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물건들이 전부 나를 만들어 낸, 지나간 시간들이었다" (G. 은희경 작가)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56회) 『또 못 버린 물건들』(2023.08.31)
“이 생에 진심인 나는 그 삶이 좋은 것이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시는, 산문집 『또 못 버린 물건들』을 출간하신 은희경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나의 물건이지만 모든 사물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 다 똑같지는 않다. 실수로 물건을 떨어뜨렸을 때에 아끼는 물건일수록 자기도 모르게 소리가 더 크게 터져나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 마음을 일일이 의식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대하는 것뿐, 머리와 가슴속에는 사물 각자의 캐릭터가 입력되어 있어 사물에 따라 미세하게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다.
역시 인간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복잡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그것을 의식하는 한 누구나 섬세함이라는 상식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복잡한 존재이므로 나의 틀 안에서 함부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단 하나의 물건을 만드는 예술가는 못 되지만 문학이 우리에게 주려는 것, 인간이 가진 단 하나의 고유성을 지켜주도록 돕는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싶다, 는 생각을 해본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은희경 작가님의 산문집 『또 못 버린 물건들』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또 못 버린 물건들』은 은희경 작가님이 12년 만에 출간하는 산문집인데요. 작가님 특유의 섬세함과 유머가 물씬 담긴 이 글에는 술잔, 구둣주걱, 우산을 비롯해 레슬링 가면이나 돌, 마작과 달력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버리지 못한 이유를 품은 채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그걸 왜 갖고 있어?”라는 질문은 그 물건에 담긴 시간과 특별한 사람들과의 추억을 별스럽지 않게 여겨버리는 단순한 질문이 되어버리는 거죠.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또 못 버린 물건들』을 쓰신 은희경 작가님을 모시고 시간을 간직하는 일, 나아가 시간을 기대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오은 : 무려 12년 만의 산문집이라고 들었습니다. <채널예스>에 연재한 ‘은희경의 물건들’이 책의 시작이었는데요. 친구들과의 칵테일 시음회에서 얘기한 이 연재의 기획을 술 친구들 모두가 환영했다는 일화도 책에 짧게 소개되기도 했어요. 그때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은희경 : 처음 쓰게 된 건 예스24에 있던 ‘룸펜레터’라는 지면이었어요. 거기에 짧은 산문과 사진을 같이 실은 적이 있는데요. 재밌더라고요. 지금까지 이런 짧은 산문을 마음먹고 써본 적이 없었거든요. 뜻밖에도 재미가 있어서 칵테일 만드는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그 얘기를 했는데요. 특히 오은 시인께서 열렬한 반응을 보여주시면서 격려를 했기 때문에(웃음) 그러면 이런 글을 계속 써볼까, 그런 마음에 시작을 하게 됐죠.
그렇지만 원래 기획은 이런 게 아니었어요. 원래는 ‘룸펜레터’처럼 짤막한 글과 사진으로 구성하는 것이었거든요. 그때 제가 글을 쓰는 게 좀 힘들었을 때이기도 했고요. 저의 안 좋은 버릇이 글을 너무 빽빽하게 쓰는 거예요. 그래서 힘이 들기도 하고, 읽는 사람도 너무 버거울 것 같아 좀 성긴 글을 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날 표현하는 것이죠. 그렇게 약속을 하고 연재를 시작했는데 글이 너무 길어지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당시 담당 편집자께 “제 못된 버릇 때문에 또 길게 쓰고야 말았어요. 어떤 게 좋을까요?”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냥 길게 쓰셔도 괜찮다고 답변을 주셨고요. 그렇게 쓰게 된 글이에요. 제가 써온 지금까지의 글 중 가장 짧은 시기에 쓰여졌고, 스트레스가 별로 없이 쓰여진 글이라서 읽는 분들도 좀 편하게 읽는 것 같아요.
오은 : 다른 것에 집중할 수도 있었을 텐데 다름 아닌 물건들에 주목한 이유도 궁금하더라고요. 왜 물건들이었을까요?
은희경 : 매일 접하는 가까운 대상이니까요. 무언가를 보면 이거 거기서 샀었지, 그때 옆에 누가 있었지, 누구랑 여기에 대해서 뭐라고 했었지, 그때 못 버렸지, 하고 생각이 나요. 그런 물건들이 항상 곁에 있으니까 그랬을 거예요. 그리고 사실 이 물건들이 어디 잘 모셔놓는 것들이 아니고요. 제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들이에요. 그냥 눈에 띄는 것들에 대한 나의 생활 감각, 거기에 담겨 있는 내 라이프 스타일이 물건이기도 했죠. 가장 쉽게 접근했던 대상 같아요.
오은 : 은희경 작가님 프로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상속』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중국식 룰렛』 『장미의 이름은 장미』, 장편소설 『새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그것은 꿈이었을까』 『마이너리그』 『비밀과 거짓말』 『소년을 위로해줘』 『태연한 인생』 『빛의 과거』, 산문집 『생각의 일요일들』 『또 못 버린 물건들』이 있다. 문학동네소설상, 동서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오영수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렇게 많은 작품들을 써오셨는데 그래도 더 좋아하는 작품이 있을 것 같아요. 작가님이 오늘의 기분으로 두 권만 꼽아주시면 어떨까요?
은희경 : 네, 오늘의 기분으로요. 저는 장편소설을 쓸 때 제가 더 꾸밈없이 나오는 것 같아요. 단편소설은 멋있게 쓰려는 마음이 조금 있고, 그 마음을 많이 통과해야 하는데요. 장편을 쓸 때는 그냥 이야기에 흘러가니까 제 모습이 많이 나와요. 그래서 좋기도 하고, 좀 거리낌이 생기기도 하는데요. 어쨌든 그런 이유로 『태연한 인생』과 『빛의 과거』라고 답하고 싶어요. 이 소설들이 저의 최근 모습이기도 하고 그러니까요.
오은 : 『또 못 버린 물건들』이 어떤 책인지 직접 소개해 주시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 어떤 책이죠?
은희경 : 제가 쓰는 생활 소품이기도 하고, 여행에서 사온 기념품이기도 하고, 친구들과의 사연이 있는 물건들이기도 한, 그러니까 저의 일상이 담긴 물건들에 대해 쓴 글이에요. 여기에 한편으로는 저의 지나간 시간들이 담겨 있고요. 그런 물건들에 대한 저의 생각들을 24개 이야기로 만들어봤습니다.
오은 : 은희경 작가님과 작가님의 생활, 주변인들, 그리고 거기서 깨알같이 쏟아지는 에피소드들이 한가득 담긴 책이고요.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작가님의 필력 때문에 한 편 한 편의 글이 정말 살아 숨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설이 서사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들이 있다면 이 글은 생활 밀착형 글이잖아요. 여기서 오는 아기자기한 즐거움이 또 다른 세계 같더라고요.
은희경 : 그것 때문에 책을 낼 때 두려운 마음도 있었어요. 연재를 할 때는 그냥 재밌게 썼거든요. 제가 쓴 글 중에서 제일 짧은 시간을 썼고 충분히 할 얘기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어려운 줄 모르고 자유롭게 썼어요. 대개 소설을 쓸 때는 처음 시작할 때 어렵거든요. 힘이 들어요. 그런데 이 글은 일상 속 저의 라이프 스타일, 저의 가까운 사람들이 있는 이야기라 재미있게, 쉽게 썼는데요. 책으로 내기로 했을 때는 걱정이 많이 되더라고요.
일단 저의 사적인 모습이 너무 많아요. 그냥 어떤 글에다 제 취미는 달리기입니다, 하는 것과 실제로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구체적으로 보이는 건 다르잖아요. 책에는 그런 모습이 담겨 있으니까 내 모습을 이렇게까지 노출할 정도로 내가 배짱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또 지인들 얘기도 있는데요. 어쨌든 나는 내 얘기라고 쓰지만 나의 서사만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도 생각했어요. 같은 일을 겪어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으니까요. 내가 또 어떤 편견을 가지고 다른 사람 이야기를 내 방식대로 얘기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조심스럽고요. 그래서 막상 책으로 내려고 할 때 제가 조금 망설였어요.
오은 :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책읽아웃> 청취자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을 소개해 주세요.
은희경 : 최근에 정말 좋게 읽었던 권여선 작가님의 『각각의 계절』을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일단 재미있고요. 아프지만 그래도 이 아픔은 내가 겪어서 해석할 만한 아픔이거든요. 문장도 정말 좋아요. 재미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재미라는 게 여러 가지 종류의 재미가 있잖아요. 『각각의 계절』은 너무 공감이 되면서도 낯선 지점을 꼭 보여줘요. 그런 것들이 소설이 독자를 데려갈 수 있는 어떤 낯설고도 나를 발견한 지점이라고 할까요, 낯선 나지만 사실은 내가 알고 있었던 오래된 나 같은 것을 보여줘서요. 그래서 권여선 작가님의 소설을 좋아하는데 이번 소설집 『각각의 계절』도 그랬어요. 이렇게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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