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예술가이자 국내 최초 아방가르드 무용가, 인도에서 구도의 길을 걸은 명상가로서 70만 베스트셀러 『자유를 위한 변명』를 펴냈던 홍신자가 데뷔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에세이를 출간했다. 살아온 날에 비해 살아갈 날이 현저히 적은 지금, 그녀는 충만했던 지난 시간을 반추하며 후세대인 우리에게 자유로움의 가치를 전하고자 한다. 불안과 외로움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 책은 간결하고도 명확한 해답이 되어줄 것이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생의 마지막 날까지』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올해가 데뷔 50주년인 만큼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이번 책을 통해 선생님을 새롭게 뵙게 될 독자들에게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전에 『자유를 위한 변명』을 출간하고 수많은 독자들과 만났지만, 그로부터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뜸했지요. 이 책을 통해, 나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고자 합니다. 삶이 지속하는 한 이야기는 계속되는 것이니까요.
『생의 마지막 날까지』는 83세를 맞은 바로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쏟아낸 책입니다. 제목과 표지에 나와 있듯 마음껏 춤추고 사랑하자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놀이하듯 삶을 즐기는 것. 그것이 자유를 누리는 길임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말씀대로 70만 베스트셀러 『자유를 위한 변명』 이후 무척 오랜만에 새 책을 펴내셨는데요.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궁금합니다.
삶을 하나의 놀이터(playground)처럼 여기고, 한바탕 신나게 놀다가 가볍게 떠나자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목적도 없이, 의식하는 것도 없이 순간순간을 즐기자는 것이지요. 사소한 것에 집착하고, 두려움에 물러서는 것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그런 것 없이 가볍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워하기보다는, 삶을 정리하고 돌아보는 기회로 삼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비로소 나를 붙잡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20대 중반에 가족의 만류를 무릅쓰고 미국으로 향하셨다고요. 1960년대에는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을 텐데, 어떤 마음으로 그런 결심을 하게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내가 무용가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 건, 한마디로 ‘실컷 살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어요. 한국의 대학에서는 영문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때 미국은 꿈과 자유의 상징이었습니다. 그곳에서라면 무엇이든 도전 해보고, 이룰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이라는 구속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말이지요. 워낙 흔치 않은 일이니 모든 식구가 만류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으로 떠났지요.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렇게 찾은 뉴욕에서 운명처럼 ‘춤’을 만나셨어요. 이후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줄곧 춤을 춰오고 계시는데요. 선생님께 춤이란 한마디로 무엇일까요?
춤은 내가 진정으로 영혼을 바쳐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몸과 영혼이 하나가 되는 자유로움 그 자체이기도 하고요. 미국에서 처음 춤을 접하고, 이후 인도로 떠나고 나서도 나는 내가 어떤 순간에도 결코 춤을 멀리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춤은 나의 일상 속 순간순간에 깃들어 있습니다. 언제든지 음악이 흘러나오면 자유롭게 춤출 수 있어요. Let it be. 몸이 움직이도록 그대로 두는 것이지요.
최근 선생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I have nothing. 나는 두려울 게 없다. ready to go. 언제 가도 좋다.’
두려움 없이, 순간을 즐기면서 사는 것이지요. 준비만 하다가 끝나는 인생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미래를 위해서만 나아가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마땅한 때가 오면 이루어질 일은 이루어지는 법이니 애써 두려워하지 말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영원을 붙잡고 싶겠지만, 영원이란 것은 없습니다.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오늘이 제일 중요하지요. 내일을 기대하는 것에 하루를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내일은 내일 나름대로, 또 새로운 내일일 테니까요.
자유로움을 갈망하는 청춘들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선생님의 삶에, 이야기에 매료되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아요.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열정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내가 춤을 처음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던 스물일곱, 모두가 늦은 나이라며 야유했습니다. 춤을 배워서 나중에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진 몰라도 공연에 오르지는 못할 거라고 단언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때 나는 생각했습니다. 공연,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라고. 하고 싶은 것을 해낼 수 있는 열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꿈과 자유는 누구나 누릴 수 있습니다. 스스로 진정으로 원한다면요.
도전을 멈추지 않는 선생님의 모습이 그 누구보다 아름답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또 다른 새로운 목표가 있다면 살짝 귀띔해 주세요.
지난 6일에는 대학로에서 열린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에 <이불 위에서>라는 무대를 올렸습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있다면 계속 춤출 생각입니다. 더불어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살아가려 합니다. 무의미하게 삶을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고 죽을지를 주체적으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같은 고민을 가진 이들과 함께 말이지요.
*홍신자 세계적인 아방가르드 무용가이자 대한민국 최초 전위예술가, 명상가이자 작가. 1940년 충남에서 태어났다.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만 28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무용계에 데뷔해 <뉴욕타임스>의 이례적 호평을 받으며 성공의 반열에 올랐고, 이후 인도로 떠나 오쇼 라즈니쉬의 제자로서 수행의 길을 걸었다. 3년 만에 다시 무용계로 복귀한 뒤에는 래핑스톤(웃는 돌) 무용단을 설립해 존 케이지, 마가렛 렝 탄, 백남준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했다. 그리고 71세에 독일인 베르너 사세 한국학 교수와 결혼했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로 꼽히는 그녀는 자유로운 영혼의 몸짓을 춤으로 형상화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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