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 문학상 어린이 부문 대상 수상작
『감염 동물』 김시경 작가 인터뷰
“멀게만 느껴지던 상상 속 미래가 너무 빨리 다가오는 것 같아 무섭기도 합니다. 우리가 더욱 적극적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감염 동물’이라는 규정에서 사람은 자유로울까? 서사적 재미와 주제 의식,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문제작이라 평가받으며 어린이, 평론가, 교사, 서점 MD의 극찬을 받은 『감염 동물』의 김시경 작가를 만나 본다.
『감염 동물』은 제1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 문학상 어린이 부문 대상 수상작입니다. 100% 독자의 선택으로 최종 수상작을 결정하는 특별한 공모전의 첫 수상 작가로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수상 소감과 『감염 동물』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감염 동물』은 ‘어느 날 갑자기 동물들이 말을 하게 되는 바이러스가 퍼진다면?’이라는 황당한 상상을 SF 모험 판타지로 풀어낸 작품으로, 동물권과 환경에 대한 발칙하고도 진지한 이야기입니다. 작년에 첫 동화책을 낸 늦깎이 동화 작가의 두 번째 작품에 이렇게 의미 있는 상을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출발은 늦었지만 멋진 응원을 받아 큰 힘이 되었습니다. 또한 어린이 독자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이 한없이 기쁘면서도 조심스럽고 무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감염 동물』은 코로나19가 가라앉고 난 뒤 몇 년 후의 현실을 상상하여 그려낸 작품입니다. 매우 시의성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떻게 이렇게 발 빠르게 시의성 있는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2016년부터 동화 공부를 시작했는데, 2017년에 습작으로 처음 쓴 장편 동화가 ‘초록이와 말하는 동물들’이었어요. 이상 기후로 가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동물들이 말하게 되는 바이러스인 MTV가 퍼지면서 동물들은 살처분되고, 감염 동물과 접촉한 인간들까지 격리된다는 설정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좀 과하게 느껴졌죠. 하지만 그 뒤로 코로나19가 퍼지고 또 몇 년 사이에 이상 기후 현상도 더 심해지면서 어느새 너무나 와 닿는 설정이 되어 버린 거예요. 그래서 그 작품을 다시 꺼내어 가뭄이 계속되는 상황을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몇 년 후로 바꾸어서 원고를 수정하게 되었어요. 대상 독자를 중학년에서 고학년으로 바꾸면서 제목도 그와 어울리게 ‘감염 동물’로 고쳤고요. 개인적으로는 멀게만 느껴지던 상상 속 미래가 너무 빨리 다가오는 것 같아 무섭기도 합니다. 우리가 더욱 적극적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이 작품에는 주인공 초록이를 비롯해 초록이의 반려견 초코, 시니컬한 리더인 고양이 꽁치, 언제나 듬직한 비둘기 모모, 귀여운 박쥐 꾸로 등 매력적인 캐릭터가 가득합니다. 작품 속 캐릭터 중 작가님의 마음이 많이 가는 캐릭터가 있다면 누구인가요? 그리고 그 이유는요?
어릴 때 부모님께서 과수원을 하셨는데, 동네에서 방목하는 돼지가 떨어진 사과를 주워 먹으러 돌아다니곤 했어요. 그런 추억 때문인지 『샬롯의 거미줄』에 나오는 돼지 윌버를 좋아하는데, 윌버의 해맑은 사랑스러움을 담고 싶어 만든 캐릭터가 초코예요. 꽁치는 제가 습작할 때 쓴 단편에 나오는 길고양이 삼인방 중 한 캐릭터인 어린 꽁치가 자란 모습을 상상해 『감염 동물』에 등장시킨 캐릭터예요. 그래서 초코도 꽁치도 다 오랜 친구같이 마음이 많이 가는 캐릭터예요. 그래도 가장 마음이 많이 가는 캐릭터는 아무래도 주인공인 초록이입니다. 평범하지만 사랑하는 대상이나 옳다고 여기는 일을 위해서는 용기를 내서 행동하는 캐릭터로, 제가 책으로 만나고 싶은 어린이 독자들을 많이 닮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초록이는 사랑하는 반려견 초코를 살처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동물들과 한편이 되어 ‘인간으로서 인간에게 저항’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된 동물들은 불임 바이러스를 이용해 ‘인간 멸종 계획’을 세웁니다. 동화에서 발견하기 흔치 않은 극단적인 설정이라 인상 깊었는데요, 이렇게 극단적인 설정을 과감하게 가져간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동화 작가로 데뷔하기 전 오랫동안 영상 쪽에서 일을 했던 터라, 아직 제 머릿속에는 영화와 애니메이션이 많이 저장되어 있어요. 그래서인지 그쪽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동물들이 ‘인간 멸종 계획’을 세우는 설정도 디스토피아적인 미래 세계를 그린 SF 영화 중 <칠드런 오브 맨>에서 영감을 받은 면이 있습니다. <칠드런 오브 맨>은 더는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암울한 미래 세계에서 기적적으로 아이를 밴 임산부를 구출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영화예요. 작품을 쓰면서 이 영화의 배경이 문득 떠올라 이런 설정을 하게 된 면도 있는 듯합니다. 극단적인 설정이기는 하지만, 어린이 독자들이 이 이야기를 통해 동물들이 왜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을까를 떠올려 본다면 뭔가 생각할 거리가 될 것 같았어요. 인간들이 동물들에게 너무나 끔찍한 일을 하기도 했고요.
어린이 모험 서사에서 예상되는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방대한 서사 안에 담긴 진지한 질문 또한 매우 인상적입니다. 어린이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방대한 서사 안에 진지한 질문을 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장편 영화 시나리오를 썼던 경험 때문에 이야기가 방대해지는 경향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영상이 먼저 떠올라서 그걸 글로 바꾸는 때도 있고요. 그래서 어린이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이야기를 조절하고 문장을 다듬는 게 힘들었어요. 동화를 많이 읽고 쓰면서 스토리텔러로서 저의 장점은 살리면서 단점은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점점 더 나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진지한 질문은 어린이나 어른이나 다 똑같이 마음속에 품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어떻게 끌어내고 표현하느냐가 문제겠지요. 제가 원래 약간 철없는 어린아이 같은 구석이 있는데 이런 면은 동화를 쓸 때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동화를 쓸 때는 제 안의 어린아이가 즐거워하는 게 느껴져서 신이 나요.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는 단연코 초록이가 MTV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빨간 캡슐과 더 이상 MTV 바이러스를 퍼트리지 않는 파란 캡슐 중 하나를 선택하는 장면이 아닐까 합니다. 초록이의 선택은 작품 속에서 독자가 확인할 수 있게 비밀로 남겨 두고, 여기에서는 지면을 빌어 작가님의 선택은 무엇인지 여쭙니다.
정말 쉽지 않은 선택인데요, 저라면 아주 많이 고민하고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은 빨간 캡슐을 선택할 것 같아요. 동물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보고 싶거든요. 이야기를 좋아하는 직업병도 있고요. 어린이 독자들도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해 볼 것 같은데요, 어느 선택이든 제가 똑같이 지지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읽고 생태 위기, 기후 위기로 조각난 지구에 발 딛고 살고 있고 또 살아가야 할 우리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걸어 나가야 할지 진지한 고민을 시작한 어린이 독자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저는 누구나 사랑하는 대상이나 옳다고 여기는 일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마음속에 품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마음속 용기를 끄집어내어 표현하기가 어려울 뿐이죠.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옳다고 여기는 일에 용기를 내어 행동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작은 선택과 작은 행동들이 모여서 큰 변화를 만든다는 것도 꼭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이건 여러분뿐만 아니라 저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답니다. 환경과 동물을 사랑하는 멋진 어린이 독자님들, 고마워요. 그리고 언제나 응원합니다.
*김시경 연세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한국영화아카데미 KAFA에서 영화 연출을 배웠다. 단편 영화로 서울여성영화제 단편 영화 및 비디오 경선에서 우수 작품상을, 장편 시나리오로 영화진흥위원회 극영화 시나리오 공모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연세대학교에서 영상학 석사, 동국대학교에서 영화영상제작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오랫동안 대학에서 영상 제작을 가르쳤다. 한겨레아동문학작가학교에서 동화를 배운 뒤 지금은 동화 쓰기에 푹 빠져 있다. 『감염 동물』로 제1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어린이 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쓴 책으로 『최고의 레벨 업』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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