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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우X정희원 칼럼] 하늘을 나는 새들의 시점에서

전현우 정희원의 거대 도시에서 이동하기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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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2023년 최악의 지옥철로 이름난 김포골드라인 혼잡을 다루는 세미나에서 발제를 했던 적이 있다.


기후 위기 시대, 도시의 이동을 탐구하는 교통, 철학 연구자 전현우와
도시인의 이동성 문제에 관심이 많은 노년내과 의사 정희원의 크로스 에세이.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김포시청역 벽화 ⓒ전현우 

지옥철 관찰기: 김포

얼마 전, 2023년 최악의 지옥철로 이름난 김포골드라인 혼잡을 다루는 세미나에서 발제를 했던 적이 있다. 2량, 정원 172명짜리 꼬마 열차에 370명이 탑승하는 지옥철. 1990년대 경인선처럼 10량 열차로도 부족해 복선을 복복선으로 증강하던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거대 도시에서는 여전히 예측이 조금만 실패해도 극심한 혼잡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착잡한 장면이다. 

발제를 위해 도착한 김포시청역 지하 대합실에 설치된 미술 작품에는 사람들이 거리를 걸어 열차를 타러 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었다. 새롭게 생긴 도시철도가 교통 정체나 탄소 배출 걱정에서 사람들의 일상을 해방시키지 못한 채, 지옥철로 전락한 모습이 겹쳤다. 걷기와 철도의 결합이 결국 기후위기 시대 거대도시에서 이동하는 방법의 기본이 될 수밖에 없다는 내 주장이 가진 한계를 고발하는 지독한 농담을 들은 느낌.


김포시청역 벽화 ⓒ전현우 

발제를 시작하며 찬찬히 지도를 살펴보았다. 지도에서 김포는 동남측의 서울, 남측의 인천 및 서해안 제조업 지역에서 황해도의 주요 도시인 개성, 해주, 사리원, 나아가 평양 방면으로 이어지는 축선 상에 위치해 있었다. 서울로부터 개성은 평택, 해주는 세종, 사리원은 대전만큼 떨어져 있다. 모두 철도가 힘을 발휘할 만한 거리. 아마도 황해도가 한국의 한 지역이었다면 김포는 서울과 서해안에서 출발해 이들 황해도 지역으로 가는 철도 노선들이 교차하는 지역이지 않았을까?  


김포와 주변 도시의 위치

그러나 현실의 김포는 물론 그렇게 되지 못했다. 2023년의 김포는 크게 두 덩어리로 나뉜다. 크게 시역(市域) 남동부, 서울과 인천에 인접한 신도시 및 구 김포읍 지역. 그리고 시역 서부, 강화 및 휴전선에 인접한 제조업 난개발 지역. 이 가운데 문제의 지옥철, 꼬마 열차의 김포경전철은 시역 남동부에만 다닌다. 두 지역을 가르는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를 경계로, 내외부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교통지옥에 시달리고 있다. 

경계 내부의 교통지옥은 지옥철을 필두로, 중심 도시 서울 방면으로 돌입하면 할수록 정체가 누적되는 깔때기 모양의 방사선 구조 때문에 벌어진다. 한편 경계 외부에서, 교통지옥은 도로 구조가 근본적으로 농촌 마을 시대에서 달라지지 않아 주간선도로와 몇몇 계획 구역을 빼면 방향을 찾기 어려운 난개발 때문에 벌어진다. 길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구불구불하고, 노변에는 낡은 선거용 트럭 같은 고물들이 쌓여 있는 이들 난개발 지역. 철도는 그저 동네 주민이나 철도 동호인들의 망상 속에서나 존재한다. 그나마 있는 버스도 거의 오지 않지만, 8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은(이나마도 제조업 종사자만 집계한 것이다) 이들 지역의 낡은 도로를 따라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늘어서 있는 공장에 어떻게든 출근해 오늘도 일하고 있다. 이들에게 차량은 필수일 수밖에 없다. 

묘하게도 김포의 철도 계획은 이 경계를 넘지 않고 있었다. 김포골드라인 연장선이든, 인천2호선 연장선이든, 5호선 연장선이든, 서부권 광역급행철도(이른바 GTX D)든, 모두 제2외곽을 철의 장벽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수만 명이 사는 통진읍(23년 기준 인구 약 3.3만 명) 마송리가 이들 노선에서 멀지 않고, 강화로 가는 길은 상습 정체에 시달리지 않던가? 실은 그림 1에 표시한 축을 따라 한강 하구에 철도교량을 놓는 것도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하기 어렵다. 북한과의 관계만이 불투명할 뿐… 


김포시의 구조. 김포시, 2035년 김포 도시기본계획 50쪽

물론 이유를 설명하는 게 어렵지는 않다. 이 방향으로는 철도가 애초에 놓인 적이 없었다. 따라서 서울이든, 인천이든, 아니면 김포 자체든 철도를 놓을만한 기반을 자신들의 시가지 내에 갖춰야 한다는 판단을 하지 못했다. 충분한 용량을 제공하고 자동차보다 빠른 철도망을 구성하려면 역과 본선 모두를 위한 공간이 필요한데, 그런 것은 없었다. 이야기되었던 것은 잘 해봐야 지하철 9호선 연장뿐. 이미 서울시내 수요만으로도 지옥철이었던 노선을 연장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지하철과 바로 접속하는 전철만 있는 건 병행 고속도로망에 비해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를 수도 없다. 통과 교통량이 있을 수 없는 지역인 만큼, 현재의 수요 가운데 다른 지역을 오가는 수요를 이리로 끌어들여 철도를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남북사업으로 철도 투자를 정당화하는데도 한계가 컸다. 왜정기에는 경부선만큼 중요했던 경의선조차 사업이 현실화될 때까지 헤맸던 것이 사실이니.. 제도도 지지해주지 않았다. 오랫동안 광역철도는 중심도시 시청으로부터 40km 반경 이내까지만 지정될 수 있었다.1)  제2외곽순환선이 하필 서울 도심 기준 이 거리에 해당하는 반지름을 그리며 지나간 덕에, 막 생겨난 이 도로가 철도를 통해 뭔가를 해 볼 수 있는 경계처럼 여겨진 듯했다. 게다가 김포는 경기도, 강화는 인천으로 나뉜 이 지역의 행정구역 덕에, 이들 두 축의 구축에 통합적으로 관심을 기울일만한 주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이들 한계가 결국 김포골드라인에서 벌어진 정책 오류의 가장 근본적 원인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신도시와 경전철 건설 단계에서 있었던 판단 착오2)는 이들 문제에 비하면 나중 문제였을 것이다. 애초에 48번 국도, 그리고 서해안을 따라 철도 축을 계획할 조건이 되었다면, 꼬마 열차가 실제 꼬마 열차에서 그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직은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연구는 찾기 어렵다. 발제에서 지도까지 그려가며 짚었지만, 결국 이런 이야기는 토론회를 다룬 보도에는 소개되지 못했다. 학자 특유의 한가한 역사적 분석에 불과하다는 것이 많은 참여자들의 솔직한 감상이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감상은, 세상이 지금까지 그랬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나쁜 감상이라고 보기도 어려울 것 같다.  


이중 도시를 넘어서려면

그렇지만 아마도 세상은 통째로 뒤흔들릴 것이다. 기후 ‘위기’ 아닌가?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어 있는 건지, 하나하나 짚는 한가해 보이는 소리가 이런 시기에는 결국 유용한 법이다.

김포에서 이렇게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단지 지옥철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인천 태생인 만큼 지옥철이라면 지겹게 보았다. 대책도 사실 단기적으로는 올림픽대로에 버스전용차로를 놓고, 중장기적으로는 철도망을 추가하는 것이니 논리적으로 단순하다. 내가 인상을 받은 이유는, 이 도시가 내가 수도권 전체의 구조를 묘사하기 위해 썼던 개념의 표본을 다시 확인했다는 데 있었다. 

나는 『거대도시 서울 철도』에서부터 수도권과 한국의 대도시권은 이중 교통 환경 속에 잠겨 있는 이중 도시라고 평가해 왔다. 대중교통이 그래도 비교적 괜찮은 중심부가 있다. 그리고 대중교통이 열악한 주변부가 있다. 하나의 시역(市域) 내에, (계획) 철도망이 멈추는 명확한 단층이 존재하고, 그 단층 안쪽의 교통 문제는 쟁점이 되는 반면 단층 바깥쪽은 문제조차 되지 않는다는 김포의 상황은 이 이중 구조의 전형이었다. 

물론 탄소 배출량은 이렇게 문제로 생각되지도 않는 지역에서 급증하고, 오히려 서울에서는 천천히 잡히는 중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버스조차 무너진 지역이라면 사람들이 당연히 차량에 의존할 수밖에. 그리고 이렇게 대중교통을 고려하기조차 어려운 사람들이 김포에만 최소 8만 명이고, 수도권 전체로는 200만 명을 상회하였다.3) 가족까지 치면 수백만 명. 이들이 그냥 차량으로 다니도록 방치되어 있다는 점에서 수도권은 ‘이중 도시’라는 것이, 철도망의 방향을 잡기 위해 수도권 공간을 검토할 때 내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런데 김포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의 이중 도시가 하나의 시역 내에 분포해 있는 지역이었다. 게다가 이 이중 도시를 넘으려는 시도는 체계적으로 가로막혀 있고, 따라서 이중 도시의 내측에서는 꼬마 지옥철이 형성되고 널리 주목받은 반면, 그 바깥의 열악한 상황은 무시된 채 그저 이어지고 있을 따름이다. 

물론 이것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단층 안쪽, 지옥철을 타는 사람들은 서울, 특히 서울 도심지와 신개발지로 들어오는 한강신도시 거주 중산층이다. 한편 단층 바깥쪽, 난개발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김포 곳곳의 구시가에 있는 사람들과 경기, 인천에서 온 사람들이다. 아마도 사장님만 역방향 통근을 서울에서 할 것이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들도 다수 있고. 그런데 중산층들은 신도시에 비슷한 시기에 들어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어 정체성을 형성하기 좋은 인구 집단인데다, 서울에서 여론을 주도할 가능성도 크다. 반면 제조업 종사자들은 다양한 도시에 퍼져 살고 있고 자연발생적인 난개발 속에서 김포에 모여살게 된 사람들로 마치 모래알 같이 흩어지기도 쉬울 것이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도로로 진입해 오니 교통 정체의 경험도 파편적일 것이다. 더불어 공통의 경험을 여론으로 만들어 내기에도 쉽지 않다. 서울과 이질적인 주변부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이들의 이동이 간과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4)  

아직 돌파구는 찾지 못했다. 하지만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주장하고 이야기할 수는 있다. 아직 듣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지금까지처럼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려는 다짐만은 꺾지 않고 있으니 아직 희망은 있을 것이라 믿는다. 


새들의 시점

김포라는 구체적인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지겨울 정도로 내놨던 이유는 이것이다. 결국 우리의 이동은 도시 속에서 이뤄진다. 또한 이 도시의 모습과 구조가 결국 우리의 이동 환경을 결정한다. 그 속에서 우리의 선택은 특정한 방향으로 조형되게 마련이다. 자동차가 지배하는 이 조형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기후 위기 시대 모든 도시의 과제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한 명의 사람이라도, 한 번의 통행이라도 더 걷기와 대중교통이 조합된 확장된 보행 공간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다만 오늘의 거대 도시를 바꾸려면, 지상을 이동하는 각 개인의 관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옥철의 고통만 보게 되면 하나의 시역 내에서 일어나는 일조차 모두 시야에 넣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김포는 말해준다. 거대 도시 전체를 바꾸려면, 자동차 이외의 대안을 생각하기 어려운 그 바깥의 난개발 지역을 시야에 넣어야 한다. 중산층 말고도, 다양한 계급과 인구 집단을 시야에 넣어야 한다. 이중 도시를 넘기 위해서도 이들 개인의 이동을 모두 포괄하는 시야가 필수적이다. 이 시야는 아마도 높은 하늘로 날아오른 새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보아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새들의 시점에서 도시를 보면서, 대중교통의 흐름은 뚫고 승용차의 흐름은 적정 수준에서 관리해야 한다. 

새들의 시점은 때로는 편협한 개별 인간의 시점과 거리를 둘 수 있다는 점에서 유효하다. 이렇게 날아올라 보았을 때 확보할 수 있는 시점에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서 동의를 받을 수 있는 최대 공약수가 무엇인지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중산층도 저소득층도, 남성도 여성도, 청년도 노년도, 어떤 인종이나 지역이라도 거부하지 않을 무언가를 찾아내고, 이걸 통해 기후 위기를 넘는다는 공동의 목표를 이동 공간 속에서도 구체화해야만 한다. 


철도와 공원, 또는 깍지 모형

이 최대 공약수로 가장 유력한 것은? 나는 결국 철도와 걷기에 매력적인 공원이라고 생각한다. 철도와 공원은 중산층이 개인적 소비로는 얻을 수 없지만, 결국 어떤 동네에서 누릴 수 있는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서비스이다. 수많은 시민들의 돈을 매개로 사업을 벌이는 사업자가 없다면 이런 서비스를 공급할 수 없다. 

더불어 철도와 공원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유용하다. 대중교통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이 사람들 역시 소통과 휴식을 필요로 하니. 가난한 할머니들이 동네 친구를 만나거나 강아지와 산책하려면 공원이 있어야 하고, 멀리 마실을 나가려면 전철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물론 이들이 충분한 돈을 낼 수 있을 리 없으니, 서비스 공급에는 재분배 권한을 가진 주체, 즉 국가가 개입해야 할 테고.

이들 철도와 공원은 기후 문제에 대응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철도보다 자동차 통행을 대체하기 좋은 대중교통은 없다. 더불어 역에 접근하거나 멀어질 때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걷게 만들어 아예 동네의 활기를 높이는 데 기여하도록 만들기까지. 이렇게 걷는 길을 풍성하게 만드는 건 공원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기능이다. 더불어 도시 열섬 문제든, 식물 자체의 탄소 흡수력이든, 공원이 기후 완화와 적응에 이익이 되었으면 되었지 손해가 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물론 철도와 공원 말고도 아주 많은 요소들이 이중 도시를 넘기 위해 필수적일 것이다. 그러나 새들의 시점은 역시 구체적인 것에서 거리를 두고 사태를 간략하게 만드는 데 매력이 있다. 이렇게 사태를 간략하게 만들기 위해, 두 요소가 결합한 도시의 모형을 하나 상상해 본다. 코펜하겐이라는 도시에서 처음 제안된 모형이긴 하지만, 북유럽과 한국의 거리가 상상을 방해하니, 구체적인 도시의 이름은 지우는 게 좋겠다. 

이 도시에서, 인간이 사는 도시의 구조는 손 모양이다. 도심 주변에 있어 접근성이 높아 지대 역시 높은 지역은 최대한 개발한다. 그렇지 않은 주변부 지역의 경우, 무질서한 난개발로 주변부의 밀도가 낮아지지 않도록 철도망 주변에 개발을 집중시킨다. 이런 과정을 반복한 결과가 바로 손 모양이다. 한편 이렇게 개발을 집중시키는 수단은 물론 개발 제한이다. 개발이 제한된 지역은 녹지로 남는다. 이들 녹지가 시가지로 인해 연속성을 잃지 않고 적어도 시가지를 이루는 손가락 사이를 채울 수 있도록 한다. 손가락 사이를 채운 녹지 역시 손 모양이 될 것이다. 녹지와 시가지가 서로 손을 맞잡은 듯하다. 

이런 모양의 도시를 나는 깍지 모형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새들의 시점으로 보았을 때, 기후 대응에 어느 정도 성공한 도시는 결국 이와 비슷한 모양으로 변모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시 말해 무질서한 난개발 지역과 대중교통이 일정한 역할을 하는 이중 도시로 나뉜 도시라면, 그 도시는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적어도 그런 도시가 지속하는 건, 기후 대응 노력에 무임승차를 해도 되도록 만드는 제도적 허점이 남아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부동성 강요 대 이동 역량 관리

다시 『모빌리티』를 펼쳐 본다. 이 책의 9장(‘천당과 지옥으로 가는 문’)에서 어리는 기후 대응에 성공한 사회가 운용하고 있을 제도에 대해 몽상을 전개하고 있다. 아마르티아 센, 누스바움과 같은 철학자들을 따라, 그는 인간의 삶은 그가 실제로 행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힘, 즉 역량의 수준에 따라 평가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이동력은 이런 의미에서 역량의 일종이다. 이동은 다른 사람과 장소로 자신을 데려다 놓아 타인 또는 장소와의 공현존(co-presence) 상태를 창출하는 행위이고, 수많은 자원을 동원하는 힘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후 위기가 격화될수록 이러한 역량은 파괴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대부분은 지금 누리는 공현존 상태에 접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동에 필요한 힘이 파괴되어 결국 이동하지 못하게 되는, ‘부동성 강요 상태’가 기후 위기가 가속화된 이동의 미래일 것이다. 

모두가 이 상태로 빠져드는 걸 피하는 게 지금의 과제이다. 그렇다면 서로 이동에 필요한 역량을나누어 가지고, 나누어 쓸 수 있도록 하는 관리의 방법이 지금 필요하다. 어리는 ‘우정 마일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국제항공 자체를 없앨 수야 없으니, 사람들이 여전히 대양을 넘어 만나고 여행할 수 있도록, 항공이 제공하는 역량을 나누어 가질 제도를 갖춰야 한다는 게 그의 요지다. 

나는 이 제안에 조금 더 살을 붙여보고 싶다. 국제항공 분야에서 배출할 수 있는 탄소 톤수가 최대 10억 톤으로 제한되었다고 하자.5) 이 값을 각국, 또는 주요 도시 간 통행로별로 배분할 수 있다. 바다나 산 때문에 항공이 불가피한 도시 간 통행에 우선 배분하고, 고속철도로 대체가능한 통행에는 이 자원을 배분하지 않는다. 더불어 도시 간 통행에 배분하는 탄소량은 우선 현재의 도시 간 통행량에 비례하여 배분한다. 물론 이렇게, 지금의 불편만 주목하게 되면 개도국이 불리해진다. 선진국의 경우 다른 분야에서 감축 의무를 걸고, 동시에 특허료처럼 현재의 항공 배출 톤수를 유지하면 해가 갈수록 더 많은 부담금을 납부하도록 한다. 해당 부담금은 개도국의 도시에 철도와 공원을 갖추는 데 사용하여 이들 도시를 깍지 모형으로 바꾸어 나가는 데, 그리고 필요한 항공망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데 쓴다. 이를 통해, 세계인 모두가 세계 어디든 자신을 데려다 놓을 수 있는 최소한의 역량을 나누어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너무 간단하고 순진한 몽상일 것이다. 그러나 기후 위기 앞에서는 이런 몽상도 다만 무모한 몽상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칸트의 영구평화론보다야 더 현실적이고 간단한 제안이니까… 이런 수준의 논의라 해도, 누구도 총대를 메고 내놓지도 않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다.6) 하긴, 아에로플로트(러시아)조차 내놓는 온실가스 배출량 계산기를 대한항공은 제공하지 않지. 현실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잔혹하다.

이런 몽상은, 도시 구조를 살펴볼 때 취했던 새들의 시점과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새들의 시점을 취한 덕에 가능해진다. 기후 위기 속에서도 이동의 역량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핵심 목표가 있다. 이동에는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부분, 그리고 그럴 수 없는 부분이 모두 존재한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편 개별 행위자들의 이해관계 같은 것들은, 목표를 활용해 높이 날아올라 때로 무시할 수 있어야 한다. 지상으로 내려와 발을 디딜 곳은 없지만, 그럼에도 이 시점을 포기할 수야 없다. 새들처럼 선회하면서 계속 지상을 살펴본다면, 발을 디딜만한, 다시 말해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해 통약가능한 지점을 찾는 일도 언젠가는 가능할 것이다.





1) 광역교통법 시행령에 이 기준이 있었다. 광역철도 지정이 되면 쉽게 말해 각 지방의 교통 수요에 알맞은 ‘전철’을 굴릴 노선을 건설하기 쉬워진다. 22년 6월에 와서야 이 거리 기준이 삭제되었다.

2) 고가를 전혀 짓지 않고 지하로 전 구간 짓는다, 사업 속도를 더 빨리 하기 위해 승강장 규모를 축소한다 등.

3) 제조업 종사자 수의 대략적 규모. 인접 산업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4) 사실 김포 같은 도시가 일자리가 없는 비 자족도시라는 말도 이들을 감안하면 쉽게 하기 어려운 말이다. 2020년 현재 김포에 거주하는 통근통학자는 24만 명인데 반해, 김포로 통근통학하는 사람의 수는 22만 명이기 때문이다. 일자리와 주거지가 불일치하는 인구가 김포에만 수만 명 있다. 교통이 그리 편리하지 않은데도 그렇다. 모든 계층과 산업에 걸쳐 직주 분리가 이뤄져 있고, 이것이 교통 지옥을 부른다고 말하는 것이 ‘일자리가 없다’는 성긴 말 보다 훨씬 더 정확하다.

5) 코로나19 이전 배출량의 대략적 규모. 제트 항공기를 유지하는 한, 그리고 유지(油脂) 작물의 재배량을 크게 늘리거나 수십 년 뒤 이퓨얼이 성공적으로 상업화되기 전에는, 국제항공의 단위 탄소 배출량이 극적으로 줄어들 가능성은 별로 없다.

6) 『거대도시 서울 철도』의 마지막 보강(보강 11)에서 제안한 ‘국제철도협력기구’의 설치도 비슷한 생각에서 나온 그림이다. 안타깝게도 그에 대해서는 논평조차 거의 없었다.




 
        거대도시 서울 철도     
      
거대도시 서울 철도
        
전현우 저
        
workroom(워크룸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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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전현우(교통, 철학 연구자)

서강대학교에서 분석철학을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자연종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교통, 철학 연구자. 과학 철학을 연구하던 중, 대규모 자원과 에너지를 소모하면서도 사람들을 매일같이 끌어들이는 교통 시스템의 마력 덕에 본격적으로 교통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자연과학연구소에서 교통에 대한 관심을 더 발전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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