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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우X정희원 칼럼] 이동이 나만의 문제일까?

전현우 정희원의 거대 도시에서 이동하기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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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코로나 19로 잠시 주춤했던 전 세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곧 과거의 증가 속도를 이어가며 매년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IPCC의 보고서가 이야기하는 최악의 가정조차도 매우 장밋빛인 미래였던 셈이다. (2023.08.25)


기후 위기 시대, 도시의 이동을 탐구하는 교통, 철학 연구자 전현우와
도시인의 이동성 문제에 관심이 많은 노년내과 의사 정희원의 크로스 에세이.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언스플래쉬

화장실 중에는 씻고 난 뒤의 손을 닦아 말릴 수 있는 1회용 페이퍼타월이 설치되어 있는 곳들이 있다. 한 장이면 충분하다는 문구가 쓰여 있는 곳도 많다. 굳이 이 문구가 쓰여 있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손을 닦기 위해 여러 장의 페이퍼 타월을 뽑아 쓰는 이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서너 장을 죽죽 뽑아서 대강 손을 닦는데, 이렇게 대량의 페이퍼타월이 순식간에 폐기물로 전락한다. 나는 이런 이들을 마주할 때마다 물끄러미 인상착의(?)를 살피는 버릇이 있다. 저 분들의 손은 대체 얼마나 고귀해서 네 명 분의 손에 사용될 만한 종이를 없애 버린 걸까 싶은 생각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 참 별 쓸데없는 것까지 신경 쓰고 사느라 스트레스 받겠네...', '남 신경 쓰지 말고 너나 잘 먹고 잘 살아라' 등의 반응을 접할 가능성이 높다. 


내 돈 내가 쓰는데

그런데, 이보다도 더 공격적이고 냉소적인 반응을 접하는 경우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과도한 여행이나 연비가 낮은 대형 SUV의 사용 등에 대한 의문을 이 사회에서 제기하는 경우다. '내 돈 내고 내가 쓰는데 왜 참견이냐'가 가장 기본적인 반응이다. 시장 경제에서 개인의 의사 결정은 개인의 몫이니 참견하지 말라는 식이다. 수렵-채취 사회에서 이동은 기본적인 생존 수단이었다면, 지금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이동은 소비 수준을 과시할 수 있는 생활 방식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산업화 이전에도 가마, 말, 마차 등이 이동 수단을 위치재로 만들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용 제트기나 슈퍼카, 대형 SUV나 마블링이 가득한 쇠고기 같이 다들 부러워하는(부러워하도록 끊임없이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는) 것들은 비싸고, 동시에 굉장한 온실가스 배출을 가지기도 한다. 그래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삶을 사람들이 자랑처럼 여기기도 하는 것이다.

과연, 그들은 개인의 돈을 지구를 멸망시키는 데 사용하는 것을 자랑할 권리가 있는 것일까? 사람들의 이런 차가운 반응을 접할 때마다 나는 생각에 잠긴다. 내 손은 몇 장의 페이퍼타월을 쓰레기통으로 직행시킬 권리가 있는 것일까. 나는 일정 거리를 이동할 때 대체 몇 인분의 칼로리를 소모할 권리가 있는 것일까? 사람은 1킬로미터를 걷는데 40Kcal을 소모한다. 자전거는 20Kcal이 든다. 휘발유를 쓰는 내연기관 중형 자동차는 사람의 20배인, 800Kcal을 소모한다. 산업사회 이전을 생각하면, 차를 혼자서 몰고 출퇴근하는 행위는 사람 20명이 추진하는 인력거나 가마를 타는 것과 비슷한 행동이 된다. 그런데, 80억의 전 세계의 사람들이 동시에 이런 행동을 모두 감행할 때, 우리가 알던 지구는 멸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실, 평균적인 한국인은 지구와 지구의 생물권, 그리고 인류를 멸망시키는 능력으로는 세계적으로도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다. 국제환경단체 '지구 생태발자국 네트워크(GFN)'은 각 국가가 지구 생태계에 가하는 부담을 비교하기 위해 '지구 몇 개가 필요한지'를 따진다. GFN이 작년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가 한국인처럼 살기 위해서는 지구 4개가 필요했다. 전 세계 주요국들 중 미국, 호주를 넘어 3등을 차지했다. 전 세계가 모두 한국인이라면, 1961년에는 지구가 0.25개면 됐다. 하지만 1979년에 이미 1을 넘긴 1.1개가 되었는데, 이후 이 수치는 현재까지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인은 평균적으로 지구가 견딜 수 있는 용량의 1.75배를 소모하고 있다. 산술적으로 한국인은 전 세계인 평균의 2.3배의 위력으로 지구를 멸망시키고 있다.


IPCC 6차 평가 보고서의 시나리오별 온실가스 배출량 (<한겨레> 신문에서 재인용)앞으로 벌어질 일들

'나 죽기 전엔 별일 안 생긴다'라는 부류도 자주 접한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대답하는 많은 분들이 자연사하기 전까지 우리 지구가 안녕할 것 같지는 않다. 앞으로 무슨 일들이 벌어질까?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2013년 제 5차 기후변화 평가 종합보고서(이하 평가보고서)에서 대표농도경로(RCP, Representative Concentration Pathways)라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지구 에너지 평형 정도를 변화시키는 단위면적당의 에너지 정도를 숫자로 나타낸 이 시나리오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RCP 2.6(인간 활동에 의한 영향을 지구 스스로가 회복 가능한 경우), RCP 4.5(온실가스 저감 정책이 상당히 실현되는 경우), RCP 6.0(온실가스 저감 정책이 어느 정도 실현되는 경우), RCP 8.5(현재 추세로 저감 없이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경우) 등이다. 

IPCC는 2023년 발표된 제 6차 평가보고서를 위해서 5가지의 공통사회 경제경로(SSP, Shared Socioeconomic Pathways)를 제정하기도 하였다. SSP1-5까지가 있고, SSP1은 RCP2.6, SSP2는 RCP4.5, SSP5는 RCP8.5에 해당한다. 이렇게 선택지가 있으면, 왠지 중간치기는 할 것 같다는 생각을 사람들은 쉽사리 한다. 그래서, 통상적인 정부 정책이나 출판물에 나오는 암울한 미래는 RCP 4.5를 가정한다. 2030년대에 전 세계에 산불이 난무한다거나, 2050년대에 지구의 상당 부분이 거주할 수 없는 뜨거운 지역으로 변한다거나, 우리나라 전역은 곧 매년 200일쯤 폭염에 시달린다거나 하는 것들은 '중간 정도'의 가정을 따른다는 말이다. 하지만, 요즈음 과학자들이 특히 안타까워하고 있는 점은 최근 몇 년간의 온실가스 증가 궤적은 소위 '최악'인 RCP 8.5시나리오의 예측 궤적을 한참 위쪽으로 뚫고 올라서고 있다는 관측이다. 금년 발표된 IPCC의 제 6차 평가보고서에서 제시한 그림을 자세히 보면, (5)로 표시된 과거의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 속도 곡선에서 2020년 각국의 정책을 반영한 시나리오인 (1) 곡선으로 이어지는 부분의 각도가 아래 거의 45도에서 평평하게 갑자기 뚝 꺾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도, 2020년 코로나 19로 잠시 주춤했던 전 세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곧 과거의 증가 속도를 이어가며 매년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IPCC의 보고서가 이야기하는 최악의 가정조차도 매우 장밋빛인 미래였던 셈이다.

지구의 평균 기온이 산업화를 기점으로 섭씨 1.5도 정도에 머물기 위해서는 10년 내에 전 세계의 온실가스 배출이 0에 도달해야 한다는 예측이 있었다. 그 이후 몇 년 만에, 캐나다의 산불은 이미 한반도 전체 면적의 2/3에 해당하는 14만㎢를 태웠다. 이렇게, 나무의 형태로 저장되어 있던 온실가스가 대기 중으로 맹렬하게 방출되며 올해는 (당연하게도) 지구의 에너지 수지가 사상 최대 규모의 과잉을 기록하는 중이다. 즉, 실시간으로 지구가 가열되는 속도도 최고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제부터는 영구동토의 메탄과 바다의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날아오르는 속도 역시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필연적으로 냉방을 위한 에너지 소모도 늘어난다. 섭씨 1.5도 상승에 도달하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이, 기온의 상승이 온실가스 배출의 상승을, 온실가스 배출의 상승이 기온의 상승을 부르는 양성 되먹임은 이미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미 세계는 따뜻해지는 세계를 끓어오르는 세계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결론

제레미 리프킨은 그의 책 『회복력 시대』에서 인류의 두뇌가 만들어내고 진보의 가치를 최선으로 여긴 서구 사회가 의학,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400년간 눈부신 성과를 이룩했지만, 그 인류가 스스로를 멸망시키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는 “어떤 인간도 혼자만의 섬이 될 수 없고 완벽한 자율적 행위자도 될 수 없으며 어떤 식으로든 다른 모든 생명체와 지구 권역의 역학에 의존하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라고 말한다. 올여름, 지구는 불타고 있다. 내 집이 불타고 있는데, 그 불에 기름을 붓는 것을 자랑하고, 부유한 것으로 과시할 만한 어리석은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이동을 비롯한 라이프스타일에 있어서는 어째서인지 모두들 바보가 된 것만 같다. 올해도 우리나라의 SUV 판매 비중은 역대 최대치를 돌파하는 중이다.



회복력 시대
회복력 시대
제러미 리프킨 저 | 안진환 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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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희원(노년내과 의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전문의를 취득했다. 현재는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의과대학 시절, 호른을 연습하던 중 근육 유지의 중요성을 깨닫고 근감소증에 관심 갖기 시작했다. 이후 내과 실습을 돌며 노인의학에 완전히 매료되었으며, 내과 전공의 시절 노쇠에 대해 연구하다가 공부에 대한 갈증이 생겨 의과학대학원에 들어가 이학박사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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