도시 개발사의 맥락이나 그 안에서 집 장사를 하면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이해하고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나 신문 기사들 자료들을 보면서 ′이 안에 살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분위기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겠다′라고 어느 정도 이해가 됐던 부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부동산 광풍 안에서 왜 부모님은 욕심을 부려서 그런 선택들을 했을까′라는 비판적인 시선도 여전히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한국 사회가 부추겼던 어떤 광풍들이 분명히 있었죠. 그 안에 휩쓸린 사람들에 대해서는 국가나 정부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생각들이 확고해졌던 것 같아요.

황정은 : 책의 제목을 『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이라고 지으셨단 말이죠. 그런데 저는 ′이상′보다는 ′평범′ 쪽에 더 의미가 크게 실려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가 평범한 것으로 느껴지기를 바라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마민지 : 사실 책을 구성하는 부분에 편집자님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어서... (웃음) 

황정은 : 제목을 지어주셨군요.  

마민지 : 네. <버블 패밀리>라는 제목이 너무 세다 보니까 이거를 벗어나는 다른 제목을 너무나 짓고 싶은데 아이디어가 생기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편집자님이랑 고민을 하면서 여러 가지 후보들이 나왔었는데 그중에 이 제목이 제일 적절한 것 같아서 정하게 되었습니다. 

황정은 : 그렇습니까? 그러면 이 이야기가 평범한 것으로 느껴지길 바라는 욕망은 편집자님의 욕망인 것으로 할까요? (웃음) 그렇지만 감독님이 여태까지 이야기를 들으니 그런 바람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고요. 사실은 평범한 욕망이라는 걸 인정을 해야, 그래야 그 욕망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나의 문제로도 연결해서 생각할 기회가 생기지 않습니까? 문제를 제대로 봐야 해결도 찾을 수 있을 테고요. 그런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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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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